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250,722
  • Today | 1,743
  • Yesterday | 2,606

'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해당되는 글 107건

  1. 2017.03.31 4월의 독립운동가 - 이상정 선생
  2. 2017.03.02 3월의 독립운동가 - 권병덕 선생
  3. 2017.02.02 2월의 독립운동가 - 이태준 선생



청남 이상정 선생은 1896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의 집안은 가족 모두가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던, 이른바 독립운동가문이었습니다. 또한 이상정 선생은 일제 강점기 3대 저항시인 중 한 분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남긴 이상화 시인의 형이기도 합니다.


▲ 청남 이상정 선생


이상정 선생은 1920년대 초반에 평안도 등에서 교사로 재임했습니다. 그러던 중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하게 되는데요. 이후에는 중국 하북성 등지에서 풍옥상군 참모부의 막료로 근무하면서 육영사업을 하며 독립 운동에 가담, 활동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권기옥 선생을 만나 결혼을 합니다. 권기옥 선생은 학생시절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며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한국 공군 창설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공군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 이상정 선생 가족사진 (가운데가 권기옥 선생)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되고 당시 국민정부의 초청으로 충칭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을 지내고 있던 이상정 선생은 1938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발을 담구면서 본격적으로 광복군 창설 활동에 기여함과 동시에 대중(對中) 외교통으로 활약합니다. 1년 뒤 임시정부 외무부 외교연구위원과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동하게 되죠.


▲ 광복군 창설식 당시 사진


당시 중국은 광복군이 중국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한국광복군 행동준승 9개 조항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상정 선생은 한중 간 평등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중연대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한국광복군 행동준승 9개 조항 취소 등을 담은 ‘광복군에 관한 건’의 대표제안자로 나섰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임시정부는 중국 측이 요구한 9개 조항 중 일부만을 받아들이는 선에서 경제적 지원을 약속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말기의 주요 업적이기도 했습니다.


1945년, 한민족 모두가 그토록 고대하던 독립을 맞이하면서 평소 염원하던 ‘일본군 타도’ 목적을 달성한 선생은, 중국 지역에서 중국인들의 박해로부터 한국 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광복을 맞이한 지 2년 째, 모친상을 당한 이상정 선생은 급히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상심이 너무 컸던 탓일까, 선생은 돌연 뇌일혈로 쓰러져 별세하였습니다. 향년 52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건국훈장 독립장(출처: 대한민국 상훈)


‘만리장천 떠나는 기선소리 잠든 나를 깨워 고향가자네’

이상정 선생이 중국 망명 시절 부모와 고향, 나라를 그리워하며 썼던 <망향가>의 구절입니다.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먼 타지에서 보내며, 항상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평안을 위해 애쓴 청남 이상정 선생. 그의 이름은 조금 생소할지라도, 지금부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일 것입니다.


▲ 이상정 선생이 망명 초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 <망향가>

(출처: 소남이일우기념사업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는 차라리 계림의 개와 돼지가 될지언정 

일본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 권병덕 선생의 『조선총사(朝鮮總史)』 중 -


바로 어제가 3‧1운동이 일어난 3‧1절이었는데요. 3‧1운동이 있기 전,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제작 및 배포하였습니다. 그중에 3월의 독립운동가 ‘청암 권병덕 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도교인으로서 독립선언에 참여하였고,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서 진행된 독립선언식이 끝난 후 서대문형무소로 수감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외친 3월의 독립운동가 ‘권병덕 선생’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868년 4월 25일 충북 청주군 미원면 성화동(현재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종암리)에서 태어난 권병덕 선생은 평등한 사회로의 개벽을 주장하는 동학의 교의에 감명을 받고 동학에 입교하게 되었는데요. 입교 이후 1886년 2월에는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에게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선생은 이후 동학농민운동의 2차 봉기에도 참여하는 등 동양의 전통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사회개혁을 꿈꾸었으며, 191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천도교를 기반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천도교 간부들


그러던 중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1919년 조선청년독립단의 2‧8독립선언이 일어나는 등 우리 민족은 독립을 위한 초석을 다지게 됩니다.


이처럼 독립을 열망하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천도교에서는 1918년 말부터 권동진, 오세창, 최린 등이 손병희와 협의하여 조선의 독립을 이루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는데요. 천도교에서는 행정 자치 청원, 독립 청원, 독립 선언의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도교 인사들은 기독교의 이승훈·함태영, 불교의 한용운 등과 협의하여 독립선언서를 제작하고, 민족대표의 선정 등을 협의하는 등의 계획을 2월 20일경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1919년 2월 21일. 권병덕 선생은 손병희로부터 민족대표가입을 제의받았고,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이후 독립선언서의 제작과 배포, 미국 대통령 및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열국 대표에게 건의서와 일본 정부와 조선 총독에 보내는 청원서의 날인과 제출 등에 대하여 협의 및 서명하였습니다.


▲ 태화관 기록화


그리고 선생은 3월 1일 오후 2시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 중 한용운의 선창으로 만세 삼창을 진행한 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결국 1920년 10월 30일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게 되었고, 서대문감옥에서 경성감옥으로 옮겨져 옥고를 치렀습니다.


▲ 권병덕 선생의 재소자신분카드


선생은 1921년 11월 4일 출옥 직후 천도교 혁신운동을 추진하며, 천도교의 구파와 혁신파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1922년 천도교 혁신파가 ‘천도교 연합회’를 설립 및 분립하려 하자 천도교에서 탈퇴하고 1923년 11월 11일 수운교 본관을 창립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습니다. 또한, 신간회 활동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속해나갔습니다.


또한, 1930년대 중후반 일제의 민족말살통치에 대항하여 이조전란사(李朝戰亂史) 및 궁중비사(宮中祕史)를 간행하고, 『조선총사(朝鮮總史)』 를 발간하려던 중 출판법에 의해 삭제 처분을 받기도 했는데요. 역사에 관한 책을 간행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계속해서 전개하였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던 권병덕 선생은 1943년 7월 13일 자택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눈을 감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故권병덕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여 고인의 넋을 기렸습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출처: 대한민국 상훈)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권병덕 선생.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3월의 독립운동가 권병덕 선생을 기억해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여러분은 몽골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혹시 몽골 국왕으로부터 친히 제1급 관리등급의 국가훈장을 받은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몽골에서 의술을 베풀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대암 이태준 선생이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조국독립에 앞장선 의술인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은 몽골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로서 한국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한국근대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추천으로 신민회의 외곽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제가 조작한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인해 몽골망명을 결심하게 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


선생은 몽골에서 비밀군관학교 설립 계획을 하고 있던 김규식의 권유로 1914년경 몽골 고륜에 정착하여 동의의국(同議醫局)이라는 병원을 개업하게 됩니다. 근대적 의술을 베풀며 몽골에서 두터운 신뢰를 쌓은 선생은 각지의 애국지사들과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하면서, 주요한 비밀 항일활동에서 큰 공적을 남겼는데요. 특히, 몽골과 중국을 오가는 애국지사들에게 숙식과 교통을 비롯한 온갖 편의를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선생은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되는 김규식에게도 2천 원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몽골의 의술을 개혁한 몽골의 슈바이처]


당시 몽골은 라마교의 영향이 커서 병에 걸리더라도 기도나 주문 등의 미신적인 치료법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이러한 몽골인들에게 근대적 의술을 펼쳐 몽골인의 70~80%가 감염된 전염병을 치료하였습니다. 또한, 몽골의 마지막 황제인 보그드 칸(Bogd Khan)의 어의가 되는 등 몽골 왕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의 몽골 국가훈장을 받았을 정도면 어느 정도 신임을 받았는지 알 수 있겠죠?


▲ 보그드 칸(Bogd Khan)

[항일혁명활동의 중요한 역할을 자처하다]


선생의 활동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한인사회당이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확보한 이른바 코민테른 자금 40만 루블 상당의 금괴운송에 깊숙이 관여한 일입니다. 선생은 당시 한인 사회당 연락을 담당한 비밀담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모스크바자금의 운송에 참여하는 동시에 의열단에 가입하여 그 비밀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는데요.


모스크바 자금 가운데 김립이 책임졌던 12만 루불의 1차분 8반 루불의 운송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북경에서 의열단 단장인 약산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당시 의열단 단원들이 사용한 폭탄은 질이 좋지 않아 불발되거나 단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크고 작은 사건 및 인명사고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에 선생은 우수한 폭탄제조기술자인 헝가리인 마쟈르를 의열단에 소개함으로써, 질이 우수한 각종 폭탄제조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마쟈르는 의열단의 폭탄운반에도 참여하였으며, 그의 도움으로 제조된 폭탄들은 황옥경부 사건, 김시현 사건을 비롯한 의열단의 파괴공작에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땅에 있는 오직 하나의 이 조선 사람의 무덤은 이 땅의 민중을 위하야 젊은 일생을 바친 한 조선청년의 거룩한 헌신과 희생의 기념비였다.”


선생은 러시아 백위파 운게른 스테른베르그에게 피살되어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건국훈장 애족장(출처 : 대한민국 상훈)


자신의 일생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대암 이태준 선생.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역만리 몽골에서 그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했던 노력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9사단 '상승백마'의 기원, 뺏고 빼앗긴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이봉창 의사 서거 85주기] 적의 심장에 폭탄을 던진 한인 청년
[훈터와 함께 떠나는 보훈 여행] 유관순열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천안 역사 여행
[제67주년 재일학도의용군 6.25 참전 기념] 재일동포의 이름으로 조국을 위해 싸우다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