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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했던 박차정 의사, 그녀는 1910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항일 민족의식을 키운 그녀는 민족교육의 전통이 강했던 동래일신여학교 재학 중 독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조선소년동맹 동래지부와 조선청년동맹 동래지부에서 활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27년 근우회 동래지회 결성에 참여해 민족독립에 관한 글을 발표하고, 1929년 근우회 중앙집행위원과 상무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0년 1월 서울의 11개 여자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를 지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박차정 의사는 의열단원으로 활동 중인 둘째오빠의 연락을 받아 1930년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거기서 김원봉 선생을 맞나 1931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후 그녀는 김원봉 선생을 도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개설을 준비하였으며, 여자부 교관으로 교양교육과 훈련을 담당했습니다.

  

이에 멈추지 않고 박차정 의사는 1935년 남경에서 민족혁명당이 결성되자 그 지원단체로 남경조선부인회를 결성하고, 1937년 조선민족전선연맹 창설에 동참하였으며, 1938년 조선의용대에도 참여하는 등 독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을 맡아 항일투쟁에 진력하던 중, 1939년 강서성 곤륜산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고, 이 부상은 결국 그녀의 독립운동의 발목을 잡게 되었습니다.

 

지난 5월 27일 토요일은 박차정 의사 순국 73주기를 맞이하는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박차정 의사를 기리고자 떠난 부산에서의 여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저는 박차정 의사 동상이 있는 부산 만남의 광장과 박차정 의사 생가를 찾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박차정 의사 동상(만남의 광장, 부산 금정구 위치)

    

박차정 의사 동상은 부산 금정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박차정 의사 동상이 있는 만남의 광장은 노포역에서 1호선을 타고 구서역에서 하차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매년 이곳에서는 박차정 의사를 추모하는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꼭 언젠가의 5월 27일이 아니더라도 박차정 의사를 기리고 싶으시다면 찾아오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저의 경우, 만남의 광장에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공사가 끝난 후 찾아가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박차정 의사 동상에는 건립 취지문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 있습니다.

      

아 박차정
그대는 어둡고 긴 침묵의 밤을 밝힌
민족과 작은 샛별
모진 압제의 칼바람에 맞서
동트는 벼랑 위에 피어난 한 포기 들꽃이어라
항일의 깃발 힘차게 펄럭이며
34년 짧은 생애를 오로지 구국의 제단 위에 바친 그대는
정녕 뜨거운 사랑이어라
-최규창 지음-

   

박차정 의사의 일생을 표현한 한 구절,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박차정 의사의 생가는 그녀의 동상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지하철 1호선 동래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 낙민역에서 하차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박차정 의사 생가 표지판

   

박차정 의사 생가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처음 찾아가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곳곳에 그녀의 생가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 박차정 의사 생가 입구

   

▲박차정 의사 생가(부산 동래구 위치)

 

박차정 의사 생가는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명절연휴, 임시공휴일이 아닌 화~일요일 10:00~17:00 사이에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박차정 의사 생가 내부

 

박차정 의사 생가는 그녀가 독립운동을 했던 활동 당시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박차정 의사가 활동했던 그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촬영한 사진들과 개괄적인 박차정 의사의 연혁, 그리고 1995년에 수여받은 건국훈장 독립장이 전시되어있습니다.

 

광복이 소중한 만큼 많은 독립운동가의 공로가 생각나는 여정이었습니다. 특히 박차정 의사 동상은 그녀가 졸업한 동래여고(옛 동래일신여학교)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박차정 의사를 기념하는 추모식에는 재학생들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박차정 의사의 생가도 복원한 이후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독립운동가를 기릴 수 있는 장소가 주변에 있다는 것은 애국심 함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고향, 학교, 나라를 지킨 독립운동가를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박차정 의사가 교관을 지냈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교가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조선에서 자란 소년들이여 가슴의 피 용솟음치는 동포여
울어도 소용없는 눈물 거두고 결의를 굳게 하여 모두 일어서라
한을 지우고 성스러운 싸움으로 필승의 의기가 여기에서 뛴다.
-조선혁명간부학교에서 교가 中-

    

박차정 의사가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육성했던 시간동안 그녀가 얼마나 굳건한 의자를 가지고 조국 독립을 위하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숭고한 희생이 광복으로 고스란히 남은 5월, 박차정 의사 생가에서 따스한 소식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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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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