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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터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10기 훈남훈녀 기자단 유수연 기자입니다.


‘중국 내 항일운동 유적지를 가다!’ 시리즈의 마지막 2편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홍범도, 김좌진 장군,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유적지를 방문하여 취재한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먼저 방문한 곳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에 위치한 청산리 전투 전적기념비입니다.



▲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길림성 일대에서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이 단독 및 연합을 이루어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입니다.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는 지난 2001년, 청산리 전투 전승 80주년을 기념하여 선열들의 충혼을 기리고 그 위업을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건립되었습니다.


저는 이곳을 방문하여 묵념하고 주변 잡초를 제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기념비 설명 명패


다음으로 조린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조린공원은 하얼빈 시의 중심에 위치한 공원입니다. 1906년에 건설되었고, 본래 이름은 따오린공원이었습니다. 1946년 3월 9일에 항일 전쟁영웅 리자오린 장군이 이곳에 안장되어 그를 기리기 위해 자오린공원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 조린공원 정문


안중근 의사는 의거를 행하기 전, 종종 이곳을 방문하여 거사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또한, 안중근 의사는 사형대에 오르면서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생략)”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하얼빈 공원은 현재의 조린 공원이지요.


이곳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친필 유묵비인 청초당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안중근 의사의 유묵비 청초당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기념관은 하얼빈 역 안에 위치하여 안중근 의사 의거 장소를 관람할 수 있으나, 제가 갔을 때에는 하얼빈 역의 개축공사로 인해 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 거리에 위치한 임시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 안중근 의사 박물관 초입


▲ 안중근 의사 박물관 내부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물, 유품, 생애와 업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거사를 함께 진행한 김형재, 김성옥, 유동하, 조도선, 우덕순 선생 등에 대한 설명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의사의 연혁


▲ 박물관 내부 벽화


중국에서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안중근 의사, 그리고 여러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머나먼 타국에서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새겼습니다. 


훈터 독자 여러분들도 중국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항일 유적지를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안중근 의사, 김좌진·홍범도 장군, 그리고 타국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고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이상으로 ‘중국 내 항일운동 유적지를 가다!’ 2편의 기사를 마치며, 지금까지 제10기 훈남훈녀 기자단 유수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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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 하면 지루한 박물관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전쟁기념관은 6.25전쟁야외나 전시 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어 가족,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하기 좋은 곳입니다. 전시관을 둘러보며 자연스럽게 호국안보의식을 함양할 수도 있지요. 


▲ 전쟁기념관 정면


▲ 입구 형제의 상


저는 가족과 함께 전쟁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외국인 관광객도 여럿 볼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형제의 상’이었습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이야기였던, 6.25전쟁 당시 국군과 북한군으로 맞서 싸우던 형제가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만난 이야기를 조형화하여 민족의 화합과 단결,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야외전시장에는 탱크, 비행기, 그리고 잠수정까지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 참전국 기념비


중앙에는 6.25전쟁 조형물이 있습니다. 6.25전쟁 정전 50주년을 기념하여 역사를 재조명하고 미래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하고자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형물은 6.25탑 호국군상, 석그릇, 참전국 기념비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호국군상

 

▲ 참수리 357호정


야외 전시장에서 가장 붐비었던 곳은 ‘참수리 357호정’이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발발했던 제2연평해전 당시 치열했던 교전 상황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실물과 똑같이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총탄이 지나간 흔적이 있어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참수리 357호정의 갑판 위에 올라서니 총탄에 맞고 쓰러진 국군 장병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외, 옥외전시장에는 6.25전쟁 당시 사용했던 장비와 세계 각국의 항공기, 장갑차 등 16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장비 내부는 개방되어 있어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 전사자명비


▲ 전사자명비 글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전사자 명비가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6.25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서 전사한 국군, 경찰관, 유엔군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날에는 어느 할머니께서 가족의 이름을 찾아 손주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명비 앞에 꽃다발이 놓여져 있기도 했습니다. 


전쟁기념관의 내부는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기증실 등 7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6.25전쟁 피해상황


▲ 6.25전쟁실III


호국추모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위엄을 기리고 넋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우리 민족의 화랑 정신, 백의민족 정신, 금수강산, 태극기 등을 독창적 기법으로 그려 호국의지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역사실은 선사시대부터 이 땅을 지켜온 우리 선조들의 대외 항쟁사와 각종 군사유물들이 전시된 공간으로 살수대첩, 귀주대첩이 재현되어 있었고, 황자총통, 신기전기 화차, 거북선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6.25전쟁실 I, II관에는 북한군의 남침 배경부터 전쟁의 경과 및 정전협정 조인까지 6.25전쟁의 모든 과정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사자 유해발굴 상징존에는 6.25전쟁을 표현한 영상이 파사드 기법으로 상영되고 유해발굴 현장이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4D체험관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 6.25전쟁실III의 전시물품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실은 6.25전쟁실 III관이었는데, 전쟁에서 유엔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되어 있고 기증실에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유엔참전실에는 유엔 참전용사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사진과 유품, 모형과 영상 등을 통해 전시되어 있었으며, 참전국의 지원현황, 각종 유물과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6.25전쟁실III 전경


▲ 6.25전쟁실III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엔 참전용사들의 인식표 1,300여 개를 눈물방울 모양으로 만든 입체 조형물이었어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조형물을 보며, 저는 마음 속으로 참전용사에 대한 존경과 추모를 전했습니다. 가족과 이별하고 빛바랜 가족사진을 보며 전장에서의 외로움을 달랬을 참전용사와, 그들이 전장에서 보낸 편지를 읽으며 그리움을 달랬을 가족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 기부함


마지막에는 6.25전쟁 참전국들 중 현재 어려운 상황에 있는 나라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의미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모금함이 있었습니다. 



▲ 어린이박물관 입구 / 어린이 박물관 역사 속 인물 모형


▲ 어린이박물관


마지막에는 미리 예약해 두었던 어린이 박물관을 1시간 가량 관람하였습니다. 작고 아담했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 무너진 한강다리, 지금은 휴전 중이라는 코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태극기, 무궁화, 우리나라 지도 그리기와 유엔 참전국 국기를 꽂을 수 있는 체험시설이 있었으며, 마지막에는 유아놀이방과 어린이 유격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전쟁기념관에 방문하여 즐겁고 뜻 깊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인 우리가 그 당시의 감정들을 이해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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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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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섣달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1984년 발간되었던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서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를 묘사한 글귀입니다. 식민지 조선의 순수한 청년이었던 윤동주를 가장 잘 표현한 한마디라고 생각됩니다.

 

윤동주 시인은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36년 중국 동삼성 소재 민족학교인 명동학교를 졸업한 후 광명중학교에 진학하여 시를 통한 항일민족정신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윤동주 시인은 1938년에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조국의 독립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서시(序詩)>·<별 헤는 밤>·<무서운 시간>·<또다른 고향> 등 많은 항일민족시를 발표하면서 우리 민족의 항일 정신을 고취하였습니다.


 

▲ 단풍으로 물든 시인의 언덕

 

이번 기사에서는 윤동주의 작품세계와 애국심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저와 함께 윤동주 문학관으로 떠나 볼까요?

 

▲ 윤동주 문학관의 모습

 

3호선 경복궁역을 나와 버스(7212번)를 타고 올라오면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이 보입니다. 왜 이곳에 윤동주문학관이 있는 것일까요?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윤동주는 종종 인왕산에 올라 시상과 감정을 구상하고, 다듬곤 했습니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그의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쓰였다고 합니다.

 

이런 인연으로 종로구는 2012년에, 인왕산 자락에 벼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하여 윤동주문학관을 만들었습니다.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적용하여 한민족 전체를 전시총동원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던 1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윤동주 시인의 고뇌는 나날이 깊어갔습니다. 이 때 그가 쓴 시 <자화상>에는 식민지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갈등이 짙게 배어 있지요. 잠시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감상해 보시죠.

 

자화상(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문학관은 시 ‘자화상’을 모티브로 하여 건립되었습니다. 문학관은 ‘시인채’, ‘열린 우물’, ‘닫힌 우물’ 이렇게 3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인채는 인간 윤동주를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시인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한 사진 자료들과 함께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원고에 쓰인 글귀들과 끄적인 낙서들을 보며 그가 식민지 현실에 얼마나 고뇌에 차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시인채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관람 시 참고하세요!

 

제2전시실인 열린 우물로 가시면 뻥 뚫린 천장 위로 파란 하늘이 여러분을 맞이해줄 것입니다. 열린 우물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용도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하여 만든 것입니다. 제2전시실인 열린 우물을 지나면 제3전시실인 닫힌 우물로 이어집니다.

 

▲ 열린 우물의 모습. 제3전시실로 이어진다.

 

 ▲ 열린 우물에서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아름다운 하늘을 만끽할 수 있을지니.

 

닫힌 우물은 열린 우물과 완전히 다른 느낌입니다. 닫힌 우물은 열린 우물과 달리 빛이 조금 새어 들어오는 작은 구멍을 제외하고서는 사방과 위아래가 모두 막혀 있어 굉장히 어둡습니다. 이곳은 침묵·사색하는 공간으로, 또 하나의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곳에서는 시인의 일생과 정신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기개를 잃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는 닫힌 우물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덕에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영상 속에서 낭송되는 ‘서시’가 아름다웠습니다.

 

▲ 닫힌 우물에서 상영되는 영상 中 ‘서시’. 분위기가 매우 좋다.

 

서시

 

윤동주 / 시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는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견주어 노래한 민족 시인이었습니다.
1942년 경도(京都)에 있는 동지사(同志社)대학의 영문과에 입학한 이후, 윤동주 시인은 송몽규·장성언 등과 만나 일제의 징병제를 반대하여 저항정신을 담은 시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민족적 문학관을 확립하는데 힘썼습니다.
1943년 7월,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윤동주 시인은 송몽규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조선인 유학생을 모아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1944년 3월 31일, 경도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시에 남아 있는 따뜻한 울림은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듯합니다. 오늘, 그의 시를 읽으며 윤동주 시인을 기억해 보는 건 어떨까요?


* 참고사이트
종로문화재단-윤동주문학관 https://www.jfac.or.kr/site/main/content/yoondj01
공훈록 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4974&ipp=10000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3499&cid=59011&categoryId=5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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