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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을 앞둔 상황에서, 중공군은 이른바 '7.13 공세' 라는 대규모 공세를 펼쳐왔습니다.


당시 강원도 김화군 원동면에 위치한 교암산은 인근의 야산지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방어상 핵심고지였는데요. 교암산의 금성 돌출부를 차지하기 위한 공세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교암산은 김교수 대위가 속한 제6사단이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요. 7월13일, 중공군은 최전방에 있는 제7중대를 먼저 공격한 후 김교수 대위가 지휘하던 제6중대에 공격을 가해 왔습니다.


1개 연대 규모 이상의 중공군이 제6중대를 완전포위하게 되자, 김교수 대위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포병의 진내사격을 요청하는 한편 중대원에게 동굴로 대피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즉각적인 아군 포병의 진내사격이 제6중대 진지인 '가'고지를 강습하였습니다.

김교수 대위는 모든 중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적을 향해 몸소 수류탄을 투척하고, 중대원들과 함께 유례없는 백병전을 벌이며 진지를 사수했습니다.


김교수 대위는 '나가 싸우자'며 부대원들을 독려하였고, 선두에서 적과 치열한 육박전을 전개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고 전사했습니다. 6중대 부대원 대부분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처절한 사투 끝에 지켜낸 귀중한 시간, 이 덕분에 인접 부대는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혈전을 벌였던 김교수 대위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1953년,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습니다.


1개 중대 병력으로 중공군의 연대 병력과 맞서 싸우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김교수 대위.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자신을 희생한 김교수 대위의 용기와 애국심을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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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올해 6월 26일(월)부터 참전유공자분 등이 사망 시, 영구용 태극기를 유족이 신청하면 퀵서비스로 무료 배송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기존 유족이 직접 보훈관서, 보훈단체 등을 방문하여 영구용 태극기를 수령하거나 착불(택배)로 받아왔던 제도를 개선하여 무료로 배송함으로써 국가유공자에게 마지막 예우를 다하고 따뜻한 보훈을 펼쳐 나가기로 한 것인데요. 영구용 태극기 증정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처럼 영구용 태극기를 무료로 배송하는 제도로 전환됨에 따라 연간 1만 2천여명의 국가유공자가 혜택을 받게 되는데요. 국가보훈처는 나라를 위해 희생·공헌하신 분들과 유가족이 합당하게 보답을 받고 예우받을 수 있도록 사망 시 지원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영구용 태극기 배송정책에 대해 안내해 드렸는데요. 또 새롭게 바뀌는 정책이 있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국가보훈처는 늘 국가유공자 분들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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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공자

    2017.08.15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접가져다줘야하지않을까요

  2. 두빈

    2017.08.15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훈처
    담당자 이보쇼
    당신은 자기일을 했다고 보쇼
    담당자로써 의문을 가지고 일을 했더라면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한 김창학 해군 하사는 1948년 6월 해군 신병 제10기로 입대하여 제1함대 PC-701 백두산함의 조타수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일, 백두산함은 부산 동북방 30마일 해상에서 병력 600여 명과 탄약, 식량 등의 전쟁 물자를 가득 싣고 남하 중인 1천톤 급의 북한 무장선박과 조우하게 됩니다.


곧 북한 선박과 백두산함 간의 치열한 해상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김창학 하사는 교전 중 적탄에 의해 중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상황에서도 조타기를 놓치 않았는데요.

긴급히 조타실로 달려온 함장의 손을 붙잡고, 김창학 하사는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함장님, 끝까지 싸우지 못해 죄송합니다"


국군은 장장 5시간에 걸친 긴 전투 끝에 적의 선박을 격침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이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김창학 하사는 심한 부상으로 대한해협해전 승리 후 사흘 만인 1950년 6월 28일 전사하였습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또한 해군은 지난 2013년 진수된 유도탄고속함 14번함을 '김창학함'으로 명명하였는데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사명감으로 끝까지 조타기를 놓지 않고 임수를 수행했던 김창학 하사. 6월 호국보훈의 달의 마지막 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김창학 하사를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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