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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해당되는 글 105건

  1. 2017.05.01 5월의 독립운동가 – 방정환 선생 (2)
  2. 2017.03.31 4월의 독립운동가 - 이상정 선생
  3. 2017.03.02 3월의 독립운동가 - 권병덕 선생


▲ 방정환 선생(출처: 독립기념관)


최초로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어린이의 영원한 벗이자 독립운동가인 방정환 선생의 일생을 소개합니다. 


방정환 선생은 1899년 11월 9일,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갑작스럽게 몰락하면서 어린 방정환은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17년 방정환은 상고를 다니다 가세가 기울어 중퇴하고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서류를 필사하는 사환으로 일하게 됩니다. 이 때에 방정환은 소년입지회에서 동화구연, 토론회에 참여하며 어린이를 위한 놀이와 문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방정환은 이후 천도교 핵심인물로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33인 중 한 명이되는 권병덕 선생이 그를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손병희 선생에게 소개해 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요. 천도교 교주 손병희 선생의 딸 손용화 여사와 결혼하게 되면서 천도교의 정신적, 물질적, 조직적 뒷받침을 바탕으로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는 이때부터 청년문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갑니다. 순회강연을 통해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고, 소설, 수필, 시 등을 발표하며 문학가로서의 삶도 시작하게 되죠.



▲ 손병희 선생(출처: 독립기념관)


1919년 전국적으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면서 방정환 선생은 천도교청년회 회원으로 만세운동 준비에 협력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생은 동료 오일철과 함께 자택에서 「독립신문」을 등사하여 배포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습니다. 또한 방정환 선생은 1921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를 조직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0일 태평양회의를 계기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혐의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방정환 선생은 조금 다른 성격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는데요. 1922년 5월 1일, 천도교 소년회 창립 1주년 기념 제1회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기념식을 거행합니다. 이는 현재 5월 5일 어린이날의 기원이었습니다. 방정환 선생은 1923년 3월 20일 소년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해 4월 30일 동경에서 손진태, 윤극영, 진장섭, 고한승 등과 아동문화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며 어린이의 인권을 보호하고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정서적, 문화적 계몽에 힘씁니다.


▲ 천도교소년회의 첫 ‘어린이날’ 행사 기사 (출처: 독립기념관)


선생은 어린이의 현실적, 경제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종래의 전통적인 부당한 대우를 시정하여 감성해방을 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정환 선생은 잡지 「어린이」 및 동화 ‘사랑의 선물’ 등을 집필하고 윤석중, 이원수, 서덕촌 등 아동문학가를 발굴·육성하며 최초로 동화문학 장르를 개척하였습니다.


▲ 어린이날 노래 (출처: 독립기념관)


그러나 방정환 선생의 민족 계몽 운동의 청사진은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일제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가중되었고, 소년운동 진영의 분열과 재정난 등은 그의 건강을 크게 해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1931년 7월 17일 신장염과 고혈압으로 쓰러진 선생은 그해 7월 23일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33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정부는 방정환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8년 금관문화훈장, 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민족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던 방정환 선생. 무장독립운동과 더불어 우리 민족을 이끌어갈 세대를 계몽시켜 민족성을 확고하게 다지는 것 역시 독립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독립운동사와 어린이들의 인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방정환 선생의 업적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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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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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7.08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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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 이상정 선생은 1896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의 집안은 가족 모두가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던, 이른바 독립운동가문이었습니다. 또한 이상정 선생은 일제 강점기 3대 저항시인 중 한 분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남긴 이상화 시인의 형이기도 합니다.


▲ 청남 이상정 선생


이상정 선생은 1920년대 초반에 평안도 등에서 교사로 재임했습니다. 그러던 중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하게 되는데요. 이후에는 중국 하북성 등지에서 풍옥상군 참모부의 막료로 근무하면서 육영사업을 하며 독립 운동에 가담, 활동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권기옥 선생을 만나 결혼을 합니다. 권기옥 선생은 학생시절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며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한국 공군 창설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공군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 이상정 선생 가족사진 (가운데가 권기옥 선생)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되고 당시 국민정부의 초청으로 충칭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을 지내고 있던 이상정 선생은 1938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발을 담구면서 본격적으로 광복군 창설 활동에 기여함과 동시에 대중(對中) 외교통으로 활약합니다. 1년 뒤 임시정부 외무부 외교연구위원과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동하게 되죠.


▲ 광복군 창설식 당시 사진


당시 중국은 광복군이 중국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한국광복군 행동준승 9개 조항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상정 선생은 한중 간 평등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중연대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한국광복군 행동준승 9개 조항 취소 등을 담은 ‘광복군에 관한 건’의 대표제안자로 나섰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임시정부는 중국 측이 요구한 9개 조항 중 일부만을 받아들이는 선에서 경제적 지원을 약속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말기의 주요 업적이기도 했습니다.


1945년, 한민족 모두가 그토록 고대하던 독립을 맞이하면서 평소 염원하던 ‘일본군 타도’ 목적을 달성한 선생은, 중국 지역에서 중국인들의 박해로부터 한국 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광복을 맞이한 지 2년 째, 모친상을 당한 이상정 선생은 급히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상심이 너무 컸던 탓일까, 선생은 돌연 뇌일혈로 쓰러져 별세하였습니다. 향년 52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건국훈장 독립장(출처: 대한민국 상훈)


‘만리장천 떠나는 기선소리 잠든 나를 깨워 고향가자네’

이상정 선생이 중국 망명 시절 부모와 고향, 나라를 그리워하며 썼던 <망향가>의 구절입니다.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먼 타지에서 보내며, 항상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평안을 위해 애쓴 청남 이상정 선생. 그의 이름은 조금 생소할지라도, 지금부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일 것입니다.


▲ 이상정 선생이 망명 초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 <망향가>

(출처: 소남이일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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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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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라리 계림의 개와 돼지가 될지언정 

일본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 권병덕 선생의 『조선총사(朝鮮總史)』 중 -


바로 어제가 3‧1운동이 일어난 3‧1절이었는데요. 3‧1운동이 있기 전,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제작 및 배포하였습니다. 그중에 3월의 독립운동가 ‘청암 권병덕 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도교인으로서 독립선언에 참여하였고,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서 진행된 독립선언식이 끝난 후 서대문형무소로 수감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외친 3월의 독립운동가 ‘권병덕 선생’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868년 4월 25일 충북 청주군 미원면 성화동(현재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종암리)에서 태어난 권병덕 선생은 평등한 사회로의 개벽을 주장하는 동학의 교의에 감명을 받고 동학에 입교하게 되었는데요. 입교 이후 1886년 2월에는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에게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선생은 이후 동학농민운동의 2차 봉기에도 참여하는 등 동양의 전통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사회개혁을 꿈꾸었으며, 191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천도교를 기반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천도교 간부들


그러던 중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1919년 조선청년독립단의 2‧8독립선언이 일어나는 등 우리 민족은 독립을 위한 초석을 다지게 됩니다.


이처럼 독립을 열망하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천도교에서는 1918년 말부터 권동진, 오세창, 최린 등이 손병희와 협의하여 조선의 독립을 이루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는데요. 천도교에서는 행정 자치 청원, 독립 청원, 독립 선언의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도교 인사들은 기독교의 이승훈·함태영, 불교의 한용운 등과 협의하여 독립선언서를 제작하고, 민족대표의 선정 등을 협의하는 등의 계획을 2월 20일경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1919년 2월 21일. 권병덕 선생은 손병희로부터 민족대표가입을 제의받았고,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이후 독립선언서의 제작과 배포, 미국 대통령 및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열국 대표에게 건의서와 일본 정부와 조선 총독에 보내는 청원서의 날인과 제출 등에 대하여 협의 및 서명하였습니다.


▲ 태화관 기록화


그리고 선생은 3월 1일 오후 2시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 중 한용운의 선창으로 만세 삼창을 진행한 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결국 1920년 10월 30일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게 되었고, 서대문감옥에서 경성감옥으로 옮겨져 옥고를 치렀습니다.


▲ 권병덕 선생의 재소자신분카드


선생은 1921년 11월 4일 출옥 직후 천도교 혁신운동을 추진하며, 천도교의 구파와 혁신파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1922년 천도교 혁신파가 ‘천도교 연합회’를 설립 및 분립하려 하자 천도교에서 탈퇴하고 1923년 11월 11일 수운교 본관을 창립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습니다. 또한, 신간회 활동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속해나갔습니다.


또한, 1930년대 중후반 일제의 민족말살통치에 대항하여 이조전란사(李朝戰亂史) 및 궁중비사(宮中祕史)를 간행하고, 『조선총사(朝鮮總史)』 를 발간하려던 중 출판법에 의해 삭제 처분을 받기도 했는데요. 역사에 관한 책을 간행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계속해서 전개하였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던 권병덕 선생은 1943년 7월 13일 자택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눈을 감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故권병덕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여 고인의 넋을 기렸습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출처: 대한민국 상훈)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권병덕 선생.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3월의 독립운동가 권병덕 선생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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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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