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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국가보훈처 기자단 11기 박명훈입니다. 저는 4월 12일 제16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기념식에 다녀왔습니다. 추모식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기원하듯 봄 날씨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를 아시나요?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캐나다인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참혹했던 일제의 만행을 카메라와 펜을 통해 「제암리의 대학살(The Massacre of Chai-Amm-Ni)」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 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럼으로써 일종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광명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어떻게 그토록 한국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고 싶어서 추모식 기사를 선정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릴 정도로 한국의 독립에 헌신적이었습니다. 취재 전 스코필드 박사의 생애를 찾아보며 모두가 혼란스러운 일제 강점기 시절, 조국을 팔고 부귀영화를 취한 친일파들이 득세하던 시절에 오히려 조국이 아닌 나라의 독립을 돕는 모습에 감명 받았습니다.


 1889년 3월 15일 영국에서 태어난 스코필드 박사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고, 고등학교까지 영국에서 마친 후 농장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면서도 수의학과에서 세균학을 전공합니다. 이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원장 애비슨의 요청으로 선교사로서 한국으로 가게 됩니다.


박사는 3.1운동의 첫날부터 사진으로 운동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제암리 참사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해외에 알리는데 공헌합니다. 「제암리의 대학살」, 「수촌 만행 보고서」를 통해 그는 수원일대에서 발생했던 일제의 3.1운동에 대한 보복행위의 참상을 알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일언론인 서울프레스가 서대문형무소를 긍정적으로 보도하자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수감되어있던 죄수들을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스코필드 박사는 각종 신문기고를 통해 3.1운동의 정신과 그 계승을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1968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랬던 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4월 1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사의 장례는 광복회 주최의 사회장으로 이루어졌고 그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 추모식이 진행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스코필드 박사의 추모식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건물 3층 스코필드홀에서 진행되었고,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와 장소를 제공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이 주관했습니다. 


▲ 추모식 진행에 앞서 국민의례가 있었습니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추모식이 시작되었습니다. 

1부는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장,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 에릭 월시 주한 캐나다 대사, 정운찬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의 추모기념사와 스코필드 장학금 수여식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부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내빈들을 위한 특별강연이 있었습니다.


▲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의 우희종 학장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우희종 학장은 “단순히 과거의 업적을 기리는게 아니라 스코필드 박사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을 어떻게 펼쳐나가는지가 주 뜻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현재 진행 중인 라오스에의 수의과대 설립과 같은 활동들을 통해 스코필드 박사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등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셨던 분입니다. 스코필드 박사가 자신의 뜻이 타국에서의 활동을 통해 계승되고 있음을 아신다면 분명 굉장히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스코필드 박사는 우리나라가 힘든 시절에 직접 나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장학 혜택을 주셨다. 이는 시대를 앞서간 개척자이자 한줄기 빛과 같다. 오늘의 서울대가 있기까지 공헌해주신 분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스코필드 박사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이어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의학·행정학 교육을 지원받던 서울대학교가 이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해야 되는 건 베풂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 스코필드기념장학금을 수여하는 성낙인 총장


 이어서 스코필드 장학금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2명과 관악구내 중학생 1명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했습니다.

저는 추모식이 끝나고 간단한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조소연/서울대 수의학과) 처음으로 추모식에 참석했는데 스코필드 박사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훌륭하신 분이 주신 장학금이기에 더욱 영광입니다. 


(장민주/관악구내 중학생) 작년에도 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매번 좋은 교훈을 얻어가서 기쁩니다. 오늘도 연설과 강연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축사를 진행하는 에릭 월시 대사


 에릭 월시 대사는 “스코필드 박사를 포함한 캐나다의 선교 활동이 이어져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공헌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어 “이 유대를 더욱 증진시키기 위해 과거를 되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강만희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이어서 강만희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이 기념사를 전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현장에서 참사를 사진으로 담아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고, 한국을 위해 정신적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인류애의 발로이자 한국을 사랑하신 박사님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는 것처럼 우리의 가슴 속에서도 박사님의 정신 또한 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박사님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기념사의 말씀대로 스코필드 박사는 각종 기고 등을 통해 한국을 위한 정신적 충고를 아끼지 않으신 분입니다. 박사가 남긴 정신적 충고를 절대로 꺼트리면 안 되는 불씨처럼 가슴에 소중히 간직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운찬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


 정운찬 명예회장은 “스코필드 박사님의 고마움을 기리는 자리에 나와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제자들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스코필드 동상을 건립하고, 추모식과 장학센터 운영 등 부족하지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며 말미에는 내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삼일회당 건립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 강연 중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2부에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제목을 ‘21세기 스코필드를 향하여’라고 지었는데 현 정부의 사람 중심 캐치프레이즈와 스코필드 박사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 같다.”며 운을 띄운 김상조 위원장은 “현재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은 이전 세대의 책임이기에 미안하게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서거 48주기 추모기념식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기사의 시작에서 저는 ‘스코필드 박사는 어떻게 그토록 한국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저는 그 답을 스코필드 박사의 한국식 이름에서 찾았습니다.


 한국을 사랑한 스코필드 박사에게는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있습니다. 석호필이란 돌 같은 굳은 의지, 호랑이처럼 강자에게 무서운 사람됨,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도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돌과 같은 굳은 의지로 일제에 굴하지 않고 독립을 염원하는 이들을 도왔던 것입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비극적인 사건의 실상을 직접 카메라로 담고 불의에 목소리를 높이는 등 올바른 길을 걷는 언론인의 자세 또한 갖췄습니다. 그래서 기자단 활동을 하고 있는 저의 선배이자 본받아야 할 우상이기에 이번 취재는 더욱 뜻 깊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는 스코필드 박사 외에도 많습니다. 헤이그 특사 에 도움을 준 헐버트 선생,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일본의 침략행위를 폭로한 베델 선생 등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나라를 빼앗겼던 암울한 현실 속,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추모기념식에 참석하고 스코필드 박사의 생애에 대해 알아본 지금도 저는 감히 박사의 그 강대하고 너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의 정신을 더욱 기억하고 생각해나가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스코필드 박사를 기억해 주세요!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스코필드”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80352&cid=59011&categoryId=59011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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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의 사진이 6.25전쟁실Ⅲ관에 전시되어 있다


1950년 6월 25일은 한반도에 전쟁이라는 비극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게 만들었던 6.25전쟁은 남과 북을 갈라놓았고, 가족을 잃고 고향을 갈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전쟁만큼 인간을 피폐하고 아프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요. 다시는 이 땅이 전쟁의 아픔을 겪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는 전쟁의 실상과 아픔,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이룩한 분들을 기억하면서부터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특히 여러분께서 생소하게 느끼실 수도 있는 6.25전쟁의 한 부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로 유엔군의 이야기입니다. 유엔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이 바로 그곳입니다.

저는 전쟁기념관의 6.25전쟁실Ⅲ관을 방문해 6.25전쟁에 도움을 주었던 유엔 참전국의 이야기를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전쟁기념관의 모습


6.25전쟁, 잊어서는 안 되는 그들의 이야기 


“자유와 평화를 위해 용감히 싸운 유엔참전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대한민국은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 6.25전쟁실Ⅲ관에서 참전국의 지원현황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전쟁기념관 6.25전쟁실Ⅲ관은 6.25전쟁 당시 유엔참전국 참전용사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사진과 유품, 모형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전시물들을 통해서 보니 낯설게만 느껴지던 6.25전쟁과 유엔군의 이야기가 가깝고 생동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유엔은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회원국에게 대한민국에 군사적인 원조를 보낼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후 유엔회원국은 대한민국에 전투부대, 의료지원부대를 파병했습니다.


▲ 미군의 유품과 군복이 전시되어 있다


6.25전쟁은 유엔회원국의 군대파병과 유엔군사령부 창설로 ‘유엔의 전쟁’의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이전까지 유엔군은 한반도 땅에서 약 3년 1개월간 피와 땀을 흘렸습니다. 지구촌 21개국에서 약 194만 여 명이 참전해 3만 7천여 명의 고귀한 생명을 이 땅 위에 바치게 되었습니다.


▲ 콜린스 장군으로부터 유엔기를 인수하는 맥아더 장군의 모습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해 창설된 유엔은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유엔군을 결성했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유엔의 결의에 경의를 표합니다.

유엔군의 결성으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에서 대한민국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16개국은 전투부대를 파병했고, 5개국은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했으며 전쟁으로 파괴된 한국을 돕기 위해 42개국은 원조 및 구호물자를 지원했습니다. 물자 및 재정지원에는 39개국이 함께 했습니다.


▲ 호주군 다우스 일병의 유품인 머리빗과 사진 그리고 성경책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전쟁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유엔군을 결성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이 땅에 흘린 피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전시관에서는 각 나라별 전쟁에 참여한 이야기와 군인들의 유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각 나라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강조되어있는 까닭은 그것이 모두 기억되어야만 할 역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 유엔 참전용사에게 쓴 편지가 화면에 비춰지고 있다


모두가 기억되어야 할 역사. 그 각각의 이야기를 이번 기사를 기회로 짧게나마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유일하게 비회원국으로 참전한 이탈리아, 수준높은 의술을 보유한 공수부대 운용으로 적극 지원한 인도, 야전 병원단이 6년 6개월 주둔하며 많은 병사자를 치료한 스웨덴, 남미 유일의 참전국 콜롬비아,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견한 에티오피아, 유일하게 병원선 유틀란티아호를 파견한 덴마크, 두 나라가 연합 지원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하늘을 나는 치타부대로 지원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또한 육군과 공군 부대를 파견하고 장진호 전투를 지원한 그리스, 최초의 물자지원에 이어 참전한 태국, 형제의 나라로 대규모 여단급 부대로 지원한 터키,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참전한 필리핀, 계급보다 중요했던 자유에 대한 신념으로 지원한 프랑스, 전원 자원자로 편성된 대대로 참전한 네덜란드, 포병연대가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던 뉴질랜드, 대규모 여단급 부대로 지원한 캐나다, 호주왕립연대로 지원한 오스트레일리아, 영연방국을 편성하여 지원한 영국 그리고 유엔의 핵심 축을 담당한 미국까지 그들의 희생과 헌신의 이야기는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 한 벽면에 유엔참전용사들의 사진이 가득 채워져 있다


국가보훈처는 오는 4월 23일부터 28일까지,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군 전사·실종장병 24명의 미망인, 자녀, 형제 등 유가족 51명을 초청합니다.

65여년 동안 유가족들이 겪었던 아픔을 위로하고, 전사·실종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그 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대한민국을 알리는 행사를 가질 예정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참혹하게 파괴된 한반도 땅에서 전쟁을 치렀던 이들에게 지금 대한민국의 발전된 모습은 기적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 기적의 토양을 다져주신 유엔참전용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피가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우리의 현재의 삶. 그래서 더욱더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전쟁기념관 취재를 통해 그 숭고한 희생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앞으로도 이 땅에 일어나지 않기 위해, 세계평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6.25전쟁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세계 평화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도 6.25전쟁의 아픔과, 대한민국에 도움의 손길을 보냈던 유엔 참전국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전쟁기념관 6.25전쟁실Ⅲ관 전시자료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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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주 유림선생 57주기 추도식


지난 4월 1일 북한산에 위치한 단주 유림 선생의 묘전에서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단주 유림 선생이 생소하신 분도 있으실 텐데요. 추도식 이야기에 앞서, 선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단주 유림 선생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는 부흥회와 자강회를 조직하였고, 서로군정서에서 활동, 신한청년당에 가담하는 등 독립을 위해 힘썼습니다. 이외에도 신채호, 남형우 선생 등과 잡지 ‘천고’의 발행을 도와 독립운동에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김두봉, 신채호 선생이 쓰고 있던 <한글말본>과 <조선말본> 저술에 도움을 주었다고도 전해집니다.

1962년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조선말본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번 추도식에서 1946년 유림 선생이 창간했던 ‘독립노농신문’의 창간사를 낭독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념사업회에서 이 창간사를 구하기 위해 많이 애썼다고 하는데요, 그럼 추도식의 현장으로 가볼까요?


▲ 추도식 현장


추도식은 개회사-국민의례-단주 유림 선생의 약력 보고-독립노농신문 창간사 낭독-추도사-추모가-회장 예사-유족대표 예사-헌화 및 분향-폐회사 순으로 이뤄졌습니다. 



국민의례 후 기념사업회 백종태 부회장이 단주 유림 선생의 약력보고를 하였습니다. 독립운동에 힘썼던 유림 선생의 생애는 그야말로 희생과 투신의 연속으로, 그 자취를 짚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 약력보고


이후 독립노농신문 창간사 낭독이 이어졌습니다. 이 창간사는 당시 시대 상황과 유림 선생의 업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중략)… 오직 우리의 살길은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힘으로 우리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들끼리 피와 희생으로써 완전자주독립을 찾는데에만 있는 것뿐이다. 남을 믿다 실망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남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의 현명한 동포로서는 다시 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남의 호의도 남의 원조도 삼가하여야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이런 것들을 바랄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희! 우리들은 이 악몽을 심혈로써 깨닫고, 우리들의 운명은 오직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중략)…”

- 단주 유림 선생의 독립노농신문 창간사 중



추도사는 네 분이 진행해 주셨는데 단주 유림 선생 기념사업회 김영천 회장, 전 국가인원위원회 안경환 위원장, 박겸수 강북구청장, 단주 유림 선생 기념사업회 박정희 부회장의 김창숙 선생과 구상 시인의 추도사 낭독 순이었습니다.

김창숙 선생은 성균관 대학교 초대 총장이자 성균관 초대 관장이었는데 단주 유림 선생과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고 합니다. 1961년 4월 1일, 유림 선생의 서거는 거짓말 같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대 있어 이 나라가 무겁더니 그대 떠다니 이 나라가 비었구나.”

김창숙 선생은 유림 선생을 잃은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김창숙 선생이 남긴 추도사에서 오랜 친구를 잃은 슬픔이 그대로 보이는 듯했습니다. 특히 김창숙 선생은 “단주 옹이야말로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애국지사였습니다. 일찍이 권력이나 금력에 흔들리지 않고 철석같이 절조가 높으신 개결한 분이었습니다.”라며 그를 기억하며 슬퍼했습니다.


김영천 기념사업회 회장은 추모사에서 민족 자주와 평화 통일로 인류가 함께하는 세상을 맞이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 김영천 기념사업회 회장의 추도사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부모님의 신혼시절 단주 유림 선생의 도움을 받은 것을 회고하며 평등과 공존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유림 선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유림 선생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정신은 한반도 통일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며 추도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추도사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추도사에서 단주 유림 선생 흉상을 제작해 기념관에 설치하고 유림 선생의 묘역뿐만 아니라 북한산에 있는 묘역들을 성역화하여 국립묘지로 지정해 유림 선생의 유지를 받들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추도사


다음으로 3.1여성 동지회 합창단의 추모가 공연이 있었습니다. 3.1여성 동지회 합창단은 오랜 기간 동안 단주 유림 선생의 추도식 때마다 추모가를 불러왔다고 합니다.


▲ 추모가


모든 식순이 마무리된 이후, 유족대표 두 분과 단주 유림선생 기념사업회 김영천 회장은 참석하신 분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후 참석한 분들의 헌화 및 분향으로 추도식은 마무리되었습니다. 


▲ 헌화와 분향


단주 유림 선생은 일생을 독립을 위해 바친 분입니다. 4월 1일, 이날은 단주 유림 선생의 서거일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구상 시인의 추모시로 이번 기사를 마치겠습니다.


적광의 진혼


구상


북극성과도 같은 고절이었다. 단주, 당신이 지녔던 그 인류적 이상이나 민족적인 소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인류해방을 향한 열정이요, 의지요, 혼신이었다. 이러한 고매정신에 뒤따르는 인격적 결백이 당신의 생애를 신산으로써 결정지었고, 이제 우리에게도 비통과 억울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유림&ridx=1&tot=281#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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