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꺼지지 않는 불꽃
윤봉길의사의 상해의거 제80주년 기념식을 다녀와서
2012년 4월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왕 천장절 기념 상해사변 전승 기념식장에 의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사령관 시라가와, 해군사령관 노무라, 주중공사 시게미쓰 등 다수를 사상케 한 지 꼭 80주년 되는 때에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기념식이 양재 시민의 숲 매헌 기념관 앞에서 성대히 진행되었습니다.
<매헌 기념관에서 열린 식장 전경>
행사는 의장대가 윤봉길 의사의 사진과 대통령 화환을 들고 입장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기념식에 이명박 대통령은 “부모 형제의 사랑보다 더 굳은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한 윤봉길 의사의 가르침을 되새겨 사회 통합과 나라 발전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기념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이어 황의만 기념사업회장의 기념식사, 박유철 광복회장의 기념사 순으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의장대가 윤봉길 의사 사진을 들고 입장하는 모습, 출처 : 연합뉴스>
윤봉길 의사의 어린시절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목발이 마을에서 장남으로 출생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민족의식과 애국심이 뛰어났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교육을 배격하고 학교를 자퇴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의사는 12살이었습니다. 정말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대단하죠? 어린 시절부터 윤봉길 의사의 용기는 남들과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학을 열어 강연하는 의사, 매헌 기념관 기록화>
1926년, 19세의 윤봉길 의사는 마을에 야학을 열어 문맹퇴치운동을 시작으로 각곡독서회와 목계구매조합을 조직,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일제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면 농촌 계몽이 필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의사는 돈 없어 공부 못하는 아동을 모집하여 야학을 열고, 이들에게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망명 생활
1930년 3월 6일, 23세의 윤봉길 의사는 그 유명한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란 글을 남기고 망명을 떠납니다. 이어 1931년 중국 상하이에 도착, 대한민국 임시정부 백범 김구를 만나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할 큰 뜻을 피력하고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의사는 뜻있는 생활을 위해 한국인인 박진이 운영하는 공장에 취직하여 생계를 해결하였고, 상하이 영어학교에 다니며 영어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무장독립투쟁 단체인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그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폭탄을 투척하는 윤봉길 의사, 매헌 기념관 기록화>
홍커우 공원에서 일어난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일본은 상해 사변을 일으켜 시라가와 대장의 지휘하에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따라서 일본 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전쟁 승리 두 가지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기념식을 갖기로 한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야채 장수로 가장하여 미리 기념식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김구 선생은 수류탄을 제조하였습니다.
1932년 4월 29일, 기념식이 열리기로 한 상해 홍커우 공원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투척용 물통 모양의 폭탄과 자결용 도시락 모양의 폭탄을 감추고 식장에 입장 하였습니다. 그리고 식이 한참 진행 중일 때에 식장으로 다가가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 폭발로 시라가와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는 즉사하였고, 해군 사령관 노무라 중장과 주중공사 시케미쓰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18일, 오사카로 호송되어 육군위수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어 12월 18일, 가나자와 육군위수구금소에 이감되었고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경 가나자와 교외 미쯔고우시 육군 공병작업장 서북쪽 골짜기에서 총살이 집행되어 순국하셨습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 사업회 상해의거 80주년 기념식 팜플릿에 기록된
윤봉길 의사 의거의 역사적 의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참으로 역사적인 것이었습니다. 우선 첫째,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인해 만보산사건 이후 악화되었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중국이 한국을 대일 투쟁의 동반자로 인식하게 되어 중국 내에서 독립운동이 자유롭고 활기차게 전개되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둘째, 의거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장제스 총통과의 회담을 통해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 약속되어 침체되었던 임시정부가 활기를 되찾고 한인장교 훈련반을 설치하여 후일 임시정부 산하의 한국 광복군과 조선 의용대 창설의 초석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한민족의 독립운동이 매우 조직적이고 맹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당시 한쪽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었던 주중공사 시게미쓰 마모루가 훗날 미해군 군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항복 문서에 조인한 것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본 제국주의 몰락의 신호탄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헌 기념관을 찾은 아이들>
매헌 기념관을 나서며
기념식이 끝난 후, 매헌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의사의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기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진정한 용기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기념관을 나서며, 한 무리의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처럼 이제 막 관람을 마친 모양입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며 기념관을 나서는 그들을 보며 윤봉길 의사의 뜨거운 정신은 저 아이들의 손자들이 이곳을 찾는 그날까지도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서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의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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