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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독립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41건

  1. 2009.02.13 민족말살정책의 강화3
  2. 2009.02.13 1930년대 이후의 독립운동1

③ 경제수탈의 강화:

일제는 1931년 만주침략 이후부터는 그들의 대륙침략정책에 발맞추어 한국을 병참기지화한다면서 일본의 독점자본을 동원하여 북한일대에 군수공장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광산자원 약탈을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금·철·석탄·중석·마그네사이트·아연·망간·니켈 등을 대대적으로 채굴, 약탈하였다. 미곡수탈도 이 시기에 급속히 강화되어 1933년부터는 미곡 총생산량 중에서 일본으로 실어간 약탈량의 비율이 50%를 초과하기 시작하였다.

 

1933년의 미곡생산량은 1819만석이었는데 일본으로 약탈해간 미곡은 943만석으로 그 비율은 51.8%에 달하였으며, 이 이후는 항상 총생산량에 대한 약탈량의 비율이 50%를 초과하여 점점 증가하였다. 식량약탈의 이러한 증가는 미곡이 남아서 약탈해간 것이 아니라 1933년부터 〈미곡통제법〉과 〈미곡자치관리법〉 등을 실시하여 미곡은 일본으로 실어가고, 만주로부터 잡곡을 한국에 수입하여 한국인은 잡곡을 먹도록 하는 정책에 따라 나타난 것이었다.

 

1930년대부터는 미곡 이외에도 면화와 누에고치의 약탈이 격증되었고, 한국인에 대한 조세수탈도 격증되었다. 그 예의 하나가 1934년부터 개정 실시한 일반소득세제도의 수탈이다. 이 제도에 의하여 1934년의 소득세 수탈은 그 전해인 1933년에 비하여 무려 3.5배나 증가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러한 조세수탈만으로는 전비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자, 1939년부터 〈총동원물자사용수용령〉을 공포하여 백주에 공공연히 물자를 약탈하는 공출제(供出制)를 시행하였다. 이 공출제는 처음에는 양곡부터 시작하더니, 1940년대에는 모든 일반 물자에 확대하여 송진기름·아주까리기름, 심지어 놋그릇·숟가락까지 백주에 강탈해갔다. 한국인은 일제의 이러한 약탈정책하에서 광복의 날을 기약하며 초근목피로 연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K&i=301568&v=42#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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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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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30년대 이후의 독립운동

 

① 국내의 민족운동:

 

일제의 한국민족말살정책과 식민지 수탈정책을 비롯한 온갖 탄압이 1930년대 이후에 더욱 강화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이 이 시기에 줄기차게 발전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국내에서는 1931년 5월 신간회가 해체된 아픔을 겪은 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급속한 강행 속에서도 1931년에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학회로 발전하여 민족어와 민족문자를 보존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그 결실로 ≪한글맞춤법통일안≫·≪표준말모음≫ 등이 나왔다. ≪우리말본≫·≪한글철자법일람표≫·≪우리말사전≫ 등도 이때 나왔다.

 

문학·예술분야에서도 민족적 작품들이 나와서 국민들에게 애독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한국어 잡지들도 정간과 폐간을 되풀이 당하면서도 민족과 민족문화의 보존 발전을 위하여 문화투쟁을 전개하였다.≪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 등 언론기관과 잡지들은 신채호 등의 민족주의사학을 국민들에게 교육하여 일제의 식민주의사관에 대항해서 투쟁하였다.

 

민족언론기관과 청년학생들은 한글보급과 함께 민중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민중 속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1931년부터 브나로드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경성제국대학 학생들의 반제동맹(反帝同盟)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단체들이 조직되어 완강하게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 1937년까지는 소작쟁의와 노동운동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 시기의 소작쟁의와 농민운동은 물론이요 노동쟁의와 노동운동은 비단 농민·노동자층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1차로 일제의 식민지수탈의 강화에 대항하고 투쟁하여 민족운동으로 전개된 것이었다.

 

1940년대에 들어와서 일제의 폭압이 극악하여 표면상 모든 민족운동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던 시기에도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하여 무수한 지하 서클들이 조직되어 완강하게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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