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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 나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나라, 조국에 대한 애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합니다. 67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 조국의 평화와 안위를 위해 싸운 이들은 우리나라에 거주 중이었던 국민과 유엔군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재일동포 청년들 또한 조국을 위해 함께 싸우기로 합니다. 오늘은 해외국민 최초로 조국을 돕기 위해 참전을 결행한 재일학도의용군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조국이 짓밟히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67년 전 모두가 잠든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6.25전쟁, 이 당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은 한반도에 살고 있던 국민들뿐만 아니라 타국에 거주 중이던 동포들에게도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이에 일본에 거주 중이던 재일동포들 또한 놀람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적군을 향해 총탄을 겨누고 있는 국군 (출처: 타임트리 블로그)


일본 언론 또한 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한국의 6.25전쟁 상황에 대해 크게 보도하였습니다. 그 보도 속에서는 화력과 병력의 열세에 놓인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며 힘겨운 전투를 계속해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재일동포들은 하루하루를 불안과 초조 속에서 보냈습니다. 유엔의 병력과 의료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요.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구축하여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재일동포 청년들은 조국을 돕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하던 중, 참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출정 전 모습

(출처: 호국선열들의 제주길따라 역사탐방 블로그)


“아침 8시 NHK 뉴스를 통해서 나는 공산군이 남침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뉴스를 접하자마자 나는 바로 한국학생동맹사무실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1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우리들은 뉴스로 들려오는 전황을 종합해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재일학도의용군 양태근 씨 회고록 중에서


재일동포 학생들의 조직인 한국학생동맹과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에 모인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참전을 결정하였고, 그 굳은 결의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에 제출하였습니다. 민단에서는 6월 30일, 전국 청년학도 지원병 파견과 구호물자 및 위문품 보내기 운동 전개 등의 결의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이후 8월 15일, 민단 중앙본부는 자원병지도본부를 설치하여 지원서를 접수받기 시작했는데요.


재일학도의용군으로 6.25전쟁 참전을 희망했던 재일동포 청년들은 18세부터 45세까지 다양했습니다. 모두가 조국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모였던 것인데요.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었음에도 도쿄에서만 약 120여 명, 오사카에서는 80여 명, 나라, 고베, 교토 등에서 약 1,000 여명의 지원서가 접수되었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구국의 일념 하나로 현해탄을 건너다!


▲ 군 장비 지급받는 학도병 

(출처: 패션, 역사, 군사의 아침안개 블로그)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선발된 총 642명의 재일동포들은 미 제7사단에 소속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투입되었던 전투는 6.25전쟁의 반전 역사를 쓴 인천상륙작전이었는데요. 미 7사단 소속으로 맥아더장군의 진두지휘 하에 투입된 재일학도의용군은 후방지원 업무를 중심으로 투입되어 적군과 싸웠습니다.


▲ 인천상륙작전에 투입 중인 국군의 모습

(출처: 스마트한 순대 블로그)


이후 재일학도의용군은 모자, 가슴, 팔에 재일학도의용군이라 기록한 천을 두른 채 원산 상륙작전, 갑산 혜산진 탈환 작전, 백마고지 전투 등 한반도 일대 각지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들은 단일 부대가 아닌 수십, 수백 명의 단위로 나뉘어 각기 다른 부대에 배속되어 전투에 임했는데요. 


당시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계급과 군번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재일학도의용군은 미군에게 단일부대를 구성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이에 임시편성으로 재일학도의용군 단일부대인 3.1독립보병대대가 창설되었습니다.


▲ 학도병의 모습 (출처: 스마트한 순대 블로그)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급격하게 악화되어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3.1독립보병대대에게도 해산 명령이 떨어지게 됩니다. 재일학도의용군 청년들은 이를 격렬히 거부했으나, 결국 해산되고 말았고 이후 국군에 편입하여 조국의 안위를 위해 힘을 쏟는 등의 노력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또한 미군에 배속되었던 청년들은 교육을 받은 후 군의 간부가 되어 나라를 지켰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의 참전 의의


재일학도의용군의 6.25전쟁 참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해외에 체류 중인 자국민 중 조국의 전쟁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참전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스스로 조국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 싸울 수 있는 마음을 먹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6.25전쟁 당시 재일동포 청년 학생들에게는 군 복무의 의무가 없었지만 그들은 구국의 일념 하나로 현해탄을 건너 한국으로 왔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출정 전 기념식 사진 (출처: 오늘도 감사함으로 블로그)


재일학도의용군의 6.25전쟁 참전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의 이스라엘의 해외동포 참전 사례보다 무려 17년이나 앞서는 것으로,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문 사례입니다. 재일학도의용군은 학업과 가족을 뒤로하고, 타국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터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참전기념비 (출처: 현충시설정보 서비스)


또한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에서는 1973년 국립묘지에는 ‘재일학도의용군 위령비’를, 1979년에는 최초로 참전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 수봉공원에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탑’을 세워 642명의 재일학도의병의 희생을 알리고 있습니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에서는 매년 조국을 위해 희생, 공헌한 재일학도의용군의 충혼을 기리고 6.25전쟁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는데요. 9월 27일(수) 오전 11시, 인천 수봉공원의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에서 <재일학도의용군 제67주년 6.25참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타국에서 조국의 평화와 안위를 걱정하며 자발적으로 전쟁터로 뛰어든 재일학도의용군의 희생정신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후세에 계승되어야 할 정신적인 자산입니다. 재일학도의용군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 참고

재일학도의용군 나라사랑기념관 www.koreansvjm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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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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