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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1월 17일, 오늘은 일왕 암살 누명으로 체포되어 긴 시간 수감생활을 했던 박열 의사의 서거 44주기입니다. 

지난 여름, 박열 의사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어 세간의 관심을 얻기도 했었죠. ‘22년 2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 의지를 가진 박열 의사의 삶을 함께 들여다볼까요?


▲ 박열 의사 (출처 : 박열의사기념관)


#1. 독립운동에 눈 뜨다


1902년 경북 문경시에서 태어난 박열 의사는 소년 시절 한 교사의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교사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자신이 그동안 일본의 요구에 맞추어 거짓교육을 시켜왔다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습니다. 이에 박열 의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공부하며 민족을 위한 큰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박열 의사는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전해 듣고, 더 이상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을 계속해 나가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 박열 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선생 (출처 : 박열의사기념관)


#2. 가네코 후미코와의 만남, 그리고 흑도회와 블령사 활동


박열 의사는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도쿄에 거주하는 고학생들을 규합해 의혈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친일 행위자들에게 협박장을 보내 떠나라고 명령하고,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박열 의사의 자작시를 접한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선생은 그의 사상에 공감하여 민족적 차이를 넘어 동지로서 함께 항일활동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어려운 생활에 조금도 창피해하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에 정열을 쏟아 붓는 청년 박열의 내면을 보았다’

- 1922년 박열의 시를 읽은 가네코 후미코의 감상



▲ (출처 : 박열의사기념관)

 

#3. 일왕 폭살 계획, 세상에 드러나다


1923년 4월, 박열 의사는 ‘불령사’를 조직하여 국내의 파업투쟁을 후원하고 보다 적극적인 의열투쟁을 펼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해 9월 도쿄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일본 정부는 이를 사회주의자와 조선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로 악용하였습니다. 

일제는 그간 항일 활동을 벌여왔던 박열 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선생을 비롯한 불령사 회원들을 별다른 근거 없이 ‘비밀결사의 금지’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시켜 버렸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폭탄 구입 계획이 밝혀졌고, 박열 의사는 일왕을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구입하려 했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에 일제는 조선인 대학살에 대한 각계 여론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이 사건을 ‘대지진을 틈탄 조선인 비밀결사의 폭동계획’으로 보도하며 ‘대역사건’으로 비화시켰습니다.


하지만 박열 의사는 의거 계획이 밝혀진 이후에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재판에서는 ‘죄인취급을 하지 말 것, 동등한 좌석을 설치할 것, 조선 관복을 입을 것, 조선어를 사용할 것’이라는 4가지 조건을 요구하였고, 나아가 재판장에서는 미리 써 두었던 글을 읽으며 일왕의 죄를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 1948년, 김구(가운데), 양근환(왼쪽), 박열 선생(오른쪽)이 함께 찍은 사진. (출처 : 독립기념관)


#4. 꺾이지 않은 독립 의지


‘저들은 내가 불령(不逞) 불경(不敬)하다고 죽음으로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세상에서 두려워해야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박열


1926년 3월, 일본 정부는 박열 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선생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으나, 1주일 만에 무기징역으로 감형했습니다. 이는 스스로 조작 사건의 실체를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네코 후미코 선생은 3개월 후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유해는 박열 의사의 가족들이 일본에서 경북 문경시 문경읍으로 옮겨와 안장하였습니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투옥된 박열 의사는 1945년 10월 27일, 44세의 중년이 되어 석방되었습니다. 22년 2개월이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장의 수감기록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박열 의사는 일본에서 순국한 3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여 고국으로 봉환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작년에 거행되었던 <박열 의사 43주기 추모제>


#5. 박열 의사 서거 44주기 추모제


1월 17일(수) 오전 11시, 경북 문경에 있는 박열의사기념관에서 <박열 의사 서거 44주기 추모제>가 거행되었습니다.  


박열 의사의 서거일인 오늘, 암울한 시대에서도 당당하게 독립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그의 삶을 다시금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 참고사이트

박열의사기념관 http://www.parkyeol.com/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1303&mobile&cid=59011&categoryId=59011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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