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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6·25전쟁 호국영웅'에 해당되는 글 82건

  1. 2017.09.01 9월의 전쟁영웅 – 김용식 육군 일등병
  2. 2017.08.01 8월의 전쟁영웅 – 구르무 담보바 (2)
  3. 2017.07.03 7월의 6.25전쟁영웅 - 조지 리비 (2)



2017년 9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인물은 기계-안강지구전투와 안강 시가지전투에서 용감하게 북한군에 맞서 싸웠던 김용식 육군 일등병입니다.


1950년 8월부터 9월까지 전개되었던 기계-안강지구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던 기계와 안강 등지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한 전투입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은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북한군에 밀려 낙동강선까지 후퇴하였습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8월 초부터 마산-왜관-영덕에 이르는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여 방어태세에 임했는데요. 


▲ 김용식 육군 일등병


당시 군 지휘부는 기계-안강지구전투 과정에서 군사적 요충지인 비학산을 탈환하고자 김용식 육군 일등병이 소속되어 있던 부대에 습격 임무를 내렸습니다. 


▲ 6.25전쟁 출정하는 육군의 모습 (출처: 세상의 모든 정보 블로그)


당시 김용식 일등병은 국군 수도사단 17연대 소속으로 부대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이었지만, 고참병들도 두려워하는 돌격작전에 자원하였습니다. 비록 전투 경험은 거의 없었으나, 그는 조국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용기로 침투대열의 선봉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김용식 일등병은 적 경계병을 신속히 처치하고 기습사격과 과감한 수류탄 투척으로 적 진지를 초토화시켰으며, 적 군관 1명을 포함한 15명을 생포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북한군 제766 유격부대는 해체되었습니다.


▲ 전투 중인 한국군의 모습 (출처: 오늘 생각을 저널로그 홈페이지)


▲ 북한군 유격부대의 모습 (출처: 동고동락블로그)


이후에도 김용식 일등병의 활약은 이어졌습니다. 그는 1950년 9월 19일, 안강 시가지전투에서 적에 관한 첩보를 수집하는 척후병 임무를 맡아 정찰하던 중, 북한군의 만행을 목격하게 됩니다. 의분과 정의감에 불탄 김용식 일등병은 소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군 6명과 교전을 벌여 모두 사살하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전 도중, 김용식 일등병은 적의 탄환에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 6.25전쟁 당시 국군의 모습 (출처: 국방일보)


국군은 김용식 육군 일등병의 용기와 활약에 힘입어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기점으로 반격을 개시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국가 수호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꽃다운 청춘을 바친 김용식 일등병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적과 싸우며 활약했던 김용식 육군 일등병. 우리는 그를 포함하여 낙동강 방어선에서 산화한 호국영령의 투혼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 기계-안강지구전투 알아보기 mpva.tistory.com/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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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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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한국을 돕기 위해 유엔 회원국 16개국이 전투부대의 파병을, 5개국이 의료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유엔에 통보하였습니다. 이 중 병력을 지원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유일한 파병국이었는데요.
1,2차 세계대전 동안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았던 에티오피아는 가난한 나라였지만, 하일레 셀라시 황제는 국제 사회에서 외면됐던 과거를 떠올리며 “우리와 똑같이 식민지를 겪은 한반도를 위기에서 구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1951년, ‘상대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겨나 궤멸시키는 대대’라는 의미의 ‘강뉴부대’의 에티오피아 전사들이 한반도로 파병되었습니다.


▲ 강뉴부대의 모습 (YES 블로그)

 

구르무 담보바 에티오피아 육군 이등병은 당시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원으로 6.25전쟁에 두 차례 참전하였습니다. 그가 31세가 되던 1951년, 그는 하일레 셀라시 황제의 명을 받아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사명을 안고 한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반동총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던 에티오피아 최고의 사수였습니다.

 

▲ 무반동총을 들고 있는 구르무 담보바(왼쪽)와 강뉴전사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구르무 담보바가 싸워야 했던 것은 적군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눈보라와 혹한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구르무 담보바를 비롯한 에티오피아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텐트와 동굴생활을 하며 격전을 펼쳤습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구르무 담보바는 강원도 화천, 철원 일대 700고지, 낙타고지, 요크고지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 담보바 이등병이 받은 각종 훈장들(출처: 월드투게더)

 

하지만 불행하게도 구르무 담보바는 적과의 교전 중 허벅지와 엉덩이 관통상을 입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요. 그가 고국에서 진통제로 고통을 달래고 있을 무렵, 다시 한국으로의 파병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 6·25전쟁 당시 야전 병원의 모습 (출처: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 남아있는 전쟁터에서의 참혹한 기억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두 번째 파병을 결심합니다.

 

“고국에서 진통제로 고통을 달래고 있을 무렵 다시 파병 소식이 알려졌죠. 전쟁에 대한 참혹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지만 고통 받는 한국인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대한민국 정부는 6·25전쟁에 두 번이나 참전하여 고귀한 인류애를 보여준 구르무 담보바 이등병에게 6·25전쟁 종군기장을 수여했습니다.


▲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한글과 영문으로 된
6.25전쟁 종군기장 수여증 (출처: 월드투게더)

 

1974년 쿠데타로 에티오피아는 공산화되면서 구르무 담보바를 비롯하여 6.25전쟁에 파병되었던 영웅들은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지독한 차별이 뒤따랐지만, 구르무 담보바는 지구 반대편의 한국인들을 도와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했던 기억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 구르무 담보바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 (출처: 월드투게더)

 

현재 에티오피아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노병 270여 명이 생존해 있습니다. 이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요?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바다 건너 머나먼 타국까지 도움의 손길을 보내 주었던 구르무 담보바를 포함한 참전용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유일한 6.25전쟁 참전국, 에티오피아와 용맹한 1,185명의 강뉴부대 전사들을 기억해주세요.

 

*참고사이트
나라사랑배움터 edu.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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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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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광

    2017.08.17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 /MBC 보도내용)
    https://youtu.be/yLJXF_BRzKw 12,600여명의 절규를 들어보세요~
    KBS 시청자 칼럼 보도내용 2017.4.24

    https://youtu.be/V9U_WEbtU_8
    MBC 시사매거진2580 2017.6.25

    2017.08.15. 16:30

  2. 청광

    2017.08.17 1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유공자는 3대까지 우대하고 6.25전쟁 희생유공자들에게는 몇대까지 우대 할 것인지 대통령님은 분명히 답변하여야 할것입니다.
    6.25전쟁 희생 유공자들은 11만8천원으로 기초생활유지 할 수 있겠습니까? 보훈처장 피우진님도 면담 거절하고 뭐하는 사람들인지 우리 6.25전몰 군경미수당 비상대책위원회에 명쾌한 답변을 촉구합니다.


6.25전쟁 발발 이후 1950년 7월 20일, 대전 일대에서 미 제24사단과 북한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전투공병대대 소속이었던 조지 리비(George D. Libby) 중사 역시 이 대전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산악철수가 불가능한 부상병 한 명 한 명을 모두 차량에 태워 후방으로 철수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는데요.


▲ 대전에서 철수하는 미군

(출처: 전쟁기념관)


북한군의 사격으로 희생자가 계속 발생하였고, 더 이상의 전진이 불가능한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조지 리비 중사는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합니다. 때 마침 철수 중이던 포병 M-5 포차를 발견한 그는 운전수를 불러 세우고 부상병들을 태우도록 명령합니다. 그리고 살신성인의 리더쉽을 발휘하여 운전병을 자신의 몸으로 감싼 후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책임지고 보호한다. 전속력으로 달려라!” 


▲ 조지 리비 중사


▲ M-5 고속 트랙터


조지 리비 중사는 포차의 속력을 최대로 올려 달리면서도 길가의 부상병들을 보면 한 명도 빠짐없이 포차에 태우고 철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기관단총으로 도로 주변의 적과 치열한 교전을 벌여나갔습니다.


자신의 몸을 방패삼아 운전병을 보호한 채 적들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며 동료들을 구출하던 조지 리비 중사는 전신에 수많은 총상을 입고 안타깝게 전사하였습니다.


▲ 미국 최고 훈장 Medal of Honor


조지 리비 중사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동료들을 구해낸 공로로 6.25전쟁 최초로 미국 최고 무공훈장인 Medal of Honor를 수여받았습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동료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희생의 군인정신을 보여주었던 조지 리비 중사. 그의 뜨거운 전우애와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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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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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광

    2017.08.17 1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유공자는 3대까지 우대하고 6.25전쟁 희생유공자들에게는 몇대까지 우대 할 것인지 대통령님은 분명히 답변하여야 할것입니다.
    6.25전쟁 희생 유공자들은 11만8천원으로 기초생활유지 할 수 있겠습니까? 보훈처장 피우진님도 면담 거절하고 뭐하는 사람들인지 우리 6.25전몰 군경미수당 비상대책위원회에 명쾌한 답변을 촉구합니다.

  2. 청광

    2017.08.17 1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 /MBC 보도내용)
    https://youtu.be/yLJXF_BRzKw 12,600여명의 절규를 들어보세요~
    KBS 시청자 칼럼 보도내용 2017.4.24

    https://youtu.be/V9U_WEbtU_8
    MBC 시사매거진2580 2017.6.25

    2017.08.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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