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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과 싸웠던 것은 국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경찰들 역시 그 누구보다 앞장 서서 우리나라의 국민들을 수호하였는데요, 특히 ‘지리산의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북한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경찰도 있었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2016년 10월의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강삼수 경찰 경위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끝까지 지리산을 지켜낼 것입니다.”


강삼수 경위는 1923년 2월 20일에 태어나 1948년 4월, 산청경찰서의 순경으로 채용되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강삼수 경위는 경찰관으로서 주민들과 지리산을 지켜내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끝없이 남침을 계속해가던 북한군은 1950년 9월 15일에 시행된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수복으로 인해 남쪽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오갈 데도 없던 그들은 지리산에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며 자신들의 목숨을 이어가려 했지만 그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지리산은 강삼수 경위가 지켜내고 있던 지역 중 하나였기 때문이죠. 


강삼수 경위는 이 무렵 사찰유격대장으로 임명되어 지리산에 숨어있는 북한군 무장세력과 빨치산을 소탕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는데요, 특히 산청경찰서 사찰유격대장에 재직 중이던 1951년 11월에는 국수봉에 북한군이 집결 중이라는 제보를 받고, 새벽 1시 경에 퇴로에 매복조를 배치한 뒤 기습하여 23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10명 내외의 적은 인원의 부대였지만, 주변 산세의 지형, 기물과 지리를 철저히 활용한 강삼수 경위와 부대원들은 북한 정예군 출신을 비롯한 셀 수 없는 적과의 전투에서도 계속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강삼수 경위와 부대는 ‘지리산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북한군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대상으로 자리잡았죠.


강삼수 경위와 그의 부대는 전쟁 중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총 62회의 크고 작은 전투에 임하게 되었고, 필승의 신화를 이어갔는데요, 국군의 정예병력 못지않은 그들의 놀라운 전공은 지리산이라는 지역 자체가 안정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산청서 출신 호국영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삼수 회의실’

이미지 출처 : 산청경찰서


이러한 공헌을 인정 받은 강삼수 경위는 화랑무공훈장, 방위포장 등 41회에 걸쳐 훈포장을 수상했고, 산청경찰서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강삼수 회의실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강삼수 경위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아실 수 있겠죠? 10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강삼수 경위, ‘지리산 귀신’으로 불렸던 그의 이름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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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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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첩보부대라고 하면 어떤 것을 먼저 떠올리시나요?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 본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에도 영화처럼 놀라운 첩보 능력으로 6•25전쟁을 종횡무진한 호국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9월의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김동석 대령! 대한민국 4대 전쟁영웅으로도 불리는 김동석 대령을 지금부터 만나볼까 합니다.



김동석 대령은 1948년 12월,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 1년 후인 1949년에 졸업해 소위로 임관했고, 곧바로 수도경비사령부 제17연대 11중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동석 대령은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었고, 북한군 박성철이 지휘한 제15 사단 45연대와 화령장 전투에서 적군을 전멸시키는 공을 세워 전 연대원이 1계급 특진의 영광을 누리게 할 정도로 지휘관으로서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9월에는 미8군 정보연락장교로 파견, 서울 탈환작전을 위한 첩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육군 첩보부대(HID) 지구대장을 역임하게 되면서 이 작전에 결정적인 첩보를 수집하는 전과를 올렸고, 특히 맥아더 장군에게 그의 정보가 직접 전달되어 서울 탈환과 북진 작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김동석 대령을 “디스 맨(This man)”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신임했고, 이로 인해 유엔군 내에서 한국군의 정보작전 능력이 크게 인정받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후 김동석 대령은 육군첩보부대 1사단 지구대장을 거쳐 1952년부터 1961년까지 동해안 첩보업무를 담당한 제 36지구대를 이끌며 다양한 공적을 올렸고, 휴전 이후에도 첩보 작전과 북파 공작 업무를 진두지휘하며 1954년에는 1954년 2월 강원도 통천 부근 원산만에서 인민군 사단장 이영희를 생포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외의 그의 전공은 셀 수 없지만 첩보부대의 특성상 그 공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2년 미국정부는 ‘김동석 대령’의 알려지지 않은 전쟁 중의 공적을 인정해 ‘전쟁영웅’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김동석 대령은 2009년 3월 26일 향년 86세로 별세해, 지금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가수 진미령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김동석 대령! 그의 업적은 비록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공적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활약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9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김동석 대령! 꼭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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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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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에 실행되었던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판세를 바꾼 획기적인 시도였는데요, 

이 작전은 얼마 전 영화로 개봉되었을 만큼 역사적인 의미가 매우 깊습니다. 그런데, 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배경에는 인천항 입구에 위치한 덕적도, 그리고 영흥도 탈환에 일조한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의 활약이 있었답니다. 8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를 지금부터 만나보도록 할까요?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를 확보하라!”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1930년 1월 28일,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1949년 1월 1월, 해군 신병 12기로 입대하였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곧바로 전장에 투입되어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해 8월, 북한군은 연안 가까이에 있는 일부 도서를 점령했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일반 주민을 학살했고, 또한 아군 함정의 동정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이곳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그대로 놔두면 해군의 상황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물론, 당시 유엔군이 시도하려던 인천상륙작전 역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1950년 8월 15일, 유엔군은 아군이 상륙할 곳에 대한 정찰과 작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서해안 주요 도서를 탈환해 기점을 확보해야 한다고 극동해군사령부에 건의했습니다. 해군은 정보 수집과 교두보 확보를 위해 함정의 승조원으로 구성된 상륙부대(육전대)를 편성했고,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 작전’을 전개하게 됩니다. 덕적도의 위치 상 인천항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만큼,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덕적도를 가장 먼저 확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덕적도, 영흥도, 인천항의 위치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도


이에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해군 1함대에서 차출, 육전대 1소대 1분대장으로 참전하였고, 8월 18일에 덕적도를 향해 떠나게 됩니다. 아군의 함포지원을 받으며 덕적도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산악고지를 도주하던 북한군을 격파하고 덕적도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목표인 영흥도 탈환 작전을 전개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죠. 


8월 20일, 영흥도로 진입한 해군 육전대는 북한군에게 맹공격을 퍼부으며 국군 포로 4명을 구출했습니다. 북한군은 이미 덕적도를 빼앗긴 상황이었기 때문에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영흥도 자체가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거점이었던 만큼,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를 비롯한 육전대는 끝까지 적을 몰아세웠습니다. 


추격 중 은신처를 발견한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부하들의 전진을 우선 정지시킨 후, 수류탄과 함께 엄호를 받으며 단독으로 은신처에 돌진했습니다. 첫 번째 수류탄을 성공적으로 투척하고, 두 번째 수류탄을 던지려던 순간,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의 가슴에 적의 탄환이 관통하였습니다. 분대장이던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가 총탄에 맞아 쓰러지자 이삼재 부분대장이 이를 대신해 또다시 수류탄을 들고 돌진했고, 적의 집중사격으로 그마저 쓰러지자 전 분대원들은 일제히 적진으로 돌격했습니다. 이들의 공격으로 해군은 영흥도를 완전히 탈환했고, 덕적도와 영흥도의 탈환은 9월 15일에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에 기여했던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에게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지금도 해군 유도탄고속함 15함(박동진함)에 이름이 붙을 만큼, 호국영웅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 숭고한 희생과 정신을 오늘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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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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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09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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