1980년 5월 17일.
비상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 되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이 대치, 충돌하며 유혈사태로 번집니다.
시간이 지나며 학생들 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시위에 합세하고,
금남로를 지킨다는 계엄군의 명분 하에 광주는 완전히 고립되고 맙니다.
고립된 광주-
그리고 총칼을 쥔 채 도청 안팎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시민군과 계엄군.
1980년 광주,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함께 기념식으로 가볼까요>
초여름 날씨처럼 따가웠던 햇살만큼이나
그곳의 의자를 메운 참석자들의 마음도 뜨거웠습니다.
식전행사, 개식,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제창(4절),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과 5.18민주화운동희생자영령에 대한 묵념, 헌화.분향,
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 기념영상시, 기념사, 기념공연, 폐식 순으로 기념식이 진행 되었습니다.
여타 다른 기념식들과의 차이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통 헌화.분향에서는 국가고위공직자와 관계자, 유가족들이 참여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초,중,고생 남녀 1명씩 모두 6명이 함께 헌화와 분향을 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익숙해지고 또 가벼워지는 것이 과거에 대한 기억의 속성임을 잘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도청 앞을 메우고 있던 31년 전의 그날처럼 학생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하며
그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국립묘지 진입로에 걸린 염원의 끈>
김황식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기념사를 대독하며
'당시의 부상자와 유가족에 대해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광주민주화운동은 다수의 희생이 낳은 민주화의 희망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져 한국민주주의의 회복의 디딤돌이 되었으며
관용과 질서속에서 공동의 가치를 창출하고 세대, 지역, 이념의 갈등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이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선진일류국가로의 도약하자는 다짐으로 기념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하선영 명창의 소리와 김미숙 뿌리한국무용단이 함께한 '넋이야 넋이로다'와
광주시립합창단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념공연으로 펼쳐졌습니다.
참, 임을 향한 행진곡이란 노래!
제목만 듣고도 아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좀 생소하실거에요.
하지만 가사를 보고, 첫소절을 들으시면 '아~'하는 공감의 소리가 나올겁니다.
비상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 되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이 대치, 충돌하며 유혈사태로 번집니다.
시간이 지나며 학생들 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시위에 합세하고,
금남로를 지킨다는 계엄군의 명분 하에 광주는 완전히 고립되고 맙니다.
고립된 광주-
그리고 총칼을 쥔 채 도청 안팎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시민군과 계엄군.
1980년 광주,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5.18민중항쟁추모탑, 윗부분의 환형물은 희생된 분들의 부활을 염원한다고 합니다>
[찬란한 오월, 숭고한 나눔]
그날로부터 31년이 지난 2011년 5월 18일.
독재와 국가권력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신념앞에 당당했던
그날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자 국립5.18민주묘지에 모였습니다.
<함께 기념식으로 가볼까요>
초여름 날씨처럼 따가웠던 햇살만큼이나
그곳의 의자를 메운 참석자들의 마음도 뜨거웠습니다.
식전행사, 개식,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제창(4절),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과 5.18민주화운동희생자영령에 대한 묵념, 헌화.분향,
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 기념영상시, 기념사, 기념공연, 폐식 순으로 기념식이 진행 되었습니다.
여타 다른 기념식들과의 차이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통 헌화.분향에서는 국가고위공직자와 관계자, 유가족들이 참여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초,중,고생 남녀 1명씩 모두 6명이 함께 헌화와 분향을 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익숙해지고 또 가벼워지는 것이 과거에 대한 기억의 속성임을 잘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도청 앞을 메우고 있던 31년 전의 그날처럼 학생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하며
그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국립묘지 진입로에 걸린 염원의 끈>
김황식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기념사를 대독하며
'당시의 부상자와 유가족에 대해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광주민주화운동은 다수의 희생이 낳은 민주화의 희망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져 한국민주주의의 회복의 디딤돌이 되었으며
관용과 질서속에서 공동의 가치를 창출하고 세대, 지역, 이념의 갈등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이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선진일류국가로의 도약하자는 다짐으로 기념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대동세상군상.
슬픔을 딛고 승리를 노래하며, 질서와 치안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1980년 5월 당시의 "대동세상"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합니다>
하선영 명창의 소리와 김미숙 뿌리한국무용단이 함께한 '넋이야 넋이로다'와
광주시립합창단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념공연으로 펼쳐졌습니다.
참, 임을 향한 행진곡이란 노래!
제목만 듣고도 아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좀 생소하실거에요.
하지만 가사를 보고, 첫소절을 들으시면 '아~'하는 공감의 소리가 나올겁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천으로 천으로, 나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폐식이 선언된 후, 묘역을 둘러봅니다.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나 아직 20대가 되지 않았거나
혹은 갓 20대를 넘긴 '학생'들의 묘비가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꽃다운 청춘이었기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져 눈에 밟혔던 것 같네요.
<묘역의 모습, 평안한 영면을 기원합니다>
초반에 언급했던대로, 광주는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총 10일간 봉쇄 되었습니다.
그랬기에 당시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죠.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지게 되었고,
그 기사를 가장 먼저 타전한 사람이 독일인 기자(게르하르트 히일셔 전 남독일신문 기자)였습니다.
그는 군부의 검열을 피해서 독일로 필름을 가져가 신문에 기사를 기고했죠.
그래서일까요, 유난히 외신 기자들이 눈에 많이 보였습니다.
<취재에 열중하고 있는 외신기자. 광주시민들만큼 외신기자들의 관심도 뜨거웠습니다>
유영봉안소로 가봅니다.
그곳에는 당시 희생되었거나 행방불명된 분들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사진조차 없어 무궁화로 자신의 부재를 말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이제 갓 돌을 지난 돌잡이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또한 유영봉안소에 아직 빈자리가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31년이 지나, 아직 생존해 계신 분들이 이 자리를 채울 생각을 하니
역사의 아픔이 너무도 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노라 다짐합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희생으로 남긴 오늘을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이 강해집니다.
또한 그날의 눈물을, 피를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5.18민주화항쟁희생자영위, 그리고 영정>
5.18 추모관으로 발길을 돌려봅니다.
제가 처음에 묘역에 왔을 때가 이미 10여년 전이었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국립묘지가 아니어서 '망월동 묘지'라고 불렀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날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전시실만이 있었는데요
시간의 흐름은 추모관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그곳을 부활시켰습니다.
추모관 내의 침묵의 길을 따라 희생된 분들의 영정이 벽을 채우고 있습니다.
당시의 비극을 그대로 말하는 시신을 감쌌던 비닐, 피에 물든 태극기, 대검과 총....
31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 참혹함은 여전합니다.
오늘의 자유를 위해 그들은 아낌없이 자신의 인생을 내어 놓았죠.
<위로부터 당시 시신을 감쌌던 비닐과 총알 그리고 피에 물든 태극기,
망월동 묘지에서 국립묘지 이장을 위해 발굴할 당시의 유골,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을 기억하는 태극기>
망월동 묘지에서 국립묘지 이장을 위해 발굴할 당시의 유골,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을 기억하는 태극기>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위해 발굴하던 날들의 유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육신은 없어졌고, 앙상한 뼈만 남아서 17년 후의 햇빛을 만났습니다.
17년 후에 만난 대한민국은, 과연 그들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의 모습이었을까요.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위해 발굴하던 날들의 유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육신은 없어졌고, 앙상한 뼈만 남아서 17년 후의 햇빛을 만났습니다.
17년 후에 만난 대한민국은, 과연 그들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의 모습이었을까요.
[그날, 그리고 금남로의 도청]
매해 5월, 광주의 구도청 앞은 그날을 다시 만납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을 기억하시는지요.
도청에서 시민군은 계엄군과의 최후를 준비합니다.
도청은 자유와 독재타도를 위한 보루였고, 희망이었고, 집이었습니다.
매해 5월, 광주의 구도청 앞은 그날을 다시 만납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을 기억하시는지요.
도청에서 시민군은 계엄군과의 최후를 준비합니다.
도청은 자유와 독재타도를 위한 보루였고, 희망이었고, 집이었습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남도청. 이제 이곳에 더이상의 비명과 총성은 없습니다>
그날의 도청은 문화재청이 지정한 '근대문화유산'이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들어갈 수 없도록 자물쇠를 걸어뒀으며,
벽 외부의 지지대가 감싸고 있는 80년된 건물의 모습이었습니다.
안까지 들어가 보았더라면 좋았겠지만,
도청은 아직까지 우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청 본관 출입구 앞의 모래시계. 가장 밑에 '꿈을 담아 주세요'라고 써있네요.
그들의 꿈은 무엇이고, 우리의 꿈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꿈은 무엇이고, 우리의 꿈은 무엇일까요>
그곳이 우리를 허락하는 날엔,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와 시민의식이 한뼘씩은 더 자라 있겠지요.
상처를 넓은 마음으로 끌어안고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에서
1980년의 광주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금남로 곳곳에 그날을 기리는 마음이 세워져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영면을 기원합니다.
국립 5.18 민주묘지 가는 길
개방시간(국립5.18민주묘지, 5.18추모관, 어린이 체험학습관)
- 09:00 ~ 18:00, 연중무휴, 폐관 30분전까지 가능, 입장료와 주차료 없음
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 34번지 (우)500-520
문의 : 062-266-5184 또는 홈페이지(http://518.mpva.go.kr)
대중교통 이용시
- 광천터미널 하차 후 518번 버스 이용
승용차 이용시
개방시간(국립5.18민주묘지, 5.18추모관, 어린이 체험학습관)
- 09:00 ~ 18:00, 연중무휴, 폐관 30분전까지 가능, 입장료와 주차료 없음
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 34번지 (우)500-520
문의 : 062-266-5184 또는 홈페이지(http://518.mpva.go.kr)
대중교통 이용시
- 광천터미널 하차 후 518번 버스 이용
승용차 이용시
| - 서울, 전주방면에서 올 때 : 동광주 IC진입후 문화사거리에서 담양방면으로 7㎞에 위치 - 순천, 부산방면에서 올 때 : 창평 IC진입후 광주방면으로 8㎞에 위치 - 목포방면에서 올 때 : 광주 제2순환도로를 타고 각화사거리에서 담양방면으로 7㎞에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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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4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바로 그 518버스를 탔는데 ^^
기사 잘 쓰셨네요~ 추천 꾸욱!
하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