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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유엔참전국 이야기 - 

태국, '리틀 타이거'의 용맹함을 기억하며


1950625전쟁이 발발하자,

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복구에 힘쓰던 상황임에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지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태국은 연인원 약 63백여 명의 육공군

병력을 지원해 왔습니다



1950117,

부산항에 도착한 태국군을 맞이한 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습니다.

 

태국군은 혹한과의 사투를 벌이며

평양-수원 철수작전에서

유엔군의 철수를 엄호하고

 

경북 상주에서는

적의 게릴라에 맞서

대유격전을 벌였습니다.



포크찹 전투


 앞으로 어떤 전투에서든지

유엔군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포크찹 전투를 치하한 미 사단장

 

다섯 배가 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태국군은 백병전을 불사하고

포크찹 고지를 사수해 냈습니다.

 

이 전투로 태국군 대대는

'리틀 타이거'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태국 공군은 C-47 수송기를 동원하여

부상자 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했고

 

태국군 참전용사들은 포크찹 고지를 포함한

주요 요충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임전무퇴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과 태국은

참전의 인연으로 함께 싸웠고,

그들이 보여준 인류애는 68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리틀 타이거, 태국군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해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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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6.25전쟁 유엔참전국의 활약상을 알아보는 기회! ‘6.25전쟁 유엔참전국 이야기’ 세 번째 포스팅입니다. 오늘은 의료지원국, 덴마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병원선’을 아시나요? 6.25전쟁 당시 덴마크는 부산과 인천 앞바다에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띄우고 부상당한 유엔군, 국군은 물론 대한민국의 민간인을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 부산항에 정박한 유틀란디아호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 유틀란디아호, 대한민국으로 출항하다


덴마크는 유엔회원국 중 가장 먼저 대한민국을 지원할 의사를 밝힌 국가입니다.

덴마크는 1950년 7월 19일 앰블란스 파견대를 지원할 것을 제안한데 이어, 한 달 후인 8월 19일에는 유틀란디아호를 병원선으로 파견할 것을 유엔에 전달합니다.


평화 수호에 대한 덴마크 국민들의 염원을 담은 유틀란디아호는 1951년 1월 23일 덴마크에서 출항하여 3월 7일 부산에 도착했고, 1953년 8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에 파견되어 의료 지원을 했습니다.

 

▲ 덴마크의 유틀란디아호 파견 의사를 미국 정부에 전하는 유엔 미국대표의 전문 (출처: 6.25전쟁 의료지원국 참전사)

▲ 의료기구를 살피는 의료진의 모습 (출처: 대한민국 외교부)


# 유틀란디아호, 따뜻한 인류애를 실천하다


1951년 3월 7일, 부산에 입항한 유틀란디아호를 기다린 것은 수많은 부상자들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유엔군의 38도선 진출을 위한 반격작전이 활발히 전개되던 때라 위중한 환자가 많았고,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전상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유틀란디아호는 주로 부산항에서 후송병원의 역할을 했지만 때로는 포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방 지역 항구로 이동하여 적극적인 의료행위를 펼쳤습니다.


▲ 유틀란티아호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국군 (출처: 6.25전쟁 의료지원국 참전사)


이후 덴마크에서 재정비를 한 유틀란디아호는 1951년 9월 29일 출항하여 11월 16일, 2차 지원을 위해 다시 한 번 부산에 도착합니다.

유틀란디아호의 의료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전상자 치료에 집중했고, 빠른 시일 내에 회복이 어려운 전상자들을 일본에 위치한 미군병원으로 후송하는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덴마크 의료진 중 일부는 일본 방문 기간에도 대한민국에 남아 미군병원, 노르웨이 야전병원 등에서 쉴 새 없이 부상자들을 치료했습니다.


▲ 일본에서 출항하는 유틀란디아호를 배웅하는 한국인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1952년 3월 29일에 재정비를 위해 부산항을 떠난 유틀란디아호는 환자수송 헬리콥터를 탑재하는 등 더욱 강화된 의료설비를 마련합니다. 또한 진료과목을 확대하고 의료진 역시 증원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1952년 11월 20일, 3차 파견 준비를 완료한 유틀란디아호는 전선 가까이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인천에 입항하였습니다. 덴마크 의료진은 병원열차, 헬리콥터로 이송된 부상자들을 수용하여 9개월 동안 무려 2천여 명의 수술을 집도하였습니다.


▲ 유틀란디아호에서 치료를 받는 어린이 환자들 (출처: 6.25전쟁 의료지원국 참전사)


1953년 초 전선이 소강상태를 유지하자, 유틀란디아호의 의료진은 3월부터 인천항에서 민간인을 치료하는 데 힘씁니다. 이들은 인천 기독병원과 협조하고 유엔민간구호사령부(UNCACK),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협력하여 민간인을 치료하였습니다.


▲ 유엔민간구호사령부(UNCACK)의 덴마크 간호사가 한국인 소녀들과 교류하고 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유틀란디아호는 대한민국을 떠나게 됩니다.

유틀란디아호는 각종 약품, 의료기자재를 유엔한국재건단을 통해 민간병원에 지원했고, 1953년 8월 16일, 인천 시민들의 열렬한 환송 속에 덴마크로 향합니다.

그리고 귀국 과정에서도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네덜란드, 터키, 영국에 포로 651명을 송환하며 마지막까지 유엔의 일원으로서 기여합니다.


▲ 유틀란디아호의 귀국 모습 (출처: 6.25전쟁 의료지원국 참전사)


# 유틀란디아호, 대한민국·덴마크의 우호의 다리가 되다


유틀란디아호는 대한민국을 떠났지만, 덴마크는 전쟁 중에 대한민국과 나누었던 우정을 잊지 않았습니다. 

1981년 5월 1일, 유틀란디아호의 근무자들은 유틀란디아 동지회를 결성하였고, 이후 1990년 5월 코펜하겐 항구에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의 지원을 받아 참전기념비를 세웠습니다.


▲ 유틀란디아호 참전기념비 (출처: 6.25전쟁 의료지원국 참전사)


또 2011년 1월 23일에는 코펜하겐 참전기념비 광장에서 유틀란디아호 파견 60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되는 등 양국간 우호적인 관계를 위한 교류를 지속해 왔습니다.


먼 나라 덴마크에서 숭고한 인도주의 정신을 싣고 대한민국으로 향했던 유틀란디아호. 유틀란디아호가 대한민국에서 실천한 인류애는 그들이 항해한 바다만큼이나 깊고 넓었습니다. 

유틀란디아호에 승선하여 대한민국이 입은 전란의 상처를 치유한 630명의 덴마크 의료지원단을 기억해주세요.


*참고자료

6.25전쟁 의료지원국 참전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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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념하여 대한민국에 따스한 인류애를 보여준 유엔참전국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6.25전쟁 당시 22개국이 대한민국에게 지원의 손길을 보냈는데요. 그 중에는 자유와 평화에 대한 신념으로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에서 병력을 파병한 나라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 유일의 지상군 파병국, 에티오피아입니다.


▲ 에티오피아 군대의 밀집대형행진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 에티오피아, 강뉴부대를 파병하다


사랑하는 나의 전사들이여, 그대들은 자유를 지키고

유엔의 평화에 대한 대원칙을 수호하기 위한 중차대한 사명을 받고

조국 에티오피아를 떠나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는 장도에 섰다.


- 셀라시에 황제의 에티오피아군 파병 축사


에티오피아 정부는 1950년 8월 에티오피아 주재 미국대사 편에 유엔군으로서 6.25전쟁에 참전할 의사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격파하다’의 의미를 가진 ‘강뉴(Kagnew)부대’를 편성합니다.

강뉴부대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근교에서 훈련을 진행한 뒤 1951년 5월 6일, 마침내 전쟁의 상처로 신음하던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 수송선에서 내리는 강뉴부대원들 (출처: 에티오피아군 6.25전쟁 참전사)


# 강뉴부대, 253전 253승으로 전쟁사에 길이 남다


대한민국 땅을 밟은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는 여러 고지, 지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활약했습니다. 강원도 양구의 단장의 능선 전투 이후 단장의 능선에 배치된 강뉴부대는 정찰전을 전개하고 수색에 힘을 쏟았습니다. 강뉴부대는 1951년 11월 10일까지 단장의 능선을 든든히 지키면서 여섯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이후 강뉴부대는 잠시 이곳을 떠났다가 12월 24일, 다시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눈보라와 살을 에는 추위를 겪으면서도 수색과 정찰에 열중했습니다. 강뉴부대원은 훗날 이때의 추위에 대해 “적뿐만 아니라 자연과도 전투를 벌어야 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 눈에 덮인 단장의 능선에서 진지 보강 작업을 하는 강뉴부대

(출처: 에티오피아군 6.25전쟁 참전사)


1953년 5월 강뉴부대는 요크, 엉클고지에서 격전을 치렀습니다. 5월 16일에 파시카 소대장이 지휘하는 매복조는 요크 고지 정상에서 700m 떨어진 곳에 매복하고, 기습해온 적에게 응전하여 사격을 통해 적들을 사살합니다. 또한 마모 소위를 필두로 요크고지 북쪽에 매복하여, 아군의 포격 지원 등에 힘입어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5월 20일에도 강뉴부대원들은 적의 포격으로 모든 유무선 통신이 단절된 상황에서 격렬한 전투를 불사하여 승리를 얻어냅니다. 이후에도 요크고지를 향한 공격은 이어졌는데요. 강뉴부대의 용감한 전투는 계속해서 적의 패퇴를 이끌어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용사들은 7월 27일 한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고, 매복조를 이끌었던 제3중대 아스포 소위에게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는 등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 요크고지에서 참호를 구축하는 모습 (출처: 에티오피아군 6.25전쟁 참전사)


1953년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3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반도를 물들였던 총성이 멈춥니다. 6.25전쟁동안 강뉴부대는 253회의 전투를 치렀는데, 모두 승리하여 전쟁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정전 후에도 에티오피아는 미 제7사단에 속하여 대한민국을 수호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매년 새로운 부대를 파견하였고, 그 군사들은 강뉴 제5대대가 1956년 3월에 귀국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켰습니다. 


# 대한민국과 에티오피아, 참전으로 나눈 우정을 기억하다


지구 반 바퀴가 떨어진 먼 나라 에티오피아에 대한민국의 이름을 딴 한국촌(Korea Village)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한국촌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시내에 위치해있는데요.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귀국 후 거주하게 된 마을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6.25전쟁에서 자신들이 이룩한 평화의 의미를 기억하고, 대한민국이 하루 빨리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길 기도했을 참전용사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으시나요?


에티오피아에는 한국촌 외에도 6.25전쟁 참전을 기리고 기념하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2006년 2억원을 지원해 아디스아바바에 한국전 참전기념탑을 세웠습니다. 또한 춘천시, 참전용사후원회가 함께 힘을 모아 아디스아바바에 참전 기념회관을 건립하기도 하였습니다.


▲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이 한국전 참전기념탑에 참배, 헌화를 하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에서도 6.25전쟁에서 헌신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있습니다.

유엔한국참전국협회는 1968년 5월 7일 강원도 춘천에 6.25전쟁에서의 에티오피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비를 건립하였고, 2006년 10월 6일에는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이 건립되었습니다. 


▲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비 (출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 (출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연인원 3,518명을 파병하여 658명이 전사, 또는 부상(출처 : 국방부 ‘통계로 본 6.25전쟁’)의 피해를 입으면서도 대한민국을 끝까지 수호해낸 에티오피아.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는 이름 그대로,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는 대한민국을 전란의 혼돈에서 구해내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1974년 쿠데타로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면서 참전용사들은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지구 반대편의 한국인들을 도와 대한민국을 수호했던 기억만은 자랑스럽게 남았습니다.


“고국에서 진통제로 고통을 달래고 있을 무렵, 다시 파병 소식이 알려졌죠.

전쟁에 대한 참옥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지만

고통 받는 한국인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 전투 중 부상을 입어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참전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구르무 담보바


▲ 담보바 이등병(왼쪽)과 에티오피아 강뉴전사가 무반동총을 들고 있는 모습

(출처 : 월드투게더)


6.25전쟁 중 강뉴부대원으로 두 차례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육군 이등병, 구르무 담보바는 작년 8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에티오피아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노병 약 270명(2017년 기준)이 생존해 있습니다.

오는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에 파병되었던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참전용사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에티오피아군 6.25전쟁 참전사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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