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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7월 10일, 6.25전쟁이 시작된 지 꼭 1년 남짓한 시점에 휴전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나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고, 특히 최전방에서 적을 마주하던 국군 장병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951년 12월 27일 이후 발표된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한 의제의 합의안 ‘정전협정이 조인되는 순간에 양쪽이 대치하고 있는 선을 중심으로 새롭게 군사분계선을 그리기로 한다.’ 그리고 ‘포로문제와 송환’에 대한 협상이 18개월 11일간 지속되면서 국군장병들은 언제 조인될지 모르는 정전협정을 기다리며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한 전투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나긴 협상이 낳은 또 다른 비극, 고지전투의 서막이었는데요.

고지전투의 한 예로,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이뤄졌던 ‘백마고지’ 전투는 길이 3km, 폭 2km에 불과했던 작은 야산에서 벌어졌고 중공군 1만여 명, 국군 3,5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 고지전 전투 때 북한국 전사자를 바라보는 미군


또, 강원도 화천의 ‘425 고지전’은 남한 전체 전력의 30%를 차지했던 화천 수력발전소를 확보하고 휴전선을 38선 북쪽으로 35km 밀어올렸지만 160명의 국군전사자를 내는 안타까운 결과도 수반하였습니다.


정전협상이 있던 7월 27일 당일에도 오후 10시까지 한 평의 땅을 얻기 위해 사라진 꽃 같은 젊음들.

이외에도 군사전략상 중요한 고지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공방 속에서 많은 젊은 목숨이 사라져 갔습니다. 불모고지,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등 고지전투는 한이 맺힌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도 다양했습니다.


▲ 실제 고지전 때 쓴 탄피들


우리는 이들의 희생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요?

제10기 훈남훈녀 기자단 1조 ‘썸남썸녀’의 팀미션 영상을 통해 6.25전쟁과 고지전투에 대해 더 잘 알게되는 기회가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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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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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고지전 전개 배경


1951년 7월 휴전회담을 시작한 남과 북. 하지만 휴전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에는 전선이 소강상태를 유지하였으나, 회담이 결렬 또는 지연될 경우에는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죠. 휴전회담에서 가장 큰 이슈는 군사분계선 설정과 포로교환 문제였습니다. 쌍방이 접촉한 일대를 군사분계선으로 할 것을 주장하던 유엔군과 38도선을 주장한 공산군 진영. 결국 휴전회담은 결렬되었고 유엔군은 휴전 당시의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결정하자는 주장을 관철시키는 동시에 당시의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제한된 범위의 공격작전을 단행합니다.


10월 말까지 계속된 이 공격은 당시의 대치선에서 평균 10km내에서 치러졌으며 좁은 지역 내에서 수많은 전투가 전개되어 쌍방간에 많은 사상자를 내죠. 막대한 피해를 입은 공산군측은 10월 25일 휴전회담에 응하여 UN군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며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을 재개했지만, 결국 다른 의제들의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휴전회담은 또다시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1952년 후반, 다시 가열된 전선은 국지전 형태의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양상으로 변모합니다. 불모고지전투, 백마고지전투, 저격능선전투, 수도고지전투, 크리스마스고지전투, 단장의 능선전투, 피의 능선 전투, 펀치볼 전투, 351고지 전투 등 지금도 유명한 고지전이 이때 벌어지게 됩니다. [영화 고지전]도 이 치열했던 당시 전투를 모티브로 제작되었죠.


참호에서 주먹밥을 먹는 국군들(출처: 전쟁기념관)


▲고지 탈환 직후 시체 옆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국군(출처: 전쟁기념관)


# 단장의 능선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치열했던 전투


치열했던 고지전이 일어난 곳들 중 가장 많이 들어본 지역은 단장의 능선이죠. 한창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도 ‘단장의 능선’이라는 맵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단장의 능선은 강원 양구와 인제의 중간 지점에 있는 일련의 고지 이름입니다.


이 고지는 금성 지구에 위치한 적의 후방기지를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고 아군의 동부 전선에서의 진격작전에 있어 전략적인 요충지였습니다. 1951년 9월 13일, 한국군 제7사단과 미군 제3사단 병력이 연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9월 18일 이 고지를 점령했고, 북한군은 곧 이 고지를 수복하기 위해 맹공을 펼쳐왔습니다. 약 1개월 동안 일진일퇴의 백병전을 거듭한 끝에 유엔군이 적의 최후 거점을 점령함으로써 전투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유엔군은 3,700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상자는 25,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단장의 능선이라는 이름은 이 처절한 전투 양상을 상징하고 있답니다.


▲유엔군측과 공산군측의 수많은 병사들이 숨져간 고지 ‘단장의 능선’ (출처: 전쟁기념관)



# 피의 능선, 비극적인 별명의 유래


6.25전쟁 당시, 강원 양구군 북방의 983고지와 940고지, 773고지는 하나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951년 8월에는 북한군이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도로 확보를 위해 이곳을 탈취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해 8월 17일, 국군의 선제공격으로 일주일이 넘도록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긴 전투 끝에 능선을 점령한 국군은 바로 다음 날 공들여 얻은 고지를 북한군의 공격에 다시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이후 미군은 제24사단의 4개 포병대대, 중형포 2개 대대, 1개의 105mm 대대, 2개의 중박격포대대, 2개의 연대 전차중대, 중형 전차대대 1개 중대 등을 대거 투입하여 피의 능선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합니다. 8월 27일부터 9월 3일까지 제 1대대는 포병 및 공중의 지원을 받으며 이 능선을 수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결국 견고히 구축된 적 방어진지를 점령함으로써 3주간의 장기전을 마무리 짓습니다. 이 전투로 인해 국군과 연합군은 1개 연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북한군은 1개 사단 규모 이상의 피해를 보고 말았죠. 이를 취재하던 종군기자들이 적과 아군의 피가 흘러내린 격전지를 소개하면서 피의 능선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금성계곡이 보이는 산마루를 지키고 있는

제24보병 사단 소속 콜롬비아대대(출처: 전쟁기념관)



▲피의능선 전투 전적비 (강원 양구군 위치)


# 저격능선에 펼쳐진 죽음의 그림자(Battle of sniper ridge)


저격능선이라는 이름에서 저격수와 관련된 지명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저격능선 전투는 ‘철의 삼각지대 전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철의 삼각지대’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히는데요. 철원, 김화, 평강이 포함된 삼각지대를 뜻합니다. 교통의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던 만큼, 이곳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격능선은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인 강원도 철원군 오성산에서 남대천 부근인 김화 지역을 향해 뻗어 내린 돌출 능선입니다. 1952년 중부전선의 김화(현재의 철원군 김화읍 주변)지역,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15군에 맞서, 6주에 걸쳐 긴 전투를 벌였는데요. 주저항선 전반의 전초진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습니다.


▲철의 삼각지대 전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강원 철원군 소재)


1952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김화 북방 7km지점 오성산에서 김화지역으로 뻗은 여러 능선 가운데 남대천 부근, 장방형 무명능선 부근 1951년 노매드(Nomad)선을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한 미군 제25사단이 김화지역으로 진출하다 중공군 제26군과 대치하게 됩니다. 중공군은 저격수를 앞세워 공격을 가했고 미군 제25사단은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때부터 미군 병사들이 이 무명능선을 가리켜 저격능선, 저격병 능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이 저격능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일어나는 가운데 국군 제2사단은 미군과 작전을 교대합니다. 국군이 주간작전에서 막강한 화력으로 중공군을 제압하면 중공군은 야간역습으로 대응하면서 지속적인 공방전을 이어나갑니다. 결국 국군 제2사단은 11월 25일에 중공군을 모두 격퇴하고 진지를 사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고지전투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셨나요? 지금까지 독특한 이름 뒤에 숨겨진 안타까운 사연들을 가진 고지전 지명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우리는 이 이름에 얽힌 비극적인 전투들과 함께 정전 협정 직전까지도 적과 맞서 싸우며 우리의 영토를 사수하고자 노력했던 수많은 호국영웅들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며칠 앞둔 지금,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 참고 사이트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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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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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5월 중순, 백재덕 일등중사의 부대는 중부전선의 금성·김화지역 주저항선에서 치열한 고지쟁탈전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백재덕 일등중사의 부대가 지키던 ‘샛별고지’는 강원도 금성 서남쪽 약 5.8Km에 위치한 완만한 경사(표고 470m)의 이름없는 산입니다. 주위의 넓은 계곡과 함께 개활지가 넓게 형성돼 있어 적이 수월하게 기동할 수 있고 피아간 포격의 목표가 되어 접근이 곤란한 전술적 요충지였습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수도사단 기갑연대 10중대 3소대 3분대장으로서, 이틀 뒤인 17일부로 사단예비인 제1연대와 주저항선 방어임무를 교대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이 중부전선의 요충지를 사수해야만 했습니다. 10중대는 1952년 10월 지형능선전투에서 적 2개 대대의 공격을 백병전으로 막아낼 정도로 훈련이 잘 되어 있었고 정찰 및 수색활동에도 경험이 많았습니다.


(* 백병전 : 적과 근접해 있어 사격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육박하여 칼·창·총검 등으로 싸우는 전투.

‘육박전’이라고도 함.)



한편, 아군의 방어 정면에는 중공군의 제67군 199사단 예하 제569연대의 2개 대대 병력이 아군진지에 대한 수색공격을 감행하며 아군의 화력, 병력배치 상황을 파악하며 지형정찰 및 포로 획득을 도모하며 샛별고지 점령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 백재덕 이등상사 초상


새벽 1시, 적은 약 5천여발의 포탄을 샛별고지에 퍼부어 아군진지를 교란시킨 후 아군의 전면과 전초진지 전체로 대규모 인해전술을 펼치며 접근해 왔습니다. 아군은 적을 향해 60mm 박격포와 4.2인치 박격포, 105mm 야포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적의 공격은 집요했습니다. 제10중대 진지 일대에서 수류탄을 주고받는 사투가 벌여졌고 수적으로 우세한 적에게 진지 침입을 허락하고 맙니다. 이에 아군은 대대화력의 병력과 포격을 요청하여 반격에 나서는데요. 마침내 뺏긴 진지를 수복하였고, 도주하는 적들을 소탕하는데 성공합니다.



▲ 중공군의 야간 로켓포 공격(출처: 전쟁기념관)


5월 15일 밤, 백재덕 일등중사가 지휘하는 3분대는 매복조로 차출됩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중대 진지 앞에서 진목동 일대를 살피고 있던 중 수상한 적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긴급히 조명탄을 발사합니다. 그가 본 건 진지를 향해 은밀히 접근하고 있는 중공군 3개 중대. 백재덕 일등중사는 “여기서 적을 꺾지 못하면 중대의 주진지가 위태로워진다. 전 분대원은 나와 같이 이곳에서 뼈를 묻자”며 분대원들을 독려합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침착하게 적의 접근을 기다렸다가 수류탄을 투척하고, 중공군 제1파 15~16명이 진내로 돌입하자 과감한 백병전으로 적을 격퇴시켰습니다. 



▲ 중공군의 인해전술(출처: 전쟁기념관)



이어 중공군 제2파가 다시금 공격해오자 적을 가까운 거리까지 유인하여 사살하였고, 중공군 제3파가 다시 진내로 진입하자 분대원 6명과 함께 적 10여명을 치열한 백병전 끝에 총검으로 무찔렀습니다. 이 전투로 분대원 6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몸을 사리지 않고 10여명의 적을 사살한 용맹한 군인정신과 진지를 고수한 전공을 인정받아 1954년 이등상사로 1계급 특진하였고, 태극무공훈장 및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샛별고지전투의 승리는 우리군이 중부전선에서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를 무사히 확보해 전선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샛별전투의 주인공인 백재덕 이등상사의 용맹함과 리더십, 살신성인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샛별고지 전투,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6·25전쟁의 한 조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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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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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광

    2017.08.17 16: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유공자는 3대까지 우대하고 6.25전쟁 희생유공자들에게는 몇대까지 우대 할 것인지 대통령님은 분명히 답변하여야 할것입니다.
    6.25전쟁 희생 유공자들은 11만8천원으로 기초생활유지 할 수 있겠습니까? 보훈처장 피우진님도 면담 거절하고 뭐하는 사람들인지 우리 6.25전몰 군경미수당 비상대책위원회에 명쾌한 답변을 촉구합니다.

  2. 청광

    2017.08.17 1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 /MBC 보도내용)
    https://youtu.be/yLJXF_BRzKw 12,600여명의 절규를 들어보세요~
    KBS 시청자 칼럼 보도내용 2017.4.24

    https://youtu.be/V9U_WEbtU_8
    MBC 시사매거진2580 2017.6.25

    2017.08.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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