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4,874,589
  • Today | 2,167
  • Yesterday | 3,943


▲ 1943년 육사의 마지막 사진 (출처: 이육사 문학관)


죄수번호 264. 이는 우리가 ‘이육사 시인’으로 알고 있는 이원록 선생의 호입니다. 이원록 선생은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23년에 일본으로 가 1년 정도 동경에 있는 대학을 다녔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국내로 들어와 일제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는 활동을 했던 윤세주의 의열 투쟁에 큰 감화를 받은 선생은 형 이원기, 동생 이원유와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습니다. 이후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이 일어나자 일경은 과거에 의심이 있던 사람들을 모두 수색하여 검거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선생이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 송치되었고, 이때 미결수 번호가 264번이었습니다. 선생은 이때의 수감번호를 따서 호를 ‘육사(陸史)’로 지었습니다.


▲ 윤세주 의사 (출처: 밀양시 공식 블로그)


이후 이육사 선생은 남경에 있는 한국혁명간부학교에 입학하여 이 학교 제1기생 정치조에 소속되어 비밀통신, 선전방법, 폭동공작, 폭파방법 등 게릴라 훈련을 받고 1933년 4월 23일 수료한 후 상해, 안동, 신의주를 거쳐 귀국해 차기 교육대상자를 모집하고 국내 민족의식을 환기시켰으며, 국내정세조사 등의 비밀임무를 띠고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 1930년대 후반 육사 (출처: 이육사문학관)


하지만 이 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된 이육사 선생은 앞으로의 진로를 걱정하며 갈등하게 되는데요. 그는 의열단으로의 삶을 살 것인지, 광복을 위한 투쟁에서 이탈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선생은 결국 시와 글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일깨우겠다는 신념으로 문학을 통한 새로운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때 작성했던 시 한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제목은 <청포도>, 이육사 선생이 1939년 8월호 <문장>에 발표했던 시로 <광야>, <절정>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생가터의 [청포도] 시비 (출처: 이육사문학관)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나라를 잃은 상태에서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고, 타지에서 고국을 그리며 밝은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낸 시입니다. 이육사 시인은 청포도라는 대상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앞으로 찾아올 광복(내가 바라는 손님)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이육사 선생의 또다른 대표작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절정>이라는 시인데요. 1940년 1월호 <문장>지에 발표되었습니다. 시인의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담긴 대표적인 저항시라는 평을 받는 시입니다.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난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폐병으로 고생하는 순간에도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북경으로 넘어갔던 이육사 선생은 1943년 4월 귀국하였습니다. 그는 같은 해 6월, 일경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었고 북경의 감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파란만장한 이육사 선생의 인생은 참으로 짧았습니다. 그가 순국한 다음해인 1945년에 조국은 독립을 맞았고 1946년 10월 20일, 신석초를 비롯한 문학계 동문들에 의해 유고가 정리되어 그의 <육사시집>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됩니다. 


▲ 이육사 선생의 묘소 (출처: 이육사문학관)


이육사 선생을 시인으로만 알고 있었던 분이 많을 텐데요. 원래 이육사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의열 투쟁을 전개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선생은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무려 17번의 옥고를 치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투쟁에 앞장서다가 조선어말살정책을 펼치던 일제의 암흑기 속에서 시를 쓰며 일제에 저항하고 민족의식을 깨웠던 것입니다. 그러한 선생의 정신은 시에 고스란히 남아, 지금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육사 시인의 시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독립의 의지를 결코 굽히지 않았던 이육사 선생의 올곧은 정신은 분명, 우리에게 깊은 의미를 전달해 줄 것입니다.


참고문헌: 

이육사문학관 www.264.or.kr

네이버 지식백과/국가보훈처 홈페이지 각색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녕하세요. 훈터여러분! 4월 13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인데요. 올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8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기 위한 정부기념식이 서울 용산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현장을 찾아가보았는데요. 그 근처에 효창공원이 있어, 잠시 들러보았습니다.


▲백범김구기념관 인근에 위치한 효창공원


봄의 경치를 만끽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백범김구기념관에 도착하게 되었는데요. 기념식이 열리는 컨벤션센터는 기념식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찾아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기념식이 진행된 컨벤션센터의 전경


그리고 시작된 ‘제98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 먼저 식전공연이 진행되었는데요. ‘압록강 행진곡’, ‘독립군가’.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을 수 있겠소’ 등을 부르며 진행된 식전공연을 감상하며, 뭉클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기념식에 앞서 임시정부 요인들의 거룩한 뜻을 느낄 수 있었던 식전공연


식전공연이 마무리되고 황교안 국무총리 권한대행이 식장으로 입장하며 본격적으로 기념식이 시작되었는데요. 국기에 대한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의 순서로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모든 분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후 박유철 광복회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약사보고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와 의의를 소개하였습니다. 이어 황교안 국무총리 권한대행의 기념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약사보고 중인 박유철 광복회장


▲기념사 중인 황교안 국무총리 권한대행


그 후 기념공연이 진행되었는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각색한 공연을 보며 좀더 쉽게 임시정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뮤지컬이 끝나고 기념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축하가’를 함께 부르며 기념식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임시정부를 주제로 진행된 뮤지컬공연


올해로 98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과거 임시정부 요인들은, 화사한 봄날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빼앗긴 조국에 다시금 봄이 찾아오는 꿈을 꾸지 않았을까요? 우리를 이토록 평화로운 조국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선열들의 희생과 노력을 반드시 기억해주세요. 


▲백범김구기념관 주위로 봄꽃이 만개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세히 알기 [기획기사1] [기획기사2]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녕하세요. 훈터여러분! 오늘은 독립군 양성의 요람 ‘신흥무관학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11년 6월 10일 이회영·이시영·이동녕·이상룡 등이 중국 지린성 류허현 삼원보에 설립한 신흥강습소에서 출발한 신흥무관학교는 항일독립운동 기지의 건설을 위해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독립군 양성 학교입니다. 


▲ 백두산 쏘배차의 백서농장에서 농사일을 하며 군사훈련을 받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 한국광복군 창설에 많은 기여를 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

1940년 9월 광복군사령부 앞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함을 품은 1912년 봄, 이회영 등은 통화현 합니하에 정착지를 확보해 이주하면서 일제강점기라는 추운 겨울을 벗어나 독립이라는 따스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는데요. 그곳에 교사 8동을 신축하여 학교를 정식 설립하였고, 1913년 5월에는 신흥 중학교로 학교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신흥중학교는 중학반과 군사반 중 군사반에 전력했죠. 그 후 신흥학교의 교관과 졸업생은 1914년 백두산 서쪽 기슭에 백서농장을 만들고 군영을 세워,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군사훈련을 진행했습니다.

 

▲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 장주 김동삼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이후 신흥학교는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요. 일본군 출신의 지청천, 김경천 등이 망명하는 등 수많은 청년이 신흥학교에 참여하게 됩니다. 기존 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신흥학교는 1919년 5월 류허현 고산자로 본부를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흥무관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요. 고산자에는 2년제 고등군사반을 설치하여 고급간부를 육성하고, 합이하와 쾌대무자에눈 분교를 설치하여 3개월/6개월 과정의 초등군사반을 설치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군사훈련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 신흥무관학교 교관,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1920년까지 신흥무관학교는 약 2,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요. 그들은 홍범도의 대한의용군과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등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일본군에게 용맹함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1920년 5월부터 시작된 일제와 중국 군경의 서간도 일대 독립운동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학교 운영에 적신호가 켜집니다. 결국, 1920년 7월 신흥무관학교는 폐교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청천 등은 300여 명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과 생도들로 교성대를 구성해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에 참가해 그해 10월 청산리대첩에서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 의열단 단장, 광복군 부사령관 김원봉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 신흥무관학교 교관, 청산리대첩 지휘관 이범석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신흥무관학교 교관, 고려혁명군 장군 김경천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청산리전쟁 지휘관 김훈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항일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신흥무관학교. 그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뿐만 아니라 만주와 노령 및 중국 관내의 조선혁명군, 한국독립군, 고려혁명군, 한국광복군 등에서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했죠. 흥무관학교를 독립운동의 요람, 희망의 등불로 믿고 찾아온 청년들은 우리군의 강인한 전사들로 탈바꿈되었으며 신흥무관학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졸업 후에는 더욱 높은 이론과 실력으로 무장하여 항일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해방 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유지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임정요인들이 8·15 광복을 맞아 귀국을 앞두고 

중경 연화지 임정청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45. 9. 17 중경 연화지청사 앞에서]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 1920년 10월 청산리전쟁 승전 후 기념사진

(출처: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일제치하 무장독립운동의 초석을 다진 신흥무관학교. 몇 장 안 되는 사진, 그마저도 빛이 바랜 지 오래지만 사진 속 인물들의 눈빛에서 조국 독립을 향한 올곧은 기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도,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 [네이버 지식백과] 신흥무관학교 [新興武官學校] (두산백과) 참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9367&cid=40942&categoryId=40012


- [네이버 지식백과] 신흥무관학교 [新興武官學校] (두산백과) 참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9367&cid=40942&categoryId=40012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제71회 보훈퀴즈의신
6.25전쟁 67주년 계기, 미 참전용사와 교포 참전용사 동시 방한
6.25전쟁,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
2018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추천 접수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