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4,838,969
  • Today | 713
  • Yesterday | 3,452
2009/04/10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와 닮은 애국 지사는 누구?

 

여러분들이 가장 존경하는 독립운동가는 누구인가요?

 

김구, 안창호, 윤봉길, 유관순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 이름이 떠오르는데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와 크고 작은 인연들을 맺고 있습니다. 

오는 4 13일은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이 되는 날 입니다.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나와 닮은 ‘임시정부 스타’를 찾아볼까요?

 

 

 

 


 

 

 

 

<
백범 김구>

평화와 문화가 넘치는 나라를 추구한 대한민국의 큰 별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이며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내기도 했던 백범 김구 선생은 3.1 운동 시작 직후 임시정부를 찾아가 도산 안창호를 통해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원할 정도로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김구는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자주독립이라 말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자주 독립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또한 김구는 우리나라의 평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를 추구했으며 우리나라가 문화가 아름답게 꽃피는 나라가 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 하길 바랐습니다.

 

 

<매헌 윤봉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뜨거운 애국심의 사나이

 

뜨거운 애국심을 가진 윤봉길은 ‘장부(丈夫)가 집을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22살에 만주로 떠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인 김구(金九)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합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한 윤봉길은 그 유명한 홍커우공원의거를 위해 폭탄을 끌어안고 일본군을 만나러 갑니다. 식이 한참 진행 중일 윤봉길이 던진 폭탄으로 인해 식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그 해 12 19일 총살형을 받아 24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습니다.

 

 

<도산 안창호>

가족과 내 몸보다 나라를 사랑했던 한민족의 등불

 

미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치던 안창호는 3. 1 운동 소식을 듣고 국내외 모든 동포가 함께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고 미주 한민 대표로서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에 도착하여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로 활동하였습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는 명언처럼 안창호는 자주독립을 이룩하려면 국민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창호는 점진학교·대성학교·동명학원 등 3개의 교육기관을 설립하였고 흥사단 활동을 통해 민족계몽에 힘썼습니다. 자녀에게 연필 한 자루 사주지 못할 정도로 독립운동에만 모든 것을 바친 안창호에게 진정한 가족은 우리 민족 모두였습니다.

 

 

<유관순>
꽃다운 나이에 독립을 위해 용감히 나선 조선의 누이

이화학당의 학생이었던 유관순은 1919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3·1운동에 대해 모르고 있던 천안·연기(燕岐)·청주(淸州)·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하자고 설득하고, 4 1일 아우내[竝川]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습니다. 그 후 5년 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일제의 고문으로 인해 꽃다운 나이에 옥사했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2.08.14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영화 속에서 만나보는 1930-40년대 대한민국임시정부

1930년대 한인 애국단 조직과 1940년대 광복군 창설 

 

 

200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90주년을 맞아, 당시 임시 정부 활동 시기의 대한민국을 살펴봅니다! 일제 강점기의 대한민국 경성을 배경으로 한 최근의 영화 속 모습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임시 정부의 모습과 당시의 시대상을 통해, 지금의 이 땅에 우리가 온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아요!!

 


1930년대: 시련과 변화의 임시정부, 한인 애국단 조직

 

1930년대 임시정부는 침체에 빠진 독립운동을 활성화 시키고자, 일본 주요 인사들과 시설을 공격하는 특수 임무를 위한 비밀 조직,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적극적인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때입니다.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이 널리 알려졌죠. 두 분의 목숨을 건 독립운동을 향한 의지는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독립의 의지를 굳게 만드는데 일조하였다고 합니다.

 

영화 <모던 보이>

 

 

1937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미스터리 멜로 영화 <모던보이>. 박해일, 김혜수 등의 화려한 캐스팅과 당시의 경성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공간, 누군가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잔인한 공간. 암울한 시대와 아름다운 공간의 부조화에 가슴 한 켠에서 슬픔이 느껴지던, 그런 영화였죠.

 

조선총독부 1급 서기관 이해명(박해일 )은 오로지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던 발칙한 모던보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인 조난실(김혜수 )과의 만남은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는데..

그의 운명을 바꾸게 된 계기는 난실이 해명에게 싸준 도시락 하나. 바로 그 도시락이 총독부에서 폭발하게 되는 거죠. 이에 더욱 그녀의 미스터리함에 집착해가는 해명. 결국 독립운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요.

 

도시락 폭탄과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와 영화 <모던보이> 조난실]

 

조난실이 만약 실존 인물이었다면, 조선 총독부에 도시락 폭탄을 던졌으니 - “조난실 의사”라고 불리울 수 있겠습니다. 도시락 폭탄 하면 우리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윤봉길 의사”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죠? 작년 2008년은 윤봉길 의사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은 우리 독립운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의거로 인해 다소 추춤 했던 임시정부를 향한 관심과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으니까요. 특히 중국의 주석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에 대해 대단히 높이 평가하며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2007 4 27일 처음 공개된 윤봉길 의사의 출사표 전문내용]

 

23,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 압박과 우리의 고통은 증가할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 가는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

이 철권은 관()속에 들어가면 무소용(無所用)이다.

늙어지면 무용이다.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 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출처: 한겨레 신문 2007 4 27>

 

윤봉길 의사가 던진건 도시락이 아니었다?!

 

[1932
4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일왕 생일 기념식장 현장 ‘도시락 폭탄’ 사진]

 

알려진 바와 같이 윤봉길 의사가 던진 건 사실 도시락 폭탄은 아니었고, 물통형 폭탄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자결용으로 들고 있던 폭탄이 도시락형으로, 나중에 그것이 발견되면서 이렇게 전해진 것이죠.

윤 의사는 거사 당일 김홍일(金弘壹·전 외무부장관)이 마련한 수통형 폭탄과 도시락형 폭탄을 지니고 현장으로 갔으며, 수통형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지(河端貞次) 등을 사망케 한 뒤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습니다. 미처 던지지 못하고 현장에 남은 도시락형 폭탄이 현장의 긴박감을 전해주는 것 같네요. <출처: 조선일보 2004 4 20>

 

영화 <라듸오 데이즈>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영화. <라듸오 데이즈>는 류승범, 이종혁, 김사랑 주연의 코미디 드라마로 조선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을 방송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습니다. 30년대 일제 강점기의 방송은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요즘의 드라마 제작 현실을 빗대는 듯 해서 더욱 재밌어요. <아내의 유혹><꽃보다 남자>등 소위 막장 드라마의 원조격이니, 한번 비교해서 보시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듯 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라디오 PD 로이드(류승범 )와 신여성 재즈 가수 마리(김사랑 )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숨겨진 진정한 매력남은 바로 음향 담당 K (이종혁 )입니다. 그는 비밀을 숨기고 방송국에 잠입, 만능 소리 효과맨으로 막장 드라마의 완성에 크게 기여하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사실 그의 비밀은.. 독립운동을 위해 뛰던 중, 우연히 경성 방송국에서 소리효과를 내는 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라디오 전파를 이용해 전 국민들에게 독립운동을 전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K는 당당히 뽑히게 되죠. 극 중 K라는 인물은 ‘태극당’이라는 사설 독립운동단체의 우두머리로 약간은 귀여운 당원들과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임시 정부, 시련의 시기

 

당시 1930년대는 임시정부에겐 힘든 시기였습니다. 전체 민족운동을 통합해서 진행할만한 역량을 내지 못하고 있었죠. 그래서 일개 독립운동 단체로 전락해갈 위기에 빠졌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더군다나 중국 각지로 옮겨 다니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죠. 영화 <라듸오 데이즈>의 ‘태극당’처럼 산발적이고 파편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김구선생이 조직한 한인 애국단의 조직과 활발한 의열 투쟁은 결과적으로 임시정부에 대한 체제 정비와 도약할 발판을 마련해주었습니다.

 

1940년대: 독립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

 

194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충칭에 자리를 잡고,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이 시기 임시 정부는 주석 중심의 강력한 지도체제를 확립하고,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으며, 광복군을 창설하는 등 그 세력이 매우 강화되었습니다. 광복군은 중국군과 협력하여 일본군과 전쟁을 벌였으며,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연합 작전을 벌이기도 했죠. 또한 미국의 후원으로 본토 진입 작전을 수행하려고도 하였습니다.

 

영화 <다찌마와 리>

 

영화계의 재기발랄한 감독, 류승완의 작품 <다찌마와 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우리 임시정부도 분명히 비밀요원, 스파이가 있었을 거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다소 과장된 액션과 넘치는 개그가 화제가 되었던 영화. 아이러니한 건 이 ‘다찌마와 리’라는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은 영화판에서 흔히 쓰이는 일본말의 잔재로 ‘격투씬’을 뜻합니다. 류승완 감독이 ‘다찌마와’를 이름으로 ‘리’를 성으로 기지 넘치게 영화 제목으로 뽑아낸거죠. 그런 일본말의 잔재인 이름을 가진 ‘다찌마와 리’가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한다니, 감독의 재치가 돋보입니다. 더군다나 주인공 ‘다찌마와 리’는 극 중 임시정부의 수장들이 감춰두었던 비장의 병기로 등장해, 놀라운 액션을 보여주죠. 뻔뻔할 정도로 낯 뜨거운 대사들과 액션에서 오히려 너무 웃겨서 숨도 못 쉴 정도!

 

임시정부 최정예 특수요원들의 명단이 담긴 기밀 문서와 여성 비밀요원 금연자(공효진 )이 작전 수행 중 사라지자, 이 모든 것의 해결사로 나선 다찌마와 리(임원희 ). 그리고 새로운 파트너 마리(박시연 )와 함께 기밀 문서가 담긴 황금 불상을 쫓습니다. 상하이, 미국, 만주, 스위스 등 세계 전역을 넘나드는 첩보전 가운데 결국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다찌마와 리. 그리고 악인들에게 던지는 기차표.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세력이 강화된 임시정부와 광복군 창설

 

[
광복군]

 

영화 <다찌마와 리..> 속에서 등장하는 임시정부는 굉장히 체계화 된 조직으로 그려지죠. 1940년대야 말로 임시정부의 힘을 제대로 발휘했던 기간입니다. 당시 창립된 체계화 된 무력 군대인 한국 광복군만 봐도 알 수 있죠. 영화 속 임시정부 소속 비밀 요원들은 아마도 광복군 산하 비밀 조직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비밀요원, 광복군의 활약이 빛을 발휘해, 광복이 이뤄졌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1940년 중경에서 창설된 광복군. 중일 전쟁 이후, 일본과의 결전을 준비하자는 움직임에서 만들어지게 된 광복군은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군과 한중연합군 세력, 각지의 무장 독립군을 모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협조를 받아 전비를 갖춰, 1941년 태평양 전쟁에 선전포고를 하고 대일 전투에 첫 참가했습니다. 이후 1943년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우기도 했죠. 이러한 전투 참가는 연합국 측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1945, 비행대 편성까지 하는 등 규모를 확장하면서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정보기관과 연합, 국내 진입작전계획까지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요..? 진입 계획은 9. 하지만 결국 8 15일에 연합국의 승리, 일본의 항복으로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제71회 보훈퀴즈의신
6.25전쟁 67주년 계기, 미 참전용사와 교포 참전용사 동시 방한
6.25전쟁,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
2018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추천 접수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