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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해당되는 글 103건

  1. 2016.12.21 [이달의 독립운동가] 2017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누구일까요? (1)
  2. 2016.12.01 12월의 독립운동가 - 최수봉 의사
  3. 2016.11.01 11월의 독립운동가 – 이한응 선생 (2)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 한 해의 마무리는 잘 하고 계신가요? 


새로운 해, 2017년을 맞아 훈터지기가 전해드릴 소식은 바로 2017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소식입니다! 지난 12월 5일 국가보훈처에서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17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17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분들은 총 12명으로 의병장에서부터 광복군, 순직기자, 민족대표 33인, 안중근 의사의 모친 등 그 이력은 물론 공훈 또한 다양하답니다. 과연 어떤 분들이 선정되었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금부터 2017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독립운동가들은 그 공훈이 정말 대단한데요! 그 중 몇분의 공훈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몽골의 슈바이처

2월의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이태준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인 경력을 가진 분입니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의사로 1914년 몽골로 이주한 후 ‘하늘이 내린 의사’로 불릴 만큼 몽골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군자금 모집과 의열단에 폭탄 제조 기술자를 지원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도 크게 힘쓴 인물입니다. 



어린이 날을 만든 어린이의 벗,

5월의 독립운동가 소파 방정환 선생


 

청년 시절의 방정환 (출처 : 한국방정환재단)


5월 5일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을 모르는 분들은 없겠죠? 어린이의 벗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 날이 있는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방정환 선생은 손병희 선생의 사위로 일제 강점기, 어린이를 우리민족의 주인공으로 인식하고 이들에게 민족적 자주정신을 심어 주고자 하였습니다. 3․1운동 당시 독립신문을 등사․배포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일본군사령부에 학살 진상을 추궁하다 순국한 기자,

6월의 독립운동가 장덕준 기자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장덕준 기자는 동아일보 창간 주역으로, 경신년 일본군이 동포 3천 여명을 무참히 학살한 간도참변이 발생하자 현장을 취재하면서 일본군사령부에 학살 진상을 추궁하다 일제에 암살당하여 행적이 묘연해졌습니다. 올해로 탄신 125주년을 기념하여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길러내고, 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가 된

7월의 독립운동가 조마리아 여사

 


조마리아 여사는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입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수의(壽衣)와 함께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죽으라.”고 편지를 보내 아들의 의기(義氣)를 격려하였고, 상해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정위원 등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지주로 활약하였습니다. 올해로 서거 90주년을 맞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소개해 드린 4분 이외에도 천도교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인 권병덕 선생, 정미의병 110주년을 맞아 농민의병장인 김수민 선생, 한국광복군 제2지대장 고운기 선생, 의병과 만주 독립군을 이끈 의군부 총장 채상덕 선생, 충남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일제의 강제 병탄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이근주 선생, 강우규 의사 등 노인들의 의열투쟁을 이끈 대한노인동맹단장 김치보 선생이 각각 선정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인물의 희생과 공훈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 계획을 준비중인데요,  네이버•다음 등 대형포털에 매월 선정된 독립운동가의 열전을 게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학교․지자체 등에 찾아가는 학술강연회,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 무소역사관에서 기획사진전, 전국 학교․도서관․지자체 등에 포스터를 제작하여 배부할 예정입니다. 특히, 청소년 등 미래 세대들이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국가보훈처의 SNS에서도 매달 여러분에게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전해드릴 거랍니다. 2017년이 벌써 기대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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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준식

    2016.12.22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저는 충남 아산에 거주하면서, '이달의 보훈인물' 네이버 카페 회장을 맡고 있는 네스카페, 김준식입니다.
    제가 평소 '이달의 보훈인물' 정책에 대한 관심 덕분에 훈터 블로그까지 자주 방문해 이런저런 의견도 많이 드렸죠.

    그리고, 이제 정말 다사다난했던 2016년 한 해도 저물어가고 2017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 2017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12명의 인물에 대한 업적을 하나의 포스팅으로 정리를 해 주셔서 보기도 좋고,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한 달에 한 번씩 배워나갈 인물들의 업적을 미리 배워간다는 생각에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훈터지기 님 말씀처럼 내년이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제가 보훈인물 카페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훈터 블로그도 엄연히 사실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사이트이기 때문에 오타 같은 것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2017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자 명단을 소개하는 포스팅에서도 제가 확인한 바로는 오타가 4군데 발견되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내용을 확인하시고, 수정을 부탁드립니다.

    먼저, ① 이상정 선생은 3월이 아닌 4월의 독립운동가이고, ②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소파 방정환 선생(개인적으로 제가 추천했습니다.)의 생몰년월일이 이상정 선생(4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③ 10월의 독립운동가 채상덕 선생의 경우 1862년에 태어나신 것을 확실히 알 수 없는지 괄호 표시를 해 두셨지만, 만약 이 기록이 맞다면 내년은 채 선생의 탄신 185주년이 아닌 155주년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④ 11월의 독립운동가 이근주 선생의 경우 '충남 홍성 출신, 애국장(91)' 은 맞지만, 그 위에 '대구, 독립장(77)' 이라는 이상정 선생의 기록이 다시 한 번 등장하네요.

    매번 보훈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것을 알지만, 마찬가지로 보훈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저도 보훈 분야의 발전에 미력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었고, 일단은 홍보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럼 항상 하시는 모든 일마다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리며, 저물어가는 2016년 올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2016. 12. 22. 충남 아산에서 '이달의 보훈인물' 카페 회장. 네스카페, 김준식 드림.







2016년 마지막 이달의 독립운동가,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분은 식민통치 폭압기관이었던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최수봉 선생입니다. 의열단 출신으로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최수봉 의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밀양의 학도, 의열단에 들어가다


최수봉 선생은 1894년 경남 밀양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향리의 개량서당을 다니면서 한문과신지식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걸었던 배움의 길은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선생은 약산 김원봉과 함께 밀양공보를 다니던 중 단군이 일본 대화족(大和族) 시조의 아우라고 주장한 일본인 교사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1910년 밀양의 사립 동화(同和)학교에 편입하여 김대지 등 독립운동가의 가르침을 받으며 조국애와 항일의식을 키웠고, 1912년 범어사에서 운영하던 부산 명정학교와 1913년 기독교 계통의 평양 숭실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1916년에 들어서는 평안북도 창성군에 있는 사금광에서 광부와 우편배달부 생활을 했고, 1919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윤세주, 윤치형과 함께 3월 13일 밀양 장날에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일제에게 수배를 받게 되고,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인 봉천(오늘날 선양)과 안동(오늘날 단둥)을 왕래하며 동지를 규합하였습니다. 이때 최수봉 선생은 길림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동료들로부터 폭탄제조법을 배운 뒤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왔습니다.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다.




1920년, 의열단이 국내 일제기관 총공격거사 계획을 세우고 폭탄을 밀반입하려다 일제 경찰에 적발되어 여러 단원들이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최수봉 선생은 이종암 등과 식민통치의 폭압기관에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도모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 결심이 실행에 옮겨 진 것은 1920년 12월 27일 월요일 아침. 밀양경찰서장이 경찰서 직원 19명을 사무실에 모아 놓고 연말연시 특별경계를 당부하는 훈시를 하던 틈을 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폭탄은 안타깝게도 불발하였고, 일제 경찰의 추격에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피체 당하고 말았습니다.


최수봉 선생에 대한 재판은 상고심까지 진행되었으나 일제는 의거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판을 속전속결로 진행해 선생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경기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 당했고, 확정판결 한 달 보름 만인 대구감옥에서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최수봉 선생의 의거는 일제시설의 한복판에 폭탄을 던져 넣었다는 점에서 당시의 항일 민심과 독립운동 진영을 고무시켰고, 이후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투탄으로 이어지는 쾌거를 낳았습니다. 

2016년을 마무리하는 12월, 우리는 최수봉 선생의 그 때 그 용기를 기억하고 또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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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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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우리나라를 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국권수호 움직임 중 하나로 ‘구국외교’가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07년 고종이 헤이그로 특사를 파견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던 ‘헤이그 특사 파견’이 있습니다. 일본의 치졸함과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 국권도 회복하기 위해서는 외교만큼 중요한 일이 또 없었던 것이죠.


이처럼 영국에서도 활발하게 우리나라의 상황을 알리던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바로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이한응 선생’입니다. 낯선 땅에서 누구보다 조국을 뜨겁게 사랑했던, 결국 대한독립을 위해 순국을 택한 이한응 선생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봅시다.



국은(菊隱) 이한응 선생, 대한제국과 함께 제국주의의 물결을 타다


이한응 선생은 1874년 경기도 용인에서 군수인 이경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선생은 어릴 적부터 누구보다 빠르게 학문을 익히게 되는데요. 우리나라 최초 관립 근대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 근대학문을 익히고 16세부터는 새로 생긴 관립영어학교에 입학해 2년의 과정을 거쳐 영어를 깨쳤다고 합니다. 


1894년 성균관 진사시에 응시해 과거에 급제하지만, 직후 옛날 과거제도가 없어지고 신식 관리임용제가 생기는 바람에 문과나 무과를 보지는 못하고 광무 1년에 한성부 주사가 됩니다. 이후 1899년 관립영어학교의 교관으로 후학을 지도하였다가 1901년 3월 민영돈이 주영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될 때 선생도 주영공사관 참서관으로 함께 영국에 파견되었습니다. 



<이한응 선생의 여권, 출처=http://heyi.pe.kr/>



영국에서 우리나라의 사정을 알리기 위한 외교업무를 시작하다


당시 우리나라와 외교를 맺었던 나라들은 몇 곳이 안 된다고 하는데요. 이웃나라인 청나라, 일본을 비롯해 미국, 영국 같은 서구 열강들을 포함해 고작 열 개 정도의 국가가 전부라고 합니다. 그 중 영국은 가장 중요한 외교대상국 중 하나였습니다. 이미 일본처럼 전세계의 1/4 가량을 식민지로 지배한 제국주의 국가였던 곳인데다 당시에는 미국보다 더 열강이었던 국가이기에 더욱 우리나라의 상황을 호소할 필요가 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한응 선생은 함께 간 민영돈 공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외교활동을 하게 됩니다. 특히 영국의 교류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 우리나라의 사정을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대내외 압박으로 인해 민영돈 공사가 먼저 귀국한 이후에는 혼자 남아 전권 공사 서리로서 대영외교업무를 모두 처리합니다. 이 시절을 겪으며 그는 조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함을 갖게 됩니다.



<이한응 선생이 한반도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요구하고자 영국 외무성에 보낸 친필 공문,

출처=http://heyi.pe.kr/>



낯선 땅 영국에 꽂고자 했던 국권수호의 깃발


선생은 영국에서 지내며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것을 예상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이긴 국가가 조선을 지배하고자 할 것임을 단박에 느꼈습니다. 선생은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제시하며, 한반도의 평화가 유럽의 세력균형과 연결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이고 독특한 발상으로, 전쟁을 예비하기 위해 영국 외무부를 설득하려 한 것입니다. 1905년 3월에는 영국 외무대신에게 거중조정(good office)를 요청했으며 러일전쟁 초기에 을사오적에 의해 체결된 ‘한일의정서’와 ‘제 1차 한일협약(을사늑약)’속 내용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도 애썼습니다. 


그러나 이한응 선생의 주장은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영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사정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주영 한국공사관을 폐쇄하는 등 영일동맹을 강화하기에 이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생은 을사늑약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온 친일외교관 스티븐스로부터 우리나라의 모든 공관과 대사, 공사 등 외교관을 철수시킨다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해외의 모든 공사나 외교관의 일 및 문서는 일본공사 혹은 일본인 대사에게 연계하고 오라는, 선생의 입장에서는 무척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한응 선생의 순국기념비, 출처=http://heyi.pe.kr/>


나라가 장차 무너지고, 온 민족이 남의 노예가 되리라.

산다는 것은 욕만 더할 따름이다. 이 어찌 죽는 것보다 낫겠느냐.


이한응 선생은 명령을 받고도 약 5개월 정도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풍전등화의 조국을 위해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5월 12일, 자결 순국을 선택합니다. 이후 선생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와 고향인 경기도 용인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1962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순국기념비에 새겨진 선생의 유서를 보면 당시의 비통함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서 국권이 상실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지금의 우리로써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이한응 선생의 마음을 기리며 현재에 감사하는 것만큼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1월, 우리 모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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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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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02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대한민국 훈남훈녀 2016.11.03 1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김준식님! 말씀 하신 내용 수정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더욱 꼼꼼하게 검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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