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4,878,054
  • Today | 1,018
  • Yesterday | 4,614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 22개국(물자지원국 포함)의 유엔 연합군의 활약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올해로 67주년을 맞는 6.25전쟁을 계기로, 한국과 유엔 참전국들 간의 끈끈한 유대와 인연을 미래세대로 이어나가기 위해 국가보훈처가 의미 있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어떤 행사일까요? 함께 살펴보시죠!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67주년을 맞이하여 유엔 참전국 22개 나라의 참전용사 후손 등 대학생 110명을 초청하여 6월 24일(토)부터 30일(금)까지 6박 7일 간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를 개최합니다!



2009년도부터 시작된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는 전후 세대에게 참전 세대의 교훈을 전해주고 있는데요. 특히 이번 평화캠프는 6월 대학생 캠프와 7월 교사 캠프로 2회에 걸쳐 진행됩니다.


대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팀미션과 체험활동으로 진행되는 이번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각국에서 참가한 학생들은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들을 순차적으로 체험하며 대한민국의 분단현실을 깨닫고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의 우애와 신의를 다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 2016년 진행한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당시 사진



평화캠프 주요일정은 25일(일) 발대식을 시작으로 26일(월)에 국립중앙박물관을 견학하고 한복체험을 하게 되며, 27일(화)에는 비무장지대평화누리길에서 자전거타기와 제3땅굴 및 도라전망대 견학, 28일 국립현충원에서 참배하고 전쟁기념관을 견학하며, 29일 경복궁과 인사동 투어를 합니다. 





▲ 2016년 진행한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당시 사진


중간중간 서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팀미션이 진행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유엔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리고, 또한 6.25전쟁 이후 눈부신 발전상을 보여줌으로써 참전용사의 후손인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활동이 진행될 계획입니다. 6.25전쟁은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6.25전쟁 유엔참전용사 후손이라는 구심점으로 모인 세계 각국의 대학생들에게 선대 할아버지들의 참전의 인연과 연결고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국가보훈처의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저희 제10기 훈남훈녀 온라인 기자단 4명도 참가하게 되는 이 캠프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 6.25전쟁 참전국 참전현황 (출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오는 6월 25일(일)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발발한 지 6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토방위를 위해 공헌했던 분들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되고 있는데요. 오늘 전해드릴 소식은 국가보훈처가 미국 참전용사와 교포 참전용사와 그의 가족들을 초청해 다양한 감사 행사를 진행한다는 내용인데요. 함께 알아볼까요?


▲ 지난 4월 25일 우리나라를 재방한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입장하고 있는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참전용사 및 가족들의 모습


# 미국 참전용사와 해외 교포 참전용사에 전하는 감사의 마음


국가보훈처는 오는 6월 22일(목)부터 27일(화)까지 5박 6일 동안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 참전용사와 해외 교포 참전용사, 그리고 그의 가족 등 80여 명을 초청하여 정부 차원의 예우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그 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낸 대한민국을 알리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이번 방한에는 6.25전쟁에 미 해군중위로 참전, 전투기 조종사로서 다양한 공훈을 세움으로써 미국 은성훈장을 받은 엘머 로이스 윌리엄(Elmer Royce Williams, 92세)과 해병대 1사단 상병으로 장진호전투에 참전했던 제임스 웨렌 길리스(James Warren Gillis, 87세)가 초청되었습니다.


또한 1951년 육군간호학교를 1기로 수료하고 임관했던 이종선 예비역 소령(85세)과, 1950년 6월 25일 공산군의 남침과 그해 9월 28일 서울 수복 소식을 제일 먼저 방송했던 위진록(89세) 전 KBS 아나운서도 초청되어 6.25전쟁 당시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지난 4월 25일 우리나라를 재방한하여 전쟁기념관 추모병비에서 추모하고 있는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참전용사 및 가족들의 모습


# 미 참전용사와 교포 참전용사 초청 행사 일정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은 6월 22일(목)에 한국에 입국해서 6월 27일(화) 출국할 때까지 참전용사 위로연 및 6.25전쟁 67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고 한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는 일정을 소화하게 되는데요.



23일(금) 오전에는 한국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한복 체험 시산을 가지며, 오후에는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는 6.25전쟁 제67주년 계기 국군과 유엔참전용사를 위한 감사 위로연 행사에 참석합니다. 


24일(토) 오전에는 판문점을 방문하여 남북 분단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오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합니다. 25일(일) 오전에는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6.25전쟁 67주년 행사 참석 후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여 60여 년 전의 전우의 넋을 기리는 헌화행사를 갖게 됩니다. 26일(월)에는 경복궁과 인사동 등 한국문화 탐방을 하고, 저녁에는 국가보훈처장이 주관하는 감사만찬 행사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찾은 푸른 눈의 은인, 유엔군 참전용사들. 그들이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당시의 젊음은 찾아볼 수 없겠지만, 그들이 우리나라에 보여준 용기와 헌신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해외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참전국에 대한 예의이며, 우리나라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우리나라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고마운 은인들을 초청하는 재방한 사업을 꾸준하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애국자

    2017.06.25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전쟁 67주년에 대통령 개자식은 왜 참석하지 않는가.....? 이자식을 애국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해야한다.


대한민국은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었던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의 가슴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국군과 유엔군이 숨져갔고, 죄 없는 민간인들도 전란 속에서 고통 받아야 했죠. 전쟁고아 양산, 산업 시설 파괴 등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비극적인 6.25전쟁은 왜 일어나게 된 걸까요? 지금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과 그 전개과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남북 분단의 배경과 북한의 남침 준비


▲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폭발 장면


때는 1945년 8월 10일, 일본이 갑작스럽게 연합국 측의 무조건 항복 권유를 받아들이면서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미국의 군사 점령이라는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할 주체와 극동 지역 군사 작전의 한계선을 신속히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본군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항복할 것인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일반명령 제1호’가 작성되었는데요. 이 문서에 언급된 38도선은 9월 초 일본의 항복을 접수하여 무장을 해제하고 책임 구역을 할당하기 위한 편의적인 조치였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38도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1. 만주,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반도 지역, 사할린 및 쿠릴 열도에 있는 일본국의 선임 지휘관과 모든 육, 해, 공군과 보조 부대는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에 항복하라

2. 일본국과 일본국 본토에 인접한 모든 작은 섬,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국, 류큐 열도와 필리핀 제도에 있는 일본국의 선임 지휘관과 육, 해, 공군 및 보조 부대는 미국 태평양 육군 총사령관에게 항복하라.


당시 이러한 조치는 전후처리를 위한 순수한 군사적 조치였으며, 한반도를 정치적으로 분단하기 위한 의도는 내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의도는 달랐습니다. 8월 말에 북한 전역을 장악한 소련은 이미 38도선을 정치적인 구획선으로 인식하고 정치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한 것이죠.


우리 민족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이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분할 점령한 이상, 통일의 꿈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에서만 선거를 치르자는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아래,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내각 구성에 이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수립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소련 군정당국은 북한에 김일성을 내세운 불법적인 공산정권을 수립하였습니다.


▲ 남북 통일 정부를 이룩하기 위해 방북한 김구 선생


북한 지도부는 민중 봉기 등을 통해서는 전 한반도를 사회주의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무력 달성쪽으로 전략을 바꾸어 남침을 계획합니다. 북의 남침 계획은 1개월을 목표로 3단계로 구성되었고, 스탈린의 동의를 받은 후 남침 개시 일자를 1950년 6월 25일로 정하게 됩니다.


▲ 스탈린의 집무 모습


#6.25전쟁의 발발과 전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불법 남침을 감행함에 따라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사전 준비를 마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동안, 갑작스러운 전쟁을 예상하지 못했던 남한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열세였기 때문에 각 지구에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전쟁 발발 3일 만인 6월 28일 적에게 서울을 내어주었고, 한강 남쪽에 방어선을 형성했습니다.



6월 25일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미국이 제출한 ‘북한군의 침략 중지 및 38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이어서 유엔 안보리는 “그들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지원을 제공하자”는 내용의 ‘6.26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요. 이 결의에 따라 미국과 자유진영 32개국이 유엔의 결의를 지지했으며, 7월 중순에는 52개국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그 후 한국을 돕기 위해 16개국이 전투부대의 파병을, 5개국이 의료 또는 시설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습니다.


#유엔군의 참전


▲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사진제공: 유엔군 초전기념관)


1950년 7월 4일, 미군 제24사단 선두 부대인 스미스 특수 임무 부대가 미군 최초로 한반도에 도착하여 평택-제천-울진을 잇는 선에서 철수하고 있던 국군과 함께 북한군을 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군은 북한군의 기습공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엔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8월 1일에는 낙동강선까지 후퇴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의 많은 청년학도들과 재일학도의용군이 참전함으로써 국군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요. 이들 중에는 만 18세가 되지 않은 어린 소년과 소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심으로 참전하여 다양한 형태로 전쟁을 지원했습니다. 


더 이상 밀릴 수 없다고 판단한 국군과 유엔군은 끝까지 낙동강을 지키기로 결심했고, 낙동강을 사이에 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선 방어에 성공하여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반격 작전으로 전환하여 9월 28일, 잃어버린 수도 서울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10월 1일 국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였는데, 이날을 기념하여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0일 평양을 점령하고 11월에는 압록강까지, 또 중공과 러시아가 있는 두만강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중공군의 개입과 정전 협정



유엔군 사령군 맥아더 장군은 국경선 부근의 모든 부대에 압록강, 두만강으로 진군하도록 독려했는데요. 그러나 중공군이 북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참전을 결정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다시 한 번 크게 바뀌게 됩니다. 이제 전쟁은 중공군과 북한군, 그리고 국군과 유엔군의 대결이 되었는데요. 다시 북한군과 중공군에 의해 밀려 내려가게 된 국군과 유엔군은 다음 해인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내주고 후퇴합니다. 



유엔군과 북·중 연합군은 1951년 7월 10일부터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에 들어갔습니다. 한반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는데요. 그러나 회담은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했고 38도선 부근에서는 계속해서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펼쳐졌습니다. 이전에 포스팅했던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와 저격 능선 전투 등이 이 당시 일어났던 고지 쟁탈전에 속합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중공군, 그리고 북한군 대표가 정전 협정에 서명하여 3년 이상 계속되던 전쟁이 멈추게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 6.25전쟁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는 1,129일이나 계속된 전쟁이 멈춘 휴전 상태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올해, 6.25전쟁이 발발한 지 67주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얻은 결과입니다. 전쟁이라면 먼 얘기 같지만, 그 당시를 겪었던 많은 분들의 아픈 시간은 여전히 67년 전에 멈춰 있습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이 10여일 남은 지금, 전장에서 용감히 싸운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 분들에게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오는 6월 25일 일요일 오전 10시 서울의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6.25전쟁 67주년 행사'강한 안보로 평화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거행됩니다. 


또한 6월 22일(목)부터 27일(화)까지 5박 6일동안, 미국 참전용사 및 교포 참전용사 등 83명이 재방한하여 여러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6.25전쟁이 일어났던 6월, 아픈 기억을 지니고 살아가는 분들을 잊지 않고, 그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이 후손인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참고 문헌

국가보훈처 6.25전쟁 60년 계기 교육 자료집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제71회 보훈퀴즈의신
6.25전쟁 67주년 계기, 미 참전용사와 교포 참전용사 동시 방한
6.25전쟁,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
2018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추천 접수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