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405,250
  • Today | 485
  • Yesterday | 2,817

◈ 26(금) 오전 11시 인천수봉공원 참전기념탑에서 개최 ◈
◈ 642명 참전, 135명 전사, 265명 일본 귀환, 242명 국내잔류 ◈

중동전 이스라엘 유학생보다 17년이나 앞서 조국수호 전쟁에 자진 참전하여 애국정신의 표상이 되고 있는 재일학도의용군의 6·25참전 58주년 기념식이 9월26(금) 오전 11시 인천수봉공원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탑 경내에서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회장 김병익) 주관으로 거행된다.

국가보훈처가 후원한 이날 행사는 김 양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이창구 인천광역시행정부시장, 퀴어 미8군부사령관, 정 진 재일본 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단장, 이봉남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 일본지부장, 일본거주 회원 및 국내회원, 보훈단체장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장의 대회사, 대통령 기념사를 국가보훈처 처장이 대독, 미8군부부사령관 축사, 재일본민단본부 단장의 축사, 인천광역시 행정부시장 격려사, 헌시낭독, 만세삼창 순서로 진행된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는 기념식이 끝난 후 같은 날 오후 3시 서울 국립묘지에 있는 재일학도의용군 묘역을 참배하고 10월 2일에는 회원과 가족이 안장돼 있는 천안 망향의 동산 위령탑 광장에서 합동 위령제를 갖고 사랑하는 조국 강토에서 산화한 영령들의 충혼을 기린다.

재일학도의용군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일본전역에 거주하는 청년과 학생 642명이 자진하여 직장과 학업을 중단하고, 의용대를 소집해 유엔군에 입대하여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여, 원산·이원상륙작전, 갑산·혜산진 탈환 작전, 백마고지 전투 등 주요전투를 겪었으며 135명이 조국을 위해 산화했다.

6·25가 끝난 후 이 분들 중 265명은 1951년 1월부터 일본으로 귀환하였으나, 242명은 1952년 4월 체결된 미·일 센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으로 주권을 되찾게 된 일본이 입국을 거부하여 한국에 잔류하게 됨으로써 가족과 생이별을 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1968년부터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여 보상을 해주고 있으며 참전의 높은 뜻을 기리어 67년 1월 참전자 642명중 소재 확인자 317명에게 방위포장을 수여했고, 97년도에는 소재불명 등으로 서훈을 하지 못했던 45명을 찾아 추가로 포상했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에서는 1973년 국립묘지에 “재일학도의용군위령비”를 건립하였고, 1979년에는 최초로 참전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 수봉공원에 “재일학도의용군참전기념탑”을 세워 매년 이곳에서 기념식을 갖고 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 6·25 전쟁을 바로 알리고, 호국·보훈의식 고취 ◈

국가보훈처(처장 김양)는 6·25 참전유공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법률 시행을 계기로 청소년들에게 6·25전쟁을 바로 알고, 나라를 위해 희생·공헌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어린이 웹사이트‘꾸러기 보훈광장’에서‘꾸러기 나라사랑 이벤트’를 개최한다.

9월17일부터 10월13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이벤트 행사에서는 ‘6·25전쟁 바로알기 퀴즈, 나라지킴이 트레이닝 게임, 나의 역사신문 만들기’코너 등이 운영되며, 행사 기간 중 방문한 학생들에 대하여는 추첨을 통해 총 72명에게 닌텐도 WII, 닌텐도 DS, 아이리버 미키MP3 플레이어 등을 상품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6·25전쟁에 참여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신 호국용사 김만술 육군대위, 현시학 해군소장, 박두원 공군대위, 고종석 해병 일등병조에 대한 플래시 애니메이션도 제작하여, 꾸러기 보훈광장에서 볼 수 있으며, 향후 CD로도 제작할 예정이다.

‘꾸러기 보훈광장’의 인터넷 주소는 http://kids.mpva.go.kr 이며, 국가보훈처 홈페이지(http://www.mpva.go.kr/) 또는 인터넷 검색창에 ‘꾸러기 보훈광장’ 검색을 통해서도 접속할 수 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2.06.03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17일(수) 오전 11시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기념식에 이어 “한국광복군 창군과 활동의 현재적 의미” 주제로 학술회의 개최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대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한국광복군 창군 제68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가 17일(수) 오전 11시에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유길)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 양 국가보훈처장, 김영일 광복회장, 박세환 재향군인회 부회장, 광복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유길 한국광복군동지회장의 개식사 및 국가보훈처장의 축사에 이어 광복회장의 기념사와 재향군인회장의 축사, 3·1여성동지회 합창단의 합창,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된다.

기념식에 이어 열리는 학술회의는 김호성 前서울교육대학교 총장의 사회로 “한국광복군 창군과 활동의 현재적 의미”라는 대 주제를 가지고 유병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희곤 안동대학교 교수, 이현희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박환 수원대학교 교수, 한시준 단국대학교 교수, 황민호 숭실대학교 교수가 참여하여 종합토론을 벌인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成立典禮式)을 거행하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대일항전을 전개한다는 목적으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4개 지대로 편성되어 영국군과 연합하여 1944년 3월 임팔(Imphal) 전투를 비롯하여 1945년 7월까지 팀플·티팀·비센플 등 미얀마 각지에서 대일작전을 수행하였다.

또한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공동으로 특수공작 훈련을 받고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하였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일제 항복 후 광복군 정진대(挺進隊)를 편성, OSS 미군 18명과 함께 C47 비행기로 8월 18일 국내에 진입하였으나, 일본군의 저향으로 중국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임시정부와 함께 한인교포 등을 보호하여 국내에 송환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6년 5월 16일 한국광복군 복원선언(復員宣言)으로 해산되었으나, 국방경비대 요원으로 참여하여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하였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웹툰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_ 강우규 의사
12월의 독립운동가 - 김치보 선생
12월의 전쟁영웅 - 감봉룡 경찰 경감
[제10기 훈남훈녀 기자단 팀미션 - 2조] 11월 11일, 유엔참전용사를 기억합시다
국가보훈처 동영상
문재인 대통령과 식사하고 올림픽도 직접 보고! 아이디어 올림픽에 지금 도전하세요!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