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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6·25전쟁 호국영웅'에 해당되는 글 76건

  1. 2017.03.02 3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 김형우 해병대 삼조
  2. 2017.02.02 2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 매튜 리지웨이 美 육군대장
  3. 2017.01.02 1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 이기협 공군 대령


“살신성인의 군인정신, 월암리의 꺼지지 않을 빛이 되다.”


오늘은 6‧25전쟁 당시 해병 독립 제5대대 분대장으로 1951년 6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김포지구 월암리 전투에 참여한 3월의 6‧25전쟁 영웅 ‘김형우’ 해병대 삼조(현 하사 계급)를 소개하겠습니다.



6‧25전쟁 당시 김형우가 속해있던 독립 제5대대는 육군 제1사단의 작전지시에 따라 월암리에 정찰대 본부를 두고 개성 방면의 철저한 수색을 감행하며, 장애물 설치와 진지를 보강하는 등 방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는데요. 긴박하게 수색하던 제5대대에 미 제1군단장 및 육군 제1사단장의 “수색정찰의 철저여하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티끌만한 움직임도 놓치지 마라!”라는 특별 지시가 거듭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1951년 7월 23일 2개 소대로 편성된 정찰대가 개풍군 월암리 지역에서 적 1개 연대병력에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에 김형우는 결사대에 자원, 5명의 대원을 이끌고 총탄이 빗발치는 포위망을 뚫으며 침착하게 적 앞 10미터 이내까지 접근,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본대의 철수를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형우와 5명의 결사대원의 실탄이 떨어지게 되고, 그들은 마지막 수류탄을 던져 15명의 적을 사살하고 과감히 돌진,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일당백의 육박전을 벌이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형우는 끝내 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하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이런 고인의 공적을 기려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충무무공훈장 (출처: 대한민국 상훈)


자신들의 목숨을 바치며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던 정찰대의 퇴로를 열어 수많은 전우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한 김형우와 결사대. 그들의 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꺼지지 않을 군인정신의 빛이며 귀감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김형우 해병대 삼조와 같은 호국영웅의 헌신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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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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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정전협상을 이끈 매튜 리지웨이 美 육군대장이 2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되었는데요. 대한민국에 평화를 안겨다준 매튜 리지웨이 美 육군대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까요?



“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다”


1950년 11월 25일 시작된 중국군의 제2차 공세. 중국군의 인해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밀려 38 도선으로 철수한 유엔군에는 패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패배의식이 만연해있던 최악의 상황에서 1950년 12월 미 제8군사령관으로 매튜 리지웨이가 부임했는데요.


▲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는 UN군과 국군 (출처 : 국가기록원)


그러나 리지웨이의 부임에도 불구하고 유엔군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이듬해 1월 24일까지 지속한 중국군의 제3차 공세로 평택에서 삼척을 잇는 선까지 또다시 물러서게 됩니다.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 유엔군, 이런 위기상황에서 곧 한반도를 포기하고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은 대한민국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오히려 리지웨이 美 육군 대장은 포기하지 않고 전의를 불태웠고, 이내 전세를 역전시키게 되는데요.


전세 역전의 시발점은 리지웨이가 전개한 선더볼트 작전이었는데, 그 내용은 1951년 1월 25일부터 작전개념을 수색정찰에서 지역 확보로 바꾸고 여러 병종이 거대한 팀워크를 이루며 조직적으로 반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전투현장을 지휘하며 솔선수범했던 선더볼트 작전. 이를 통해 유엔군은 중국군 인해전술의 한계점을 파악하였고, 땅에 떨어졌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하는 등 패배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유엔군은 38 도선으로 다시 진격, 한강 남안을 확보하였습니다.


이후 맥아더의 뒤를 이어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되어 6·25전쟁을 명예롭게 끝내기 위한 정전협상을 이끌었던 매튜 리지웨이는 1993년 98세의 나이로 미국 피츠버그 자택에서 영면했으며, 그의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국땅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이 땅의 자유 수호를 위해 노력한 매튜 리지웨이 美 육군대장. 그와 같은 6‧25전쟁 호국영웅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들의 희생을 꼭 가슴 깊이 새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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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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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분은 목숨을 건 사명감으로 대한민국 창공을 지켜낸 이기협 공군대령입니다.


목숨을 건 사명감으로 대한민국 창공을 지키다


이기협

(1926 ~ 1955.4.23)

상훈 : 을지무공훈장, 수훈비행십자상 등


이기협 공군 대령은 1948 9월 조국 창공에 대한 기상과 열정을 품고 항공병 2기생으로 입대했습니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6 28, 당시 이등상사였던 그는 미 군사고문단의 L-5 연락기 2대가 여의도기지에 방치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게 되는데요.

당시, 전시에 아군의 비행기 한대의 가치는 정말 컸습니다. 아군기 한 대라도 더 보존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며 이기협 공군 대령은 적 대공포의 위협을 무릅쓰며 수원기지에 연락기를 무사히 안착시켰습니다.



이때부터 뛰어난 리더십을 인정받은 그는 1950 9월 공군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이후 F-51 전투기조종사 전환교육을 받고 강릉 제10전투비행단에 배속되어, 지리산 공비토벌을 위한 1951 8월의 항공지원 작전, 1952 1월 승호리 철교파괴 작전 등에 편대원으로 참가했습니다.  특히 승호리 철교 파괴 작전 때는 저공비행의 극한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3, 북한의 전쟁잠재력을 해체하기 위한 송림 공업도시 폭격, 8월 평양 대폭격, 송림제철소 폭격작전 등 6·25전사에 빛나는 주요 전투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1955 4, 미국에서 제트전투기 조종교육을 받던 중 안타깝게도 사고로 순직하고 말았습니다.

 


정유년 첫 달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이기협 공군 대령은 6·25전쟁 중 그칠 줄 모르는 사명감으로 F-51 전투기 총 144, 경항공기 100여 회의 출격을 통해 적 전방 증원 차단, 핵심시설 파괴, 후방보급로 차단 등 어느 누구보다 큰 전공을 세웠던 호국영웅입니다. 목숨을 건 사명감으로 대한민국 창공을 지켜낸 호국영웅 이기협 공군대령을 꼭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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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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