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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터[온라인기자단]/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에 해당되는 글 2098건

  1. 2010.03.30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 영상 스케치
  2. 2010.03.29 대한국인, 안중근의사를 기억하다
  3. 2010.03.29 연변에서 만난 안중근 의사

 

 

 

  

 

26일 오전, 서울 시청광장에서는 안중근의사 순국100주년 추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다소 바람이 불었고 봄날씨 치고는 추운날씨였지만,

안중근의사를 기억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추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추념식 현장 주요 모습을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생생한 영상으로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 현장을 만나보세요.

 

 

안중근의사 순국100주년 추념식 /추모공연

 

 

안중근의사 순국100주년 추념식 /정운찬총리 추모사 

 

 

2010-03-26 안중근의사 순국100주년 추념식 /평화대행진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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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인, 안중근의사를 기억하다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 이기도 합니다.

 

나라를 위해, 동양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기억하고 우리가 나라사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조선을, 대한제국을, 동양평화를 사랑하셨던 안중근의사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조선 해주부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명은 '응칠'이며,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도마)였습니다. 흔히 '도마 안중근'이라고 할 때의 '도마'의 의미는 그의 세례명을 뜻합니다.


 

-31세 청년 안중근,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를 저격하다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러하다.

 1. 한국의 민황후를 시해한 죄요
 2. 고종를 폐위시킨 죄요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요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요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6.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요
 8. 군대를 해산시킨 죄요
 9. 교육을 방해한 죄요
 10.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11.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요
 12.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요
 13.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요
 14.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요
 15.일본 천황 폐하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이다.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토가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한일간이 멀어지기 때문에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죄인을 처단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일 양국이 더 친밀해지고, 또 평화롭게 다스려지면 나아가서 오대주에도 모범이 돼 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결코 나는 오해하고 죽인 것은 아니다.

 

안중근 의사는 정말 나라를 '열렬히'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한 점 부끄럼없이 당당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합니다.

 


-안중근 의사 vs 안중근 장군?
최근 언론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안중근 장군'이라고 부르자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는 '안중근 장군실'이 마련되었고, 안중근 의사를 '의사' 대신 '장군'으로 부르자며 국회의원 128명 서명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안의사가 스스로를 대한의군참모중장이라고 밝혀왔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장군'이라는 호칭으로 바꿀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나라를 대표하는 군으로서의 모습을 중요시한다면 '장군'으로 호칭을 바꾸는 것이 맞을 수는 있습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군인인 '장군'에 비해서 '의사'는 다소 개인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평화를 위해 한 목숨 바치셨던 그의 숭고한 정신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오히려 '의사'라는 호칭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국가보훈처의 김양 보훈처장 역시 "한해 장군이 60여명이 나오는데 큰 의의를 갖고 행동으로 옮긴 의사를 장군으로 칭한다는 것은 오히려 강등하는 것"이라며 장군 호칭을 반대하였습니다.

 

안중근의사의 정신을 기억하고 따르려는 후손들의 움직임, 어떠한 것이 맞는 일일까요?

급하게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좀 더 진지하고 깊게 안의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듯 합니다.

 

 

-아직도 유해 찾지 못해… 면목이 없는 대한국인 후손들
안중근 의사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2010년 우리는 대한국민으로서, 어느덧 G20 국가로의 성장까지 보여주는 '열정의' 대한민국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아직도 안의사의 유해는 고국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매우 안타깝고, 안의사를 뵐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순국 100주년을 맞아 유해발굴작업에 정부가 나서서 박차를 가한다는 소식은 너무도 반갑기도 하고, '이제서야 이러한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합니다. 늦었다고 했을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 했으니, 지금부터라도 안의사의 유해발굴작업과 관련 기업사업들에 힘을 기울이면 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일에 동참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바로 포기해버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비록 모든 국민이 안중근의사 유해발굴작업에 동참할 수는 없지만 그의 정신을 잊지 않고, 그가 남겨준 교훈을 통해 2010년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 부터가 나라사랑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만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안중근의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료참조 :

http://ko.wikipedia.org/wiki/안중근

http://www.patrio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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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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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08년 9월 중국 백두산여행중 시간이 남아 가이드의 추천으로  용정 대성중학교에 잠깐 들린적이 있었어요.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무대인 룽징(용정)에 있는 학교로,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출신 학교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윤동주가 다닐 때에는 '대성중학교'라는 이름이었으나, 현재는 '룡정중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대성중학교는 일제강점기 때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로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한 곳이 랍니다.

학교에 다닐땐 시험문제로 많이 나와 달달 외우는  암기로만 알고 있었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들..  

그때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대성중학교에 가보니 몸속 깊은곳에서 뭔가가 뭉클거림이 느껴지더라구요. 

2010년 아이폰으로 세계와 함께 호흡을 하며, 최대 IT강국으로 자리잡은 지금.

그 분들의 뜨거운 열정과 땀방울. 그리고 목숨도 아끼지 않은 나라사랑의 마음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가 없을꺼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용정학교 선생님께서 직접 독립운동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모습>

 

호동의 1박 2일에서 '즉석 공연'을 통해서 더욱 알려진 이곳 용정학교에서는

교과서에 나온 千篇一律(천편일률)적인 내용이 아닌 그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여러가지 사진자료와 독립운동의 역사와 중국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독립운동과 그분들의 흘린 피와 땀방울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더라구요.

평소에 숨을 쉬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살듯, 우리가 살면서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잊고 사는건 아닌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이 들었답니다.

 

 

 

 

 

 

 

30년 7개월. 불꽃같은 삶은 살았던 안중근의사

목슴을 바쳐 독립에 온 몸을 던진 많은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안중근의사를 가장 높이 평가된고 있는데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외교권 박탈을 주내용으로 하는

대한제국와 일본 간의 조약인 '을사늑약' 체결의 핵심인물 이토 히로부미 때문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을사조약으로 한일합방이  급속히 진행되었고,

그 시절의 조상들은 열강들 사이에서 살아남가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을사늑약 당시 고종 동의가 아닌 강제적 협박에 의한 것으로 한일합방 자체가 무효과 되 수 있을 만큼

을사늑약의 체결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답니다. 

을사늑약의 핵심인물인 이토히로부미가 지닌 역사적 무게감과 한일합방을 앞둔 시기적 무게가 더해졌고,

그래서 안중근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오전 7시.

안중군의사가 하얼빈역에 도착하여 의거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꼭 성공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찾집에서 나왔다.

이토가 의장대를 사열하고 외국영사단의 출영객들로부터 인사를 받기 시작했고, 안중근은 러시아 군대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윽고 오전 9시쯤 이토 일행이 탄 특별열차가 플랫폼에 멎었고, 마중나온 코코프체프 일행이 열차안으로 들어간 후

그와 일본 총영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토와 수행원이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토가 안중근과 10보 떨어진 지점에 접어들 찰라, 도열해 있는 군인들 사이로 이토를 겨냥한 안중근의 브루오닝식 권총이 불을 뿜었고,

3발이 이토의 가슴과 흉복부에 명중되어 무어라 몇마디 중얼거리며 쓰러졌다. 수행의사 고야마가 응급처리를 했지만 곧 절명하고 말았다.

안중근은 본시 이토를 모르기 때문에 일본인 중에서 의젖해 보이는 앞서가는 자들을 향해 다시 3발을 더 쏘았다.

이또를 뒤따르던 하얼빈 일본총영사 가와카미, 비서관 모리, 만주 철도 이사 다나카 등이 차례로 쓰렀다.

 

오전 9시 30분

저격 직후 러시아 헌병들이 덮치자 힘에 밀려 넘어지면서 권총을 떨어뜨렸던 안중근은 곧장 일어나

코레아 우라!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하고  순순히 체포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저격당하고 30분 뒤 사망했으며, 안중근의사는 저격에 성공하자

가슴에 품었던 태극기를 꺼내들고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만약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대한민국의 독립까지의 기다림은

훨씬 더 오래 거렸을 꺼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안중근의사는 현장에서 아무 저항 없이 러시아 기병대위 니키프로프에 의해 체포되어

하얼빈역 러시아 헌병 분파소로 끌려가 간단한 조사를 받고

그후 안중근의사는 일본 총영사관으로 인계되어 본격적으로 신문을 받기 시작했다고 해요. 

일본 법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개인자격이 아닌 대한의군 사령관으로서 처형했다' 고 밝힌 뒤 사형 선고를 받았답니다.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동기, 이른바 '이토의 죄악 15개조'는

안중근의사 의거 당일 러시아 검사신문에서부터 일본 검찰돤의 신문과

이듬해 2월의 공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죄상을 설파했다고 하네요.

 

 

 

 

 <안중근의사의 이토 죄악 15개조>

 

 

 

 

 

 1910년 2월 14일 마지막 공판에서 사형이 언도되었고, 2월 19일 공소권을 포기하자

고등법원장 히라이시는 일부러 안중근의사를 찾아와 상고를 권고하였으나 끝낸 이를 거절했다고 해요.

안중근의사가 상고하지 않는 것은 그의 굳은 뜻 이었고, 이 결심의 뒷받침에는 어머니의 성원이 있었답니다.

안중근의사의 모친은 사형이 구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두 동생을 급히 여순으로 보내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흰색 명주 한복을 갈아입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일본정부는 안중근의사의 유해가 밖으로 나갔을 때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해 여순감옥 죄수 묘지에 묻혔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해를 찾지 못하였는데 '안중근의사 10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금 유해발굴사업을 본격화 한다고 하네요. 빠른 시일내에 안중근의사의 유해가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와 그토록 원하고 그리워 했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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