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401,418
  • Today | 2,393
  • Yesterday | 2,545

 

1948년 8월 15일, 새로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그 이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국토가 폐허가 되면서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국가를 재건해야 할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 반대세력에 대한 폭력 등 온갖 정치적 부정과 탄압을 일삼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60년 자행된 3·15부정선거였습니다. 


당시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이 야당인 민주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게 되자, 이에 불안해진 자유당이 1960년 3월 15일의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저지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질병을 치료하는 도중 사망하게 되면서 이승만의 대통령 재선은 거의 확실시된 상황이었으나,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은 장기 집권 체제를 연장하기 위해 자유당의 이기붕 또한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정권 교체를 희망하여 선거의 분위기는 자유당에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다급해진 자유당은 여러 사람이 공개적으로 투표하게 하고,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등 유례없는 부정선거를 자행하게 됩니다.


선거전에서 야당 선거원은 계속해서 체포되고 탄압을 당했고 반공청년단의 폭력단원들이 선거 당일 시민들이 투표권을 어떻게 행사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투표장에 나타났으며, 경찰은 공개적으로 자유당 후보를 지원하는 지경에까지 달합니다. 경찰 지휘부와 내무부는 선거 결과를 완전히 날조합니다. 이러한 대대적인 부정선거의 결과로 이승만은 총 투표수에서 당선에 필요한 3분의 1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고 이기붕은 압도적인 결과로 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후 민주당은 선거가 ‘불법적인 것이고 무효’라고 주장하였고, 이를 계기로 반정부시위가 선거 전후 전국에 걸쳐 일어납니다. 이미 민심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돌아서 있었습니다.


▲ 정치깡패 사진(출처: 4·19혁명기념도서관)


▲ 마산상고생 김주열 시신

(출처: 4·19혁명기념도서관)


전국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을 때, 3월 15일의 1차 창원(구 마산)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16세 마산상고생 김주열 군의 시신이 창원(구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됩니다.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신의 모습에 분노가 터져 나왔고, 시민들과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의 학생 4천여 명이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평화적 시위를 벌입니다. 그리고 귀가하던 중 경찰과 모의한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습격으로 수십 명의 학생들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인 4월 19일, 총 궐기하게 되었는데요.

4월 19일 화요일 오전 8시 50분, 서울역에서 중앙청 앞까지의 거리는 시위에 나선 시민들과 학생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들은 아침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하지만 시위 중 경찰은 경무대로 통하는 효자동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무차별 발포를 하였고, 사상자는 점점 늘어갔습니다. 이에 시위대와 경잘 간의 대치는 극에 달았고 서울 시내는 질서를 회복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이 시위는 서울에서만이 아니라 거의 전국에서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 부산에서는 경남공고·데레사여고·부산상고 등 고교생들의 시위가 시민들과 합세하여 격렬하게 일어났는데 경찰이 총을 쏘아 19명이 사망했습니다. 광주에서는 광주고 학생과 수천 명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8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대구·대전·전주·청주·인천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4월 19일 시위로 경찰 4명을 포함하여 115명이 사망하고, 727명(민간인 558명, 경찰 169명)이 다친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피의 화요일’의 시작이었습니다. 


또한 경무대를 향하는 시민과 학생들을 막기 위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를 향한 무차별 사격이 가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꽃다운 젊은 학생과 시민들이 수없이 희생되었고, 분노한 시민들은 항의 시위를 전개하게 됩니다. 민심은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는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4월 25일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고 그 다음날인 4월 26일,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였습니다. 


▲ 경무대로 향하는 의대생 시위대

(출처: 4·19혁명기념도서관)



▲ 서울대학교 시위대의 행진

(출처: 4·19혁명기념도서관)


경무대를 지키던 계엄군은 실탄을 장전한 상태였지만, 처음부터 엄정중립의 입장을 지켜온 군은 더 이상 국민의 희생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사태가 극에 달하자, 이승만은 ‘1.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2. 3·15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겠다. 3. 선거로 인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게 하기 위하여 이미 이기붕 의장에게 모든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였다. 4.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는 하야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단지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것만이 아닌, 부패를 저지르고 폭력을 휘두른 독재 정권에 대해 온 국민이 항거한 결과였습니다.


이승만의 하야 성명은 신생 정부의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의 기틀과 발전을 마련하고자 했던 많은 시민들의 노력이 이룬 쾌거였습니다. 4·19혁명이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승리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성숙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 4월 19일(수) 10시 서울의 국립4·19민주묘지에서, ‘4·19정신으로 이룩한 국민 주권, 우리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제57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거행됩니다. 우리 모두 4·19혁명 당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고 4·19혁명 정신을 받들어,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국립4·19민주묘지

http://419.mpva.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8779&cid=46626&categoryId=46626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5588&cid=43667&categoryId=43667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29308&cid=55653&categoryId=55653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녕하세요. 훈터여러분. 어제 3월 15일 오전 10시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제57주년 3‧15의거 기념식이 거행되었는데요. 창원 시내에 만연한 3‧15의거 기념의 열기로 꽃샘추위도 무색할 정도로 훈훈한 하루였습니다. 


▲제57주년 3‧15의거 기념식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는 3‧15아트센터


3‧15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창원은 물론 전국에서 많은 분이 모였는데요. 학생, 3·15의거 희생자 유족 및 국가유공자 분들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행사를 더욱 빛내주었습니다. 9시 30분경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국립 3‧15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모습이 기념식장에서 중계되며 그 시작을 알렸습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참배를 중계중인 기념식장


참배가 끝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기념식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사전공연을 통해 기념식장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는데요. 넓은 기념식장 내부가 3‧15의거 희생자를 추모하는 목소리로 가득 차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 사전공연으로 고조된 기념식장의 분위기


사전공연 이후 개식선언을 시작으로 기념식이 시작되었는데요.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제창,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및 3‧15의거 희생자영령에 대한 묵념 순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위한 짧지만 굵직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 국기에 대한 경례를 통해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가슴은 더 뜨거워졌다.

묵념이 끝난 후, 3·15의거 경과보고가 있었습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안승옥 회장이 이를 통해 의거의 배경 및 의의,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였는데요. 3‧15의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자세한 설명이었습니다.


▲3‧15의거 경과보고 중인 안승옥 3‧15의거기념사업회 회장


뒤이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기념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자유, 민주, 정의를 바탕으로 한 3·15정신으로 우리가 모두 화합과 통합을 통해 하나 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기념사 중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그리고 기념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공연은 나레이션과 무용으로 3‧15의거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으로’와 3‧15유공자가 꿈꿨던 자유와 번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하나 됨을 소망하는 ‘아침의 노래’ 등 2막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공연을 통해 3‧15의거를 접하게 되니, 단순히 글이나 사진으로 의거를 알았던 것보다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 기념공연 1막 ‘집으로’(左) 와 2막 아침의 노래(右)


마지막으로 모두 3‧15의거의 노래를 제창하며 기념식은 마무리되었는데요. 기념식을 통해 3‧15의거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 분들 덕분에, 그들이 꿈꾸던 자유롭고 건강한 나라에 살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에 맞서 자유, 민주, 정의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고, 이는 그 후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되었는데요. 이러한 그들의 정신을 더욱 소중히 하고, 발전시켜 나가야겠습니다. 


▲3‧15의거의 노래 제창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역사가좋다

    2017.03.17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미있는 자리였네요~!


안녕하세요. 훈터 여러분. 3월은 3‧1절, 서해수호의 날 등 우리나라의 독립과 국가수호에 관련된 의미 있는 행사가 많은 달인데요. 오늘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불씨가 된 3‧15의거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3‧15의거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1960년 3월 15일, 창원(구 마산)에서 발생했습니다. 그 날은 정·부통령 선거일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민주당의 조병옥 후보가 질병을 치료하는 도중 사망하게 되는데요. 그로 인해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되면서, 대통령 당선이 사실상 확정됩니다.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은 장기 집권 체제를 연장하기 위해 자유당의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하였는데요. 하지만 이승만의 대통령 연임으로 인해 국민들이 정권 교체를 염원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거의 분위기가 자유당에 불리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이승만 정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유례없는 부정 선거를 준비하게 되는데요. 여러 명이서 공개적으로 투표하게 하고, 투표함 바꿔치기 등이 대표적인 수법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민주당은 부정선거 현장을 적발한 정남규 의원을 중심으로 시위를 준비하게 됩니다.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인한 것과 다름없는 이 사건에 창원(구 마산)시 전체가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요. 3월 15일, 약 천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오후 7시 30분경 민주당 창원(구 마산)시 당사 앞에 집결합니다.


그리고 시작된 시위. 시민들은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부정선거를 비판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했는데요. “협잡선거 물리치라”라는 구호를 앞세운 부정선거 반대 시위가 밀물처럼 크게 퍼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개입한 경찰은 시민과 학생들에게 발포하는 등 무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3‧15의거 당시 창원(구 마산) 학생들 (출처: 3‧15의거 기념사업회)


그런데, 이 시위에 참가했던 김주열 학생이 행방불명되는데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던 김주열 학생은 4월 11일, 창원(구 마산) 중앙부두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의 모습으로 발견됩니다. 이는 후에 당시 경찰의 소행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불과 17세의 나이에 참혹한 시신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 김주열 학생의 모습에 시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고, 3일간의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시민들의 분노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마침내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는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창원(구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된 김주열 열사의 시체

(출처 : 3·15의거 기념사업회)


3·15 의거는 창원(구 마산) 시민과 학생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자유·민주·정의가 기본 정신인 3·15의거는 현대사에서 최초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올해는 3‧15의거가 발생한지 57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창원(구 마산)에서부터 시작된 민주화의 바람이 전국으로 퍼졌기 때문에, 우리는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3월 15일(수), 경남 창원의 3‧15아트센터에서, '3·15 정신으로 이룩한 국민 주권, 우리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제57주년 3‧15의거 기념식이 거행됩니다. 기념식에 참석하여 창원(구 마산)에서 시작된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3‧15의거 희생자를 추모하는 모습(출처: 국가보훈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웹툰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_ 강우규 의사
12월의 독립운동가 - 김치보 선생
12월의 전쟁영웅 - 감봉룡 경찰 경감
[제10기 훈남훈녀 기자단 팀미션 - 2조] 11월 11일, 유엔참전용사를 기억합시다
국가보훈처 동영상
문재인 대통령과 식사하고 올림픽도 직접 보고! 아이디어 올림픽에 지금 도전하세요!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