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797,532
  • Today | 2,252
  • Yesterday | 1,907


청년이 나라의 보배요, 천하의 보배다’ - 이상재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국가보훈처 제11기 훈남훈녀 기자단 박명훈입니다.

어느덧 완연한 봄입니다. 비록 미세먼지로 답답한 나날이 지속되고 있지만, 봉오리가 맺힌 벚꽃나무를 바라보며 쾌청한 하늘을 기대하는 요즘입니다.

 

저는 지난 329() 오전 11, 서울 YMCA에서 열린 <월남 이상재 선생 제91주기 추모회>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상재 선생의 추모식이 열린 서울YMCA


2층 대강당으로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이상재 선생의 초상화였습니다.

좌측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우측에는 이상재 선생의 업적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추모회는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추모기도와 추모사, 그리고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는 내빈들


추모기도를 하는 조남국 서울 YMCA 이사


국민의례가 끝난 뒤에 추모기도가 이어졌습니다. 조남국 서울 YMCA 이사가 이상재 선생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하였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1850년 충남 서천 한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은 1881년 박정양 선생과 신사유람단에 동행해 일본의 발전을 관찰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됩니다.

 

1896, 이상재 선생은 서재필 선생과 독립협회를 창립했으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데 일조하였습니다.

 

1902년 개혁당 사건으로 인해 형을 선고받았으며 구금기간 동안 기독교에 입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황성기독교청년회, YMCA에 가입하여 종교부 총무와 교육부장으로 활동하며 민중의 계몽에 앞장섭니다.

 

이후 체계적인 방법으로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조선교육협회의 초대회장으로 청년교육에 매진하였고,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결성하기로 했습니다. 1924년에는 조선일보의 사장에 임명되는 등 노년의 나이에도 조국을 위해 바삐 활동하던 중 1927329, 별세하였습니다.

1962년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소개가 끝나고 나라가 어려움에 빠졌다,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는 위태로운 순간에, 이상재 선생의 애국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길 바란다는 내용을 담은 추모기도를 올렸습니다.


김인복 서울 YMCA 이사장


이어서 김인복 이사장은 가슴에 새겨두고 삶 속에서 실천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긍심을 가지고 월남선생의 정신을 본받아 나아가기를 바란다며 민족의 아픔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 희망을 바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윤종오 서울북부보훈지청장


다음으로 추모사에 참여한 윤종오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은 수많은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고 민족적인 힘을 기르도록 가르치시고 평생을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이상재 선생의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청년들이 월남 선생의 발자취를 잊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저 역시 이 말씀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추모사를 이어가는 이상복 회장


이어서 월남 이상재선생 기념사업회 이상복 회장은 나라 없는 민족의 등불이 되신 78년 동안 월남 선생은 절의정신을 실천하여 우리나라를 되찾았고 반쪽뿐이지만 부국강병을 꿈꿨다.’고 말하며 현재 우리나라는 정신적 빈곤 속에 옳은 길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는 곧 이상재 선생과 같은 분을 갈망한다는 것과 같다. 정신적인 지주가 있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행사 중간에 진행된 헌화


이상재 선생의 현손 이상구님


마지막 추모사를 맡은 이상재 선생의 현손 이상구님은 월남 선생은 깊숙이 자리 잡은 큰 어른 같은 존재다. 벗어나기 힘든 가난에도 말과 글, 청년 교육을 통해 독립을 꿈꾸셨다고 말했다. 이어 한 치 흔들림이 없이 우뚝 선 청년들의 자랑스러운 선구자의 역할을 맡으셨다고 말했습니다.

 

행사가 마무리되고 이상구 님께 추모식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여쭤봤습니다. 이상구님은 남북분단 70년이 이념적, 지역적, 세대적 갈등으로 번지고 있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고인을 기리는 뜻이 민족 겨레의 화합을 가능하게 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월남의 뜻을 이어받길 바란다고 말하며 우리나라에 닥친 위기를 월남의 지혜로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위트 있는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한 연회장에서 친일파를 만난 이상재 선생은 대감네는 도쿄로 가시는 게 좋겠구려라고 말하자 친일파는 영감, 별안간 무슨 소리요?’ 라고 의중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상재 선생은 대감네는 나라를 망치는 데 재주가 있으니, 도쿄로 가면 일본도 망하게 하겠거니 해서 말하는 거요!’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일제에 억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꿋꿋이 목소리를 내는 의연한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이처럼 굴복하지 않는 올곧은 심지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한 심지가 굳은 심지가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분들에게 이어지고 또 이어져 우리는 독립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월남 선생은 계몽가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청년 교육을 위해 YMCA를 설립하시고, 젊은이들과 함께 계몽운동에 힘쓴 이상재 선생은 영원한 청년이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직접 추모식에 참석하는 일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소 나보다는 남을, 자신의 안위보다 조국을 먼저 살피신 분들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국가보훈처 11기 기자단 박명훈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D%B4%EC%83%81%EC%9E%AC&ridx=1&tot=11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다, 제99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 취재기
낯선 나라를 위해 흘린 피와 땀, 전쟁기념관에서 알아본 유엔군의 희생
6.25참전 미국군 전사·실종장병 유가족 방한, ‘아픔과 슬픔을 위로합니다.’
제58주년 4.19혁명 기념식, 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어나 ‘민주의 횃불’을 높이 들다.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