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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고지전 전개 배경


1951년 7월 휴전회담을 시작한 남과 북. 하지만 휴전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에는 전선이 소강상태를 유지하였으나, 회담이 결렬 또는 지연될 경우에는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죠. 휴전회담에서 가장 큰 이슈는 군사분계선 설정과 포로교환 문제였습니다. 쌍방이 접촉한 일대를 군사분계선으로 할 것을 주장하던 유엔군과 38도선을 주장한 공산군 진영. 결국 휴전회담은 결렬되었고 유엔군은 휴전 당시의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결정하자는 주장을 관철시키는 동시에 당시의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제한된 범위의 공격작전을 단행합니다.


10월 말까지 계속된 이 공격은 당시의 대치선에서 평균 10km내에서 치러졌으며 좁은 지역 내에서 수많은 전투가 전개되어 쌍방간에 많은 사상자를 내죠. 막대한 피해를 입은 공산군측은 10월 25일 휴전회담에 응하여 UN군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며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을 재개했지만, 결국 다른 의제들의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휴전회담은 또다시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1952년 후반, 다시 가열된 전선은 국지전 형태의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양상으로 변모합니다. 불모고지전투, 백마고지전투, 저격능선전투, 수도고지전투, 크리스마스고지전투, 단장의 능선전투, 피의 능선 전투, 펀치볼 전투, 351고지 전투 등 지금도 유명한 고지전이 이때 벌어지게 됩니다. [영화 고지전]도 이 치열했던 당시 전투를 모티브로 제작되었죠.


참호에서 주먹밥을 먹는 국군들(출처: 전쟁기념관)


▲고지 탈환 직후 시체 옆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국군(출처: 전쟁기념관)


# 단장의 능선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치열했던 전투


치열했던 고지전이 일어난 곳들 중 가장 많이 들어본 지역은 단장의 능선이죠. 한창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도 ‘단장의 능선’이라는 맵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단장의 능선은 강원 양구와 인제의 중간 지점에 있는 일련의 고지 이름입니다.


이 고지는 금성 지구에 위치한 적의 후방기지를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고 아군의 동부 전선에서의 진격작전에 있어 전략적인 요충지였습니다. 1951년 9월 13일, 한국군 제7사단과 미군 제3사단 병력이 연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9월 18일 이 고지를 점령했고, 북한군은 곧 이 고지를 수복하기 위해 맹공을 펼쳐왔습니다. 약 1개월 동안 일진일퇴의 백병전을 거듭한 끝에 유엔군이 적의 최후 거점을 점령함으로써 전투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유엔군은 3,700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상자는 25,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단장의 능선이라는 이름은 이 처절한 전투 양상을 상징하고 있답니다.


▲유엔군측과 공산군측의 수많은 병사들이 숨져간 고지 ‘단장의 능선’ (출처: 전쟁기념관)



# 피의 능선, 비극적인 별명의 유래


6.25전쟁 당시, 강원 양구군 북방의 983고지와 940고지, 773고지는 하나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951년 8월에는 북한군이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도로 확보를 위해 이곳을 탈취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해 8월 17일, 국군의 선제공격으로 일주일이 넘도록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긴 전투 끝에 능선을 점령한 국군은 바로 다음 날 공들여 얻은 고지를 북한군의 공격에 다시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이후 미군은 제24사단의 4개 포병대대, 중형포 2개 대대, 1개의 105mm 대대, 2개의 중박격포대대, 2개의 연대 전차중대, 중형 전차대대 1개 중대 등을 대거 투입하여 피의 능선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합니다. 8월 27일부터 9월 3일까지 제 1대대는 포병 및 공중의 지원을 받으며 이 능선을 수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결국 견고히 구축된 적 방어진지를 점령함으로써 3주간의 장기전을 마무리 짓습니다. 이 전투로 인해 국군과 연합군은 1개 연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북한군은 1개 사단 규모 이상의 피해를 보고 말았죠. 이를 취재하던 종군기자들이 적과 아군의 피가 흘러내린 격전지를 소개하면서 피의 능선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금성계곡이 보이는 산마루를 지키고 있는

제24보병 사단 소속 콜롬비아대대(출처: 전쟁기념관)



▲피의능선 전투 전적비 (강원 양구군 위치)


# 저격능선에 펼쳐진 죽음의 그림자(Battle of sniper ridge)


저격능선이라는 이름에서 저격수와 관련된 지명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저격능선 전투는 ‘철의 삼각지대 전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철의 삼각지대’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히는데요. 철원, 김화, 평강이 포함된 삼각지대를 뜻합니다. 교통의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던 만큼, 이곳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격능선은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인 강원도 철원군 오성산에서 남대천 부근인 김화 지역을 향해 뻗어 내린 돌출 능선입니다. 1952년 중부전선의 김화(현재의 철원군 김화읍 주변)지역,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15군에 맞서, 6주에 걸쳐 긴 전투를 벌였는데요. 주저항선 전반의 전초진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습니다.


▲철의 삼각지대 전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강원 철원군 소재)


1952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김화 북방 7km지점 오성산에서 김화지역으로 뻗은 여러 능선 가운데 남대천 부근, 장방형 무명능선 부근 1951년 노매드(Nomad)선을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한 미군 제25사단이 김화지역으로 진출하다 중공군 제26군과 대치하게 됩니다. 중공군은 저격수를 앞세워 공격을 가했고 미군 제25사단은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때부터 미군 병사들이 이 무명능선을 가리켜 저격능선, 저격병 능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이 저격능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일어나는 가운데 국군 제2사단은 미군과 작전을 교대합니다. 국군이 주간작전에서 막강한 화력으로 중공군을 제압하면 중공군은 야간역습으로 대응하면서 지속적인 공방전을 이어나갑니다. 결국 국군 제2사단은 11월 25일에 중공군을 모두 격퇴하고 진지를 사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고지전투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셨나요? 지금까지 독특한 이름 뒤에 숨겨진 안타까운 사연들을 가진 고지전 지명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우리는 이 이름에 얽힌 비극적인 전투들과 함께 정전 협정 직전까지도 적과 맞서 싸우며 우리의 영토를 사수하고자 노력했던 수많은 호국영웅들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며칠 앞둔 지금,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 참고 사이트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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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충격과 슬픔


▲6.25전쟁 참전국 참전현황 (출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통계)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우리나라의 자유를 수호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세계 각국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6.25전쟁 통계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했던 전투 지원 16개국 중 37,902명의 군인이 사망했는데요.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병력을 지원했던 미국군의 사망자는 무려 33,686명에 달하고, 3,737명이 전쟁 중 소식이 끊겼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위험한 전쟁터에 거침없이 뛰어 들었던 유엔 참전국 용사들의 용기에만 초점을 두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하루아침에 아버지, 형제, 남편을 잃어야만 했던 유가족들이 감당해야 해야 했던 충격과 슬픔은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분명, 이들에 대한 진심어린 위로가 절실한 상황일 겁니다.


국가보훈처는 5월 22일부터 27일까지,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군 전사・실종 장병들의 유가족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지난 5월 22일(월), 미국군 전사・실종 장병 27명(전사 8명, 실종 18명, 포로 1명)의 자녀, 형제 등 유가족 53명이 방한하였는데요. 국가보훈처는 약 65년동안 유가족들이 겪었던 슬픔을 위로하고, 미국군 전사・실종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감사의 뜻을 전할 예정입니다.



# 미국군 전사, 실종 장병 유가족의 한국 방한 행사 주요 일정


미국군 전사, 실종 장병 유가족들은 지난 5월 22일(월)에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일정은 어제 23일(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전에는 한복체험 시간을 가졌고, 오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였는데요. 이후 국방부 미군 유해발굴 감식단을 방문하여 유해발굴 사항에 대한 브리핑을 청취하였습니다.


▲ 어제 5월 23일(화) 오전, 한복문화체험을 한 유가족 분들


▲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유가족 분들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방문한 유가족 분들


오늘 24일(수) 오전 10시, 유가족 분들은 미국군 전사・실종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6.25참전 미국군 전사・실종 장병 추모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안에 있는 6.25참전 미국군 참전기념비 앞에서 거행된 추모식은 유가족 분들과 주한미군 관계자, 파주시 등 지역 기관장, 보훈단체장 및 회원, 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한 아래, 전사・실종 장병에 대한 묵념과 헌화, 추모사, 유족대표의 편지 낭독 등의 식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편지 낭독은 장진호전투에서 실종되어 아직도 유해를 찾지 못한 육군 상병 토마스 알렌 두피(Thomas Allen Duffey, 실종 당시 22세)의 딸 리넷 투커(Lynette Tucker, 66세) 씨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향한 평생의 그리움을 담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번 추모식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전사・실종 장병의 사진을 디지털로 복원한 유화액자를 전달하여, 이를 받은 몇몇 유가족 분들은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 오늘 거행된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는 유가족 분들


▲ 미국군 전사・실종 장병의 사진을 유가족에게 건네고 있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6.25전쟁 중 실종된 미국군 참전 용사, 토마스 알렌 두피(Thomas Allen Duffy)


▲6.25전쟁 중 실종된 미국군 참전 용사, 클라렌스 부르스 블리스(Clarence Bruce Bliss)


이번에 방한한 유가족 중 3살 때 아버지 클라렌스 부르스 블리스(Clarence Bruce Bliss)를 여읜 마이클 브루스 블리스(Michael Bruce Bliss, 69세) 씨는 이번 행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생명을 바친 나라, 아버지가 어딘가에 묻혀 있을 한국의 땅을 밟는 것은 

아버지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한국을 위해 희생했던 6.25전쟁영웅들과 유가족들에게 대한민국의 진심어린 위로가 전해지기를



유가족들은 25일(목)에 판문점을 방문하여 남북 분단의 현장을 보고, 창덕궁, 인사동에 방문해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출국 전날인 26일(금)에는 한국민속촌, 롯데월드타워에 방문하고 저녁에는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감사위로연에 참석하여 일정이 마무리 됩니다.


이번 방한 행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해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던 전세계 유엔군 참전 용사들과, 그들의 가족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번 행사에 초청된 6.25전쟁 참전 미국군 전사・실종 장병 유가족들이 진실된 위로를 받으실 수 있기를. 또, 대한민국은 늘 6.25전쟁 당시 희생된 분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분들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가슴에 간직한 채 고국으로 돌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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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창리지구 전투 전적비 (강원 화천군 사창리 소재)


#사창리 전투의 설욕


1951년 3월 서울 재탈환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여 치열한 전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유엔군과 국군의 막강한 화력에 부딪힌 중공군은 1951년 4월 말 전 전선에 걸쳐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 하였습니다. 당시 경기도 양평군의 용문산 일대는 국군 제6사단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1951년 4월 중순, 국군 제6사단은 중부전선 미 제9군단의 작전 계획에 따라 김화를 목표로 계속해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공군의 반격을 받게 된 6사단은 사창리 부근의 명월리와 광덕리 일대에서 방어로 전환하였습니다. 그곳에서 6사단은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사창리 남쪽으로 밀리게 되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우리군의 병력, 야포, 차량 등이 협소한 사창리 계곡으로 밀려들게 됨에 따라 큰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그 후 제6사단은 병력을 수습하여 중공군의 진출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영연방 제27여단의 엄호 하에 가평으로 철수하여 부대를 재편성하게 되었습니다.


#결사의 의지를 다지다





▲결사 표식을 새긴 철모(출처: 국방부 6.25전쟁 제 60주년 사업단 블로그)


이후 국군 제6사단은 사창리 전투의 설욕을 씻고자 결사 표식을 철모에 새겨 결의를 다지며, 경기 양평군의 용문산 일대에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중공군은 1951년 5월에 다시금 춘계 대공세를 펼치게 되었는데요. 특히 중공군은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던 용문산 일대를 공격해 왔습니다. 국군 제6사단 장도영 장군은 전체 사단 병력의 3분의 1이나 되는 병력인 제2연대를 주 방어선보다 훨씬 위쪽인 북한강 아래쪽으로 보내 진지를 구축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북한강으로 넘어올 중공군을 염려한 장도영 장군의 계획이었습니다. 5월 18일 낮 동안 중공군은 중대 규모로 국군 제6사단 전초진지인 제2연대를 향해 몇 차례 공격을 퍼부었으나 제2연대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저항하며 진지를 고수하였습니다.



▲용문산 전투상황도(출처: 국방부 6.25전쟁 제 60주년 사업단 블로그)


5월 20일 새벽 5시에 국군 제6사단의 7,19연대가 중공군의 후방을 기습 공격하였습니다. 그 전날 새벽부터 중공군은 국군 주력을 상대로 전투를 하고 있다고 믿어 후방에서 공격을 받자 이곳을 주저항선으로 오판하여, 예비대까지 투입한 총 3개 사단의 병력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틀간의 격전 당시 다수의 부상자가 속출하고, 식량과 탄약이 부족하여 어려운 상황에서도 2연대는 도강하는 중공군에게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중공군의 공격이 약해진 틈을 탄 2연대는 427 고지로 후퇴하였습니다. 427 고지로 후퇴한 2연대는 전면방어 진지를 구축하여 조명지원 하에 진내로 접근한 적과 격렬히 맞섰습니다.


▲용문산 전투 전적비(출처: 전쟁기념관)


국군 2연대는 중공군 3개 사단을 상대로,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결사의 의지로 끝까지 싸웠고 결국 중공군은 질서를 잃고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발전소까지 60여km나 중공군을 추격하였습니다. 패주하던 중공군은 화천호에 이르러 퇴로가 막히고, 6사단은 그대로 중공군의 후미를 공격하여 적군을 대부분 화천호에 수장시키거나 포로로 잡습니다. 


 

이로써 6사단은 적은 병력으로 전례없는 대승을 거두었고 이전 사창리 전투의 불명예를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6사단이 격전을 벌였던 화천저수지를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의미의 ‘파로호’라는 지명을 하사하였고, 화천 저수지는 지금까지도 파로호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다.


 

용문산 전투는 6.25전쟁을 통틀어 단일 전투로는 가장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군을 격퇴한 전투입니다. 이는 일개 방어전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북진의 발판의 마련하는 등 6.25전쟁 사상 최고의 전과를 올린 기록적인 작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용문산 전투의 승리를 기점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재반격의 기반을 마련하였기 때문에,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 교본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세계사에서도 주목받는 전투입니다.


현재 육군은 제6사단 2연대에 ‘용문산 부대’라는 호칭을 부여하여 이 날의 승리를 오늘날까지 기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결사의 의지로 나라를 지켜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도 평화롭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용문산 전투에서 중공군에 용감히 맞서 싸운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그 분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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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우선

    2017.05.23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지가 6하단 용문산 부대에 근무하셨고.저도 6사단 화학대에서 근무 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이천호국원에 영면하십니다. 저희 가족은 용문산 용문사 절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청성사를 보고 군생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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