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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주년 ‘4.19혁명’이 기념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4월 19일 오전 10시 국립4·19민주묘지(서울시 강북구)에서 거행되는 ‘제58주년 4.19혁명 기념식’에는 4·19혁명 민주유공자와 유족, 시민 등 이천오백여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의 역사’, 4.19혁명에 대해 함께 알아볼까요?


4·19혁명이란?


1960년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의 불법적인 장기집권에 저항했던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뜻합니다. 


▲ 3.15선거 후보 포스터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1960년 3월 15일, 대한민국의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이승만(당시 3선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 부정 선거 실시 등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해왔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력한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사망함으로 인해 이승만의 재선이 확실시 되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유당의 이기붕 부통령 후보 또한 당선을 시키고자 학생들이 야당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요일 강제 등교 조치’를 실시했고, 3.15선거 당일에는 ‘공개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였습니다. 


3.15부정선거의 결과로 이승만, 이기붕이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민주적인 결과에 대해 시민들은 저항을 시작하게 됩니다.


▲ 부정선거 규탄 마산 시위 모습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4·19혁명,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국민들은 이미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대구 지역의 야당 후보 유세 참가를 막기 위해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가해진 ‘강제 등교 조치’ 등에 반발하며 학생들이 ’2.28민주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선거 당일부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3.15의거’가 전개되었습니다. 시민들은 “협잡선거 물리치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의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당국과 경찰은 발포를 하며 폭력적으로 시민들을 진압했습니다.


그러던 중,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마산 3.15의거에 참가했다 실종되었던 16세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채로 4월 11일에 발견된 것입니다.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모습에 시민들의 분노와 슬픔은 극에 달했고, 전국적인 3.15부정선거 규탄시위, 즉 ‘4.19혁명’이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4·19혁명의 전개 과정은?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 약 4천여 명이 국회의사당 앞까지 행진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정치깡패’에 습격을 당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 ‘자유 정의 진리 드높이자’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시위 (출처: 고려대학교 4.18의거 실록)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4월 19일, 전국적으로 10만 명 규모의 이승만 정권 퇴진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인 경무대 앞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발포로 경찰 4명을 포함한 115명이 사망하고, 727명의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 4.19혁명 초등학생 시위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당국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4월 25일에는 대학 교수 300여명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시위에 나섰으며 수만 명의 국민들이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4·19혁명의 결과는?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마침내 하야를 발표하고 대통령 사임서를 제출하였습니다. 180여명의 사망자 및 6천여 명의 부상자를 낸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끝까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 탱크 위에서 환호하는 시민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반드시 기억해야 할 4·19혁명의 역사


오는 4월 19일(목) 오전 10시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제58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거행됩니다. “민주주의! 우리가 함께 가는 길, 국민이 함께 걷는 길”이라는 주제로 진행될 이번 기념식은 58년 전 사건을 단순히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따뜻하고 찬란한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수많은 시민들의 뜻이 모여 역사에 기록된 ‘4.19혁명’. 민주영령을 함께 추모하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4월 19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참고 자료

- 국립4.19민주묘지 http://419.mpva.go.kr/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4.19혁명' http://contents.history.go.kr

- 고려대학교 4.18의거실록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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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오늘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은 1960년대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중 하나인 ‘3.15의거’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3.15부정선거의 선거 및 개표 모습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린 3.15의거는 ‘부정선거’에 대한 전국민적인 항거였습니다. 1954년, 당시 제1당이었던 자유당은 재선에 의한 1차 중임까지만 허락되어 있었던 기존의 대통령 임기 제한을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없애는 개헌안을 통과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위한 정족수는 의석의 2/3이상인 135.333...명(136명)이었는데, 찬성표가 135표로 나오자 이른바 ‘사사오입’을 통해 임의로 정족수를 135명으로 계산하여 개헌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헌안이 통과된 이후,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불법적인 선거 방법까지 동원된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되어 3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정선거와 소득불평등, 부정부패 만연 등 이승만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꾸준히 커져갔습니다. 이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은 1960년 3월 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도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했습니다.


▲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대의 모습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3~5명이 같이 하는 단체 투표, 40% 이상의 사전 투표

위조 투표지 등 부정 선거 방법 동원…

시민들은 항거하기 시작했습니다.“

 

3.15선거에서 벌어진 공공연한 부정행위에 대해 시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월 15일 오후 3시 30분, 마산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부정선거규탄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동참했고 저녁 7시 30분쯤 개표장 근처에서 또 다시 시위가 전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은 발포를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마산중학교 3학년 김영호 학생이 최초로 희생되었으며, 총 8명이 숨지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 3.15부정선거 규탄대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또한, 4월 11에는 3월 15일 밤에 행방불명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채 마산 중앙 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되게 됩니다. 김주열군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시민들의 슬픔과 분노가 폭발하였으며, 결국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되어 끝내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3월 15일부터 42일간 이어진 3.15의거는 결국 4.19혁명으로 이어져 장기 독재 정권을 끌어내리는 업적을 이루게 되었으며, 3.15부정선거에 관련된 인사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빛나는 시작을 알린 3.15의거를 기념하고, 3.15의거 유공자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는 ‘제58주년 3.15의거 기념식’이 3월 15일(목) 오전 10시에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거행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민주의 횃불로 타오르다’라는 이번 기념식의 주제는 ‘구두닦이, 학생, 신문팔이, 철공소 직원’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큰 변화를 이끌어 내었던 3.15의거의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제58주년 3.15의거일을 맞이하여,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이루어 낸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 참고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https://goo.gl/hcg9Wi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goo.gl/9W7irn

3·15의거기념사업회 http://www.masan315.net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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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지난 2월 28일 수요일 대구에서는 1960년 대구지역 학생들이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섰던 2.28민주운동이 처음으로 정부 주관 기념식으로 거행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운동, 2.28 민주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첫 해. 문재인 대통령,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2.28민주운동 기념식 현장으로 함께 가볼까요?

 

 

 

2.28민주의거기념탑 참배

 

▲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 위치한 2.28민주의거기념탑

 

 

 

 

제58주년 2.28민주운동 기념일을 맞이하여, 가장 먼저 문재인 대통령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은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에 있는 2.28민주의거기념탑에 방문하여 참배와 헌화를 하였습니다.

 

특히, 대구 지역의 학생 대표 16명이 당시 2.28민주운동 참가자 및 주요인사와 함께 나란히 참배를 진행하며 2,.28의 정신을 기리고 과거-현재-미래를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2.28 민주운동의 주역 중 한 분인 박명철씨의 외손녀 여승윤 학생 또한 참배 및 헌화를 하였습니다.

 

 

▲ 2.28민주운동기념탑을 나서며 문재인 대통령이 여승윤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
2.28 민주운동 첫 정부 기념식 거행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 2.28 민주운동 기념식은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진행되었는데요. 기념식장은 많은 대구 시민들과 학생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또한, 기념식은 ‘뮤지컬의 도시’인 대구의 특성을 살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식순이 뮤지컬 형식으로 꾸며졌습니다.

 

 

▲ 무대 위에 올라 애국가를 제창하는 배은심님, 김소형님, 이경의님, 김길연님, 깅향선님.

 

2.28 민주운동의 큰 의의 중 하나는 바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 중 광복 이후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되새기며, 국민의례 식순 중 애국가 제창은 ‘2.28민주운동, 3.15의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을 주도했던 민주 열사의 유족이 선도하며 큰 울림을 전했습니다.

 

▲ 기념식을 시작하며 ‘유정천리’를 함께 부르는 뮤지컬 배우와 당시 2.28 참가자 서상호 씨(가운데)

 

▲ 뮤지컬 형식으로 꾸며진 2.28 민주운동 기념식의 공연을 관람하며 박수를 보내는 청중들과 문재인 대통령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2.28 민주운동의 정신

 

2.28 민주운동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대구지역 8개교 1,720여명의 10대 학생들이 주도한 민주화 운동이라는 점인데요, 이러한 특징을 살려 기념식은 당시 시위 참여 8개교의 후배 학생들이 실질적인 주체로서 이끌어 나갔습니다. 

 

"다같이 나가서 싸우자. 정의를 위해서 싸우자!“

"민주수호, 독재타도!"

 

▲ 결의문을 낭독하는 경북여고 2학년 전혜영 학생(왼쪽), 경북고 2학년 양재표 학생(오른쪽)


용기와 정의감이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 바꿨습니다

 

이어지는 순서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가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랑스러운 2.28 민주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처음 치러지는 기념식에 대통령으로서 기념사를 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인사로 기념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엄혹했던 시절, 바위에 계란치기 같았을 최초의 저항,
하지만 학생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 용기와 정의감이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았습니다.”

 

 

▲ 기념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또한, 대구 시민과 국민들이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써 오랜 기간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해 왔던 2.28 민주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내고, 2.28 정신을 온전히 살려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2.28 민주운동이
들려주는 이야기

 

뮤지컬은 2.28 민주운동 당시 학생부위원장으로 결의문을 낭독했던 故 이대우 선생과 2.28주역으로 평생을 언론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故 성유보 선생의 회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2.28 정신은 한마디로 반민주적인 어떤 정권도 이 땅에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 故 이대우 선생

 

"시민운동도 시각을 아주 넓혀야 합니다. 더구나 언론자유나 민주주의는 평화가 없이는 안 됩니다.“

 

- 故 성유보 선생

 

또한, ‘2.28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주제로 노동일 2.28민주운동 기념사업회 공동의장이 기념식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21세기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학생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험난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불의에 굴하지 말고 2.28의 민주주의 정신으로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꾸어 주시기 바랍니다.”

 

▲ 노동일 2.28민주운동 기념사업회 공동의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기념공연의 마지막 순서로는, 대구 출신의 가수 故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를 다 같이 합창하고, ‘2.28민주운동 찬가’를 제창하였습니다. 노래의 제목처럼 기념식의 참석자들은 모두 함께 일어나 ‘일어나’를 같이 부르며 어두운 시대적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2.28 정신을 되새겼습니다.

 

▲ 가수 정동하가 故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를 열창하고 있다.

 

▲ 2.28 민주운동 기념식 참석자들이 합창을 하고 있다.

 

▲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첫 정부기념식으로 거행된 2.28 민주운동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희생과 헌신을 보여준 민주열사들의 정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선배’가 된, 그 당시 ‘학생’이었던 민주화 열사들의 희생과 열정을 떠올리며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나라사랑 마음을 함께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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