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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5일, 새로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그 이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국토가 폐허가 되면서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국가를 재건해야 할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 반대세력에 대한 폭력 등 온갖 정치적 부정과 탄압을 일삼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60년 자행된 3·15부정선거였습니다. 


당시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이 야당인 민주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게 되자, 이에 불안해진 자유당이 1960년 3월 15일의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저지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질병을 치료하는 도중 사망하게 되면서 이승만의 대통령 재선은 거의 확실시된 상황이었으나,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은 장기 집권 체제를 연장하기 위해 자유당의 이기붕 또한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정권 교체를 희망하여 선거의 분위기는 자유당에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다급해진 자유당은 여러 사람이 공개적으로 투표하게 하고,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등 유례없는 부정선거를 자행하게 됩니다.


선거전에서 야당 선거원은 계속해서 체포되고 탄압을 당했고 반공청년단의 폭력단원들이 선거 당일 시민들이 투표권을 어떻게 행사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투표장에 나타났으며, 경찰은 공개적으로 자유당 후보를 지원하는 지경에까지 달합니다. 경찰 지휘부와 내무부는 선거 결과를 완전히 날조합니다. 이러한 대대적인 부정선거의 결과로 이승만은 총 투표수에서 당선에 필요한 3분의 1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고 이기붕은 압도적인 결과로 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후 민주당은 선거가 ‘불법적인 것이고 무효’라고 주장하였고, 이를 계기로 반정부시위가 선거 전후 전국에 걸쳐 일어납니다. 이미 민심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돌아서 있었습니다.


▲ 정치깡패 사진(출처: 4·19혁명기념도서관)


▲ 마산상고생 김주열 시신

(출처: 4·19혁명기념도서관)


전국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을 때, 3월 15일의 1차 창원(구 마산)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16세 마산상고생 김주열 군의 시신이 창원(구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됩니다.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신의 모습에 분노가 터져 나왔고, 시민들과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의 학생 4천여 명이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평화적 시위를 벌입니다. 그리고 귀가하던 중 경찰과 모의한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습격으로 수십 명의 학생들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인 4월 19일, 총 궐기하게 되었는데요.

4월 19일 화요일 오전 8시 50분, 서울역에서 중앙청 앞까지의 거리는 시위에 나선 시민들과 학생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들은 아침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하지만 시위 중 경찰은 경무대로 통하는 효자동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무차별 발포를 하였고, 사상자는 점점 늘어갔습니다. 이에 시위대와 경잘 간의 대치는 극에 달았고 서울 시내는 질서를 회복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이 시위는 서울에서만이 아니라 거의 전국에서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 부산에서는 경남공고·데레사여고·부산상고 등 고교생들의 시위가 시민들과 합세하여 격렬하게 일어났는데 경찰이 총을 쏘아 19명이 사망했습니다. 광주에서는 광주고 학생과 수천 명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8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대구·대전·전주·청주·인천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4월 19일 시위로 경찰 4명을 포함하여 115명이 사망하고, 727명(민간인 558명, 경찰 169명)이 다친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피의 화요일’의 시작이었습니다. 


또한 경무대를 향하는 시민과 학생들을 막기 위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를 향한 무차별 사격이 가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꽃다운 젊은 학생과 시민들이 수없이 희생되었고, 분노한 시민들은 항의 시위를 전개하게 됩니다. 민심은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는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4월 25일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고 그 다음날인 4월 26일,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였습니다. 


▲ 경무대로 향하는 의대생 시위대

(출처: 4·19혁명기념도서관)



▲ 서울대학교 시위대의 행진

(출처: 4·19혁명기념도서관)


경무대를 지키던 계엄군은 실탄을 장전한 상태였지만, 처음부터 엄정중립의 입장을 지켜온 군은 더 이상 국민의 희생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사태가 극에 달하자, 이승만은 ‘1.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2. 3·15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겠다. 3. 선거로 인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게 하기 위하여 이미 이기붕 의장에게 모든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였다. 4.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는 하야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단지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것만이 아닌, 부패를 저지르고 폭력을 휘두른 독재 정권에 대해 온 국민이 항거한 결과였습니다.


이승만의 하야 성명은 신생 정부의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의 기틀과 발전을 마련하고자 했던 많은 시민들의 노력이 이룬 쾌거였습니다. 4·19혁명이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승리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성숙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 4월 19일(수) 10시 서울의 국립4·19민주묘지에서, ‘4·19정신으로 이룩한 국민 주권, 우리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제57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거행됩니다. 우리 모두 4·19혁명 당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고 4·19혁명 정신을 받들어,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국립4·19민주묘지

http://419.mpva.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8779&cid=46626&categoryId=46626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5588&cid=43667&categoryId=43667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29308&cid=55653&categoryId=5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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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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