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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해당되는 글 109건

  1. 2017.11.30 12월의 독립운동가 - 김치보 선생 (2)
  2. 2017.10.31 11월의 독립운동가 - 이근주 선생
  3. 2017.10.02 10월의 독립운동가 - 채상덕 선생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분은 ‘노인들의 의열투쟁을 이끈 독립운동 지도자’, 김치보 선생입니다.


김치보 선생은 1859년 9월 17일, 평양에서 출생하여 1908년 경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이후 선생은 대한노인동맹단 단장을 지내며, 단원이었던 강우규 의사의 조선 총독 사이토 폭살 의거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선생은 현지에서 덕창국이라는 한약방을 운영하였습니다. 덕창국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 김치보 선생


이후 김치보 선생은 1909년, 국민회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같은 해 4월, 선생은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 청년돈의회의 회장을 맡아 활동하며 교육활동에 힘을 쏟았습니다. 


▲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 집단 거주지, 신한촌의 모습

(출처: 독립기념관)


1910년 8월 경술국치 이후,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합병’의 무효를 선언하고 병탄 반대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성명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김치보 선생은 성명회의 병탄조약 원천무효 선언서에 서명하였고, 1911년에 권업회에 참여하여 통신부장에 선임되었습니다. 


▲ 권업신문 (출처: 독립기념관)


김치보 선생은 1919년 2월 대한국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3.1운동의 소식이 들려오자 연해주 일대에서 대규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 대한노인동맹단 명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선생은 1919년 3월 대한노인동맹단 단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노인동맹단은 40세 이상 70세 미만의 노인들로 결성되어 실전에 참여하는 청년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것이 주요 활동 방침이었습니다. 


단장인 김치보 선생을 필두로 한 노인동맹단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독립요구서를 제출하였고, 단원이었던 강우규 의사를 1919년 9월에 국내에 파견하였습니다. 강우규 의사는 새로 부임하는 조선 총독 사이토에게 폭탄을 던져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고, 국내외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 강우규 의사 동상 (출처: 중구문화재청 홈페이지)


이후 1922년 4월, 김치보 선생은 해삼위천도교교구장 고문자격으로 귀국하여 최시형 선생의 아들 최동희를 만나 고려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선생의 행적은 1924년 3월까지 확인되나 이후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 김치보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어느덧 12월,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국외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12월의 독립운동가, 김치보 선생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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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준식

    2017.12.04 2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충남 아산에 거주하는 역사·문화·나라사랑 분야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으로, 국가보훈처 '이달의 보훈인물' 카페의 고문을 맡고 있는 네스카페, 김준식입니다.

    이제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이 시작 된 가운데, 올 한 해도 훈터에서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와 '이달의 전쟁영웅' 선정자 분들의 업적을 월별로 잘 정리를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이달의 보훈인물' 선정은 계속 되겠지만, 내년에도 계속해서 좋은 정보를 통해 보훈 분야를 바탕으로 한 네티즌 분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럼 모든 보훈처 관계자 분들께서도 항상 하시는 모든 일마다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제 짧은 인사를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7. 12. 4. 충남 아산에 거주하는 나라를 사랑하는 대학생, 김준식 드림.

    ※ 그리고, 저는 최근 보훈처의 한 홍보 매체를 통해 내년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전쟁영웅 선정 결과를 확인했는데요. 혹시 훈터 블로그에서는 언제 쯤이면 이 분들의 업적을 종합적으로 다룬 포스팅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 대한민국 훈남훈녀 2017.12.05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김준식 님^^
      늘 애정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2018년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전쟁영웅 포스트는 12월 중순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저희 국가보훈처 블로그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추운 날씨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국운이 다하였으며 성인의 도가 끊어져 살아갈 마음이 없다.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긴 것은 너무나 분통하고 부끄럽고 또 싫어서

죽을 수 밖에 없다.”


▲ 이근주 선생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신 분은 나라를 잃은 통분에 자결하여 순국한 충남 홍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근주 선생입니다. 이근주 선생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홍주의병에 참여하였으며,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접하자 자결로 항거한 분입니다. 


1860년 2월 3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이근주 선생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홍주의병에 김복한, 안병찬 등과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 1906년 5월 30, 31일 홍주성전투 중에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홍주의병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홍주의사총

(출처: 국가보훈처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홍주 소재)


그러나 김복한 등 주도자들이 체포된 뒤, 조의현 등과 재기를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울분에 쌓인 선생은 천식과 다리가 마비되는 병을 얻고 말았습니다.


▲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자결했던

민영환 선생의 모습(고종의 외사촌 동생)

(출처: 위키백과)


또한, 선생은 여러 항일 사적을 편찬하였는데요. 홍주의병 과정을 기록한 「을미록」, 나라가 매군매국(賣君賣國)의 무리에 의해 더럽혀짐을 한탄한 「절의가」, 민영환 선생의 순국을 기린 혈죽시 등 여러 항일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 조선 총독부의 모습 (출처: Musty Room 블로그)


1910년 8월 경술국치의 비보를 접한 이근주 선생은 “국운이 다하였으며 성인의 도가 끊어져 살아갈 마음이 없다.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긴 것은 너무나 분통하고 부끄럽고 또 싫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며, 자결을 결심하게 됩니다.


▲ 이근주 선생 묘소 사진


이후 1910년 9월, 이근주 선생은 큰형의 환갑이 지난 뒤 부모의 묘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자결ㆍ순국하였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충절을 기리어 1991년, 이근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11월, 점점 겨울이 찾아오는 쌀쌀한 날씨가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하는데요. 이근주 선생의 애국심과 망국의 슬픔에 베인 한을 기리며 마음 속 깊이 새기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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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


일생을 조국의 자주독립과 일제의 만행에 대항하는 일에 자신을 바친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황해도 출신의 심호 채상덕 선생입니다. 선생은 만주지역 일대에서 항일 의병활동을 했던 만주지역 항일 무장투쟁의 개척자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10월의 독립운동가 채상덕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집니다. 당시 국민들은 일제의 만행에 크게 분노하여 봉기를 일으키고 의병은 한데모여 무장 투쟁을 하게 됩니다.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활발히 일어났는데요. 이때 일어난 의병을 을미의병이라고 합니다. 채상덕 선생은 고향인 황해도 사리원·재령·해주·신막·안악 일대에서, 안필호(安弼濩)·최봉소(崔鳳韶)·최전구(崔銓九)·윤항식(尹恒植)·이승회(李承會)·채만식(蔡萬植)·이승원(李承遠) 등과 함께 의병투쟁에 동참하였습니다.


▲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당시 모습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10년 나라의 주권이 일본에 완전히 넘어가 버리게 되자, 선생은 남만주로 망명하여 기거하면서 독립운동을 위한 준비를 전개하였습니다. 


▲ 항일의병 


1920년 일본군의 만주출병 이후 남북 만주 각지의 독립군들이 각 지역별로 분산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채상덕 선생은 모두가 갈라진 상태에서는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는데요. 1922년 2월에 이르러 남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서로군정서를 비롯한 대한독립단, 벽창의용대, 광복군총영, 광한단 등 각 군단의 대표들과 함께 관전현에 모여 남만통일회의가 개최되어 회의를 거듭한 끝에 1922년 2월, 대한통군부가 조직되었습니다.


선생은 대한통군부의 최고 책임자인 총장에 선임되었는데요. 얼마 되지 않아 여기에 참여하지 못했던 독립운동 단체들과 통합운동이 다시 전개되어 같은 해 8월, 대한통의부가 조직되자 부총장에 선임되어 독립운동의 선두에 섰습니다.


▲ 대한통의부 훈련 모습

(출처: 독립기념관)


그 후 채상덕 선생은 1923년에 대한의군부를 조직하여 총재를 역임하였고, 같은 해 여름 중국 남만주 화전현에서 독립운동 지도자 58명과 함께 만주독립운동계의 통일과 지로에 대해 회의를 가지는 등 독립을 위한 체계적인 움직임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의부 대원들의 모습


또한, 1924년 성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조직인 참의부에 자신의 제자와 부하들을 가입시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25년 3월, 밀정 이죽파의 밀고로 고마령에서 회의 중이던 참의부원들이 일본경찰의 습격을 받아 독립군 다수가 희생당하는 참변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일로 비통함에 빠진 선생은 제자 이수흥에게, “너는 아직 어리되 의지는 굳은 청년이니 독립군이 되어 내 뜻을 저버리지 말라”는 말을 하며 자신의 뜻을 이어줄 것을 당부한 뒤, 한참을 통곡하다가 “내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자결 순국하였습니다. 정부는 1995년 채상덕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이수흥 선생


10월, 본격적으로 가을이 찾아온 듯 쌀쌀한 날씨가 마음을 에워싸는데요. 먼 타지에서도 조국만을 위해 모든 일생을 바쳤던 10월의 독립운동가, 심호 채상덕 선생의 정신과 마음가짐을 기억하여 애국심으로 마음 따뜻해지는 한 달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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