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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방어선전투 전사자 명비

 

화려한 네온사인과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서울.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써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도시 중 하나입니다.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요. 특히 6.25전쟁 당시 서울은 북한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시가지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오는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니 만큼, 저는 6.25전쟁 당시 서울시내에서 일어났던 전투가 궁금해졌는데요. 현재까지 많은 국민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미아리, 길음교, 한강방어선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하는 마음에, 남아있다면 그 흔적을 느끼기 위해 미아리에서 길음교, 한강방어선 전투가 있었던 노들역 인근까지 길을 떠나보았습니다.

 

▲서울역의 모습. 현재 서울은 전쟁의 상처가 아문지 오래입니다.

 

먼저 미아리 전투가 벌어졌던 미아사거리입니다. 전쟁 당시 서울에 있었던 창동 방어선 아래 설치된 미아리 방어선은 6.25전쟁이 발발한 다음날 6월 26일, 제5사단에 의해 갖춰졌습니다. 북한군에 의해 창동 방어선이 무너지고 철수 병력이 미아리 방어선 일대로 모였는데요. 당시 제5사단과 제7사단이 미아리 방어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미아리 방어선은 북한군이 서울 도심 진입을 위해 반드시 뚫어야 했던 곳입니다. 따라서 국군의 입장에서는 이를 저지시키기 위해 반드시 북한군을 막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서울 도심으로 향하는 동북부지역의 도로는 미아리를 거쳐 혜화로 향하는 3번 국도가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아리 방어선은 북한군에 의해 무너지고 맙니다.

 

현재 미아사거리의 북한군에 맞서 싸웠던 전쟁의 흔적은 지워진 지 오래입니다. 미아사거리에는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있고, 아스팔트로 잘 정돈된 도로는 ‘과연 이곳이 6.25 전쟁 당시 국군이 방어선을 펼친 곳이 맞을까?’하는 의문점도 가지게 합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현재는 미아사거리를 가리키는 이정표만이 여기가 미아리 방어선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미아사거리 모습. 현재는 복잡한 시가지로 변해있습니다.

 

미아사거리에서 길음역방면으로 10여 분 걷다보면, 복잡한 교차로가 보입니다. 바로 길음교 사거리인데요. 길음교 전투는 미아리 방어선에서 치러진 전투 중 하나입니다. 미아리 방어선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서울 방어의 최종목표인 미아리 방어선을 위해 국군은 길음교를 폭파하려 합니다. 길음교 폭파는 북한군의 전차가 서울 도심으로 진출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함으로 진행됐는데요.

 

6월 27일 저녁, 북한군 전차부대가 수유리를 통과, 길음교에 다다르자 국군 공병대는 명령에 따라 길음교를 폭파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계획을 미리 알아차린 북한군에 의해 실패하고 마는데요. 이에 미리 매복해있던 국군 제1연대와 제15연대는 북한군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6월 28일 새벽, 길음교와 미아리고개를 북한군이 넘음으로써 미아리 방어선은 붕괴되고 맙니다.

 

이곳도 미아사거리와 마찬가지로, 위에는 내부순환로가 있고, 주위에는 대단지의 아파트가 들어섰는데요. 역시 길음교를 나타내는 표지판이 6.25 전쟁 당시 최후의 서울 방어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음교 교차로. 위에는 내부순환로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강방어선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진 노량진 사육신공원-노들나루공원 일대를 찾았습니다. 한강방어선전투는 국군에게 큰 의의를 가져다 줬는데요.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약 일주일동안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시켜, 당초 북한군의 작전이었던 ‘수원북방에서 국군 병력을 타격’하고자 했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또한 미군이 참전하기 전, 방어선을 조기 돌파할 북한군의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 북한군의 작전이 매우 큰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이렇듯 한강방어선전투는 6.25 전쟁 초기에 성과를 거둔 전투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강방어선전투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6년 10월, 한강방어선의 시작인 노들나루공원에 ‘한강방어선전투 전사자 명비 건립 제막식’이 거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국가보훈처에서 추진하는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됐습니다. 현재 명비로 인해 이곳이 6.25 전쟁 당시 한강방어선전투가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강방어선전투 전사자 명비에는 전사자 이름과 함께 전투에 대한 설명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950년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약 열흘 동안 서울과 한강 이남을 사수하기 위해 국군은 수많은 피를 흘리며, 조국을 수호했습니다. 비록 현재는 개발로 인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거나, 비석만이 당시의 치열했던 현장을 대변하지만, 우리들 마음속에는 영원히 6.25 전쟁 당시의 방어선과 전투,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존경과 경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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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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