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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국가보훈처 훈남훈녀 기자단 10기 김도헌입니다.
저는 지난 8월 12일, 부산광복기념관과 충혼탑을 방문하여 뜻 깊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부산광복기념관과 충혼탑은 부산 중구에 위치한 중앙공원 내에 위치해 있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하나씩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부산광복기념관입니다.


▲ 부산광복기념관 전경
               

부산광역시 서구 망양로 193번길에 위치한 부산광복기념관입니다.


부산광복기념관은 2000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는데요.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상과 그에 항거한 부산지역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적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2층에 전시실에는 부산 독립운동의 역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부산지방의 항일 독립운동의 실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도 2층 전시실로 들어가, 부산독립운동유적지에 관한 사진자료를 관람하였습니다.


▲ 2층 전시실 내 독립운동유적지 자료

 

해당 자료에는 부산지역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의 유적이 위치한 곳을 상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 2층 전시실내 부산항일 학생운동 자료

   

▲ 부산항일 학생운동 재현물

 

다음으로 본 자료는 ‘부산항일 학생운동(일명 노다이사건)’에 관한 자료입니다.


이 사건은 1940년 11월 23일 경남학도 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에서 일본학교를 우승시키기 위한 민족 차별적 심판에 대한 불만이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1940년 11월 23일 부산, 마산, 진주, 인근 지역 학생들을 모집하여 제2회 경남 학도 전력 증강 국방 대회가 개최되었는데요. 제1회 대회에서 조선인 학교인 동래중학교(현재 동래고등학교)가 우승하였기 때문에 경남 전역의 일본인 학교 교관들은 2회 대회에서는 일본인 학교를 우승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마지막을 남겨둔 상태에서 동래중학교가 실격하더라도 부산중학교를 0.5점 앞서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래중학교의 우승은 확실해졌는데요. 그런데 마지막 총점을 계산한 결과, 뜻밖에도 부산중학교가 1위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동래중학교의 김영근 교사와 학생들은 조선인 학생에 대한 차별 대우에 단체로 항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심판장 노다이는 “심판의 판정은 신성하고 절대 불가하므로 판정을 따르라”며 교사와 학생들의 항의를 일축하였는데요.


이러한 민족적 차별에 학생들은 울분과 의분을 참지 못하여 학생들은 폐회식 마지막 식순인 일본 국기 하강식 때 일본 국가 대신 우리의 애국가와 아리랑을 불렀고, “노다이 죽여라!”, “왜놈 죽여라!”고 절규하였습니다. 분노한 동래중학교와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은 시위행진을 벌였고, 4·5학년을 중심으로 약 400명의 학생들이 노다이관사를 습격하여 유리 창문을 모조리 깨버렸습니다.

 

엄중한 일제의 보도 통제 속에서도 부산항일 학생운동에서의 우리 학생들의 민족정기는 전국에 널리 메아리쳐 갔다고 합니다. 일제의 잔혹한 통치 속에서도 항일정신을 잃지 않는 학생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다음으로 관람한 것은 ‘일신여학교의 3.1독립운동’ 자료입니다.

 

▲ 2층 전시실내 일신여학교 3.1독립운동 자료와 재현물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1910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우리의 주권을 빼앗긴 역사적 배경 속에서 교육받고 자랐고 부산의 항일운동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3월 2~3일경 독립선언서가 비밀리에 서울로부터 부산의 학생대표단에게 전해지면서 일신여학교는 의거 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는데요. 3월 10일에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혼수감으로 준비한 옥양목으로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들어 11일의 시위를 준비하였습니다.


3월 11일 오후 9시경 고등과 학생 김응수, 송명진, 김반수 등 11명과 주경애, 박시연 교사는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좌천동 거리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일신여학교 어린 소녀들의 항쟁은 부산·경남 지역 3.1독립운동의 효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상 그 의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부산항일 학생운동 재현물

 

▲ 부산 3.1독립운동 의거도 자료

 

마지막으로 부산 3.1독립운동 의거도와 부산독립운동사에 관한 자료들을 관람하였습니다.

 

저는 부산광복기념관에서의 관람을 모두 마치고 근처의 충혼탑으로 향하였습니다. 충혼탑은 그 규모가 웅장하기 때문에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충혼탑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이후 나라를 위해 싸우시다 장렬하게 산화하신 부산출신 국군장병과 경찰관을 비롯한 애국용사들의 영령들을 모시고 있는 성스러운 위령탑이며, 영령들의 위패는 당초 용두산 공원에 모셔져 있던 것을 1983년 9월 충혼탑 건립 후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 충혼탑 입구

 

충혼탑 입구입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데요. 아마도 제가 지금껏 보았던 충혼탑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것 같습니다. 정문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정문으로 들어가 조금만 올라가면 충혼탑 바로 앞까지 갈수 있는 모노레일이 있습니다. 저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봤습니다. 탑승버튼을 누르고 조금만 기다리시면 탑승하실 수 있습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부산시내의 모습과 바다를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모노레일에서 내려서 충혼탑 바로 앞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 모노레일 입구
 

▲ 모노레일에서 바라본 부산시내와 바다


▲ 충혼탑 전경

 

충혼탑 전경입니다. 보존상태가 아주 좋았습니다. 충혼탑 주변은 공원처럼 아주 관리가 잘되어있습니다. 가까이 가면 애국용사들의 영령들을 모신 위패들이 있습니다. 육군, 해군, 공군, 경찰, 재일학도 의용군, 근로자 동원 등 봉안 위수가 총 9,359개입니다.

 

▲ 애국용사들의 위패를 모셔둔 곳
 

충혼탑을 관람하는 도중,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6.25전쟁에서 희생한 용사들의 호국정신과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글을 읽었습니다. 

 

「파수병처럼 멀리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이 탑신을 쳐다보면서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불의와 무도를 꾸짖듯 우람히 산턱을 딛고 서 있는 이 거인상 밑에서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한번인들 오늘 햇빛같이 밝은 자유 속에서 베개를 돋우고 잘 수 있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 것임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으며 눈부신 국제무대에서 선진조국의 위용을 빛내고 있는 실력이 어디서 왔던 것임을 돌이켜본 적이 있었던가. 아아 회상만 하여도 몸서리쳐지는 저 1950년의 6.25 동란!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공산 도백들이 남한 땅을 한입에 다 삼킬 뻔 했던 일보직전에서 만일에 우리의 충용한 장병들이 낙동강을 막아 반격으로써 승리를 거두지 않았더라면 오늘 우리가 이 같은 안정 속에서 삶을 누려갈 수 가 있었겠는가. 건국이후 내 몸의 편안보다 나라운명을 먼저 걱정해 몸소 목숨을 불살라 정의와 순국의 화신이 되어 있는 이 부산출신 육해공군 경찰 전몰용사들을 모신 충혼탑아래서 우리는 모름지기 옷깃을 가다듬고 호국영령들에 대한 보은과 함께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될 동족상잔의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숙원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지금 우리 시민이 수행해야 할 국민적 임무가 무엇인가를 엄숙히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이번 부산지역 현충시설 탐방을 통해 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과 6.25전쟁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국가보훈처 제10기 훈남훈녀 김도헌기자였습니다.

 

*출처
-부산광복기념관 전시실
-충혼탑 시설 내부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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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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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16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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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6.25전쟁에서 정전협정이 조인된 지 64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전협정의 협상이 최종적으로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실제로 체결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되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밤10시를 기점으로 총성이 멎은 이후, 유엔군 측과 북한군 측은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전쟁포로에 관한 조치 등 5개조 63항에 달하는 정전협정 조항을 이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정전협정의 내용에 따라 지금의 휴전선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6.25전쟁 중 열과 성을 다해 우리나라를 도와준 전세계의 유엔 참전용사들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기념일인데요. 2013년 7월 26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7월 27일로 제정하는 “참전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며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지난 7월 27일 오전 10시,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기념식장에는 6.25전쟁  참전용사를 비롯해 유족, 유엔 참전국 외교사절, 시민, 장병 등 3천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참석했는데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 기념식 참석 인원의 모습

 

오전 10시가 되자 장내 아나운서의 기념식을 알리는 안내 멘트를 시작으로 참전국 국기들의 입장이 있었습니다. 호주,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인도,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필리핀, 남아공, 스웨덴, 태국, 터키, 영국 그리고 미국까지 총 21개국의 국기가 무대 한군데에 모여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정말 많은 곳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주었구나, 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 참전국 국기 입장 모습

 

그 다음으로는 국민의례가 거행되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친 후에는 무대에 가수 ‘샤넌’이 등장하여 다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였으며 이후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참석자들


▲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는 모습

 

국민의례가 끝나고는 곧이어 6분 정도 길이의 영상 하나를 시청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영상은 “무엇을 바라고 한국전쟁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는 참전용사의 말로 시작되었고 오산전투의 참전용사였던 윌리엄 코, 대전전투 참전용사였던 윌리엄 보어러 등 실제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증언과 당시 전투 모습이 영상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영상이 나오자 모두 집중하여 끝까지 영상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실제 전투에 참가하셨던 참전용사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영상을 보셨을지 저는 감히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 영상의 시작
 

▲ 영상 속 실제 참전용사의 증언
 

▲ 집중하여 영상을 보고 있는 참석자들의 모습

 

영상이 끝난 후에는 주한 영국 대사인 ‘찰스 헤이’가 대표로 참전국 대표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의 변모라는 놀라운 성공 스토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헌신과 노력의 결실이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최고의 보상이기도 하다는 말로 연설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어서 이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리더이자 경제대국이며 전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수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면서 평창올림픽을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 과거 유엔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룩하는데 기여한 바를 기억하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도 친구, 동반자, 동맹의 미래 평화를 위하여 함께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며 인사말을 끝맺었습니다. 

 

▲ 참전국 대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주한 영국 대사 ‘찰스 헤이'

 

참전국 대표 인사말이 끝나자 훈장 수여식이 진행되었습니다! 태국의 한국전 참전용사 협회회원 ‘분차이 딧타쿤’과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용사 협회회장 ‘피터 시어슨’, 총 두 분이 각각 국민훈장 모란장과 동백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자 ‘분차이 딧타쿤(태국)’이 수상하는 모습

 

▲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자 ‘피터 시어슨(캐나다)’이 수상하는 모습

 

이어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사가 있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참전용사들이 명예롭게 기억되도록 대한민국은 더욱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한동안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였는데요. 또한, 참전용사 여러분의 헌신에 부응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참전용사의 위대한 희생은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며 우리 대한민국은 참전용사의 기대에 맞게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여하는 나라가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말로 기념사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사

 

이후에는 여러 기념공연들이 진행되었는데요, 이 기념 공연은 어린 여자아이의 판소리와 마치 전쟁 당시를 형상화하는 댄서들의 무대로 막이 올랐습니다.


▲ 전쟁을 묘사하는 듯한 댄서들의 공연

 

이어서 참전용사 한 분이 무대위로 올라와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는 전쟁 당시를 회상하며 그날 밤의 개마고원 저수지 장진호는 칠흑 같은 어둠만 가득했고 영하 40도가 넘는 강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쳤다고 담담히 낭독을 시작하였습니다. 너무 추워 잠시라도 멈추면 온 몸이 얼어버릴 것 같은 날씨에도 당시 우리보다 10배나 많은 중공군이 사방에서 에워싸고 공격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행군을 멈출 수 없었다면서 여기저기서 전우들은 죽어가고 있었고 이제는 끝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참전용사들이 장진면 고토리를 지날 때쯤 눈보라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구름 사이로 영롱한 별빛이 비추며 그들을 인도했다고 합니다. 그 별빛은 우리가 용기백배하여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승리로 이끌어 준 기적의 빛이라며 그로 인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3천여 명의 참석자들은 나누어 받은 팔찌의 불빛을 켜고 팔을 위로 들어 잠시나마 참전용사들과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 뜻을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 참전용사의 낭독


▲ 팔찌의 불빛을 켜고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는 참석자들

 

이어서 참전국 깃발을 들고 펼쳐진 무술 공연 후에는 참전국인 영국 출신 가수 ‘샤넌’과 리틀엔젤스예술단이 ‘We Go Together(우정과 화합의 대합장)’을 불렀습니다. 그 때 스크린에는 얼마 전 국가보훈처에서 22개국(물자지원국 포함) 110명의 유엔 참전용사 후손들을 초대해 열었던 ‘2017 Youth Peace Camp’에서 만났던 낯익은 얼굴들이 나와 우리나라에 대해 말한 인터뷰들이 나왔습니다. 노래가 계속 되는 동안 유엔 참전용사들이 무대위로 함께 올라오는 시간을 가지고 포토타임도 가진 이후에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 참전국 깃발을 들고 펼쳐진 무술 공연
 

▲ 입장하는 리틀엔젤스예술단
 

▲ 영국 출신 가수 ‘샤넌’과 리틀엔젤스예술단이 함께 열창하는 모습
 

▲ 2017 Youth Peace Camp 참가자들의 인터뷰1_”힘들 때 돕는 친구가 참된 친구예요.”’


▲ 2017 Youth Peace Camp 참가자들의 인터뷰2_”우리는 언제나 변함없는 진정한 친구죠.”
 

▲ 2017 Youth Peace Camp 참가자들의 인터뷰3_”우정은 기쁨을 두 배로 늘려주고 슬픔은 절반으로 줄여줍니다.” 


▲ 유엔 참전용사들이 무대위로 올라온 모습
 

▲ 리틀엔젤스예술단과 유엔 참전용사들의 포토타임1
 

▲ 리틀엔젤스예술단과 유엔 참전용사들의 포토타임2

 

저는 이렇게 기념식이 마무리 된 후 미국의 6.25전쟁 참전용사이신 ‘Anthony J. Kampeter’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고, Mr. Anthony는 흔쾌히 저의 인터뷰 제안을 수락하여 주셨습니다.


Q. I heard that you've been to Panmunjeom at the first day of this program, what do you feel after visiting there? After facing the tragedy of Korea that you fought for? (이번 참전용사 초청 프로그램의 첫날에 판문점에 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전용사께서 직접 수호하고자 싸웠던 대한민국의 비극을 직접 마주하시고는 어떠셨나요?)


A: It was real tragedy, yeah. I, I mean, we all didn’t expect this separated Korea when we participated in Korea war. We wanted the happy ending. I really hope to see the shape of Korea that is united peacefully, as soon as possible. (네, 정말 비극적이었어요. 저는, 아니 우리 모두는 6.25전쟁에 참전할 때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원했어요. 그러니까 하루 빨리 평화적으로 통일된 대한민국을 보고 싶네요.)


Q. And this question maybe little rude, sorry for that, however I want to hear some stories about the war that you participated. Anything about the war is okay. About your feeling, about your fellow soldiers, anything! (이 질문은 전쟁에 대해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라 죄송합니다만, 참전용사께서 참전하셨던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은데요. 당시의 느낌, 전우들에 관한 이야기, 그 전투에 관한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A: 63 years ago, I was there and the search light unit, I don’t know if you ever heard of it. We used our search lights for our forward observers to see anything was coming across the line. We were small units, 5-6 of us and we had 3 different places to go to. At nights, we go to some places they wanted us to go and shine the lights. And captain one time said that, somebody had a flash light, see how to set it up and how much the light go forward. One of the guy said, Wait about a half an hour, we have 60 inch light with shines. They said they read it on newspaper in ten miles, I don’t know if it’s true or not. but it was real bright. But we were always safe. Ha-ha-ha I mean pretty safe. (64년 전 6.25전쟁 당시에, 들어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탐조등 부대에 있었어요. 우리는 혹시 누가 분계선을 넘어오는지 전방관측장교가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탐조등을 켜는 역할을 하곤 했어요. 우리는 대여섯명으로 구성된 작은 부대였는데 세 곳 정도 가는 데가 정해져 있었어요. 밤이 되면, 전방관측장교들은 그 세 곳 중 한 군데로 가라고 지시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불빛을 켰죠. 하루는, 대령이 누군가 탐조등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고,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며 어느 정도로 기능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어요. 우리 중 한 명은 그것을 정비한 후에 30분 후 켜서 보여주었고 1.5m 정도의 앞 까지만 비출 수 있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그 대령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신문에서는 16km까지 빛이 나간다고 써 있었다고 하며 허탈해하기도 했어요. 하하. 그래도 지금 떠올려봐도 저에게 그 빛은 정말 밝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희는 그래도 안전한 부대였어요. 하하. 제 말은 상대적으로요.)


Q. What do you think about remarkably changed Korea, contrasted by the War time Korea when you were here before? (6.25전쟁 당시의 대한민국을 떠올려 보았을 때, 이렇게나 변한 대한민국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A: Oh my god. 100% changed. I felt so sorry for the people lived that time. Civilians, yeah. Well I can see that. They didn’t have any decent places to live. They lived with cardboard shapes like, you know? It was so terrible. We always raised with plenties, had good places to stay, to sleep. I don’t see how they did it in such a short time, it’s only 60 years! (아, 세상에. 정말 100% 바뀌었어요. 그 당시에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가여웠어요. 네, 민간인이요. 그 때 그들은 어떤 괜찮은 공간도 가지고 있지 못했어요. 판지 모양의 그런 것을 가지고 그 안에서 살아갔어요. 정말 비극적이었죠. 우리는 풍요로운 것들 속에서 자랐고, 머물고 잠잘 수 있는 꽤 괜찮은 집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이런 발전을 이루었는지 눈으로 보고도 정말 믿기지 않아요. 고작 60년 인걸요!)


Q. Are you satisfying with this mpva's program and the respectful treatment from Korea? (이번 국가보훈처의 프로그램과 대한민국에서 제공하고 있는 예우에 대하여 만족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Oh yes, very good. Very good. I am really pleased to it. Unbelievable. (아, 그럼요. 정말 좋습니다. 정말 좋아요! 저는 정말 만족하고 있습니다. 굉장해요.) 

 

▲ 인터뷰 후 Mr.Anthony와의 기념촬영

 

이번 기념식에 다녀오며서, 우리는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들이 지켜내기 위해 분투했던 자유와 평화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봐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 희생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기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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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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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무더운 여름,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지난 8월 3일, 찾아가는 보훈서비스인 보비스가 10주년을 맞이하여 진행되었던 ‘보훈가족 한마음 잔치’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백범김구기념관 전경>


기자단으로서 첫 발걸음이었던 면접, 그리고 방문취재 등 여러 차례 오고 갔고, 또 얼마 전 몽양 여운형 선생 추모식을 취재하러 왔었던 백범김구기념관에 다시 오게 되니 기분이 묘했는데요. 언제든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이번에 취재가게 된 행사는, 찾아가는 보훈복지, 보비스 선포 1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된 ‘보훈가족 한마음 잔치’였는데요.


찾아가는 보훈복지서비스, 보비스(BOVIS)는 Bohun Visiting Service(찾아가는 서비스)의 약자로 ‘이동보훈’과 ‘노후복지’를 통합한 국가보훈처의 이동보훈복지서비스 브랜드입니다. 국가보훈처는 2007년 8월, 나라에 헌신하신 국가유공자 분들의 건강하고 명예로운 노후 생활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정식으로 발족하였는데요.


이 중 재가복지서비스는 거동이 어려워 일상생활이 불편하신 국가유공자, 유족 분들 중 대상자 분들의 가정을 보훈섬김이가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가사를 돕고 건강을 관리해 드리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보훈섬김이가 지원할 수 없는 사항이나 전문기관의 지원이 필요한 분들께는 보훈대상자 분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사회복지시설 및 자원봉사단체 등과 연계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고 있는데요. 현재는 전국 보훈(지)청에서 37개 팀을 운영하면서 보훈가족을 섬기는 ‘맞춤형 재가복지서비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식의 진행에 앞서 피우진 보훈처장님께서 참석자 한 분 한 분과 악수를 나누셨습니다.

 

 

 <국가유공자와 악수를 나누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식은 사회자의 개회선언, 국민의례, 홍보영상 상영,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인사말, 복지인력 포상, 소감발표, 감사영상 상영, 축하공연 및 오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발언중인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국가유공자 어르신의 명예롭고 건강한 내일을 위하여 만들어진 이동보훈복지서비스 (보비스)는 맞춤형 재가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 문화활동을 지원함으로써 국가유공자의 희생에 보답하는 국가차원의 따스한 응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비스에 대하여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젊은 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주신 국가유공자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다” 며 “올해로 국가유공자 평균 연세가 71세인데 고령인 여러분들께 국가가 진심으로 보답할 차례” 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또한 피우진 처장은 “어떻게 여러분을 보다 잘 모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따뜻한 보훈’을 새로운 정책으로 삼았다” 며 “말 그대로 정책과 제도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7년에 발족한 보비스야말로 따뜻한 보훈을 실천하는 중심에 있다”라고도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피우진 처장은 보비스의 규모를 확충시킴으로써 보비스의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겠다고도 하였습니다. 이어 그간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국가유공자 분들을 가족처럼 섬겨온 보훈복지인력 대표 8명(보훈복지사 1명, 보훈섬김이 6명, 보비스 운전요원 1명)에 대한 포상이 진행되었습니다.

 

<서울남부보훈지청 옥상영 보비스 요원에게 표창을 수여하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수상한 보훈섬김이 조재순 님에 꽃다발을 전달하는 송용옥 님>

 

이후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점을 서울북부보훈지청의 보훈복지사 정인숙 님과, 서울지방보훈청 보훈섬김이 오연정 님께서 발표하였습니다.


이후 가수 노사연씨의 축하공연이 있었고, 노래 가사 중에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는 부분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축하공연이 끝나고 오찬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틈틈이 참석하신 분과 수상자 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재가복지서비스를 지원받고 계신 국가유공자 김종진님>


6.25전쟁 당시 백골부대 소속이었던 참전유공자 김종진 님께서는 재가복지서비스에 대해, 보훈섬김이와 대화하고 가사를 지원받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재가복지서비스로 인해 건강하게 지낼 수 있고, 이런 행사도 참석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표창을 받으신 서울남부보훈지청 보비스 요원 옥상영 님>

 

이번에 표창을 받은 옥상영 님은 현재 만 8년째 서울남부보훈지청 보비스 요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국가유공자, 유족 분들의 집에 가가호호 방문해서 어려운 점을 보살펴드리는 일을 주로 하고 계신데요. 꼭 필요한 노인 용품을 적시에 전달해 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옥상영 님은 지난 8년간 10만km가 넘는 주행을 하면서 오늘도 국가유공자 분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상에 대하여는 “영광스러운 상을 받아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죄송하다. 더 열심히 하라는 상으로 알고 임무에 더 충실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표창을 받으신 서울북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조재순 님>


국가유공자 어르신 집에 방문해서 집안청소, 은행업무, 병원동행 등 각종 일을 맡아서 하는 보훈섬김이 조재순 님께서는 “모든 섬김이가 고생하는데 이렇게 상을 받는 것이 쑥스럽다” 며 감사함을 표하였습니다. 
 

<조재순 보훈섬김이의 보살핌을 받고 계시는 송용옥 님>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국가보훈처의 재가복지서비스를 알게 되어 신청하셨다는 송용옥 님께서는 “보훈섬김이 덕분에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어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과 같은 행사도 오고, 기차여행도 다니면서 여생을 적적하지 않게 갈 수 있다고 하는 어르신의 얼굴에서 행복함이 묻어났습니다.

 

오찬이 종료된 이후에 다 같이 기념촬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켜낸 국가유공자 분들을 위해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따뜻한 보훈’으로서 지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보비스 10주년 기념 행사는 가슴 한편으로 뭉클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국가를 수호한 분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며, 그들의 내일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보비스 선포 10주년은 피우진 보훈처장이 언급하였던 것처럼, 새로운 10년을 위한 또 하나의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런 뜻 깊은 자리에 참석할 수 있어서 저 역시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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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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