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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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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유진

    2017.12.27 15: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석주 의사..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당!!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국내외 독립운동을 무마하고자, 이른바 ‘문화통치’라는 술수를 꾀하게 됩니다. 무단통치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을 교체하고 겉으로는 조선인을 존중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교묘하게 감시하고 탄압하는 통치방법이었습니다.

강우규 의사는 이와 같은 일제의 정책 변화가 3·1운동 무마책에 불과한 술책임을 꿰뚫어 보고 분노하며 신임 총독의 처단을 결심하였습니다. 1919년 9월 2일 오후 5시, 남대문역에서 거사를 준비한 강우규 의사는 신임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탄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비록 그가 던진 폭탄이 사이토를 폭살시키지는 못했지만, 그의 의거로 인해 우리 민족은 일본과 전 세계에 독립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강 의사는 중국 길림성 요하현에 한인 동포들을 모아 신흥동(新興洞)이라는 마을을 결성하고 광동학교를 세워 청소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쓰는 등, 독립을 위한 기반을 다져 왔습니다. 또한, 강우규 의사는 1919년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하여 요하현 지부장을 맡아 활동하게 됩니다.


한편, 재거사를 계획하며 은신했던 강우규 의사는 불행히도 의거 16일 만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이후 1920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러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강 의사는 의거에 연루되어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을 변호하고 의거의 진정한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항소하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5월 27일, 경성고등법원에서 강우규 의사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었고 강 의사는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날을 기다렸습니다. 옥바라지를 하던 아들이 슬픈 기색을 보일 때면, 강 의사는 오히려 청년들의 교육에 대해 걱정하며 의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합니다.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
- 강우규 의사가 유언으로 남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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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0월 21일, 김좌진 장군은 만주 화룡현 청사리 백운평 전방에

매복해 있던 독립군들에게 방심하고 있던 일본군들을 향해

일제 사격을 명령하였습니다.  


이 전투는 1920년 10월 21부터 26일까지 이어졌는데요.

독립군은 그들(독립군)을 토벌할 목적으로 출병한 일본군을상대로

청산리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주도면밀한 작전 지휘로

일본 가납 연대장을 비롯하여 3,300여 명을 섬멸하는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소수의 병력으로 10배가 넘는 일본군을 물리친,

전사상 보기 드문 대승리였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의 승리 이후 부하들과 함께

밀산으로 이동하였고, 그곳에 집결한 10개 독립운동 단체들을 통합한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여 부총재에 취임하였습니다.


1925년 3월 15일, 김좌진 장군은 효과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과 함께 신민부를 조직하여

권사부 위원장 겸 총사령에 선임되었습니다.


또한, 북만주에 성동사관학교를 설립한 김좌진 장군은 부교장으로서,

교장 김혁 선생 등과 아울러 독립군 간부 양성에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같은 해 10월 10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에서

그를 임시정부 국무원에 임명하였으나 김좌진 장군은 이를 사양하고

계속해서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였습니다.


한편, 김좌진 장군은 지속적으로 특수공작대와 밀사를

국내에 파견하는 등 국내 진격을 위한 작전에도 만전을 기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김좌진 장군은'

1930년 1월 24일, 고려공산당 청년회원이 쏜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습니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 서리가 고국생각을 돋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단장의 아픈 마음 쓰러질 길 없구나.


-장군의 시 단장지통(斷腸之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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