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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해당되는 글 116건

  1. 2010.07.19 얘들아, 100년 전 우리나라 이야기를 들어볼래? (1)
  2. 2010.07.16 <나라사랑실천>빵콘을 아시나요 (1)
  3. 2010.07.15 <나라사랑실천>나라사랑은 물처럼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

얘들아, 100년 전 우리나라 이야기를 들어볼래?

(1) 경술국치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아픔을 이겨내고 우리는 세계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한민국으로 도약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암울한 치욕의 시기, 역사를 단절시킨 역사 '경술국치'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를 알아야 좀 더 견고한 미래를 닦아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경술국치에 대해 쉽게 공부할 수 있는 경술국치 100년 계기 교육 자료집 <얘들아, 100년 전 우리나라 이야기를 들어볼래?>를 발간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교육 자료집을 바탕으로 경술국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경술국치의 의미와 경술국치를 공부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청소년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자료집이기는 하지만, 모든 국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얘들아, 100년 전 우리나라 이야기를 들어볼래?> 원문 다운로드 받기 : http://kids.mpva.go.kr/data/data06.asp

 

  

 

왜 '경술국치'인가

우리는 왜 100년 전 그 일을 '경술국치'라 부르고 있을까요? 1910년 경술(庚戌)년에 나라를 빼앗기는 국가적 치욕을 당했다는 의미에서 '경술국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했다는 의미와 나라의 권리를 빼앗겼다는 의미에서 ‘국망(國亡)’ 혹은 ‘국권 피탈(被奪)’이라고 합니다. 또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켰다는 의미에서 ‘일제의 한국병탄(韓國倂呑)’이고, 강제로 점령했다는 의미에서 ‘일제의 한국 강점’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경술국치’를 어떻게 부를까요? 일본은 대내외에 한국을 강제로 점령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조약의 명칭을 정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침략적인 성격이 너무 드러나는 ‘병탄’이라는 용어나, 두 나라가 형식적이나마 동등하게 하나의 나라로 합친다는 의미의 ‘합방(合邦)’이나 ‘합병(合倂)’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고심 끝에 일제는 ‘병합倂合’이란 용어를 새롭게 고안해 내는데요. ‘병합’이 한국을 일본 제국 영토의 일부로 삼는다는 의미가 ‘합병’보다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병합’은 한국이 아주 폐멸(廢滅)되어서 일본 제국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을 명확하게 하되, 그 어조가 너무 과격하지 않은 점을 고려한 용어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병합’은 물론이고 일제 스스로도 꺼려한 ‘합방, 합병’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쓰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병합’과 ‘합병’의 차이를 정확히 구별하기는커녕 ‘강점’ 혹은 ‘병탄’의 뜻조차 희석된 ‘합방’이란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오늘날 우리의 허약한 역사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용어의 의미와 중요성을 반드시 인지해야할 것 같습니다.

 

 

 

 

경술국치를 왜 공부해야할까?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굳이 강조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단순히 우리 민족이 독립운동을 펼치게 된 역사적 계기로만 경술국치를 기억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경술국치’의 배경과 과정, 결과를 통해 일본이 얼마나 철저하게 우리나라를 빼앗았는지 알아보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우리 역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녔으며 현재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생각하는 학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선조가 왜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 했는지, 그리고 오늘날에도 왜 ‘경술국치’가 한·일 양국 간의 민감한 사안이 되고 있는지, 나아가 우리뿐만 아니라 양국의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올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술국치와 관련된 주요 사건 및 조약

 

한일 의정서
1904년에 우리나라와 일본이 맺은 조약. 일본은 대한 제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황실의 안전을 위하여, 대한 제국은 이를 위한 일본의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일본에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하고, 이 협정의 취지에 위반되는 협약을 제 3국과는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은 이 조약을 이용해 우리나라의 많은 땅을 군용지로 차지하였습니다.

 

제1차 한일 협약
일본이 고문정치를 하기 위해 1904년에 우리나라와 강제로 맺은 협정. 외교 및 재정에 일본 정부가 추천한 일본 사람과 외국 사람을 고문으로 쓸 것, 일본의 승인 없이 다른 나라와 협약을 맺지 말 것등을 규정하였습니다.

 

을사늑약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1905년에 강제로 맺은 조약. 그러나 고종 황제가 끝까지 재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 무효의 조약입니다. '을사조약', '을사오조약', '제2차 한일 협약'이라고도 합니다.

 

정미7조약
1907년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빼앗기 위해 강행한 조약. 7개 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행정, 사법 사무를 통감부의 감독 아래에 두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합니다.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의 명의로 체결, 조인되었습니다.

 

기유각서
1909년 일본이 한국의 사법권 및 감옥 사무 처리권을 빼앗기 위해 체결한 외교 문서. 이완용과 소네 아라스케 통감 사이에 맺어졌습니다. 이 문서로 인해 법부와 재판소가 폐지되고, 해당 업무는 통감부의 사법청으로 옮겨졌습니다.

 

 

 

 

국가의 자주독립과 자유, 공존, 평화의 소중함 깨닫기

경술국치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술국치'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술국치의 배경과 원인, 과정, 결과 등을 명확하게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술국치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술국치를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준비해보았습니다.

  • 우리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원인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너무도 쉽고 분명할지 모릅니다. 일제가 무력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국권을 강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강대국 혹은 강자가 약소국 혹은 약자를 무력으로 침략해도 괜찮은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국가간·집단간·개인간 공존과 평화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그 원인을 일제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왜 우리는 일제에게 침략을 당했는지에 관해서도 다뤄봄으로써 내적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고작 100년 전 일입니다. 우리는 경술국치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일제는 어떻게 우리나라를 빼앗았을까?

여기에서는 일제가 강제로 맺었던 한일 의정서1904년·제1차 한일 협약1904년·을사늑약1905년·정미7조약1907년·기유각서1909년 등 각종 조약의 내용을 말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제가 얼마나 불법적·강압적으로 조약을 체결했는가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조약인 '을사늑약'과 ‘병합조약’의 불법·부당성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조약의 형식 문제가 아니라 일제의 우리나라 강점 및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치열하게 반일(反日) 저항 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제가 매우 주도면밀하게 우리나라를 침략했음에도 1910년에야 비로소 완전히 강점하게 된 중요 이유 중의 하나는 의병·의열 투쟁 등 우리가 끊임없이 저항 운동을 펼쳤던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반일 저항운동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 경술국치로 인해 우리는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까?

우리는 일제의 강점하에서 국토를 빼앗기고 징병·징용·군 위안부 등으로 강제 동원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말과 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다운 권리와 자유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로도 우리 삶 속에는 일제 잔재가 여전히 함께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매우 아픈 부분이지만, 너무 깊이 자리박혀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우리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제를 몰아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야만적인 무력 침략에 맞서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줄기찬 투쟁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또 앞으로도 이러한 일제 잔재들에 대한 문제나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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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정호

    2010.10.21 2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르고 까먹었던 내용들을 한번에 정리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옥수수를 고열로 튀겨서 빵하고 소리나도록 부풀린 뻥튀기를 빵콘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동네에는 마치 아프리카에서 당장이라도 이주를 하신듯한 할아버지 한분이 동네어귀에서 뻥튀기를 구우신답니다. 입에는 연신 호루라기를 물고는 뻥튀기를 여는 순간이 되면 놀라지 말라는 주의로 호루라기를 불어서 주변에서는 상당히 유명인사가 되었어요. 입이 심심할 때 주변을 지나다 흘린 뻥튀기 몇 개 주워 먹어도 후한 인심에 손바닥에 뻥튀기를 한움큼 주신답니다.

 

햇볕에 거슬려 피부가 마치 아프리카의 흑인처럼 검으튀튀한 할아버진 종일 뜨거운 뻥튀기 기계 앞에서 기구를 달궈서 콩이며 좁쌀이며

떡이며 튀겨 주민들에게 싸게 뻥튀기를 해준답니다, 그 뻥튀기가 솔직히 큰 돈이 되는 장사도 아니고, 아파트 한 귀퉁이 그 할아버지가

아니면 이젠 명맥이 끊겨 간신히 명절때나 되어야 구경할수 있는 뻥튀기죠. 작은 돈이지만 주민들이 오래도록 말려서 굳은 떡이며 콩이며 그것을 부풀려서 해로운 설탕이 가득한 과자를 대신하여 뻥튀기를 해놓으면 자연적인 먹거리가 되어 아버지가 금연을 할때나 가족들의 비만이 되는 군것질에 참 도움이 된답니다. 종일 햇볕이 내리 쬐며 뜨거운 가스불에 쪼그려 뻥튀기를 하며 얼마 되지 않는 수입으로 동네분들의 떡이며 콩이며 옥수수며 튀겨서 주민들 어릴적 배고픈 먹을거리를 대신하고 약간의 돈을 받곤 할아버진 하루 수입의 얼마를 기부를 하신답니다.

 

거창하게 기부왕이니 저축왕이니 이런 호들갑스런 타이틀은 달지 않아도 IMF 보다 더 살림이 팍팍하다는 요즘에 뻥튀기를 부풀려 어려운 불우이웃도 돕고 관내에 살림이 어려운 독거노인에게 무료로 뻥튀기를 튀겨서 드리기도 하고 소년 소녀 가장에게는 자루채 떡이며 콩을 튀겨서 준답니다. 항상 그 뻥튀기 할아버지를 뵐때 마다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하는데 할아버지의 얼마 되지 않는 수입으로 이렇게 주변에 어려운 이웃도 돕고 이제는 자취를 잃어 가는 뻥튀기를 할아버지가 지키는 모습을 보니 한편으론 정겨움에 또 다른 한편으론 할아버지가 병이 들어 뻥튀기를 하지 않으면 이젠 영영히 마을에서 뻥이요 소리를 듣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작지만 뻥튀기 할아버지의 미담이 구청에 소개되어 표창장을 여러번 받았고, 동네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들이 할아버지를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일대에서는 상당히 유명하신 분이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뻥튀기를 돌려서 항상 호루라기를 불어서 주변을 걷는 행인에게 귀를 막으라는 신호를 준답니다, 처음에 이사 왔을때 어찌나 뻥하는 소리가 우뢰와 같던지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심장이 멈추는 듯 굉장히 소리가 컸습니다.

 

이제 연세가 80대의 노구의 몸으로 젊어서는 한국전에 참전도 하셨고 게다가 월남전에 다녀오셔서 누구보다 전쟁의 상처와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하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국가 유공자라는 호들갑스런 호칭을 벗어 던지고 매일 시장통에 쑤시고 결리는 몸이지만 주민을 위해 뜨거운 뻥튀기 기계를 돌리며 주민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많은 것을 베푸신답니다.

 

별것 아닌 고작 뻥튀기라고 하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언제고 사라질겁니다. 피자며 치킨에 우리의 전통적인 과자가 자리를 잃고 있는데 이런 분들이 있어서 우리들의 주전부리가 살아 있고 건강한 간식문화를 지킬 수 있겠죠. 본인은 별것 아니라며 사양하지만 항상 꺼트리지 않고 뻥튀기 불을 지펴 어려운 이웃도 돕고 아파트와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그런 할아버지가 참으로 나라를 아끼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성으로 돌보는 훌륭한 사람 같다고 항상 가슴으로 느낍니다. 몸은 구부정한 노령의 몸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과 청춘에 버금가는 노익장으로 항상 웃음으로 가득한 뻥튀기를 뻥하고 터트려서 웃음꽃이 활짝 터진답니다.

 

우리는 항상 뻥튀기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경제도 사회도 움츠리며 모두가 힘들다며 불평하는 이때 투박한 뻥튀기 기계로 수입이 크지는 않지만 작은 돈으로 항상 누군가를 위하는 이런 분들로 하여금 우리가 편하게 살아가는 이유겠지요. 오늘도 뻥하고 터트리는 행복한 뻥튀기 소리에 주변을 지나다 뻥튀기 몇알을 손바닥에 올려다 놓고 입으로 옮기며 행복의 맛을 느낍니다.

 

할아버지 건강하시고 오래도록 뻥하고 주민과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터트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위 후기는 지난 6월 나라사랑 실천 후기 공모 우수작으로 명랑소녀(familya)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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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승하

    2017.09.03 2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박 맜있게생겼어요.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고소한 떡볶이 냄새가 코끝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웃는 얼굴로 이웃들을 맞이해주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우박이 떨어지는 날에도 할머니의 떡볶이 포장마차는 문을 닫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일하시니, 우리 할무이 부자되시겠어요?" 동네사람들의 농담섞인 질문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순간까지는 일을 쉴 수가 없다고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십니다.

 

 

 

포장마차를 열지 않는 시간엔 온 동네를 다니시며 빈 병과 폐지를 모으십니다.

손주들 과자 값이라도 더 벌려고 하신단 말씀을 듣고 의아할 수 밖에 없었죠.

제가 알기론 할머니께선 가족 없이 홀로 사시고, 손주 뻘 되는 아이들 모습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사 온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제가 모르는 걸까 싶어,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떡볶이 할머니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동네에 오래 사신 듯한 아주머니들께서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꺼내시더군요.

 


저 할머니야말로 존경 받아 마땅한 분이시지, 하시면서 말이죠.

 


떡볶이를 팔고 폐지를 주워 모으신 돈을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 가족들 지원해주시는 데 쓰시고,

험한 일을 하다 다친 사람들 치료비도 보태주시고, 부모 없는 아이들 생활비도 건네주시고.

그렇게 훌륭하신 분 드물다며 다들 입 모아 칭찬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할머니께는 친손자가 없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나 뿐인 아들도 오래 전 세상을 떠나 지금은 할머니 혼자 계시는 게 맞다고 합니다.

 


6.25 때 갓난아기였던 아들과 단 둘이 피난 내려와 일평생 자식 뒷바라지만 하셨는데,

98년에 외환위기로 아드님이 하시던 사업이 망하면서 건강이 나빠져 그만 안타까운

사별을 하셨다고 하네요.

 


그 후 아드님의 사업체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형편을 봐주시면서

자연스레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이곳에 터전을 잡으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별 인연이 없는 외국 사람들에게 그렇게 정성을 쏟으시는 이유가 무얼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할머니의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오래도록 이것저것 먹는 시늉을 하다가 슬쩍 여쭤보았죠.

 


사람들은 할머니께서 아들을 먼저 보내신 일이나 나눔을 실천하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또 궁금해 했으나, 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이토록 마음 쓰시는지는 거의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절, 처음엔 좀 의아하게 보시더군요.

 

 

 

“6.25 때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도와줬어요.”

 


“네? 그 사람들이라면….”

 


“미국이나 저기 크고 잘 사는 나라들도 엄청 도움 줬지만, 그렇게 부유하지도 않은 작은 나라에서도

쌀이니 뭐니 참 많이 보내줬다고. 얼마나 고마워 그래. 그 사람들 먹을 밥 한 끼 아껴서 생판 모르는 사람 도와준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고맙고 또 나도 뭐라도 주고 싶고 그래.”

 

 

 ▲북한에 억류된 UN군 포로들

 

 

머리를 얻어맞은 듯 순간 멍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선행을 하시는 줄은 짐작도 못 해거든요.

 

“우린 대한민국 사람이잖아. 한국 땅에 와서 어렵게 사는 외국인들 조금씩이나마 도와주고 챙겨주면

그게 다 우리나라로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다 늙은 할미라 다른 건 할 수가 없고 그저 이런 거로나.”

 


명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할머니께선 아이와 함께 사는 외국인 근로자들 집에 쌀을 보내주신다고 합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떡볶이를 파시고, 빈 병과 폐지를 모으시고, 그렇게 아끼며 사셨던 할머니께서

그리 모으신 돈을 어려운 사람들 위해 아낌없이 내놓으시는 이유가 나라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젊은 제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일깨워주신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모으고 홍보를 합니다.

지난 날 우리가 힘들었을 때 도움 받았던 것처럼, 힘든 일을 겪는 타국에 인도적 지원을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세계인에게도 존중과 사랑을 받을 수 있길 모두가 바람합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가진 이 생각들을 실천하려고 하면 막막한 것도 사실입니다.

난 대단한 능력도 없는데, 애국심은 늘 가지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런 가슴에 할머니께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켜주셨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고,

나라사랑은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평생에 걸쳐, 언제 어디서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죠.

 

 

 

 


할머니의 포장마차 위로 까치 한 마리가 경쾌하게 울며 지나갔습니다.

국경일이 아니라도 늘 정갈하게 손질되어 걸린 태극기가 오늘따라 더 빛나 보입니다.

아마 내일은 우리나라에 좋은 소식들이 더 많이 찾아올 것만 같습니다.

 

 

 

위 후기는 지난 6월 나라사랑 실천 후기 공모 우수작으로 유(gracewood)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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