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 강우규 의사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국내외 독립운동을 무마하고자, 이른바 ‘문화통치’라는 술수를 꾀하게 됩니다. 무단통치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을 교체하고 겉으로는 조선인을 존중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교묘하게 감시하고 탄압하는 통치방법이었습니다.
강우규 의사는 이와 같은 일제의 정책 변화가 3·1운동 무마책에 불과한 술책임을 꿰뚫어 보고 분노하며 신임 총독의 처단을 결심하였습니다. 1919년 9월 2일 오후 5시, 남대문역에서 거사를 준비한 강우규 의사는 신임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탄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비록 그가 던진 폭탄이 사이토를 폭살시키지는 못했지만, 그의 의거로 인해 우리 민족은 일본과 전 세계에 독립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강 의사는 중국 길림성 요하현에 한인 동포들을 모아 신흥동(新興洞)이라는 마을을 결성하고 광동학교를 세워 청소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쓰는 등, 독립을 위한 기반을 다져 왔습니다. 또한, 강우규 의사는 1919년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하여 요하현 지부장을 맡아 활동하게 됩니다.
한편, 재거사를 계획하며 은신했던 강우규 의사는 불행히도 의거 16일 만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이후 1920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러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강 의사는 의거에 연루되어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을 변호하고 의거의 진정한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항소하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5월 27일, 경성고등법원에서 강우규 의사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었고 강 의사는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날을 기다렸습니다. 옥바라지를 하던 아들이 슬픈 기색을 보일 때면, 강 의사는 오히려 청년들의 교육에 대해 걱정하며 의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합니다.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
- 강우규 의사가 유언으로 남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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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2 1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르신!
3.1절 99주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울려퍼진 만세소리를 들으셨는지요.
어르신의 뜻과 기개 이어받아
자각. 자강하여
평화와 통일.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이어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