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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여러분!

2018년 새해, 1월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해 드린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 2월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해 드리게 되었네요.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해 드릴 2월의 독립운동가는 중국과 러시아를 누비며 무장투쟁을 전개한 대한신민단 단장, 백추 김규면 선생입니다.


▲ 김규면 선생


1880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김규면 선생은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운영하는 육군무관학교 속성과에 입학하였고, 무관이 되어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1904년, 한일의정서가 강제로 체결되어 학교가 일제의 통제를 받게 되자 그 꿈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 김규면 선생의 직접 쓴 회고록인 ‘노병 김규면 비망록’.

(출처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 이동휘 선생


이후 훈춘으로 망명한 김규면 선생은 1915년, 일제가 종교 탄압을 위해 포교규칙을 공포하자 이에 반발하여 민족종교 단체인 ‘대한성리교’를 만들어 항일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또한, 김규면 선생은 스스로 무관이 되지는 못했지만 독립군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14년 이동휘 선생과 함께 중국에서 ‘동림무관학교’를 설립한 것을 들 수 있지요.


▲ 봉오동 전투 기록화(출처: 여천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청산리전투도(출처: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김규면 선생은 이에 호응하여 대한신민단을 결성하여 단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독립전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 블라디보스톡에서 동지들과 찍은 사진_1920년

(앞줄 왼쪽부터 김규면, 장병태, 이홍파, 손두현,

뒷줄 왼쪽부터 김병화, 김일수)


1924년, 김규면 선생은 윤자영 선생과 함께 조직한 상해청년동맹을 통해서 중국 학생계와 연대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한중연대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선생은 피습을 당해 부상을 입기도 했으나, 계속해서 독립운동의 힘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10년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전경. (출처: 독립기념관)


▲ (왼쪽) 김규면 선생과 아들 김호둔, (오른쪽) 말년의 김규면 선생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선생은 연해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항일운동을 계속했짐지만, 선생은 소비에트 연해주위원회의 탄압대상이 되어 모스크바로 피신하게 되었고, 1969년 88세의 일기로 별세하였습니다.

정부는 2002년,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누비며 무장독립운동을 이끌어간 2월의 독립운동가, 김규면 선생을 기억해 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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