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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어느덧 2월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3월의 첫날, 3월 1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오는 3월 1일(목)은 1919년 3월 1일, 일제의 무단통치에 맞서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9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 3.1독립만세운동 중 덕수궁 앞의 만세시위 모습(출처: 독립기념관)

 

1910년, 일제는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한 이후 우리 민족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며 무력으로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부터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를 ‘무단통치 시기’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물증이나 정식 재판 과정 없이도 신체적 처벌이 가능했고, 반일 활동을 탄압하는 헌병경찰제도로 인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학살당했습니다.


일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전반적인 분야를 억압했고, 우리 민족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이는 3.1운동의 계기가 되었죠.



▲ 1919년 3월 1일 서울 광화문 기념비 앞에 모인 군중들의 모습(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1919년 초, 제1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국제 질서를 정립하기 위해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이 회의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윌슨은 ‘한 민족이 그들 국가의 독립 문제를 스스로 결정짓게 하자는 원칙’의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러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이나,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일부 약소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을 열망하는 약소 민족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를 토대로 3.1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게 된 것이죠.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김규식과 한국대표단

 

3.1운동은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으며,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신분, 계급, 남녀노소 등의 구분 없이 모두가 하나 되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게 됩니다. 


3.1독립만세운동은 점점 체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이를 진압하려는 일제의 총과 칼 앞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폭력을 비폭력으로 맞섰고 무력을 평화의 소리로 대했습니다.

또한, 3.1운동을 계기로 우리 민족을 조직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같은 해 4월 13일,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농민운동과 항일의병투쟁 등이 활성화되는 밑바탕이 되었고, 일제의 식민 통치에 굴복하지 않은 비폭력 대규모 민족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오는 3월 1일(목) 오전 10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제99주년 3.1절 기념식>이 거행되지요. 

특히 올해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한 해 앞둔 해인만큼, 이번 3.1절은 많은 분들께 더욱 특별한 기념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저, 훈터지기가 제99주년 3.1절을 맞이하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의 현장, 서대문형무소를 소개합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1930년대 서대문형무소 전경(위) (출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930년대 서대문형무소 모형(아래)

 

#1. 서대문형무소는?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통하여 한국의 독립이 선언되었습니다. 일제는 전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을 탄압하였고, 독립운동가들의 수감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이에 일제는 1908년 ‘경성감옥’을 개소하였고, 1923년 5월 3,000여 명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감옥을 신축하며 명칭 또한 ‘서대문형무소’로 변경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을 폭력적으로 지배한 통치기관인 조선총독부의 직속으로 편제된 서대문형무소는 1930년대를 기준으로 전국 30여 개 감옥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수감된 감옥이었습니다.



▲ 역사관을 가리키는 표지판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독립문역(3호선)의 모습

 

#2. 방문 계획을 세워보자!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운영 시간은 동절기인 11월~ 2월 중에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하절기인 3월 1일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매주 월요일 및 매년 1월 1일, 설·추석 당일에는 휴관한다는 점을 방문하시기 전 꼭 참고하세요!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시관(좌), 일제강점기 망루 의자(우)(서대문형무소역사관 소장)

 

#3. 전시관, ‘역사를 보다’


본격적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둘러볼까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역사전시관을 관람해보실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서대문형무소 및 전국 형무소의 역사와 일제의 탄압을 견디어 내었던 독립운동가분들의 삶을 생생하게 알아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 수형기록표를 전시한 민족저항실

­ 

민족저항실Ⅱ

민족저항실에서는 애국지사들의 수형기록표를 볼 수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던 애국지사들의 수형기록표는 현재 남아 있는 것만 5천여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분들부터 아직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분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벽을 가득 채운 독립운동가들의 결의에 찬 얼굴을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 재현된 손톱찌르기 고문 및 상자 고문 기구

­ 

지하고문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분들이 일제로부터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하고문실에서는 당시의 고문시설 및 기구 등이 일부 재현되어 있습니다. 



▲ 옥사의 복도와 독방의 모습

 

#4. 옥사, ‘독립운동가의 마음을 느끼다’


­중앙사 및 옥사

중앙사에서는 형무소를 운영한 조직 기구가 소개되어 있으며, 감시 도구에서부터 재소자들의 전반적인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1~12옥사는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이 실제 수감되었던 곳으로, 비인간적이었던 형무소의 상황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감옥 안에 직접 들어가 내·외부 구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5. 야외 공간, ‘일제강점기의 공기를 느끼다’



▲ 격벽장
 

격벽장

수감자들에게 운동을 시키되 서로 대화하는 것을 방지하도록 설계된 서대문형무소의 운동 시설입니다.



▲ 여옥사 내부 전시공간 모습


여옥사

여옥사(女獄舍)는 일제가 여성 애국지사들을 따로 가두기 위해 설치한 곳으로, 유관순 열사가 순국하여 복원 당시에는 ‘유관순굴’이라고도 불렸습니다.



▲ 사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사형장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한 전국에 투옥되었던 애국지사들이 순국하신 장소입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우리나라의 슬프지만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과거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금 우리는 독립된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3.1절을 계기로, 일제강점기 탄압의 역사를 체험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심을 마음 깊이 느껴볼 수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 참고 자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http://www.sscmc.or.kr/newhistory/index_culture.asp)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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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26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8.03.02 0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18.03.03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2월 21일 오늘, 국채보상운동이 111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빚은 우리 손으로’를 외치며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 일제에 진 빚을 국민들의 손으로 갚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

 

1904년, 일제는 우리나라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게 하였습니다.

통감부는 이 차관을 우리나라 국민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해 경찰 기구를 확장하는 등에 사용했고, 1907년, 한국 정부가 짊어진 외채는 총 1,300만 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1년 예산에 버금가는 금액이었고, 현재의 물가로 약 3,3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로서는 이러한 거액의 외채 상환은 불가능했고, 경제는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 차관 : 한 나라의 정부나 기업, 은행 따위가 외국 정부나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옴. 또는 그 자금.

 


▲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 김광제, 양기탁 선생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이에 190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를 상환하여 국권을 회복하자는 주권 수호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입니다. 

 

서상돈, 김광제 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곧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 의연금 : 자선이나 공익을 위해 모으는 기부금

 


▲ 대한매일신보 1907년 2월 21일자 국채보상운동 취지 보도 기사.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천만 동포가 3개월만 금연하여

한 사람마다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 원이나 됩니다. (중략)

국민들이 이를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여 잠시만 결심하면

쉽게 실행될 수 있는 일입니다.”


-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문 중

 

대한매일신보에 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2천만 동포가 금연을 통해 모은 돈으로 국채를 보상하자는 취지문이 발표되자,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종교를 뛰어 넘어 일본, 미국, 러시아의 동포들까지 참여한 모금운동으로 확대되었습니다.

 


▲ 대구 군민대회 개최지인 북후정 (출처 : 독립기념관)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은 서상돈, 김광제 선생이 국채보상운동을 결의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습니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2월 21일 ‘국채일천삼백만원보상취지’를 게재하는 등 운동을 적극적으로 알렸고, 국외의 모금운동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 대한매일신보의 편집부 및 대한매일신보.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그러나 1907년 말부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제는 발행인인 베델 선생의 추방 공작을 전개하였고, 1908년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총무인 양기탁 선생에게 국채보상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씌워 구속하는 등 지속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을 방해했습니다.

일제의 방해 공작과 탄압이 가속되자 국채보상운동은 결국 3개월이라는 단기간 동안 전개되고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 영국인 베델 선생 (출처 : 독립기념관 블로그)


비록 일제의 방해로 막을 내렸지만, 국채보상운동은 우리 민족 자주독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역사적인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111주년을 맞은 2월 21일 오전 11시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에서 <제111주년 국채보상운동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번 기념식에는 대구광역시장, 대구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와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여 민족 최대의 경제 자립운동이었던 국채보상운동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 대구시에 위치한 국채보상운동 기념비. (출처 :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일제로부터 국권을 회복하고 경제적 독립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이 힘을 하나로 모았던 국채보상운동의 의미를 함께 기억해 주세요!

 

 

* 참고사이트

국채보상운동기념관 http://www.gukchae.com/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7555&cid=40942&categoryId=31778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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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오늘은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좌우익 합작 민족운동단체 ‘신간회’가 창립된 지 9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치와 이념을 초월하여 민족운동을 펼쳤던 신간회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 신간회 신의주지부 창립 1주년 기념촬영. (출처: 신간회기념사업회)

 

#1. 신간회, 민족 단결을 목표로 결성되다

 

신간회는 1927년 2월 15일 안재홍, 이상재, 신채호, 신석우, 백관수, 유억겸, 권동진 등 당시 좌우익 인사 34명이 '민족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로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입니다. 

당시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던 독립운동계에서 민족적 단결을 목표로 이념을 초월하여 힘을 하나로 모았던 것입니다.

 

▲ 호외로 발행된 신간회 기사. (출처: 독립기념관)

 

신간회가 창립되고 초대 회장으로는 이상재 선생이 추대되었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평생을 민족운동에 헌신한 인물입니다. 

선생은 당시 이미 고령의 나이로 병석에 누워 있었으나, 사회운동가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회장직을 역임했습니다. 

 

신간회의 부회장으로는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대한협회의 부회장 등을 역임한 권동진 선생이 추대되었습니다.

 

▲ 이상재 선생(왼쪽), 권동진 선생(오른쪽) (출처: 독립기념관)

 

#2. 민중을 위해 활동하다

 

신간회는 민족적·정치적·경제적 예속의 탈피를 주장하고,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청소년·여성의 형평운동을 지원했고, 파벌주의 타파·동양척식회사 반대·근검절약운동을 전개하며 전국에 지회를 조직했습니다. 

 

1930년경에는 전국에 140여 개의 지회를 설립하고 3만 9천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으며, 활동 범위를 넓혀 일본에 지회를 조직하기도 하는 등 민중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신간회 강령>

첫째, 우리는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진한다.

둘째,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

셋째,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배격한다.

 

#3. 광주항일학생운동의 진상규명을 추진하다

 

이렇게 세력을 확장해가던 신간회는 1929년 11월 3일, 광주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고 일제에 학생운동 탄압에 대해 엄중 항의했습니다. 또한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비타협 민족운동을 지향한 민중대회를 계획했습니다. 

 

* 광주학생항일운동 : 1929년 10월 광주에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을 일본인 학생이 희롱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에 대한 일본 경찰의 차별 조치에 대해 조선인 학생들이 항의하며 전국적으로 전개된 학생항일운동. 

 

▲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주역인 이광춘 박기옥 / 1930년대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출처: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신간회의 간부인 조병옥, 이관용, 이원혁 등 주요인사 44명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뿌리가 흔들리게 된 신간회는 결국 1931년 5월 해산되었습니다.

 

#4. 신간회, 창립 91주년을 맞다

 

신간회는 일제강점기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정치·이념을 초월한 좌우익 합작 민족협동전선의 최고기관으로 일제강점기뿐만이 아닌 오늘날까지 그 의의가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사)신간회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신간회 창립 91주년 기념식'이 어제 오전 11시 서울 YMCA회관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이 날 기념식은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하여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광복회원, 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간회 강령 및 약사 낭독, 기념사, 청소년 대표의 선열께 드리는 감사편지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신간회 창립일인 오늘, 시대적 위기와 고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정치와 이념을 초월하여 힘을 모았던 선열들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요?

 

 

[참고문헌]

-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5119&cid=40942&categoryId=35591)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제1권 한국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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