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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8주년 3.1절 기념식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바로 내일, 3월 1일(목)은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인 3.1독립만세운동이 펼쳐진 지 9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10년대 ‘무단 통치’ 시기, 일제는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을 억압하며 우리 민족을 무력으로 통치했습니다. 인권과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펼쳤지만, 이를 탄압하는 헌병경찰제도로 인해 투옥되어 학살당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고, 이는 3.1운동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대한독립만세!” 함성 소리는 곧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우리 민족은 신분, 계급, 남녀노소 등의 구분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 제72회 광복절 경축식

 

국가보훈처제99주년 3.1절을 맞아 국내와 미주에서 종횡무진 독립운동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 차인재 선생, 의병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김종삼 선생 등 50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합니다.

 

▲ 2017년 제78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조응순 선생

 

이번 3.1절에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9명(애국장 11명, 애족장 18명), 건국포장 8명, 대통령표창 13명입니다. 또한, 훈·포장 및 대통령표창은 제99주년 3·1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됩니다.

 

제99주년 3.1절 포상자 중 주요 인물들의 독립운동 공적을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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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와 미주에서 종횡무진 독립운동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 차인재 선생

 

3.1운동 직후 국내에서 결성된 비밀결사에서 임시정부의 선전문건을 배포하고, 미국에서도 독립운동 단체 간부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차인재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됩니다.

 

차인재 선생은 1920년 삼일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비밀결사 구국민단에 소속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보낸 ‘독립신문’, ‘대한민보’등을 배포하였습니다.
같은 해 8월, 선생은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대한인국민회, 대한여자애국단,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등에서 간부로 활동하며 1945년까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 미주 독립운동단체 ‘대한인국민회’에서 1919년 발행한 대한독립선언서(왼쪽),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1943년 임시정부에 보낸 전보(오른쪽). (출처: 독립기념관)

 

차인재 선생의 남편 임치호 선생 또한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에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공로로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바 있습니다.

 

▲ 차인재 선생이 대한여자애국단 대표 5인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신문(신한민보, 1944. 1. 13.)

 

차인재 선생은 3.1운동 직후 국내에서 결성된 주요 비밀결사인 구국민단에서 시작하여 미국 이주 후까지도 현지의 대표적인 여성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여자애국단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드문 사례입니다.

 


의병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으로 순국한 김종삼 선생

 

전라북도 임실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김종삼(金鍾三)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됩니다.

 

선생은 전북 임실군 강진면 출신으로 1909년 (음력) 2월 12일 순창군 강진면에서 정성련(鄭聖連)의 부하로 의진에 참여하여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징역 10년의 중형을 받았습니다.

 

▲ 김종삼 선생이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음이 기록된 합장부(전주형무소, 1932)

 

* 합장부 : 일제하 형무소에 수감 중 사망한 사람들을 가매장, 합장한 내용을 간단하게 기록한 문건

 


강화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옥고여독으로 순국한 박영칠 선생

 

3.1운동 당시 대규모의 공세적 시위로 유명한 경기도(현재 인천) 강화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박영칠(朴永七)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됩니다.

 

박영칠 선생은 1919년 3월 18일 강화군 부내면 관청리 시장에서 5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강화경찰서 공격과 일본 순사 응징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3개월을 받고 수감 중 1개월 여 만에 옥고 여독으로 사망 순국하였습니다.

 

▲ 박영칠 선생이 1919년 경기 강화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강화경찰서에서 순사를 응징하여 징역 3월을 받았음이 기재된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0. 5. 6)

 

옥고여독으로 순국한 선생의 사례는 일제가 식민통치기관이나 그 종사자를 공격하는 경우 얼마나 잔혹하게 대응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독립군 사관학교 정탐한 밀정을 처단한
염재군, 김광은 선생

 

중국 북만주에서 독립군 사관학교를 정탐한 밀정 일행을 처단하고 체포되어 사형 순국한 염재군(廉才君), 김광은(金光恩)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됩니다.

 

두 분은 1916년 중국 길림성 왕청현 나자구에서 일본 육군참모본부가 이동휘(李東輝) 등이 설립한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를 정탐하기 위해 파견한 일본인 등 밀정 3명을 처단하고 체포되었습니다.

 

▲ 염재군, 김광은 선생이 경성복심법원에서 살인죄로 각 사형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음이 기록된 조선총독부관보(1918.8.6.)

 

염재군, 김광은 선생은 체포된 뒤 1918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살인죄’로 사형을 받았고, 같은 해 7월 9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또한, 염재군 선생의 동생인 염재영(廉才英) 선생 또한 함께 활동하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받고 1930년 3월 19일까지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되어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이분들의 활동은 1910년대 중반 중국 북만주의 대표적 독립군 장교 양성기관인 동림무관학교의 대적(對敵) 활동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제말기 독립운동으로 옥고 치른
6.25전사자, 황용순, 유종남 선생

 

일제 식민통치 말기 전라북도 전주에서 독립운동에 진력할 것을 협의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황용순(黃龍順), 유종남(柳鍾湳)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됩니다.

 

두 분은 1943년 8월부터 1944년 2월까지 전북 전주에서 각각 전주사범학교 고용원(황용순)과 학생(유종남)으로 만나 일본인과의 차별에 반발하여 민족의식 관련 도서를 탐독하면서 일본군의 전쟁 준비에 타격을 가할 방안을 협의하고 주변에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힘쓰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황용순 선생은 징역 1년, 유종남 선생은 징역 단기 1년·장기 2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습니다.

 

▲ 황용순, 유종남 선생이 조선의 독립을 학수고대하고 있음이 기록된 수형기록판결문(전주지방법원, 1944. 11. 27)

 

두 분의 활동은 식민통치 말기 일제의 전시동원을 위한 이른바 ‘황국신민화’의 본질을 간파하고 ‘민족말살’ 시도에 ‘민족의식 고취’로 정면 대응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두 분의 나라사랑 정신은 광복 후 정부수립 뒤에도 이어졌는데요, 황용순, 유종남 선생은 1950년 6.25전쟁에 동반 참전하여 같은 날 전사 순국하는 드문 사례를 남겼습니다.

 


───────────

 


이번 제99주년 3.1절을 맞아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 분들의 공훈 내용을 함께 살펴보았는데요, 이로써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0,823명, 건국포장 1,227명, 대통령표창 2,829명 등 총 14,879명(여성 298명)에 이릅니다.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 관련 기관과 사료수집 협업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여 체계적인 공훈 발굴을 실행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국내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여성, 의병 등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데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3.1독립만세운동 중 덕수궁 앞의 만세시위 모습 (출처 : 독립기념관)

 


▲ 1919년 3월 1일 서울 강화문 기념비 앞에 모인 군중들의 모습(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3월 1일, 바쁜 일상 속 단비 같은 휴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99년 전 한반도는 일제의 공포 정치에 맞서 독립을 외치던 사람들과 태극기로 넘실거렸다는 것입니다.

 

제99주년 3.1절을 맞아 전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집니다. 독립을 위해 힘썼던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해 보는 건 어떨까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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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손홍국

    2018.03.03 1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의 무력통치 아래 인권과 민족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통치당한 폭압아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항거하다 옥고를 치르고 순국하신 모등 숭고한 선조들에 대하여 깊은 애도와 함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나의 아버님 엮시 3,1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옥고를 치루시고 감시 대상 인물로 자유롭지 모사여 러시아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독립운동ᅇᅳᆯ 하신 분으로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사료심사중입니다만 독립운동의 선봉에서 몸 바쳐 투쟁하던 모든 애국 선열에 대하여 머리 숙여 기리겠습니다 아울러 국가보훈처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독립운동 유공자들의 후손 찾기에 온갖 노력을 하고 있는데 대하여 감사함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망국의 상황이 도래하자 나라를 구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부대를 이끌었고, 1909년, 동양평화의 파괴자 이토 히로부미의 처단을 결심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처단에 성공하였고 의거 실행 직후에 체포되었습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 모두 일본인인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1910년 2월 14일 일제의 각본대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더라도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공소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여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과 자서전을 집필하며 거사의 진정한 이유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08년 전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날을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해 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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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가보훈처 업무보고>


"더 평화롭고 행복한 삶, 따뜻한 보훈"


2018년 새해, 국가보훈처가 추진합니다!


'현장과 사람 중심의 따뜻한 보훈 정책'

* 촘촘하고 두터운 보훈복지 강화

취약 계층 대상 「보훈나눔+」 사업 도입
독립유공자 ()자녀 「생활지원금」 신설
보훈가족을 위한 심리재활 및 심리상담서비스 제공
보훈요양원(현 전국 6개소 운영) 강원권과 전북권에 건립

보훈병원 내 재활센터 확충

* 유공자 심사기준 개선
독립유공자 포상 기준 개선
군 의무복무자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
상이 판정 기본원칙 마련

* 안보현장에서 헌신한 분들에 대한 지원 확대
1社 1제대군인 채용」 등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 취업지원 강화
의무복무자 중 취업 취약계층 취업 지원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사업 규모 확대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미래지향적 보훈 정책'

* 미래대비 중장기 계획 수립

- ‘국가보훈 5개년 발전계획’, ‘국립묘지 관리계획’, 현충시설 보존계획’ 수립


* 보훈 선양을 통해 국민통합의 계기 마련

- 독립-호국-민주' 기념행사 균형 추진 

- 해외사적지 적극 보존, 「e-현충시설국민지킴이」 도입


* 보훈단체 혁신

- 단체혁신 TF 구성, 혁신안 마련(법제화)

- 보훈단체 사회 공헌활동 확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 독립정신 계승사업

- 1,000만명 릴레이 3·1만세운동 재연행사, 100주년 기념음악 「위대한 유산」 제작 

등 다양한 사업 추진


*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 기념관 건립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 실시 및 건립위원회 운영



국가보훈처는 따뜻한 보훈 정책을 통해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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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8.01.26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년 독립기념관 주최 3.1운동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등 피식민지 국가와 un 기구, 평화단체 등을 초청하여 '평화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비록 1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기념사업추진위 산하에 박람회분과위원회를 설치하여 최소한 99강원국제관광엑스포 규모로 독립기념관 서곡 부지, 또는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 주위 부지에서 세계평화엑스포를 개최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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