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586,276
  • Today | 626
  • Yesterday | 2,215

 

 

 

 

 

 

 

 

 

제대군인 취·창업 수기 당선작 - ①편

"누군가의 꿈으로 다시 태어나다"

 

IMF 외환 위기였던 1997년-

저는 취업 준비생 시절, 대학 도서관 게시판에 걸린 여군모집 포스터를 보고 장교에 도전하였고 운명처럼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동시에 취업의 영광까지 얻었는데요.

온 청춘을 바치며 임했던 10년 군생활의 끝. 저는 2009년, 소령 진급심사를 목전에 두고 희망 전역을 하였습니다.

전역 후에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예쁜 딸아이와 함께 알콩달콩 살아왔습니다.

딸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 저는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집 근처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출근할 때면 울며불며 저와 떨어지기 싫어하던 딸과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며, 마음이 아파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날도 많았지요.

 

점차 일에 보람을 느끼던 저는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재취업을 결심했습니다. 물론 40대 나이에 사회초년생의 신분으로 육아를 병행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요.

"그렇게 힘들었던 군생활도 10년이나 했는데 못할 것이 어디 있겠나"

재취업의 멀고도 험한 길을 걸으며 제 자신을 끊임없이 다잡고, 또 다잡았습니다.

 

장교 출신이라는 게 든든한 보증수표가 되었던 걸까요?

육군취업센터, 국가보훈처의 제대군인지원센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 많은 곳에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제 담당 직업상담사님과의 상담을 통해 저의 모교인 조선대학교 예비역 교관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장교를 꿈꾸던 대학생이 40대가 되어 후배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예비역 교관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재취업에 성공한 지 어느덧 3년째가 된 저는,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 예비역 교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취업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국가보훈처의 제대군인지원센터와, 늘 도움이 되는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셨던 직업상담사님이 떠오르네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힘들었을 때, 제 손을 잡아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2의 인생을 선물해 준 제대군인지원센터-

오늘도 저는 '후보생들의 미래가 지금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예비역 교관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장교를 지원하는 모든 후보생들과, 나라를 위해 군복을 입었던 제대군인들의 앞날이 눈부시게 빛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 제대군인 취·창업 수기 당선작 우수상 우주현 님의 이야기로 재구성 되었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작년 5월,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63년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6.25전쟁 때와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진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놀랐고, 나를 따스히 맞아주던 한국 사람들에게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 앞에 서니 제가 참전했던 단장의 능선, 평강 별고지, 그리고 철의 삼각지 전투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60여 년 전, 우리가 목숨 걸고 싸워주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해준 한국 사람들이 어찌나 고맙던지요. 일정 중 5월 11일에 있었던 횡성전투 65주년 기념식과 오우덴 중령 추모식에 참석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네덜란드군의 헌신을 기억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 다음날, 생전 6.25전쟁 참전 사실에 큰 자긍심을 느끼며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던 전우의 유해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이 베풀어준 사랑의 기억은 네덜란드로 돌아간 후에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습니다. 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듯합니다. 나도 동료들이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땅에 묻어 주십시오. 제가 목숨 걸고 지켜낸 대한민국 땅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습니다.  한국, 그대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했지요. 나 역시 그렇습니다. 나와 같은 유엔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6.25전쟁 당시 네덜란드 반호이츠부대 일병으로 참전했던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Johan Theodoor Aldewereld) 씨는 2016년 5월 국가보훈처의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사업으로 한국에 방문하였고, 동료 참전용사의 유엔기념공원 안장식과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 감동하여 자신의 유해도 한국에 안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 본 카드뉴스는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의 사연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8월 29일에 발표된 2018년 예산안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사업들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국가보훈처는 2018년 국립묘지 의전단을 추가, 신설 운영하는 등 총 36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국가유공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의 예우를 다할 예정입니다. 


ㅇ 국립묘지 의전단 증원 및 신설 


국립대전현충원 의전단 인력 증원(30→35명) 및 국립호국원 의전단을 신규로 설치(3개소, 총 51명)하여 국립묘지 안장식 등에 대한 품격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ㅇ 국가유공자 사망 시 대통령 명의 근조기 증정 및 영구용 태극기 직접 전달


국가유공자가 돌아가실 경우 국가보훈처장 명의 근조기를 대통령 명의 근조기로 격상하여 증정하며, 그동안 택배로 보내드린 영구용 태극기는 인편으로 직접 전달하여 국가유공자의 헌신과 희생에 걸맞은 수준으로 정성껏 지원하겠습니다.


ㅇ 생계곤란 국가유공자 사망 시 장례 지원


마지막으로 생활이 어려운 국가유공자 본인이 돌아가실 경우 200만원 상당의 장례를 지원하여 국가유공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의 예우를 다하겠습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의 명예선양과 유족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 앞으로도 사람중심의 따뜻한 보훈 정책을 펼쳐 나가겠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유계석

    2017.10.03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때 경남 합천군 가야면에서 살때 가야면 매화1구에서 살았었든 유창수는 도랑 바닥에 서서 칼로 돼지 목 찌르다 손목 부분에 티눈 1개 박힌 정도의 상처를 입었었고 그 외는 아주 건강 했었는데, 유창수는 그 상처가 군대서 다쳤다 상이군인이다고 떠든 적이 있었는데. 만약 상이군인 대우를 받았다면 분명히 국가를 상대로 사기친 것이다.
    유창수 아들 유경도는 축협에 근무 조카 유경달은 공무원이였는데 이들은 의집안 맺어 지내는 것을 밝히는 쓰레기 인간들이였다.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평창 동계올림픽 계기 네덜란드 참전용사 재방한 퀴즈 이벤트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
설 연휴 기간, 국립묘지 안장 및 보훈병원 이용 안내
네덜란드 참전용사,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대한민국과 다시 만나다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