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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은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1902년에 출생해, 1974년 사망하였습니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18살의 나이에 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하였으며 비밀결사 흑도회 등을 조직하였고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의 조선인 학살 와중 일본국왕 암살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독립운동가 박열과 뜻을 함께한 연인으로 1903년에 출생해, 1926년 사망하였습니다. 1912년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한국에서 7년간 사는 동안 3.1운동을 목격해 한국의 독립을 응원하고 1922년 일본에서 박열을 만나고 동거를 하며 흑도회 등에 가입하며 뜻을 함께 하였습니다.


박열은 1923년 천황 암살을 실행하려던 중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1주일만에 특별 감형되었습니다. 둘은 각각 치바형무소와 도치키 형무소로 옮겨졌지만 가네코는 형무소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박열은 1945년 8.15광복으로 22년 2개월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 중 북한군에 의해 납북, 1974년 평양에서 72세의 나이로 영면하였습니다. 이후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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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국가보훈처 훈남훈녀 기자단 10기 김도헌입니다. 제가 이번에 취재를 다녀온 곳은 바로 영천 전투메모리얼파크입니다. 아마 들어본 분들이 많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는 6.25전쟁 당시 역전의 신호탄이 된 영천전투를 기념하고

후대에 나라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는 영천전투전망타워 내 전쟁체험과 야외서바이벌 체험을 통해 재미있는 안보교육, Edutainment를 추구하는 곳으로, 2017년 3월에 체험권 준공 및 개장을 하였습니다.


영천지구 전투는 1950년 9월 5일부터 9월 13일까지, 9일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입니다. 6.25전쟁의 전환점을 이룬 큰 전투였는데요. 당시 병력에 있어서는 아군이 우세하였으나, 포병과 장비 면에 있어서는 적이 우세한 편이었습니다. 영천 북방의 제21연대는 적 2개 연대를 견제하고 제19연대는 적의 후방부대와 보급로를 차단하는데 성공하며 적을 격퇴하였고 영천을 탈환하였습니다.


국군은 이 전투를 계기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영천지구전투는 6.25전쟁 발발 후 최초의 국군 대승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다면 영천전투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만든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체험권에 대해서 하나씩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입구


위의 사진은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의 입구입니다. 이곳은 준공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분들이 잘 모르는 듯한데요. 실제로 제가 이곳을 찾아갔을 때, 택시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헤맸습니다. 만약 메모리얼파크를 가실 예정이라면 영천중학교 앞에 내리셔셔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메모리얼파크로 이동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로 영천전투 전망타워와 야외서바이벌 체험장인데요. 우선 영천전투전망타워를 먼저 방문해 보았습니다.


▲ 영천전투 전망타워


위 사진은 영천전투전망타워 전경입니다. 이 타워는 총 지하1층부터 지상2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하1층에는 영천관련 역사소개, 안보교육체험관이 있으며, 지상1층에는 ‘1950, 영천 대 혈투 속으로’라는 테마로 영천지구전투 소개, 게임을 통한 전쟁체험관 등이 있습니다. 


지상2층에는 전망대와 카페테리아가 위치해 있습니다.


▲ 전망타워 지하1층 모습


지하1층의 모습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호국의 메카 영천’이라는 테마로 영천에서 있었던 다양한 호국 관련 역사에 대해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 영천, 신녕전투 주요 일지 사진


위와 같이 6.25전쟁 당시에 영천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된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지상1층에 위치한 전쟁체험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아주 흥미로운 곳입니다. 직접 군용장비를 통한 게임을 통해서 재밌게 전쟁체험을 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 전쟁체험관

                 

위 사진은 전쟁체험관 입구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벌써 흥미진진했는데요. 전쟁의 역사를 좀 더 쉽게 배우기 위한 최적의 테마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전쟁체험관

                 

위 사진은 군용차량에 탑승한 후 정면의 스크린을 찍은 사진입니다. 차량에 탑승을 하면 스크린을 통해서 전쟁 당시 기동작전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 전쟁체험관


다음은 군용소총을 통해서 정면 스크린에 적이 나오면 직접 격발을 해 미션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이런 총게임은 오락실에도 있는데요. 그것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전쟁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 전쟁체험관


전쟁체험관 내부의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모형 전차와 포가 전시돼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방의 스크린을 향해 포를 발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 드렸던 소총게임과 연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 전쟁체험관


다음은 전쟁체험관내의 군장용품 전시물입니다. 


▲ 전쟁체험관


M1소총과 무전장비 등 전쟁 당시의 군용품을 직접 만져보며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전망타워 관람을 끝내고나서 전망타워 옆에 위치한 영천지구 전적비와, 영천지구 전승비, 충혼탑을 보러 갔습니다. 



위 사진은 전적비와 전승비, 충혼탑을 볼 수 있는 안내판입니다. 전망타워 기준으로 우측으로 조금만 가시면 바로 나오니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 영천지구 전승비


위 사진은 영천지구 전승비입니다. 

6.25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15일을 기하여 대구를 탈취하려던 북한군은 제1차 총공격의 기도가 실패하자 9월 초순에 적 제2군단이 또다시 내습하여 동년 9월 6일에 영천이 적에게 탈취당하게 되었으나 이에 아군 제2군단의 필사적인 반격으로 적을 퇴주시키고, 이와 같이 하기를 수차 반복한 후 적을 완전히 퇴각시켰습니다.


특히 우리 제8사단 제21연대는 영천이 피탈되자 후방이 차단되어 일시 위기에 빠졌으나 용감하게 적을 저지시켜 아군에게 총반격의 기회를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 영천지구 전승비는 나라를 위해 바친 불굴의 투지와 불멸의 공훈을 기념하고 승전한 용사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1958년 10월 20일에 영천시 창구동 영천문화원 옆에 육군 제1205공병단이 건립하였으며, 이후 본 전승비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하는 영천대첩참전전우회 등 단체의 의견을 모아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6월 25일에  현재 장소로 이전한 현충시설입니다. 


▲ 무공수훈 국가유공자비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무공수훈 국가유공자비입니다. 전망타워 뒤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무공수훈국가유공자비는 영천 출신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6.25전쟁, 이역만리 월남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공로로 영광스런 무공훈장을 수훈한 국가유공자와 평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남다른 공적을 세우고 보국훈장을 수훈한 국가유공자들의 빛나는 공훈과 호국정신을 기림으로써 그분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후세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정신을 고취하고자 2004년 12월 10일에 건립되고, 2015년 5월 14일에 현충시설로 등록되었습니다.


▲ 영천지구 전적비


마지막으로 영천지구 전적비입니다.  

6.25전쟁 발발 이후 1950년 9월 4일 북한군 제2군단은 일거에 부산을 석권할 기도아래 전력의 요충지인 이곳 영천을 점령하고자 최후의 공세를 폈습니다. 이때 국군 제2군단 장병들은 국가의 운명이 이 싸움의 승패에 달려 있음을 알고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분노한 군민들은 너도나도 총을 잡고 전장에 나섰습니다. 이윽고 전열이 정비되자 유재흥 군단장은 이달 9일 총반격전을 감행하여 금호강변에서 적을 섬멸하고 북진의 기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전적비는 6.25전쟁 당시 금호강전투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구하고자 용감하게 싸웠던 장병과 주민 합동의 빛나는 공훈과 명예를 선양하고 후세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1980년 10월 7일 건립한 현충시설입니다. 


마지막으로 서바이벌 체험장으로 가보았습니다. 

제가 직접체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둘러보기만 하였습니다.


▲ 시가전 체험장


이곳은 시가전 체험장입니다. 6.25전쟁 당시 영천전투 시가전이 벌어졌던 영천역 주변을 배경으로 시가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최첨단 시스템을 사용하여 실전 같은 몰입감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 고지전 체험장


위 사진은 고지전 체험장입니다. 영천전투 고지전을 모티브로 경사지에 조성되었으며, 치열했던 고지점령전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서바이벌 체험장입니다.


▲ 국군 훈련장


마지막으로 국군 훈련장입니다. 7가지 훈련시설을 체험하며 전투기초체력을 다질 수 있는 곳입니다. 웅덩이건너기, 통나무다리건너기, 줄다리건너기, 팀 수직네트, 사선암벽타기, 우리는 한마음, 하강훈련을 통하여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서바이벌체험장을 마지막으로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관람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번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를 다녀와서 6.25전쟁역사에 있어서 영천지구전투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최첨단시설을 통해 전쟁을 몸소 체험할 수 있어 더욱 와 닿았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며 6.25전쟁 67주년을 맞은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 공헌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국가보훈처 제10기 훈남훈녀 기자단 김도헌 기자였습니다.


참고사이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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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100년이 넘는 근대사를 겪어온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천의 창영초등학교는 긴 시간 동안 선배들과 후배들의 강한 정신력으로 3.1독립만세운동을 통하여 애국정신을 온몸으로 나타내주었고, 그들의 귀한 노고를 보존해왔습니다. 그리고 1965년, 위급한 상황에서 희생정신을 발휘한 호국영웅이 흉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故 강재구 육군 소령의 이야기를 훈터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인천 창영초등학교 입구 및 현관 모습


1907년 5월 6일 개교한 창영초등학교는 현관의 모습 또한 한국의 초기의 근대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주고 있었음은 물론, 건물의 보존 상태도 양호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앞에 큰 운동장이 있었고, 왼쪽 언덕을 올라가면 현관과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 기념비가 있었는데요.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으로 시작된 독립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가는 과정에서, 인천에서는 그 당시 유일한 공립보통학교(현 인천 창영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항일 동맹휴학을 일으키고 일부 주동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야간에 교무실과 경찰서 간의 전화선을 절단한 이유로 주동 학생들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광복 후에도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지내게 되는 등 그저 그들의 희생이 잊혀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애국심 발휘의 전통을 살리고자 당시의 고증자료 수집과 재판 기록문을 압수, 그리고 선배님들의 뜻깊은 애국정신을 길이 빛내고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나라를 사랑하자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 1995년 3월 6일 총동창회에서 세운 기념비라고 합니다.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 모습


그리고 기념비의 옆에는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강재구 육군 소령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강재구 육군 소령 흉상 모습 및 비석


故 강재구 육군 소령은 1937년 인천에서 출생하여 인천 창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전 참전을 목전에 둔 1965년 10월 4일 순직하였습니다. 강재구 육군 소령은 1965년, 베트남 전쟁 파병이 결정되자 자원하여 맹호부대 제1연대 제3대대 제10중대장이 되었는데요. 출발 직전, 부하들의 수류탄 투척훈련 중 한 사병이 앞으로 던져야 할 수류탄을 뒤로 추켜들다가 놓침으로써, 그 수류탄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사병들 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강재구 육군 소령은 터지는 수류탄을 온몸으로 끌어안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짧은 순간, 강재구 소령은 수류탄을 끌어안아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고 산화했습니다. 그의 나이 28살에 불과했던 때였습니다. 만약 그 수류탄이 폭발했더라면 수많은 사병들이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서 부하들의 생명을 구해낸 영웅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이 우리가 존경하고 기억해야 할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강재구 육군 소령을 흉상으로 만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알리는 학교의 모습도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기사를 마치며, 우리가 추모하고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기억에서 잊혀지는 일은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나라를 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는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국민과 자라나는 아이들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을 위한 시작은, 과거 3.1운동 당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목놓아 외쳤던 순국선열과, 강재구 소령처럼 남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호국영웅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에서부터일 것입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기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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