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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지요. 이 말의 의미는 사고 · 언론 · 저술 · 정보의 전달은 무력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 윤동주 선생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윤동주 문학관을 찾아 부끄러움을 노래한 동섣달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았던 조선 청년, 윤동주 선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윤동주 문학관의 정문


윤동주문학관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윤동주 문학관을 보실 수 있으십니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위치한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함께 하숙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시인은 종종 이곳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곤 했다는데요. <별헤는 밤>, <자화상>, 그리고 <또 다른 고향>과 같은 그의 대표작들이 바로 이 시기에 쓰였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종로구는 2012년, 인왕산 자락에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을 건립했습니다. 



▲ 윤동주 문학관 소개


▲ 윤동주 시인과 명동학교 학생들의 기념사진 (출처: 독립기념관)


윤동주 선생은 1917년 12월 30일 중국 지린성 화룽현 명동촌에서 태어났습니다. 한인마을인 명동촌에서 자라났기에 선생은 자연스레 항일민족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명동소학교, 달라즈 관립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선생은 평양숭실중학교에 재학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사참배 문제로 학교가 휴교당하자 광명중학교에 편입하였고, 졸업 이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수학하게 됩니다.

윤동주 선생은 당대의 암울한 현실에 고뇌하다 1년 넘게 절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1942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릿쿄대학 영문과로 입학하였다가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전학했고, 1943년 항일운동에 대한 혐의로 송몽규 선생과 함께 검거됩니다.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윤동주 선생은 1945년 2월,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3년이 지나서 간행되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하는 윤동주 문학관은 총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시인채(제1전시실)의 사진 (출처: 종로문화재단)


제1전시실인 시인채는 시인의 순결한 시심을 상징하는 순백의 공간으로 ‘인간 윤동주’를 느낄 수 있습니다. 9개의 전시대에는 시인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한 사진 자료들과 함께 친필 원고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시인채(제1전시실)은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관람시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 열린 우물(제2전시실)


제2전시실, 열린 우물로 가 보실까요? 

이곳은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프를 얻어 용도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하여 중정을 만들었고, ‘열린 우물’이라 명명했습니다. 물탱크에 저장되었던 물의 흔적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있어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을 느끼도록 해준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일제강점기는 물이 흘러가듯이 지나갔지만 진한 물 자국처럼 너무나도 큰 상흔을 우리에게 남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닫힌 우물(제3전시실)


또 하나의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만든 곳이 바로 제3전시실, ‘닫힌 우물’입니다. 침묵하고 사색하는 공간으로 조성된 이곳에서는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제3전시실 안내문


제 3 전시실의 영상 해설 상영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됩니다. 매시 정각, 15분, 30분, 45분에 상영되오니 영상물 관람을 원하시는 독자 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상영 시간은 약 11분 정도이고, 영상물은 촬영이 금지되오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 제3전시실의 모습


▲ 윤동주 문학관의 문화 해설사로 계시는 최정남 선생님


윤동주 문학관을 돌아보고 나서, 저는 해설을 해 주신 최정남 문화 해설사님께 인터뷰를 부탁드렸습니다.


Q. 선생님께서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는 윤동주 선생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젊은 나이에 일찍 돌아가신 윤동주 시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맑게 만들어 주는 그런 시를 쓰신 시인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윤동주 선생의 시에서는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 시인입니다.


Q. 앞으로 윤동주 문학관에 방문할 관람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A. 일단 모든 관람객들이 윤동주 선생에 대해서 깊이 느끼고, 선생에 대해 알게 되는 것에 정말 만족합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관람 이후 가시는 분들이 있기도 한데, 제 생각에는 약간의 시간을 더 투자해서 차분하게 관람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윤동주 선생의 당시 살아온 환경이나 돌아가실 때의 과정을 천천히 되새기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느껴보는 기회를 가진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관람을 계획하시는 분들도 최정남 문화 해설사 님의 말씀처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문학관을 둘러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윤동주 문학관은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어졌습니다. 가압장이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인데요, 윤동주 문학관에 적힌 설명처럼,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면서 자칫 비겁해질 수 있는 우리의 영혼에 윤동주 선생님의 시는 아름다운 자극을 주고,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날에 있어서 윤동주 선생의 시는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주권이 온전한 나라가 윤동주 선생의 시를 보다보면 얼마나 절실하게 바라던 것이었는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껴집니다. 


▲ 윤동주 문학관 입구에 있는 시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위 시는 인간이 숙명적으로 가야 할 길을 가겠다는 윤동주 선생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는 시입니다.

윤동주 선생의 생애를 보았을 때, 선생에게 있어서 그 숙명적인 새로운 길 중 하나는 독립의 길이 아니었을까요. 문학관 정문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찬찬히 낭송해 보고, 윤동주 문학관으로 발자국을 옮겨보면 어떨까요?



*참고자료

독립기념관

https://www.i815.or.kr/2017/news/press.php?code=bodo&mode=V&no=30716&site_dvs_cd=kr&menu_dvs_cd=050301&skey=title&sval=%C0%B1%B5%BF%C1%D6&code=bodo&GotoPage=&key_bbs_cd=

종로문화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윤동주&ridx=0&tot=8

https://www.jfac.or.kr/site/main/content/yoondj01

윤동주 문학관 팜플랫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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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꽃샘추위가 지나 어느 새 4월의 완연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포근한 날씨에 봄나들이를 계획하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나들이 가기 좋은 장소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여러 독립운동가분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 과연 어디일까요? 바로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효창공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함께 효창공원 산책을 떠나볼까요?


▲ 효창공원 입구


  효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선열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묘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조선 후기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처음에는 효창묘라 하였습니다. 본래 효창원은 청파동과 효창동 일대에 수림이 울창한 지역에 있었으나 일본 군대가 불법으로 주둔하게 되면서 무분별한 훼손을 당하게 됩니다. 심지어 1945년 3월 일제는 효창원에 있던 묘들을 서삼릉으로 강제이전을 하고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은 이봉창 · 윤봉길 ·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모셔와 삼의사 묘역을 조성하면서 아울러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나란히 모셨습니다. 또한 임정요인 차이석 · 이동녕 · 조성환 선생의 유해를 모셔 임정요인 묘역을 조성하였고 김구 선생 서거 후 김구 선생 묘역을 조성하여 효창공원 일대는 선열묘역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공원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입구를 지나 오른쪽 산책길로 쭉 따라 걸어 올라가면 임정요인의 묘가 있습니다.




이곳은 중국 땅에서 순국하신 임시정부 의장 및 주석 이동녕 선생과 비서장 차이석 선생의 유해와, 군무부장을 역임하고 환국 후 서거하신 조성환 선생을 모신 곳입니다.



▲ 임정요인의 묘


 임정요인 묘역 옆에 있는 산책길을 따라 걸어가 자연학습장을 기준으로 내려가면 삼의사 묘역이 나옵니다.


 

▲ 삼의사의 묘역으로 가는 길


삼의사 묘역은 1945년 귀국한 김구 선생이 다음 해 7월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골을 모시고 와 안장했고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같이 모시게 되면서 조성되었습니다.


▲ 삼의사의 묘


안중근 의사의 가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모셔질 자리로 1946년에 조성된 가묘입니다.”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 형장에서 순국하신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지만 안중근 의사의 독립정신은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삼의사묘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바로 의열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의열사 전경


의열사는 효창공원 내에 묘역이 있는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이동녕 · 김구 · 조성환 · 차이석 · 이봉창 · 윤봉길 · 백정기 선생 등 7인의 영정과 위패를 이곳에 모셨습니다.


▲ 7인의 영정과 위패


7위 선열을 기리는 추모 행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60주년인 1979년 4월 13일 합동 추모제 이래 매년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 분 한 분 찬찬히 살피며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副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 

-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중에서


 효창공원을 떠나면서 저는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말이 떠올랐습니다.

 ‘보훈’, 멀고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독립을 위해 힘쓴 이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보훈의 첫걸음일 것입니다.


 따스한 봄날,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효창공원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자연 속에서 휴식하며 선열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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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국가보훈처 기자단 11기 박명훈입니다. 저는 4월 12일 제16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기념식에 다녀왔습니다. 추모식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기원하듯 봄 날씨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를 아시나요?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캐나다인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참혹했던 일제의 만행을 카메라와 펜을 통해 「제암리의 대학살(The Massacre of Chai-Amm-Ni)」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 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럼으로써 일종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광명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어떻게 그토록 한국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고 싶어서 추모식 기사를 선정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릴 정도로 한국의 독립에 헌신적이었습니다. 취재 전 스코필드 박사의 생애를 찾아보며 모두가 혼란스러운 일제 강점기 시절, 조국을 팔고 부귀영화를 취한 친일파들이 득세하던 시절에 오히려 조국이 아닌 나라의 독립을 돕는 모습에 감명 받았습니다.


 1889년 3월 15일 영국에서 태어난 스코필드 박사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고, 고등학교까지 영국에서 마친 후 농장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면서도 수의학과에서 세균학을 전공합니다. 이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원장 애비슨의 요청으로 선교사로서 한국으로 가게 됩니다.


박사는 3.1운동의 첫날부터 사진으로 운동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제암리 참사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해외에 알리는데 공헌합니다. 「제암리의 대학살」, 「수촌 만행 보고서」를 통해 그는 수원일대에서 발생했던 일제의 3.1운동에 대한 보복행위의 참상을 알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일언론인 서울프레스가 서대문형무소를 긍정적으로 보도하자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수감되어있던 죄수들을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스코필드 박사는 각종 신문기고를 통해 3.1운동의 정신과 그 계승을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1968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랬던 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4월 1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사의 장례는 광복회 주최의 사회장으로 이루어졌고 그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 추모식이 진행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스코필드 박사의 추모식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건물 3층 스코필드홀에서 진행되었고,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와 장소를 제공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이 주관했습니다. 


▲ 추모식 진행에 앞서 국민의례가 있었습니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추모식이 시작되었습니다. 

1부는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장,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 에릭 월시 주한 캐나다 대사, 정운찬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의 추모기념사와 스코필드 장학금 수여식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부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내빈들을 위한 특별강연이 있었습니다.


▲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의 우희종 학장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우희종 학장은 “단순히 과거의 업적을 기리는게 아니라 스코필드 박사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을 어떻게 펼쳐나가는지가 주 뜻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현재 진행 중인 라오스에의 수의과대 설립과 같은 활동들을 통해 스코필드 박사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등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셨던 분입니다. 스코필드 박사가 자신의 뜻이 타국에서의 활동을 통해 계승되고 있음을 아신다면 분명 굉장히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스코필드 박사는 우리나라가 힘든 시절에 직접 나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장학 혜택을 주셨다. 이는 시대를 앞서간 개척자이자 한줄기 빛과 같다. 오늘의 서울대가 있기까지 공헌해주신 분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스코필드 박사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이어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의학·행정학 교육을 지원받던 서울대학교가 이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해야 되는 건 베풂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 스코필드기념장학금을 수여하는 성낙인 총장


 이어서 스코필드 장학금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2명과 관악구내 중학생 1명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했습니다.

저는 추모식이 끝나고 간단한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조소연/서울대 수의학과) 처음으로 추모식에 참석했는데 스코필드 박사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훌륭하신 분이 주신 장학금이기에 더욱 영광입니다. 


(장민주/관악구내 중학생) 작년에도 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매번 좋은 교훈을 얻어가서 기쁩니다. 오늘도 연설과 강연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축사를 진행하는 에릭 월시 대사


 에릭 월시 대사는 “스코필드 박사를 포함한 캐나다의 선교 활동이 이어져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공헌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어 “이 유대를 더욱 증진시키기 위해 과거를 되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강만희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이어서 강만희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이 기념사를 전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현장에서 참사를 사진으로 담아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고, 한국을 위해 정신적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인류애의 발로이자 한국을 사랑하신 박사님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는 것처럼 우리의 가슴 속에서도 박사님의 정신 또한 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박사님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기념사의 말씀대로 스코필드 박사는 각종 기고 등을 통해 한국을 위한 정신적 충고를 아끼지 않으신 분입니다. 박사가 남긴 정신적 충고를 절대로 꺼트리면 안 되는 불씨처럼 가슴에 소중히 간직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운찬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


 정운찬 명예회장은 “스코필드 박사님의 고마움을 기리는 자리에 나와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제자들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스코필드 동상을 건립하고, 추모식과 장학센터 운영 등 부족하지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며 말미에는 내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삼일회당 건립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 강연 중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2부에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제목을 ‘21세기 스코필드를 향하여’라고 지었는데 현 정부의 사람 중심 캐치프레이즈와 스코필드 박사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 같다.”며 운을 띄운 김상조 위원장은 “현재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은 이전 세대의 책임이기에 미안하게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서거 48주기 추모기념식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기사의 시작에서 저는 ‘스코필드 박사는 어떻게 그토록 한국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저는 그 답을 스코필드 박사의 한국식 이름에서 찾았습니다.


 한국을 사랑한 스코필드 박사에게는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있습니다. 석호필이란 돌 같은 굳은 의지, 호랑이처럼 강자에게 무서운 사람됨,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도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돌과 같은 굳은 의지로 일제에 굴하지 않고 독립을 염원하는 이들을 도왔던 것입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비극적인 사건의 실상을 직접 카메라로 담고 불의에 목소리를 높이는 등 올바른 길을 걷는 언론인의 자세 또한 갖췄습니다. 그래서 기자단 활동을 하고 있는 저의 선배이자 본받아야 할 우상이기에 이번 취재는 더욱 뜻 깊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는 스코필드 박사 외에도 많습니다. 헤이그 특사 에 도움을 준 헐버트 선생,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일본의 침략행위를 폭로한 베델 선생 등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나라를 빼앗겼던 암울한 현실 속,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추모기념식에 참석하고 스코필드 박사의 생애에 대해 알아본 지금도 저는 감히 박사의 그 강대하고 너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의 정신을 더욱 기억하고 생각해나가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스코필드 박사를 기억해 주세요!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스코필드”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80352&cid=59011&categoryId=59011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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