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6,334,321
  • Today | 39
  • Yesterday | 838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 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 안중근 의사



위 말은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유묵의 구절로 유명한 내용입니다. 사리사욕 없이 오로지 조국에 대한 충정만으로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 군인의 바른 자세임을 강조한 이 글귀는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국군의 상징적인 표어로 받들어지고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본격적인 기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늘 이 글귀를 서두에서 인용한 까닭은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해드리려는 인물이 이 글귀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서 김홍일 장군인데요, 중국군->광복군->중국군->국군이라는 파란만장한 군 생활을 하면서도 초지일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웠던 김홍일 장군은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해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실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일은 장군의 서거 33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장군의 서거 33주기를 맞아 오늘은 장군의 생애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사진:6·25전쟁 당시의 김홍일 장군)



장군의 유년시절과 중국군 장교 시절


 김홍일 장군은 1898년 9월 23일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오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립학교를 세워 애국계몽운동에 나설 정도로 항일의식과 계몽의식이 투철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은 장군은 1910년 8월 국권이 일제에 의해 완전히 빼앗기자, 가족들과 함께 만주의 봉천으로 이주하였다가 1914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2학년에 편입합니다. 1918년 오산학교를 졸업한 장군은 황해도 경신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강렬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교육계몽운동에 투신하는데요, 하지만 일제에 의해 비밀결사 조직 혐의를 받은 장군은 모진 고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간신히 석방된 장군은 일경의 눈을 피해 1918년 9월, 신의주를 거쳐 상해로 망명하였습니다.


 상해에 도착한 장군은 1918년 육군강무학교에 입학하여 이곳에서 1년 동안 근대식 군사훈련을 받고 중국군 장교로 임관하여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1919년 국내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며 만주와 노령(러시아) 일대에서 독립군들의 무장독립전쟁이 활발해졌습니다. 장군은 이에 동참하기로 결심하고 상해 임시정부의 군무총장 노백린 선생에게 찾아갔습니다. 노백린 선생은 “흩어져 있는 독립군들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는 중이다.”라고 하며 집결지인 시베리아 자유시(自由市)로 갈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이에 장군은 1921년 상해를 떠나 만주 일대의 독립군 부대를 인솔하여 시베리아로 이동하였습니다. 35일 간 2천리를 넘게 이동하는 대장정 끝에 5월 10일 시베리아 이만에 도착한 장군은 독립군 병사들을 훈련시키면서 최종 목적지인 자유시로 가기 위해 준비하였습니다.



(사진: 장개석과 김홍일 장군)



 하지만 이때 한국독립운동사상 최대의 비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자유시참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1921년 6월 27일) 자유시 참변은 러시아 적군(赤軍)에 의해 자유시에 모인 독립군들이 강제로 무장해제 당하고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이었지요. 이러한 참변 소식을 접한 장군은 자유시로의 이동을 포기하고 이만에 주둔하고 있었는데요, 자유시 참변을 피해 이만으로 이동해온 대한의용군 지도부와 이만에 주둔하고 있던 독립군 부대와 연합하여 ‘대한의용군사회’가 조직되자 장군은 대한의용군 제2중대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장군은 다시 만주로 건너가 중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다가 일본 헌병대의 마수가 미치자 다시 상해로 피신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다시 중국 국민혁명군에 들어간 장군은 혁명군 총지휘부 소령 참모로서 북벌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직책에서 활동하다가 1931년 상해 병공창의 병기창 주임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병기창 주임이란 각종 병기와 탄약을 수집, 정리하여 각 군에 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장군의 임무는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주석이 추진하던 거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봉창·윤봉길 의거의 숨겨진 주역


당시 침체기에 빠져있던 임정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 임정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은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항일의열투쟁을 전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의열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선 당연히 무기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이때, 김홍일 장군의 역할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병기창에서 근무하며 폭탄과 무기를 다루던 장군은 김구 주석에게 수류탄을 건넸고, 이 수류탄이 바로 이봉창 의사에게 쥐어져 ‘일왕’에게 던져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류탄의 위력이 약하고 거리가 멀어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는데요, 이에 자극을 받은 장군은 보다 가벼우면서도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폭탄을 제조하였고, 그 결실이 다시 꽃 피우게 되었습니다. 바로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이 그것입니다. 장군이 공들여 제작한 도시락 폭탄(자결용), 물통 폭탄(투척용) 중 물통 폭탄은 윤봉길 의사가 목표했던 바대로 일왕의 생일 축하기념식에서 폭발해 다수의 사상자를 내었고, 이를 계기로 중국 여론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 뒤에는 장군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진: 백범 김구 선생과 김홍일 장군)



명예를 버리고 조국을 택하다 


이후로도 적극적으로 임정을 도운 장군은 1934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이 설치되자 한국 청년들을 독립군 장교로 양성하는데 힘썼고,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을 도와 조선의용대가 조직되는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939년 장군은 대령에서 소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중국 제19집단군 총사령부와 참모처장으로 영전하였는데요, “우리 조국을 위해 가장 좋은 기회가 찾아왔으니 한시도 지체할 것 없이 중국군에서 손을 떼라.”는 김구 주석의 권유에 중국군에서 나와 한국광복군 참모장에 취임하였습니다. 어쩌면 중국군의 장군이 되어 이제 막 명예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과감하게 당신의 지위를 버리고 광복군의 참모장이 된 김홍일 장군! 참모장이 된 장군은 미군 OSS와 합작하여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던 중 일제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이하자, 다시 중국군에 복귀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주에 있는 한인동포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봐주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1948년 8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온 장군은 국군으로 입대하여 육군사관학교, 육군참모학교 교장 등을 지내던 중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하자 시흥지구 전투사령부 사령관을 맡아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장군은 한강을 도하하여 후퇴하는 국군 장병들을 한 데 모은 혼성사단을 바탕으로 파죽지세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맞아 일주일이나 버티며 미군이 한반도에서 작전을 수립할 수 있도록 결정적 기여를 하였습니다. 당시 혼성사단은 병력이며 무기며 모든 면에서 열세였기 때문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였으나,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북한군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장군의 업적은 오늘까지도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1951년 중장으로 예편한 장군은 그 후에도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 등으로 활약하면서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민주화에 기여하다 1980년 8월 8일 82세의 나이로 서거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장군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습니다.



김홍일 장군 서거 33주기 추도식


지난 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뮤지엄 웨딩홀에서 일서 김홍일 장군 서거 33주기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인해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추모객들이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는데요, 그 추도식에 훈남훈녀 기자단이 함께 했습니다. 지금부터 추도식 현장을 한 번 살펴보실까요?



 

(사진: 김홍일 장군 서거 33주기 추도식장)



 추도식은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한 뒤, 각계를 대표하여 참석한 주요 내외귀빈의 헌화와 묵념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국가보훈처를 대표하여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이 참석하였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김홍일 장군과 더불어 전선에서 함께 한 부하 장병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병(老兵)들이 한 데 모여 상관을 추모하는 모습을 보며 훈훈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특히, 노병들의 장군에 대한 거수경례 모습을 보며 뜨거운 전우애까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 거수경례로 장군을 추모하는 추모객들)



 머리가 희끗희끗한 추모객들 가운데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있어 눈에 띄었는데요, 다가가서 물어보니 김홍일 장군이 졸업한 오산학교의 후신 서울 오산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독립운동과 6·25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대선배님을 추모하기 위해 추도식에 참석한 후배 학생들이 진지하게 묵념하는 모습을 보며 이 자리에 모인 추모객들은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지만 대선배를 추모하기 위해 참석한 모습이 너무나도 기특하고 대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진: 추도식장에 참석하여 묵념을 올리는 오산중고등학교 학생들)



주요 내외귀빈의 헌화가 끝난 뒤에는 평안북도성우회 이근양 명예회장의 답사가 있었습니다. 이 회장은 “장군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945년 해방 직후였다. 당시 장군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다리는 중국 내 동포들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노력을 다하고 있었고, 그러한 작업을 전혀 지루한 내색 없이 해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장군에 대한 회고로 서두를 열었습니다. 이어 “지금 많은 이들이 6·25 전쟁 등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역사를 잊어가고 있는데, 지금부터라도 이를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보훈을 실시하는 것이 김홍일 장군과 같이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에 대한 마지막 예우일 것이다.”라며 잊혀져가는 역사에 대해 기억해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지금 북한은 유례없는 3대 세습 독재로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깨뜨리고 있는데, 이제 북한은 반성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김홍일 장군이 마지막으로 바랐던 소원일 것이다.”라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우선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사진: 평안북도성우회 이근양 명예회장과 추모객들)



역사의 진정한 영웅


김홍일 장군의 서거 33주기 추도식을 맞아 기사를 쓰면서 기자 역시 많은 반성을 해봅니다. 이봉창·윤봉길 의거는 기억하면서도 정작 그 의거가 성공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했던 김홍일 장군은 기억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중국군 장군이라는 명예로운 직위에 올랐음에도 그 스스로 명예를 벗어버리고 진정한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실현을 위해 광복군에 투신했던 장군. 그리고 광복 후에도 국군이 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앞장섰던 진정한 군인 김홍일 장군! 장군의 서거 33주기이자 광복의 달 8월을 맞아 오늘 하루 다시 한 번 장군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아울러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조국을 되찾고 지키기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모든 무명용사들을 추모하며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수많은 무명의 용사들을 역사는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역사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출처 및 참고문헌>


1. 네이버 캐스트 – 김홍일

2. 국가보훈처 훈터 블로그

3. 독립기념관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영웅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2018년 제3차 대학생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탐방'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현장과 사람 중심의 따뜻한 보훈을 체험하다! 국가보훈처 창설 제57주년 기념식 취재기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건립 방향을 모색하는 학술회의 및 공청회가 열립니다.
국가보훈처 창설 제57주년 기념식, 따뜻한 보훈이 가득했던 현장 속으로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