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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원

(1928.2.11 - 1951.11.29)

상훈 : 충무무공훈장


현충원에는 조국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분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에 증조부, 조부, 아버지, 아들, 무려 4대가 함께 한 가문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이장원 해병 중위의 가문인데요. 이러한 가풍에 따라, 이장원 해병 중위 역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던 6•25전쟁 중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2016년 11월의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이장원 해병 중위를 지금부터 만나볼까요?



“무적해병, 목숨을 다할 때까지 적의 해상보급로를 차단하라!”


이장원 해병 중위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해병사관후보생 5기로 입대합니다. 그 해 9월 소위로 입관한 후, 적에 대한 후방교란과 해안봉쇄작전을 수행하는 해군 엄호의 임무를 맡게 되고, 이에 해병 독립 42중대 소속 황토도 파견소 대장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당시의 황토도는 함경남도 영흥만 주변에 있는 아군의 해상봉쇄선상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북한 이곳을 장악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며, 기습 공격을 시도하곤 했는데요. 두 차례의 기습공격을 이장원 해병 중위의 부대가 막아내자 북한은 끝내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로 결심합니다.


1951년 11월 29일, 북한군은 1개 대대라는 대규모 병력으로 황토도를 향해 공격을 실시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자존심이 걸린 상륙작전으로, 점점 매서워지는 공격에 맞서 이장원 해병 중위와 부대원들은 치열하게 싸웠지만 무전기마저 파괴되어 아군의 지원조차 기대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되죠. 


그러나 이장원 해병 중위와 소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교전을 펼쳤고, 북한군은 결국 아군진지에 집중 포격을 실시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포격에 이장원 해병 중위와 그의 부하 3명은 전사하게 되었지만, 이 장면을 눈 앞에서 보고 분노한 이장원 해병 중위의 소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을 격멸하고 진지를 사수하게 됩니다. 3차례에 걸쳐 황토도를 점령하려 했던 북한군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고, 적들의 해상보급로가 차단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런 이장원 해병 중위를 전공을 인정하여,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이장원 해병 중위는 이후 증조부 이남규 선생과 조부 이충구, 아버지 이승복에 이어 4대가 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국난이 있을 때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숭고한 정신이 이어왔던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11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이장원 해병 중위의 가문과 희생 정신을 우리는 더욱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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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과 싸웠던 것은 국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경찰들 역시 그 누구보다 앞장 서서 우리나라의 국민들을 수호하였는데요, 특히 ‘지리산의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북한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경찰도 있었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2016년 10월의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강삼수 경찰 경위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끝까지 지리산을 지켜낼 것입니다.”


강삼수 경위는 1923년 2월 20일에 태어나 1948년 4월, 산청경찰서의 순경으로 채용되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강삼수 경위는 경찰관으로서 주민들과 지리산을 지켜내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끝없이 남침을 계속해가던 북한군은 1950년 9월 15일에 시행된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수복으로 인해 남쪽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오갈 데도 없던 그들은 지리산에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며 자신들의 목숨을 이어가려 했지만 그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지리산은 강삼수 경위가 지켜내고 있던 지역 중 하나였기 때문이죠. 


강삼수 경위는 이 무렵 사찰유격대장으로 임명되어 지리산에 숨어있는 북한군 무장세력과 빨치산을 소탕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는데요, 특히 산청경찰서 사찰유격대장에 재직 중이던 1951년 11월에는 국수봉에 북한군이 집결 중이라는 제보를 받고, 새벽 1시 경에 퇴로에 매복조를 배치한 뒤 기습하여 23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10명 내외의 적은 인원의 부대였지만, 주변 산세의 지형, 기물과 지리를 철저히 활용한 강삼수 경위와 부대원들은 북한 정예군 출신을 비롯한 셀 수 없는 적과의 전투에서도 계속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강삼수 경위와 부대는 ‘지리산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북한군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대상으로 자리잡았죠.


강삼수 경위와 그의 부대는 전쟁 중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총 62회의 크고 작은 전투에 임하게 되었고, 필승의 신화를 이어갔는데요, 국군의 정예병력 못지않은 그들의 놀라운 전공은 지리산이라는 지역 자체가 안정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산청서 출신 호국영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삼수 회의실’

이미지 출처 : 산청경찰서


이러한 공헌을 인정 받은 강삼수 경위는 화랑무공훈장, 방위포장 등 41회에 걸쳐 훈포장을 수상했고, 산청경찰서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강삼수 회의실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강삼수 경위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아실 수 있겠죠? 10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강삼수 경위, ‘지리산 귀신’으로 불렸던 그의 이름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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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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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첩보부대라고 하면 어떤 것을 먼저 떠올리시나요?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 본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에도 영화처럼 놀라운 첩보 능력으로 6•25전쟁을 종횡무진한 호국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9월의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김동석 대령! 대한민국 4대 전쟁영웅으로도 불리는 김동석 대령을 지금부터 만나볼까 합니다.



김동석 대령은 1948년 12월,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 1년 후인 1949년에 졸업해 소위로 임관했고, 곧바로 수도경비사령부 제17연대 11중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동석 대령은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었고, 북한군 박성철이 지휘한 제15 사단 45연대와 화령장 전투에서 적군을 전멸시키는 공을 세워 전 연대원이 1계급 특진의 영광을 누리게 할 정도로 지휘관으로서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9월에는 미8군 정보연락장교로 파견, 서울 탈환작전을 위한 첩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육군 첩보부대(HID) 지구대장을 역임하게 되면서 이 작전에 결정적인 첩보를 수집하는 전과를 올렸고, 특히 맥아더 장군에게 그의 정보가 직접 전달되어 서울 탈환과 북진 작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김동석 대령을 “디스 맨(This man)”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신임했고, 이로 인해 유엔군 내에서 한국군의 정보작전 능력이 크게 인정받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후 김동석 대령은 육군첩보부대 1사단 지구대장을 거쳐 1952년부터 1961년까지 동해안 첩보업무를 담당한 제 36지구대를 이끌며 다양한 공적을 올렸고, 휴전 이후에도 첩보 작전과 북파 공작 업무를 진두지휘하며 1954년에는 1954년 2월 강원도 통천 부근 원산만에서 인민군 사단장 이영희를 생포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외의 그의 전공은 셀 수 없지만 첩보부대의 특성상 그 공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2년 미국정부는 ‘김동석 대령’의 알려지지 않은 전쟁 중의 공적을 인정해 ‘전쟁영웅’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김동석 대령은 2009년 3월 26일 향년 86세로 별세해, 지금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가수 진미령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김동석 대령! 그의 업적은 비록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공적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활약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9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김동석 대령! 꼭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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