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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D-3! 전 세계인의 축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 지역의 평창, 강릉, 정선에 대한 관심도 뜨거운데요, 이 곳에도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올림픽의 열기만큼 뜨겁고 열정적인 국가수호의 정신을 느껴볼 수 있는 곳, 강원도의 현충시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네덜란드 참전 기념비'


▲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네덜란드 참전 기념비. (출처 :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네덜란드는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육·해군 총 5,322명의 병력을 파견하는 등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중 120명이 전사하고 645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지요.* (출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강원도 횡성에는 네덜란드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현충시설이 있습니다. 왜 이곳에 있는 걸까요?

네덜란드군이 격전을 치렀던 전투가 바로 ‘횡성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참전 기념비는 네덜란드군이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오우덴 중령 등 많은 전사자를 낸 횡성전투를 기리는 횡성참전기념공원(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 내에 세워져 있습니다.


▲ 네덜란드의 국기 / 6.25전쟁 당시 네덜란드군의 주요 전투 지도. (출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파병된 네덜란드군은 1951년 2월, 강원도 횡성의 북천리 부근에서 적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대대 지휘관이었던 오우덴 중령을 비롯하여 많은 전사자가 발생했는데요, 이들의 희생으로 아군은 퇴로를 열 수 있었으며 유엔군은 반격의 기회를 갖게 되면서 이후 전쟁의 양상은 크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 네덜란드 횡성전투 65주년 기념식


이곳 네덜란드 참전 기념비에서는 지난 2016년 5월, ‘횡성전투 65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때 당시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네덜란드 참전용사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전우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오우덴 중령 현충비'


2월의 전쟁영웅, 마리누스 덴 오우덴 중령은 네덜란드 왕립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1932년 7월 31일 네덜란드 왕립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조직된 유엔군의 네덜란드 대대에 자원하게 되죠. 당시 소령으로 네덜란드 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된 오우덴 중령은 같은 해 10월 26일 한국으로 출발, 한 달여 만에 부산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부산에 도착한 지 1주일 만에 전선으로 파견된 오우덴 중령과 그의 대대는 12월 중순의 혹한 속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 2018년 2월의 전쟁영웅 마리누스 덴 오우덴 육군 중령


1951년 2월 11일 벌어진 횡성 전투. 오우덴 중령의 부대는 홍천-횡성간 도로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의 대대적인 반격에 맞서 후퇴하는 국군을 엄호하였습니다.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접전 끝에 오우덴 중령을 포함한 많은 네덜란드군이 전사하게 되었죠.


오우덴 중령 현충비는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읍하리에 위치한 횡성 보훈공원 내에 있습니다. 오우덴 중령 현충비는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네덜란드 대대의 지휘관이었던 마리누스 덴 오우덴(Marinus P.A.den Ouden) 중령과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 횡성 보훈공원 내에 위치한 오우덴 중령 현충비.

(출처 :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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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강원도의 현충시설을 안내해 드렸는데요, 평창 동계올림픽도 관람하고 현충시설도 찾아가 보는 특별한 여행 코스를 추천 드립니다! :) 강원도 지역의 현충시설, 계속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강원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 | 횡성참전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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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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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오늘 소개해드릴 분은 2월의 전쟁영웅, 마리누스 덴 오우덴 육군 중령입니다.

오우덴 중령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 네덜란드 대대의 지휘관으로 참전, 헌신적인 리더쉽을 보여주며 유엔군에 반격의 기회를 갖게 해준 분입니다.


▲ 마리누스 덴 오우덴(Marinus P.A.den Ouden) 네덜란드 육군 중령


마리누스 덴 오우덴 중령은 네덜란드 왕립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1932년 7월 31일 네덜란드 왕립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수많은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조직된 유엔군의 네덜란드 대대에 자원하였습니다.  


1950년 10월 21일 중령은 당시 소령으로 네덜란드 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1950년 10월 26일 한국으로 출발하여 11월 23일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1척의 구축함과 함께 총 5,322명을 파병했습니다.


▲ 6.25전쟁 당시 네덜란드 해군 구축함 (출처: 전쟁기념관 블로그)


오우덴 중령과 그의 대대는 전선의 급박한 상황으로 인하여 부산에 도착한지 1주일 만에 전선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들은 미2사단(인디언헤드 사단) 38연대에 배속되었고, 전선의 후방에서 12월 중순의 혹한을 견디며 적군을 방어하는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 1950년, 미군이 부산에 첫 상륙하는 모습(왼쪽) 및 

미 해병이 상륙하는 모습(오른쪽). (출처: 국가기록원)


1951년 2월 5일, 오우덴 중령의 대대는 북한군과 중공군을 북쪽으로 밀어내기 위한 ‘라운드업 작전(Operation Round Up)’*에 참여하였습니다.


* 라운드업 작전(Operation Round Up) : 1951년 2월 5일, 서울 탈환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국군이 선봉을, 미군이 후속부대를 맡아 전개한 작전.


▲ 횡성 전투 당시의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2월 11일, 북한군과 중공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하였고, 홍천-횡성간 도로에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오우덴 중령의 부대는 큰 피해를 입으며 후퇴하는 국군을 엄호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전투에서 오우덴 중령을 포함하여 15명이 전사하였는데요, 이들의 희생으로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의 기회를 갖게 됨으로써 이후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 강원도 횡성에 있는 네덜란드 참전 기념비


오우덴 중령이 참전한 주요 전투는 인제 전투, 대우산 전투, 평강-별고지 전투, 횡성 전투 등이 있습니다.


▲ 2016년 5월 11일, 네덜란드 참전용사 초청 행사 당시 거행되었던 오우덴 중령 추모식


머나먼 타국,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목숨 바쳐 지켜낸 마리누스 덴 오우덴 육군 중령과 네덜란드 대대! 2018년 2월의 전쟁영웅 오우덴 중령을 함께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 참고 자료

‘횡성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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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여러분!

2018년 새해, 1월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해 드린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 2월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해 드리게 되었네요.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해 드릴 2월의 독립운동가는 중국과 러시아를 누비며 무장투쟁을 전개한 대한신민단 단장, 백추 김규면 선생입니다.


▲ 김규면 선생


1880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김규면 선생은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운영하는 육군무관학교 속성과에 입학하였고, 무관이 되어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1904년, 한일의정서가 강제로 체결되어 학교가 일제의 통제를 받게 되자 그 꿈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 김규면 선생의 직접 쓴 회고록인 ‘노병 김규면 비망록’.

(출처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 이동휘 선생


이후 훈춘으로 망명한 김규면 선생은 1915년, 일제가 종교 탄압을 위해 포교규칙을 공포하자 이에 반발하여 민족종교 단체인 ‘대한성리교’를 만들어 항일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또한, 김규면 선생은 스스로 무관이 되지는 못했지만 독립군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14년 이동휘 선생과 함께 중국에서 ‘동림무관학교’를 설립한 것을 들 수 있지요.


▲ 봉오동 전투 기록화(출처: 여천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청산리전투도(출처: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김규면 선생은 이에 호응하여 대한신민단을 결성하여 단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독립전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 블라디보스톡에서 동지들과 찍은 사진_1920년

(앞줄 왼쪽부터 김규면, 장병태, 이홍파, 손두현,

뒷줄 왼쪽부터 김병화, 김일수)


1924년, 김규면 선생은 윤자영 선생과 함께 조직한 상해청년동맹을 통해서 중국 학생계와 연대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한중연대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선생은 피습을 당해 부상을 입기도 했으나, 계속해서 독립운동의 힘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10년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전경. (출처: 독립기념관)


▲ (왼쪽) 김규면 선생과 아들 김호둔, (오른쪽) 말년의 김규면 선생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선생은 연해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항일운동을 계속했짐지만, 선생은 소비에트 연해주위원회의 탄압대상이 되어 모스크바로 피신하게 되었고, 1969년 88세의 일기로 별세하였습니다.

정부는 2002년,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누비며 무장독립운동을 이끌어간 2월의 독립운동가, 김규면 선생을 기억해 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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