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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테헤란로  복판에 자리잡은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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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복판에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우리의 문화유산 왕릉이 있다는 사실,
과연 분이나 알고계실까요

 

지하철을 타고 선릉역을 매일 지나시는 분들 중에

2호선 선릉역 이름이 바로 5분거리에 왕릉이 있기 때문이란 알고계신  

~ 몇분이나 계실까요?

 

한국관광공사에서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2009 9월의 가볼 곳으로 조선왕릉 6곳을 선정했어요.

 

저도 소식을 듣고 선정릉의 위치를 알게되어 다녀와봤는데요.

 

400~500 전에 조성된 조선 왕조의 왕릉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장소에

관리도 너무나 잘되어있고 의외로 아담하고 번화가 중심가라
믿기 힘들었던 조용한 왕릉,

 

높은 마천루를 주위에 두고 왕릉안에 구성되어 있던 공원의 여유로움이

마치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와있는 느낌이 들게까지 하더군요,

 

 

작년 초까지 방영되었던 '왕과 ' 드라마의 배경역사가 성종때 였죠.

성종과 폐비윤씨, 정현왕후 인물들을 떠올리며 이번 포스트를 보시면
한결 이해가 쉽겠네요~

 

<출처:.naver.movie.com> 

 

그럼 이제, 선정릉에 대한 설명을 드릴게요~

선정릉은 조선 9 성종과 2계비인 정현왕후 윤씨의 능인 선릉

조선 11 중종의 능인 정릉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매표소를 지나면 두갈래 길이 나오는데 곧장 북쪽은 선릉과 정현왕후의 능이 나오구요

오른쪽으로 자리잡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정릉이 나오게됩니다.

 

 

9 선릉 (成宗 宣陵)

 - 선릉은 성종(1457~1494) 2계비인 정현왕후(1462~1530) 동원이강릉으로, 중종 정릉과 함께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하다는

   강남의 테헤란로 빌딩이 숲을 이룬 가운데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종은 요절한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추존 덕종) 둘째 아들로, 장인인 한명회 할머니인 세조왕비 정희왕후의 도움으로 13세에

   왕위에 올라 25 1개월 동안 재위하고 38세로 생을 마쳤습니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국법인 <경국대전> 편찬을 완료하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성숙한 태평성사를 이룬 공로로 묘호에 '이룰 ' 자를 받았습니다

   한명회 딸인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는 소생 없이 일찍 생을 마쳤고, 1계비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입니다.

   정현왕후는 후궁으로 있다가 폐비 윤씨 사건 이후 왕비에 올랐습니다.

   정현왕후의 소생 진성대군이 형인 연산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중종입니다.   

 

  [ ]

 

 

선릉으로 올라가는 언덕의 돌담길 입니다.

좌측에 늘어선 소나무가 한껏 운치를 합니다.

 

 

매일 10 30 230 있는 문화재 해설 안내 시간에 가서 설명을 들을 있었어요

(몇분 늦는바람에 정현왕후의 능의 설명은 놓쳤지만요;)

 



마천루들이 보이시죠, 직접 가서 보시게되면 능선과 의외로 어울리는 느낌 일겁니다. 


성종의 능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습니다.


 

 

. 무석인도 몸집이 매우 편이며, 조각선이 혹실하고, 표현수법이 사실적이예요.

밖에 석물들도 조선 초기 왕권이 강했던 시절에 만들어져 규모가 큽니다

 

 

 

선릉을 둘러싼 돌담길과 흐드러지게 꽃이 아름답습니다.

 

 

선릉을 보러가시는지 돌담길을 지나치시던 외국인 아주머니,

 다음으로 정현왕후 능을 안내하겠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성종의 능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는데

정현왕후 능에는 난간석만 만들었습니다.


 

  

 조각상들이 왕후의 능을 늠름히 지키고 있구요,

정현왕후는 성종과는 달리 비교적 장수하여 중종25(1530)68 경복궁에서 승하하셨고 성종의 동쪽편에 묻혀계십니다.

 

 

정현왕후 능을 내려오는 길은 소나무로 빽빽히 들어선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11 중종 정릉 (中宗 靖陵)

 - 정릉은 중종(1488~1544) 단릉입니다. 성종의 둘째아들로, 형인 연산군의 페위 왕으로 추대된 중종은 반정 세력에 의해 추대

    탓에 권력의 기반이 약했습니다. 조광조 사림 세력을 끌여들여 개혁을 도모했으나 조광조의 급진적 경향과 맞지 않아 정치

    혼란만 거듭되었습니다중종은 재임기간 소학, 이륜행실, 속동문선, 신동국여지승람등이 간행되었습니다

    사후 서오릉에 있는 1계비인 장경왕후 희릉 오른쪽 언덕에 모셔졌으나, 1562 2계비 문정왕후

     의해 현재의 자리로 이장되었습니다. 풍수지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였는데, 옮긴 능도 장마철이면 침수를 면치 못했습니다.

    <선조실록> "정자각 앞이 지세가 낮아 장마가 때마다 강물이 넘쳐 섬돌 밑까지 들어오므로 재실에서 배를 타고 왕래하

    였다" 라는 기록으로 피해를 있습니다.

    결국 중종과 함꼐 안장되기를 바랬던 문정왕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릉에 홀로 안장되었습니다.

    조선의 왕릉 가운데 왕과 왕비가 서로 떨어져서 왕의 능만 따로 조성된 곳은 중종의 정릉 이외에 대조의 건원릉(경기도 구리시),

    단종의 장릉(강원도 영월군)뿐입니다.

    중종의 원비인 단경왕후는 거창 신씨 수근의 딸이자 연산군 부인 신씨의 질녀로 중종 반정 폐위되어 사가로 쫓겨 나갔다가

    영조 복위하면서, 온릉(경기도 양주시) 묻혔습니다. 

 

  ]

 


 

정릉의 사진은 제가 못찍은 관계로; <출처여행작가 유연태님의 사진中>  

 

 

<사진출처:newsis>

 

. 무석인은 높이가 3미터가 넘을 정도로 편이며,

임진왜란 수모를 겪어 무석인 얼굴의 부분이 훼손되고 검게 그을렸습니다.

 

왕릉들을 둘러본후 안에 조성되어 있던 공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손자들을 데리고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상으론 보이지 않지만

멀리 자리펴고 있던 외국인 가족,

 

 이렇게 누워 책도 읽기도 하였구요

 

 조용하고 새소리가 들리는 평화로운 공원에서 담소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센트럴 파크를 연상시켰습니다.

  

 

 선릉의 입구에 자리잡은 정자각과 비각들이 보이구요,


 찾아갔던 날에도 제사를 지냈다는 정자각입니다.

 

이곳 삼정릉을 비롯해 서울 외곽의 서삼릉 전국의 명소에 수백기의 왕릉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인에 의해 무덤들이 서울 외곽으로 이장되면서 소홀히 다뤄지고 수탈, 도굴 등을 당하면서 크게 훼손되어 원형을 잃은  묘소도 많이 있다고 하니 원통합니다.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새로운 기회 삼아 왕릉을 복원하고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애착을 가지고 다시는 일제강점기와 같은 불운을 겪지 않도록 지켜내야할 입니다.

 

 

나라사랑은 그리 어렵지 않은 같습니다.  

휴가 혹은연휴 때마다 멀리 해외여행  생각 먼저 하기보단

이렇게 우리 근처에 가까이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찾아보는게 어떨까 해요~

 

단풍도 이쁘게 이번 가을,

당장 이번추석 연휴때라도 가족들과 함께 손잡고 선정릉으로의 나들이 고려해보세요~

 

 

*Tip

선정릉 위치 : 2호선 선릉역 하차 도보로 5

선정릉 입장 시간 :

3~10월은 오전 6~오후8,  11~2월은 오전 630~오후8 ( 관람은 9까지 )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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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우리는 정말로 획기적인 소설과 만나게 됩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에 흠뻑 빠져들게 한 <해리 포터> 시리즈.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 소설은 초현실적인 세계와 마법,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내세워 이를 토대로 한 영화 시리즈까지 탄생시켰어요. 물론 그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고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소설이었지만, 모든 연령층을 사로잡은 이 소설은 어린이 소설로는 최초로, 어른들이 들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은 점잖은 표지를 따로 제작하기도 했죠.

 

저는 처음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접했을 때의 그 흥분과 감격, 그리고 마치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던 마법의 세계를 소개한 작가의 상상력에 놀랐습니다. 또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한번 더 감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주인공: 해리 포터, 론 위즐리, 헤르미온느>

 

 

작가 조앤 롤링은 영국 멘체스터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딘 버러에 있는 있는 작은 카페에서 자신의 딸을 달래며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하죠? 가난한 그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해리 포터> 시리즈.의 감동은 전 세계인이 나눠갖을 만큼 풍요로웠죠!

 

그런데 우리 나라에도 조앤과 같이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는 작가가 있습니다!!!!
아동 문화운동가이자, 독립 운동가셨던 ‘대한 어린이’의 아버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십니다.


오늘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인생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방정환의 서재는 꿈과 희망이다!]

 

방정환 선생님의 인생과 책

 

<방정환 선생님>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은 ‘어린이 날’의 창시자라는 사실이죠. 당시 일제의 강점이라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 이 땅의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의 인권향상을 위해 평생을 바친 문화 운동가, 사회 활동가셨습니다.

 

사랑의 선물, 어린이


1899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학교 입학 후부터 그의 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요, 1908년 스스로 ‘소년입지회’를 조직해 동화구연, 토론회, 연설회 등의 활동을 꾸준히 하셨다고 해요. 초등학생이 이렇게 스스로 모임을 조직할 수 있었다니, 대단하죠? 고등학생 시절 1913년 이광수 선생님이 펴낸 잡지 <청춘>에 보낸 글이 개재 되면서부터 글짓기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1919년 전국을 뒤흔든 독립운동 에 감명을 받은 그는 독립신문을 발행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었어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그는 그해 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도요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아동 문학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1921년 일본 유학 기간 동안, <안데르센 동화>, <그림동화> <아라비안 나이트> 중에서 선정한 몇몇 작품들을 초역하여 세계 명작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번안, 출간합니다. 이것이 방정환 선생님의 생전에 출간된 유일한 단행본입니다. 이 동화집이 우리말로 씌어진 첫번째 동화이며 한국 아동문학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학대 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들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

 - 방정환, 사랑의 선물, 머리말, 1922

출처: 한국아동문학선구자기념관 ( http://www.dongsim.net )

 

 

세대를 뛰어넘는 꿈과 희망, 어린이

 

 <월간 어린이 표지>

 

 

방정환 선생님은 1923년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 잡지 월간 <어린이(1923~1934)>를 창간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엽서에 이름과 주소를 적어 보내주면, 돈을 받지 않고 보내준다고 선전해도 불과 8명이 신청할 만큼 인기가 없었다고 해요. 일제 강점기, 대다수의 민중들에게 독서라는 것은 사치로 여겨지던 현실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구연 동화에도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던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잡지를 선전했습니다. <어린이>는 이원수, 마해송 선생과 같은 아동문학가들을 발굴하는 계기가 되어, 한국 아동문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어린이>는 옛날 이야기식의 동화나 창가조의 동요에서 탈피해, 새로운 창작 동화와 동요를 적극 보급하였습니다.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웃음을 잃었던 어린이들 의 슬픔을 달래주며, 역경을 극복하는 슬기를 담았던 거죠.

 

어린이는 복되다. 어린이는 복되다. 한이 없는 복을 가진 어린이를 찬미하는 동시에,

나는 어린이 나라에 가깝게 있을 수 있는 것을 얼마든지 감사한다.
- 방정환, 어린이 찬미, <신여성> 1924 -


 

이후 그는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인 색동회를 창설하고 <아기별 삼형제>, <칠칠단의 비밀>, <동생을 찾으러> 소년 소설, 창작극, 외국 동화 번역에 힘썼으며, 세계 어린이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에 의한,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의 세상을 만들어주신 방정환 선생님, 우리 어린이들에게 잊지 못할만큼의 선물을 주신 소파 방정환.

 

1957년 어린이를 위한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소파상’이 제정되었고, 1971년 40주기를 맞아 서울 남산공원에 동상이 세워졌습니다(이 동상은 1987년 5월 3일에 서울어린이대공원 야외음악당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어린이는 물론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힘썼던 방정환 선생님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정부에서는 1978년 문화예술계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198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습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동상>

 

 

어쩌면…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지금의 어린이들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어린이의 꿈을 채워주신 방정환 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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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악보' 팔아가며 모은 돈은,,

 

 '애국가' 국민들의 가슴에 새겨주신 익태 선생 아시죠?

 

<부다페스트에서의 안선생> 출처 : 안익태 기념재단

 

작년, 편찬위에서 안익태 선생이 친일파라고 발표하여서 국민들이 굉장한 충격을 받았는데요,

친일파 행동의 기준이 모호해서 아직도 국민들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안익태 선생은 어렸을때 부터 자존심과 정의심이 매우 강해서 숭실학교에 재학당시 (현재 초등학생)

친일 교사를 배척하는 주동자가 되었고 이로 인해 장학 처분을 받게 되자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나서기도 했었다고 해요.

1919 3.1운동이 터지자 일본 경찰의 쫓김을 받다가 일본, 미국, 유럽까지의 유학길에 오르게 되죠.

1936 독일의 베를린에 도착한 그는 당시 히틀러의 치하의 독일에서 일본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조국에 대한 그리움, 애국심 때문이었을까,, 6애국가의 선율을 완성하게 됩니다.

같은 8월엔 독일에서 베를린 올림픽이 열렸었죠.

바로 올림픽에는 비록 일장기는 달고 있었지만 마라톤 손기정 선수를 비롯한 7명의 한국선수가 참여하고 있었는데,

안익태 입상식이 끝나자마자 이들을 찾아가 애국가의 악보를 꺼내어

 

'이것은 여러분을 위한 나의 응원가입니다'

 

 하고 함께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의 애국가가 불러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이죠.

애국가를 완성한 안익태 악보의 사본을 만들어 미국에 있는 교민회로 보냈고

 

<애국가 악보> 출처 : 샌프란시스코 연합감리교회

 

특히,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널리 퍼졌어요. 나라를 잃고 타국에 있는 교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던 것일까요?

대한인국민회가 악보들을 시가보다 훨씬 비싼, 일반 노동자의 1주일 급료에 해당하는 20센트를 받고 팔아

모두 독립운동의 자금으로 쓰였다고해요.

 

(어렸을 , 학교에서 애국가 4절까지 외우라 숙제내줄 , 왜이렇게 길어-!하고,

조회시간에도 건성으로 불렀던 경험들 있으시죠?  반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

 

일제강점기 일본이 세운 괴뢰정부인 만주국 건국을 기념한 '만주환상곡' 작곡, 지휘한 일로

안타깝게도 친일조사를 받았지만,

짧은 소견으론, 당시 유일무일하게 실력있는 유학파 음악가였기에

 당시 상황에 의해서 일제에 반강제적으로 동원되셨을 있는것이라고 생각도 되구요. 흑흑 ㅠㅠ

 

 나라를 사랑하여 만든 애국가와 그를 활용해 나라독립에 기금을 보태는 등의 행적만 보아도

아무래도 자발적으로 일제에 적극 참여한 이완용같은 친일파와는 차이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야경출처 : 본인소장

 

이번달 13일에는 한국과 헝가리 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안익태선생의 흉상건립 착공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안선생이 헝가리 유학시절 3년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던 외트뵈시대학의 음대정원에 말이죠. 뿌듯하죠?

대학에 재학하면서 애국가를 작곡하는데 많은 영감도 받았다고해요.

 

 <헝가리 부다페스트 야경출처 : 네이버까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걸고 가슴에 손을 올리며 눈물을 흘릴 있게하는,

그렇게 전세계에 당당하게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탄생시킨 안익태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국가를 제창할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을 정도의 진심으로 부르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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