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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국가 수호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10건

  1. 2017.04.28 6·25전쟁의 숨은 주역, A특공대, KSC 지게부대
  2. 2017.04.26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 해피 밸리 전투 (1)
  3. 2017.04.24 가평 전투 66주년, 한국을 다시 찾은 영연방 참전용사들 (1)

 

만일 이들이 없었다면, 최소 10만 명 정도의 미군 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 미8군사령관 제임스 A. 밴플리트

 

▲ 유엔군의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일명 ‘지게부대’ 민간인들
(출처: 전쟁기념관)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당시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도로가 없었고 산악 지형이 발달해 있는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병력의 수송이나 물자를 보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전투 보급품의 빠른 공급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시대였기 때문에, 이는 곧 큰 군사작전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는데요. 물자보급의 과제가 우리군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군사강국, 현재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군 또한 당시 열악한 상황에서의 전투가 힘에 부치기엔 마찬가지였습니다.

 

병력이 부족했던 미군은 최후의 수단으로 민간 인력을 요청하였고, 1950년 7월 26일 ‘징발에 관한 특별조치령’이 공포됩니다. 정부는 물자 수송 작전에 필요한 민간인을 대거 징발하기 시작합니다. 원칙상 35세~45세 남성을 모집하는 것으로 정해졌지만, 이들로 물자 수송 작전을 펼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0대 소년에서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민간인들이 노무단으로 선발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임무는 전투물자, 생필품, 보급품을 운반하거나 진지공사, 부상자 후송, 도로와 교량의 건설, 보수 등 다양했습니다.

 

▲ 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민간인들
(출처: 전쟁기념관)

 

▲ 탄약 운반에 동원된 한국인 노무자들
(출처: 전쟁기념관)

 

▲ 진지를 구축죽인 국군병사들
(출처: 전쟁기념관)

 

이들은 한국 노무단(Korean Service Corps), KSC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산악지역에 지게로 탄약과 식량을 옮기며, 미군 및 우리나라에 파병온 세계 각국의 유엔군을 지원합니다. 당시 유엔군들은 지게를 등에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알파벳‘ A’를 닮았다는 뜻의 ‘A Frame Army’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민간인으로 구성된 한국노무단은 총 3개 사단 및 2개 여단 규모로 편성되었는데요. 그 규모는 무려 9만 3천여 명, 직고용 노무자는 7만 5천여 명, 계약고용 노무자는 2만여 명, 해·공군 및 기타 기관의 노무자도 1만3천여 명에 이르렀으며, 이들 중 1951년부터 1953년에 이르기까지 전선부대에 지원했다가 전사한 사람의 수도 총 8794명으로 알려졌습니다.

 

▲ 지게로 물자를 운반하고 있는 노무대
(출처: 국가기록원)

 

▲ 지게로 물자를 운반하고 있는 노무대 2
(출처: 국가기록원)

 

▲ 지게로 물자를 운반하고 있는 미군병사
(출처: 국가기록원)

 

“100명 가량의 한국인 짐꾼이 배치됐는데 이들은 무장하지 않았지만 우리와 함께 싸웠다.”

-캐나다 참전용사 빈스 코트니-

 

“이들은 전투지대에서 불순한 기후와 험난한 지형을 무릅쓰고 자동차 수송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보급품을 운반하였다.”

-미8군사령군 윌리엄 J. 리브시-

 

위험한 전장을 누비며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견뎌야했던 A특공대. 그들에게는 군번도, 계급장도 없었지만 지게부대의 부대원들 모두 나라를 위해 위험한 전장을 누비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군과 유엔군은 더 힘든 전쟁을 치렀을지도 모릅니다. 총탄과 대포를 쏘진 않았지만 우리군과 유엔군 뒤에서 든든하게 그들을 지원해 주었던 민간부대, A특공대와 한국노무단 KSC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참고 문헌
-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블로그
http://blog.naver.com/happybookksb/220404825746
- 월남전/국가보훈/고엽제/부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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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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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3일, 국가보훈처는 가평전투 66주년을 맞이하여 6·25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한 영연방(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참전 용사와 가족 등 80여 명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행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번 재방한 행사는 영연방 UN군 참전용사 분들이 4월 28일 금요일에 출국하기까지 이어지는데요.

 

이를 기념하여 훈터 여러분들께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참전했던 영연방 UN군의 전투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혹시 ‘해피 밸리 전투’에 대해 아시나요? 아마도 낯선 이름일 텐데요. 6·25전쟁 당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일대에서 영국군 29여단 얼스터 대대 장병들이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여 1·4후퇴를 가능하게 했던 전투입니다. 당시 대대장 이하 부대원 157명이 목숨을 잃었던 대규모의 전투이며 ‘고양전투’, ‘해피 밸리 전투’로 불리고 있습니다.

 

1·4후퇴 당시 서울의 시민은 100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 절반가량인 50만 명이 서울을 빠져 피난을 가고 있었습니다. 29 영연방 여단의 1대대, 얼스터 대대는 이 대규모의 피난 행렬을 엄호하기 위해 서울 북서쪽 전선에 자리 잡았죠. ‘해피 밸리 전투’ 외에 ‘고양전투’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의 서울 은평구에서 고양시 초입에 이르는 구간입니다.

 

▲ 1.4 후퇴 당시 사진 (출처: 육군 공식블로그 동고동락)

 

▲ 얼스터 대대 부대원 (출처: 육군 공식블로그 동고동락)

 

‘해피 밸리(Happy Valley)’는 ‘행복한 골짜기’라는 뜻인데요.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요?
얼스터 대대는 1950년 11월 부산에 도착한 이후 지속적인 북진으로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마지막으로 도착한 서울 북서쪽 골짜기에 도착하고 나서는 이렇다 할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해피 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해피 밸리’라는 평화로운 이름답지 않게 이곳은 당시 전투 작전에 있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요충지였습니다. 국군은 중공군의 개입 이후 후방으로 후퇴하고 있었으며, 영연방 UN군은 서울로 진입하는 경로 상에 있는 마지막 부대였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뚫린다면 피난 중인 서울 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해피 밸리의 평화도 잠시였습니다. 중공군은 백기를 들고 위장 항복하는 척하다 급습하는 기만전술로 영국군을 후퇴시킵니다. 이어 대규모의 병력을 앞세워 영국군과 남쪽 미국 부대를 공격합니다. 하지만 얼스터 대대는 박격포와 기관총을 응사하며 진지를 사수하는데 성공합니다.

 

영연방 UN군이 중공군을 상대하며 선전하는 동안 서울의 미8군은 서울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결정합니다.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미군의 사단들은 일제히 후퇴하기 시작했고 영국군의 우측 퓨질리에 대대도 신속히 철수합니다. 하지만 얼스터 대대는 부대 철수 명령을 이들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전달받게 됩니다.

 

가뜩이나 사단, 군단급 군수체계에 비해 상당히 고전적인 방식의 병참체계를 유지하고 있던 얼스터 대대에게 늦은 철수 명령 전달은 그들의 후퇴를 지연시킨 요인으로 작용되었습니다. 거기에 모든 전투물자들을 남김없이 챙기는 관습도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부대 철수가 지연된 얼스터 대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건 좁은 철수로였습니다.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난 소로를 따라 후퇴하던 얼스터 대대의 유일한 희망은 어둠뿐이었는데요. 시간은 많이 걸리긴 하나, 어둠을 틈타 신속하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전차부대의 부대 엄호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전차의 엔진소리, 궤도소리로 인해 후퇴 사실이 들통날 수도 있기 때문에 취소되었습니다.

 

▲ 해피 밸리의 전경
(출처: 육군 공식블로그 동고동락)

 

야심한 시각 몰래 이뤄진 철수 작전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미 공군의 C-47 조명탄이 터지기 전 까지는 말이죠. 조명탄 탓에 얼어붙은 계곡 일대가 환하게 밝혀져 중공군이 얼스터 대대의 철수가 발각되어 버립니다.

 

▲ 해피 밸리에서 참호를 파고 있는 얼스터 대대원
(출처: 육군 공식블로그 동고동락)

 

▲ 고지전을 감행하고 있는 중공군
(출처:전쟁기념관)

 
언덕 위에서 대기하던 중공군은 얼스터 대대의 철수를 막기 위해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얼스터 대대의 측면이 일시에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주하는 얼스터 대대의 뒤를 쫓은 중공군은 서쪽과 남쪽으로 2Km 일대를 불지옥으로 만들어버렸는데요. 이 과정에서 쿠퍼 대대장도 전사하였습니다.

 

피해는 보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쿠퍼 대위의 크롬웰 전차 역시 중공군의 공격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좁은 소로 탓에 전차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중공군의 궤도용 폭탄과 방망이 수류탄에 하나 둘씩 폭파됐습니다. 결국 총 14대의 전차 중 단 1대도 복귀하지 못하였습니다.

 

▲ 해피 밸리 전투 지역에서 유기된 크롬웰 전차
(출처: 육군 공식블로그 동고동락)

 

한편, 퇴각한 얼스터 대대는 메네미 고개 입구에 들어서면서 중공군의 추가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얼스터 대대는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격하는 중공군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좁은 고갯길에 갇힌 얼스터 대대는 쏟아지는 총탄에 낙엽 지듯 쓰러져 갔습니다. 얼스터 대대 장병들은 모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다고 합니다. 전사한 대대원들의 시신 주변으로 탄피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평화롭고 행복한 이름 뒤에 숨겨진 안타까운 사연, ‘해피 밸리 전투’. 안타깝게도 이 전투는, 전사한 이들이 목숨 바쳐 싸웠던 우리나라와 영국, 미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이름에 얽힌 비극적인 전투의 내막과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적에 맞서 싸운 영연방 UN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4월 23일 일요일에 재방한한 영연방 UN 참전용사들의 출국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오늘 하루,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하여 우리나라를 지켜준 이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출처 및 참고: 국방부 블로그 ‘동고동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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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영규

    2017.04.27 1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 타국에와서 자유수호를위해 목숨바친 님들의 영혼을위해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치열했던 가평 전투 그리고 영연방 UN군의 활약


▲가평 영연방 참전기념비(출처:전쟁기념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후, 당시 가평은 중공군과 영연방 유엔군 제27여단 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격전지였습니다. 특히 1951년 4월 23일부터 25일 사흘 동안 영연방 군과 중공군 간 벌어졌던 대치전은 아주 유명합니다. 중공군이 총 공세를 펼치자 국군 제6사단은 후방으로 철수를 결정하였고, 영연방 군은 철수하는 국군을 돕기 위해 가평 일대로 진출했습니다. 영연방 제27여단은 국군이 무사히 전장을 이탈할 수 있도록 가평천 일대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영연방 군보다 무려 5배나 많은 중공군을 필사적으로 막아냈습니다.


#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친 UN 영연방

한편, 가평 전투와 비슷한 시기(4월 22일~4월 25일)에 파주 적성 일대에서도 영국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대치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설마리 전투, 글로스터 고지전투, 임진강 전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이 전투 역시 영연방 국가의 활약이 컸던 전투입니다. 중공군 3만여 명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영국군 29여단(5,700여명)이 사생결단으로 전투를 벌였고 그 결과 영국군 병력의 3분의 1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습니다. 마지막까지 전투를 치렀던 29여단 글로스터 대대는 750명의 병력 중 622명이 전사(포로)하거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 지금의 평화는 그들의 투혼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

서울과 춘천도로의 차단을 기도했던 중공군은 영연방 유엔군의 거센 저항에 가로막혀 추가 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연방 유엔군의 활약은 중공군의 북한강 도하를 저지하고 국군과 유엔군이 후방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했습니다.


# 그들을 위한 작은 보답, 유엔참전용사 방한 행사

이렇듯 6·25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영연방(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국가보훈처는 2010년 6·25전쟁 60주년 사업을 계기로,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1975년 민간단체의 주관으로 시작되었는데요. 지난해까지 3만1천여 명의 유엔참전용사와 가족이 우리나라를 다녀갔습니다. 


 

▲ 제66주년 가평전투 기념식 행사


올해 가평전투 66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는 지난 4월 23일부터 28일까지 5박 6일동안 가평전투에 참가했던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참전 용사와 가족 등 80여 명을 초청하여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를 갖습니다. 그 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대한민국을 알린다는 취지의 이번 행사에는 영국 국방부 국무차관(Earl Howe)이 참전용사들과 함께 방한하여 가평전투 66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예정입니다.



▲ 제66주년 가평전투 기념식


4월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승 OP : 최전방 관측소


지난 일요일 입국한 유엔참전용사들은 오늘 24일, 영연방대사관에서 주관하는 가평전투 기념식에 참석하여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전우들을 추모하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내일 25일은 안작데이(ANZAC DAY)인데요. 이 날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공휴일로, 1915년 4월 25일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을 기리는 기념일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충일과 비슷한 날로, 현재는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6·25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을 기리는 날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번에 재방한한 유엔참전용사들은 이 안작데이(ANZAC DAY) 추모식에 참석하고, 이후 서울의 전쟁기념관과 현충원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26일에 유엔참전용사들은 부산을 방문하여 유엔기념공원추모식과 유엔평화기념관을 방문하게 되는데요. 이 유엔평화기념관에서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데이비드 더글라스 던컨의 6·25전쟁 사진 30점의 기증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기증을 통해, 우리는 아픈 역사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7일에 유엔참전용사들은 영국대사관이 주관하는 글로스터 대대의 파주 설마리·임진강전투 추모식에 참석하게 됩니다. 이후 경기 연천군에 위치한 상승OP(최전방 관측소)에 방문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국가보훈처에서 마련한 감사만찬을 끝으로 이번에 재방한한 유엔참전용사들은 28일, 출국하게 됩니다.


이번 영연방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는 젊은 나이에 낯선 타국으로 건너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키고자 6·25전쟁에 참전했던 용감한 이들을 기억하고 그 은혜에 보답함과 동시에, 전쟁에서 가족과 동료를 잃었던 참전용사들을 위로해 줄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유엔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용기를 되새겨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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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재식

    2017.04.29 0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희생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리며 항상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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