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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항쟁기에 적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일제의 침략성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한민족의 자주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린 “이봉창의사 순국 76주기 추모식”이 10일(금) 오전 11시 효창공원 내 의사 묘전에서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종정 국가보훈처 차장, 승병일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시준 단국대학교 교수의 약사보고와 문국진 기념사업회장의 식사에 이어 광복회장과 국가보훈처 차장의 추모사와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된다.

이봉창 의사(1901. 8.10~1932.10.10)는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1931년 1월 중순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본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왕 폭살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김구 단장을 만나 거사를 계획·준비하였다.

1년여의 준비를 거쳐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고, 12월말 동경에 도착한 이 의사는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 8일 동경 대대목(大大木)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 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상해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1932년 1월 8일 앵전문(櫻田門)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행렬이 나타나자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였으나 실패하고, 현장에서 일경에 피체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비록 일왕 유인을 폭살시키는데 실패는 하였지만, 그의 장거는 1930년대 한국독립운동사를 장식하는 의열투쟁의 선봉으로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전선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였고 동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 의거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보산(萬寶山) 사건이래 한·중민의 감정대립도 씻는 계기가 되었다.

1946년 김구선생에 의해 일본에 있던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1946년 6월 30일 국내로 봉환하여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하였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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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처장 김 양)는 한·태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6·25전쟁 당시 UN군으로 참전했던 태국 참전용사의 후손들을 초청하여 격려하는『UN 참전국 청소년 초청행사』를 갖는다.

이번 청소년 방한단은 7일(화) 오전 09:25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하여 울산 현대중공업 견학을 시작으로 8일 UN기념공원(한·태 우정의 다리) 방문, 9일 국립묘지 참배 및 판문점 견학 등 호국안보시설 방문, 10일 태국 참전비 헌화 및 육군사관학교 방문 등의 일정을 마치고 11일 출국한다.

특히, 김 양 국가보훈처장은 10일(금) 18시 호텔 캐피탈(서울)에서 방한 청소년단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한국과의 지속적인 교류 협력을 다지자는 의미의 환영 만찬 행사를 갖는다.

200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참전용사 후손 초청 행사는 기존의 고령 참전용사 초청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국가이미지를 높이고, 세대를 이어가는 우호협력 관계를 지향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으며, 2008년 10월 현재까지 3개국 107명의 청소년이 초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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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겸 군무부장을 역임하시면서 한국광복군 창설의 기틀을 마련하신 “청사(晴蓑) 조성환선생 서거 60주기 추모식”이 7일(화) 오전 11시에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광복회(회장 김영일)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에는 김 양 국가보훈처장, 김영일 광복회장, 최근덕 성균관장, 광복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시준 단국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석근영 광복회 서울지부장의 약력보고와 광복회장의 식사에 이어 성균관장과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와 소프라노 김연수씨의 추모의 노래, 헌화분향과 조총 및 묵념, 손녀 조은옥(미국 거주)씨의 유족대표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추모식에 이어 김희곤 안동대학교 교수의 “독립군 기르고 광복군 만든 군사전문가 임시정부 군무부장 청사 조성환”이라는 주제로 학술강연 뒤, 효창공원 임정요인 묘역에 안장되어 계신 선생의 묘소를 참배한다.

청사 조성환선생(1875.7.9~1948.10.7)은 서울 낙원동에서 출생하였으며, 1906년 안창호, 이동녕, 김구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고 구국운동을 전개하였고, 신민회 동지들과 구국방략을 협의하고 북경으로 망명하여 이곳을 근거지로 간도, 노령 등지를 편력하면서 독립운동의 터전을 다지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1916년 9월 신규식, 민충식, 박은식 등과 체화동락회를 조직하여 교민의 단결 및 재외한인단체와의 연락을 유지하면서 항일운동에 전념하면서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고 청소년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1918년 11월에는 39명의 대표 중 1명으로 길림에서 대한독립선언을 발표하여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공표하였으며, 3·1독립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적극 참여하여 제1회 의정원회의에서 노령 대표의원 및 군무차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력투쟁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1920년 북로군정서 조직에 참여하여 참모장에 임명되었고, 무기 구입 등 독립군의 무장 및 전력 강화에 주력함으로서 청산리독립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국민회 등 10개 독립운동단체들이 밀산(密山)에서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여 서일(徐一)을 총재로 추대하게 되자 홍범도, 김좌진과 함께 부총재에 선임되어 독립군을 이끌었다.

1925년 3월에는 영안현(寧安縣)에서 김혁, 김좌진, 나중소 등과 신민부(新民府)를 새로 조직하여 외교부 위원장에 선임되었으며, 목릉현 소추풍(穆陵縣 小秋風)에 성동(城東)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이범윤과 같이 고문에 추대되어 교육훈련을 지도하였다.

1932년 국무위원에 선임된 이후 광복시까지 군무부장 등 국무위원으로 계속 임시정부를 이끌었으며,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화북(華北)지구에 파견되어 병사모집, 군사훈련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등 광복군 창설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광복 이후 대한독립총성국민회 위원장, 유도회 성균관 부총재 등을 역임하다가 서거하여 효창원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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