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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터 독자여러분 안녕하세요. 훈남훈녀 제10기 기자단 유수연입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은 다양한 항일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국내에서의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와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이 때의 흔적은 상해에 임시정부 유적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신한촌 기념비와 이상설 유허비 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의거 이후 재판을 받은 중국 대련 지역의 관동법원과 수감 생활을 한 여순 감옥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기사는 총 2편의 시리즈물로, 훈터 독자 여러분들에게 제가 직접 탐방한 중국의 항일운동 유적지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30분 동안 이동하여 중국 대련에 도착했는데요. 중국 랴오닝성 다롄(대련)시 뤼순(여순)에 위치한 이곳에는 여순 감옥과 관동법원이 있습니다. 


여순 감옥(뤼순 감옥)은 1902년, 러시아가 동북3성에 항의하는 중국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건축하였는데요.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여순을 점령하게 된 후 1907년에 현재 형태의 규모로 확장한 것입니다. 총 면적은 약 26,000m²로, 2천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여순감옥 전경의 모형과 외관


안중근 선생을 비롯하여 신채호, 이회영 선생 또한 이곳에 수감되었다가 순국하였는데요.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 특별관도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여순감옥과 관동법원 모두 대한민국 독립기념관과 교류를 맺어 한국어 해설을 제공하고 있었는데요. 곳곳에 있는 한국어 안내판과 직원의 한국어 해설을 통해 더욱 수월하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 여순감옥의 연혁표


여순감옥에 입장하면 먼저 건물의 모형도와 지도, 그리고 죄수복들을 볼 수 있는데요. 죄의 경중에 따라 색깔이 구분되었다고 합니다. 죄수복 색에 따라 밥그릇의 크기 또한 달랐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자백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 여순감옥 수감자들의 죄수복


안쪽으로 이동하면 수용실과 통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고문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주로 태형이 진행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중에는 현재까지도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는 도구들도 많아 당시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줍니다. 여러 기계들 또한 인상 깊은데요, 죄수들을 이용하여 인쇄, 프레스 작업 등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여순감옥 내부 모습


▲ 죄수들이 일할 때 썼던 기계의 모습



▲ 여순감옥 수감자를 고문했던 고문기계 


의무계, 사형실 등 여러 방도 보이는데요, 의무계는 수감자들의 치료를 돕는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실제로는 매우 열악했으며, 환자에게 사혈침을 놓거나 생체실험을 행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형실은 사형이 집행되던 장소로, 교수형 집행 이후 밑의 나무통에 시체를 넣어 뒷산에 암매장했다고 합니다.


▲ 여순감옥에 전시된 의무계 설명서


▲ 사형 집행장


안중근 의사 특별 전시실에는 안중근 의사에게 헌화와 추모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안중근 의사 사형 집행 장소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독방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독방의 모습


여순감옥을 관람한 뒤 인근에 위치한 관동법원으로 이동하였는데요.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재판이 이루어진 장소입니다.


▲ 관동법원 외관


관동법원은 총 2층 높이의 건물로 1층은 역사실로 개조되어 여러 유물들과 해설을 제공하고 있었고, 2층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1층에서 해설을 들은 뒤, 2층 안중근 의사의 재판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 영상을 시청하며 당시 재판 상황과 안중근 의사의 업적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관동법원 박물관 내부


관동법원 또한, 안중근 의사 특별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 등을 전시되어 있었고, 안 의사의 흉상이 있었습니다.



▲ 안중근 의사 특별 전시실


여순감옥과 관동법원 두 곳 모두 안중근 의사 특별 전시실을 운영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전시하는 모습을 보며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느끼며, 일제에 용감하게 함께 맞섰던 조선과 중국의 독립운동가분들을 생각하고 기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관동법원 내부 전시물


이렇게 중국 대련 지역의 항일운동 유적지, 여순감옥과 관동법원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책이나 인터넷에서만 보았던 곳들을 실제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훈터 독자분께서도 중국 대련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이 두 곳을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중국 내 항일운동 유적지를 가다! 1편을 마치며 2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상으로 제10기 훈남훈녀 기자단 유수연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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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집을 나서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매헌 윤봉길 의사-


분당선 ‘양재시민의 숲’ 역 5번 출구로 나오니 길 건너 푸른 기와지붕건물이 보입니다. 녹음(綠陰)이 가득한 ‘시민의 숲’을 따라 잠시 걷자, 오늘의 목적지인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은 윤봉길의사의 삶과 업적을 올바르게 알리고자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1988년 12월 1일, 국민들의 성금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국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졌다는 것이 더욱 뜻 깊은 것 같습니다.


▲ 신분당선 ‘양재 시민의 숲’ 역 5번출구로 나오면 파란 기와지붕 건물이 바로 보인다.


▲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의 모습


기념관의 1층에 들어서니, 태극기를 뒤로한 윤봉길 의사의 흉상과 전신동상이 있었습니다. 늠름한 동상의 모습에서 조국독립을 향한 그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자, 그럼 윤봉길의사의 이야기와 함께 전시관을 살펴볼까요?


▲ 윤봉길 의사의 흉상. 이곳에서 윤봉길 의사를 기리며 헌화할 수 있습니다.


▲ 윤봉길 의사의 전신 동상.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포토존으로 꾸며져 있어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음.) 


윤봉길 의사는 23세의 나이에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비장한 글을 남긴 채, 독립운동에 헌신하려는 결의를 품고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1931년,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착한 그는 당시 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 선생을 찾아가 ‘살신구국’의 뜻을 밝혔습니다. 당시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위성국인 ‘만주국’을 세우는 등 한반도를 넘어 대륙을 침략하려는 야욕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에 윤봉길의사는 김구 선생과 의열투쟁의 방안을 찾던 중,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왕의 생일축하행사와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이 열린다는 신문 보도를 접하게 됩니다. 


이에 윤 의사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김구 선생과 함께 의거 결행의 만전을 도모하였습니다.


마침내 의거일인 1932년 4월 29일, 윤 의사는 김구 선생과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김구선생과 회중시계를 교환하였습니다.

 “선생님 이 시계는 어제 6원을 주고 산 시계입니다.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제 것하고  바꾸십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 후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이 시계를 받은 김구 선생은 죽음 앞에서도 태연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라고 답하며 역사적 거사의 성공을 기원했습니다.


▲윤봉길의사의 마지막 모습과 김구선생과 교환한 회중시계.


윤봉길 의사는 물통과 도시락으로 위장된 폭탄을 김구 선생으로부터 받아 일왕 생일 겸 상해사변 승전 축하 기념식이 있을 상해의 홍구 공원에 입장하였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의 국가 제창이 끝날 무렵 물통형 폭탄을 경축식장의 단상 위로 투척하였습니다. 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일제의 수뇌부들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바쳐 의거를 성공시켰고, 전 세계에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알렸습니다.


▲ 윤봉길의사가 투척했던 물병형 폭탄의 모형.


매헌 윤봉길 기념관 1층의 유물전시실에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교환한 시계와 물병폭탄의 모형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 안경집, 지갑 등 윤봉길 의사가 사용했던 물건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민족계몽과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민중이 깨어나 나라가 부강해지면 일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윤 의사는 망명길에 오르기 전 1928년, 부흥원을 세워 농촌 개혁을 실시해 갔고 이듬해에는 월진회를 조직하여 농촌개혁운동을 추진할 중심 인물들을 규합하였습니다. 


기념관의 2층에는 ‘윤봉길의사 새 책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휴일과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에서 18시까지 운영하며 1인 2권을 1주일간 대출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다면, 윤봉길 의사의 뜻과 정신을 기리고 따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윤봉길의사 새 책 도서관의 모습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후 1945년 9월 2일, 일본은 미국의 전함인 미주리 호(USS Missouri)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하였습니다. 이 때 일제를 대표하여 항복문서에 조인하는 ‘중광규’ 외상은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 공원 의거 당시 단상에서 폭탄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죠. 일제가 몰락하는 순간에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부상당한 그가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이 더욱 상징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을 예고하는 폭죽이자, 일제의 패망을 예고하는 전주곡이 아니었을까요?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독립운동가의 정신과 뜻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아는가

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

왜놈이 왜 와서 왜걸대나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모르는가

되놈 되와서 되가는데

왜놈은 와서 왜 아니 가나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잠 자는가

동천에 서색은 점점 밝아 오는데

조용한 아침이나 광풍이 일어날 듯


피 끓는 청년 제군들아 준비하세

군복 입고 총 메고 칼 들며

군악 나팔에 발맞추어 행진하세

-윤봉길, ‘청년 제군에게’- 


*참고자료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http://www.yunbong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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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독립에 대한 의지를 널리 알렸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이후 9월 2일, 한 노인은 새로 부임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고 37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98년 전 그날, 의거를 거행한 그 사람은 바로 강우규 의사였습니다.


▲ 수형기록카드의 강우규 의사


강우규 의사는 평남 덕천에서 1855년 출생하고 한학을 배우며 한의업에 종사하였습니다. 1910년대 함경남도 홍원에서 영명학교를, 이후 길림성에서 광동학교를 설립하여 선교활동 등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19년에는 3.1운동에 호응하여 만주, 노령 등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고, 동년 5월에는 노인동맹단(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참여하였습니다. 활발히 독립운동을 하던 중에 강의사는 조선총독을 폭살시킬 계획으로 폭탄을 구입한 후, 허형과 함께 원산을 거쳐 8월 5일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강우규 의사는 신문보도를 통해 8월 12일 임명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9월 2일 부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사진을 오려 가지고 다니면서 사이토의 얼굴을 익혔습니다. 드디어 거사 당일 오후 5시, 사이토 총독 일행이 남대문역에 도착하였고, 강 의사는 폭탄을 투척했습니다. 이후 또다른 거사를 계획하다가 의거 16일 만에 피체되었습니다.



2017년 9월 2일, 저는 강우규 의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서울역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현재 구 서울역사(現서울역284)는 1925년 준공된 경성역 건물이었고, 강우규 의사가 의거할 당시의 남대문역은 작은 목재 가건물이었습니다.


본래 경인선의 시종착역이 지금의 수도권 전철 5호선의 서대문역 근처(경찰청 맞은편 인근)에 있었으나, 3.1운동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폐역 처리되었는데요. 이후 남대문역이 해당 역할을 이어받아, 경의선의 직결운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사는 강봉섭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시작되었습니다. 식은 국민의례, 장원호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의 인사말,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박유철 광복회장(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대독), 김중양 평안남도 도지사,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및 김중위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의 기념사 그리고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의 글 낭송과 만세삼창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국민의례 중인 참석자들


▲ 인사말을 진행 중인 장원호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회장


▲ 기념사를 하는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 기념사 중인 김중양 평안남도 도지사


강우규 의사의 고향인 평안남도는 북한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제 3조에 의거 한반도 전역을 그 영토로 하므로, 아직 수복되지 아니한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를 포함한 경기도와 강원도의 미수복 시, 군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 산하의 정부기관인 이북5도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해당 위원회는 “이북5도 등에 관한 특별 조치법”에 그 설치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글 낭송을 하는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학생


▲ 만세삼창을 하는 참석자들


▲ 기념촬영


만세삼창 이후 기념촬영을 마지막으로 행사가 종료되었습니다. 행사 종료 이후에 글을 낭송한 학생들을 인터뷰 하였습니다.


▲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편소정 학생(좌)과 김자현 학생(우)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편소정 학생 : 안녕하세요. 상명대부여고 동아리 반크의 부장 편소정입니다. 저희 반크는 본교 학생들에게 역사 상식들을 알려주는 활동을 가장 우선시 하고 있고요, 플래시몹 활동이나 안내지 제작, 광화문에서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와 같은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Q. 이번 행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편소정 학생 :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퇴직하신 선생님의 부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김자현 학생 : 동영상을 제작하려고 하다가, 현장에서 도움을 주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이런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 1학년 때에만 한국사를 배우기 때문에, 동아리 부원들이 열심히 역사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답니다. 현재 2학년인데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알차게 활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집에 있는 시사잡지를 즐겨보았는데, 잡지를 읽다 보니까 역사를 알리는 활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어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번 행사에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2011년 서울역 광장에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건립되었지만, 이곳을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 항일운동에 앞장서면서 대한민족의 불같은 독립의지를 표상화했던 강 의사의 절개는 현재 교과서에서 짤막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렇게 식이 진행되고 또 그의 뜻을 기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강우규 의사가 유언으로 남긴 시로 이번 기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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