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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연일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세계인의 축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어느덧 약 한 달 앞으로 훌쩍 다가왔습니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요.


국가보훈처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주한 캐나다대사관과 함께 ‘임진클래식(Imjin Classic)’ 아이스하키 재현행사 및 성화 봉송을 위해 6.25참전 캐나다 참전용사(가족) 6명을 초청합니다.


“6.25전쟁 당시 캐나다 참전용사, 임진클래식 재현 행사와 성화 봉송 주자 참여”


▲ 1953년 겨울, 얼어붙은 임진강에서 캐나다 왕립22연대와

PPCLI 소속 장병들이 친선하키경기를 즐기고 있다.


캐나다 참전용사들은 겨울이면 임진강이 아이스하키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얼어붙는다는 사실을 알고, 6.25전쟁 당시 캐나다에서 하키 장비를 공수해 왔습니다. 캐나다 참전용사들은 임진강에서 하키 경기를 하며 향수를 달랬지요. 캐나다 군인들로 구성된 두 팀(PPCLI와 VanDoos)은 친목을 위해 임진강 근처에서 ‘임진클래식(Imjin Classic)’이라는 이름으로 하키경기를 개최했는데요. 

이후 캐나다 연아 마틴 의원의 제안으로 캐나다가 아이스하키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고양시키고, 6.25전쟁 참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재현행사를 기획하였습니다.



캐나다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 소속으로 참전국들 중 세 번째로 큰 규모인 26,791명의 병력을 파병하였고, 그 중 516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출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이들이 참여한 주요 전투에는 가평전투(1951)와 임진강전투(1952)가 있습니다. 


▲ 2017년 4월 24일, 경기도 가평의 영연방참전비 앞에서 열린 제65주년 가평 전투 기념식


올해, 2018년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주년이 되는 해이자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입니다. 

동계올림픽의 주요 종목인 하키와 6.25전쟁 당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싸웠던 캐나다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지역으로 결정된 파주 파평면에서 임진클래식 경기를 재현하기로 한 것인데요.


▲ 6·25전쟁 캐나다 참전용사인 클로드 샤를랭씨(왼쪽)와 데니스 무어씨(오른쪽)


이번 초청행사에는 6·25전쟁 당시 파주 임진강에서 아이스하키를 했던 PPCLI(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부대의 데니스 무어(Dennis Moore, 87세)씨, 22연대(Van Doos) 클로드 샤를랭(Claude Charland, 89세)씨 및 2012년부터 17년까지 국제한국전참전협회장을 역임하였던 존 비숍(John Bishop, 89세)씨가 참석합니다.


그리고 6·25 참전 당시 캐나다연대 선수였던 클로드 샤를랭씨는 아이스하키 경기장 주변 성화 봉송로 구간에서 주한 캐나다대사, 한국참전용사 등과 함께 성화 봉송 주자로도 참여합니다.


캐나다 참전용사의 방한 주요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임진클래식 재현행사는 오는 1월 19일(금), 파주 임진강 인근의 율곡습지공원에서 오후 12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됩니다. 


▲ 클로드 샤를랭 씨


이번에 성화봉송 주자로 참여하는 참전용사 클로드 샤를랭씨는 왕실 22연대 소속으로 1951년 11월부터 1952년 11월까지 참전하였습니다.


그는 “65여 년 전 전우들과 함께했던 아이스하키를 다시 할 수 있다니 놀랍다. 그 당시는 보급된 바람막이 바지 속을 잡지, 신문 등으로 채워 상대편 스틱의 강타에서 오는 충격을 흡수했다. 그때의 전우들이 그립고 항상 우리를 잊지 않는 한국 정부에 감사하다.”라고 인사를 전했습니다. 


▲ 데니스 무어 씨(왼쪽)와 클로드 샤르랭 씨(오른쪽)


그리고 캐나다 PPCLI(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소속 선수로 뛰었던 데니스 무어씨는 “1950년에서 1952년까지 13개월동안 캐나다를 대표하여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자랑스럽게 총을 들었고, 꽁꽁 얼어붙었던 임진강에서 하키스틱을 들 때도 자랑스러웠다.”라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 존 비숍 씨


또한, 전(前)세계한국전참전협회장인 존 비숍씨는 “나는 6.25전쟁 당시의 추위와 전우들의 죽음이 기억나고 그 때의 큰 충격은 여전히 남아있다. 60여년이 지나도 우리를 잊지 않고 초청해 주는 대한민국 정부에 항상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 2017년 4월 26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캐나다 대사관 주관으로 열린 전몰용사 추모식


유엔 참전용사 등 초청 사업은 1975년 민간단체 주관으로 시작되어 2010년 6·25전쟁 60주년을 계기로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으로 지난해까지 3만 2천여 명의 유엔참전용사와 가족이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올림픽 기간, 네덜란드 총리 등 정부대표 방한시기에 맞춰 네덜란드 참전용사(가족)를 초청하고,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횡성 참전기념비 참배, 올림픽 경기관람 등을 추진하여 대내외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홍보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 지난해 9월 진행된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 당시,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 앞에서 헌화하고 있는 참전용사의 모습


60여 년 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한반도 땅에 왔던 젊은 용사들은 하키 경기를 하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랬습니다. 그리고 올해, 노병이 된 이들은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땅에서 그 옛날 그들이 펼쳤던 경기의 재현행사를 보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에는 과거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요?

평창 동계올림픽 계기 캐나다 참전용사를 초청하여 진행되는 임진클래식 재현행사와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하는 참전용사의 이야기! 또 전해 드리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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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 中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6.25전쟁 중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감동적이었던 작전, 흥남철수작전에 대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 메러디스 빅토리 호


# 6.25전쟁 발발


1950년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우리 국군은 북한군의 공세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15일, 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바다를 통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며 전세는 역전되는데요. 이때부터 북한군을 몰아내기 시작했고, 9월 28일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이 기세를 몰아 38선을 넘어 북진하였는데 10월 20일 평양을 점령하고 11월에는 압록강까지, 또 중공과 러시아가 있는 두만강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1950년 11월 말, 1만 5천여 명의 미 해병대 1사단이 압록강 근처의 장진호까지 나아갑니다. 통일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던 그때, 중공군이 30만 군대를 이끌고 장진호를 포위합니다.

이러한 돌발 변수 앞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추위까지 우리 국군과 유엔군을 급습했는데요. 당시 장진호는 영하 40도로,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었습니다.

장진호의 칼바람 아래, 밀고 밀리는 피의 전투가 계속되었습니다. 동상에 걸린 병사가 속출했으며, 전사자들의 시신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등 생지옥이 펼쳐집니다.


결국 북진 계획은 재검토되었고 장진호의 전 부대는 함흥으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이 장진호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고,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흥남으로 향합니다. 


# 피난민들과 함께 철수한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흥남 부두에는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피난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1950년 12월 15일에서 24일까지 열흘간 흥남철수작전이 펼쳐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배에 탈 수 있는 건 군인, 그리고 무기와 장비뿐이었습니다. 

철수를 위해 이동해야 할 병력만 10만 5천여 명, 수송해야 할 물자로는 만 7천여 대의 차량과 35만톤의 군수 물자, 그리고 탱크 등이 있었습니다. 또 흥남 지역에는 군인과 군수 물자 이외에도 20만여 명의 피난민들도 있었지만, 당시 흥남철수작전 계획에는 민간인 이송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미 제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은 병력과 군수 물자를 수송하기에도 벅차므로 민간인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흥남부두에 몰려든 인파 (출처 : 전쟁기념관)


그러나 제1군단장 김백일 장군은 국군이 북진할 때 환호하던 지역 주민들이 반동으로 몰려 목숨이 위험할 수 있으니 피난민들의 수송 지원 협조를 요청했고, 미 제10군단에서 군대와 주민들 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부서인 민사부 고문을 맡고 있던 현봉학 박사도 알몬드 소장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 현봉학 박사


“제발 우리 국민들을 도와주세요. 저 사람들을 여기에 두고 가면 중공군에게 몰살당할 것입니다. 저 사람들을 태워주세요.”

 

국군 지휘관들도 가세하여 피난민들과 함께 철수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였습니다.


“만약 피난민을 승선시키지 않는다면 국군은 그들과 함께 육로로 내려가겠습니다. 국군은 피난민을 안전하게 돌봐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탄복한 알몬드 소장은 피난민들과 함께 철수할 것을 명령합니다. 흥남철수작전에는 군함, 민간함 등을 포함하여 193척의 배가 동원됩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배는 ‘메러디스 빅토리 호(Meredith Victory)’입니다. 당시 이 배에 태울 수 있는 피난민의 숫자는 고작 13명 뿐이었는데요. 아비규환이 된 흥남 부두를 지켜 보던 빅토리 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 있는 무기를 버리고 사람을 태우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결국 배에 실려있던 25만톤의 군수물자는 버려지고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1만 4천여 명이 탑승하게 됩니다. 피난민들 승선할 때까지 16시간이 소요되었고, 그렇게 피난민들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12월 23일 흥남에서 출항합니다.


▲ 탈출 중인 피난민들 (출처 : 전쟁기념관)


이틀 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2박 3일 동안의 극한 상황 속에서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경남 거제도에 도착한 것인데요. 그동안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 미군들은 그들의 이름을 김치1, 김치2… 그리고 김치5로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피난민 수송에 큰 역할을 한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기네스북에 ‘단일 선박으로 최다 인원을 구출한 배’로 등재되었습니다.

또한 이 흥남철수작전으로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17,500대의 각종 차량, 35만 톤의 물자는 물론, 피난민까지 안전하게 철수했고, 항공기를 이용해 병력 3,600명과 차량 196대, 1,300톤의 물자가 철수하였습니다.


▲ 거제 포로수용소의 흥남철수작전 기념비


대규모의 육해공 합동작전이었던 흥남철수작전에서 최대한의 전투력을 보존한 만큼, 국군과 유엔군은 다음 단계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 현봉학 박사 동상


▲ 고(故) 현봉학 박사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내빈들


지난 12월 19일(화), 고(故) 현봉학 박사 동상 건립 1주년을 맞이하여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빌딩에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 고(故) 현봉학 박사 동상 건립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문재인 대통령 축사를 대독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67년 전 12월, 흥남철수작전에서 피난민을 구출하기 위해 힘썼던 모든 분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6.25전쟁 당시, 인간의 존엄과 인권이 내버려지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한 사람이라도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섰던 많은 사람들, 그들을 꼭 기억해 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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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준식

    2017.12.22 2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충남 아산에 거주하는 역사·문화·나라사랑 분야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네스카페, 김준식입니다.

    벌써 올해 성탄절이 다가오는 가운데, 12월은 연말이다 보니 우리 주변에 어려운 이웃 등에게 더욱 관심이 가는 따뜻한 사랑과 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달인데요. 마침 6·25전쟁 중에도 이러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에 저로서는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특히 흥남에서 출발하여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오히려 5명의 아이(김치)가 태어나 무사히 거제도 땅에 도착을 할 수 있었던 데는 현봉학 박사의 끈질긴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여 현봉학 박사의 인류애에 다시 한 번 감동을 받게 됩니다. 마침 내년에도 6·25전쟁영웅에 선정되신 분들 중 현 박사와 함께 흥남철수작전을 이끌었던 에드워드 포니 미국 해병대 대령과 현봉학 박사의 동생인 현시학 해군 소장(제독)도 선정이 되어 계시네요.

    그리고, 가수 현인 선생님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 가사 중 '바람 찬 흥남 부두에' 라는 가사가 나오지만, 이와 비슷한 가사가 나오는 노래인 '라구요(강산에)' 역시 오늘 이 흥남철수작전 관련 게시물을 보면서 생각나게 됩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정보를 남겨주신 훈남훈녀 관계자 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리며, 훈남훈녀 관계자 분들께서도 Merry Christmas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7. 12. 22. 충남 아산에 거주하는 역사·문화·나라사랑 분야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네스카페, 김준식 드림.

  2. 미소양

    2017.12.23 15: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적이군요
    오늘하루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3. 이유진

    2017.12.25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경스럽습니당!!!!

 

1950년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초기, 국군은 유엔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병력과 장비 면에서 열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8월 초부터 다부동, 포항 일대에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넘어 북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주도권을 쟁취한 국군과 유엔군은 곧 통일을 이룩하고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죠.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국군과 유엔군은 뜻밖의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중공군이 전쟁에 대거 개입함에 따라 전쟁의 양상이 다시 한 번 바뀌게 된 것이었습니다.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하여, 이른바 ‘인해전술’로 1차 공세를 개시한 중공군은 계속해서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국군은 계속 진격하여 압록강변 초산 지역을 점령했고, 서부 지역의 미 제24사단은 신의주 남방 정거동까지 진출하였습니다.


▲ 남진하는 중공군의 모습 (출처: 중국해방군화보사)


하지만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11월 말,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부딪쳐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중공군의 2차 공세 중 일어났던 장진호 전투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 장진호의 한파 속에서 전개된 전투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전쟁 물자의 주요 이동경로를 차단했고, 북한군 병력은 고립되었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북진하던 미군 제1해병사단은 서부전선 부대와의 접촉을 위해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해야 했습니다.
당시 유독 추운 한파가 몰아닥쳤습니다. 무려 영하 40도에 달했던 강추위로 물과 식량이 얼었고, 동상에 걸린 병사가 속출하였습니다. 차량과 탱크의 기름도 얼어붙었고, 총조차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는 유엔군과 국군 (출처: 국가기록원)


설상가상으로 중공군의 공격도 이어졌습니다. 중공군은 11월 27일, 미 제1해병사단이 주둔하고 있던 유담리 베이스캠프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미군은 모든 병사들을 동원해 방어했지만, 중공군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미 제10군단 알몬드(Edward M. Almond) 소장은 11월 30일 장진호 근처 하갈우리에서 작전회의를 열고 기존의 북진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알몬드 소장은 장진호 부근의 모든 부대를 함흥~흥남의 작전기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편, 장진호 동쪽의 미 제7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에 발이 묶여 고립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은 하갈우리 지역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이미 고토리까지 남하한 중공군이 하갈우리에 이르는 보급로를 차단하고 있어 이동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 장진호에서 후퇴하는 해병들 (출처: 국방부 공식 블로그)

 

이에 미 제1해병사단은 중공군의 강력한 포위 공격에 많은 손실을 입어가며 가까스로 병력을 후퇴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어 진흥리를 통과한 미 제1해병사단이 12월 11일 함흥 지역에 모두 진입하면서 장진호 전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1만 5천여 명의 미군의 10배가 넘는 중공군 병력의 진격을 지연시켰던 장진호 전투는 중공군 측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습니다. 이 전투 이후 중공군 부대는 부대를 다시 편성하기 위해 후방으로 철수하였죠.

또한, 6.25전쟁 3대 전투로도 기록되어 있는 장진호 전투는 훗날 흥남 부두의 피난민 20만여 명을 남쪽으로 탈출시켰던 ‘크리스마스의 기적’, 흥남철수작전을 가능하게 한 시간적 여유를 벌어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장진호 전투중 국군의 모습 (출처: EBS다큐멘터리)


67년 전 극한의 추위 속에서 벌어졌던 장진호 전투. 이 전투에서 스러져간 참전용사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숨 바쳐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킨 국군과 유엔군의 명복을 빕니다.


* 참고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8591&cid=46628&categoryId=46628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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