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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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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07.22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18.07.22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2018.07.22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2018.07.2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2018.07.22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이상동

    2018.07.22 15: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첨 가즈아

  8. 2018.07.22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2018.07.22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2018.07.22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2018.07.22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2018.07.22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2018.07.22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2018.07.22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2018.07.22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6. 2018.07.22 1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7. 2018.07.22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8. 2018.07.22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9. 2018.07.22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 2018.07.22 2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1. 2018.07.22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7월 18일 한겨레에 보도된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 기사 중

‘국가보상 0원···얼마 받았냔 말 들으면 너무 억울’(8면)의 기사 내용은 사실과 달라 다음과 같이 설명드립니다.



□ 해당 기사의 인터뷰 중 “국가유공자 신청은 2번까지만 할 수 있는데”라는 내용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 국가유공자 등록은 본인이 희망할 경우 횟수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다시 신청할 수 있습니다.


 ❍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은 ‘법정민원’으로 ‘일반민원’과는 달리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의 반복 민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또한 생존 장병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나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 개인적으로 사설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는 경우에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나, 기사에서 언급된 생존 장병처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공무상 발생한 질병으로 인정된 경우에는 5개 보훈병원에서 전액 국비로 PTSD 진료 및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특히, 2011년 9월부터 중앙보훈병원에 PTSD 전문클리닉을 개설하여 개인별 장애 수준에 따른 맞춤형 진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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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무엇일까요? 외압이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성과 공정성을 지켜 보도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언론은 그 특성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거나 노출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통치자들이 언론을 장악하려고 했던 이유도, 피통치자들이 치열하게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려고 했던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때는 어땠을까요? 당시에는 신문이 거의 유일한 언론매체였습니다. 일본은 언론을 탄압하며 조선의 신문을 집요하게 검열했습니다. 일제의 매서운 눈을 피해 갈 수 있었던 국내 언론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일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신문이 있었는데요. 바로 ‘대한매일신보’였습니다. 오늘은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글 한 줄의 힘을 보여주었던 신문, 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시절로 돌아가 볼까 합니다.


# 대한매일신보, 치외법권을 이용해 일제의 언론탄압을 피하다


▲ 대한매일신보 창간호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18일 영국 언론인 베델 선생이 독립운동가 양기탁 선생 등과 힘을 합쳐 만든 신문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순한글로 간행되다가 1907년에 이르면 국한문판, 영문판, 순한글판 등 세 종류로 발행됩니다. 덕분에 대내외에 많은 구독자를 얻을 수 있었고 발행부수가 1만 부를 넘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로서 최고의 발행부수였으며 한국 언론사에서 국한문, 한글, 영문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최초의 신문이기도 했습니다. 


일제의 검열과 탄압에 폐간되었던 국내의 다른 신문과 달리 대한매일신보가 꾸준히 발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신문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베델 선생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이자 편집인, 어니스트 베델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우리나라에 불법주둔하면서 전쟁을 핑계로 대한제국의 민간신문에 대한 사전검열을 강행했습니다. 이 때 일본의 검열망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시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인 명의로 신문을 발행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이 지점을 정확하게 이용했고, 사실에 근거한 보도와 논평을 꾸준히 발행하면서 대표적인 민족언론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습니다.


# 대한매일신보, 펜으로 일제에 맞서다


대한매일신보는 신채호, 박은식 등 당대의 유명한 학자이자 독립운동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했습니다. 다른 민족지와 다르게 대한매일신보는 쉽게 정간될 염려가 없었기 때문에 필진들은 반일적인 논설과 기사를 과감하게 써낼 수 있었습니다.


▲ 독립운동가 신채호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특히 신채호 선생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계몽운동이 필요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 한국민족의 강인함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08년 8월부터 12월까지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연재했는데요. 이는 한민족을 주인공으로 하여 역사를 체계화한 것으로 일본인들이 제기한 식민주의 역사관을 거부한, 한국 근대역사학의 효시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대한매일신보 편집국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매일신보는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폭로한 고종의 친서를 만천하에 공개했고 그 친서가 미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에 전달됐다는 사실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본에서 들여온 국채를 국민의 힘으로 갚자는 국권회복운동을 벌입니다. 강제로 해산된 대한제국의 군대가 의병활동을 벌이자 그 내용을 심층 취재하기도 했는데, 당시 일본의 사전검열대로라면 의병을 ‘비도(匪徒)’ 혹은 ‘폭도(暴徒)’로 표현해야 했지만 대한매일신보는 한결같이 사실 그대로의 의병운동을 보도했습니다.

흔들림 없이 진실을 추구하는 보도, 일제의 탄압에도 꺾이지 않는 논조는 당시 우리 국민에게 커다란 용기와 위안을 주었습니다. 


▲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사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대한매일신보의 논조를 꺾기 위한 일제의 집요한 탄압


대한매일신보의 활약을 막기 위해 통감부는 갖가지 수법으로 그 논조를 꺾으려 했습니다. 마침내 일제는 ‘신문지법’을 일부 수정하여 국내에서 외국인이 발행하는 신문과 외국에서 한국인이 발행하는 신문에 대해 압수 및 판매 금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합니다. 이를 토대로 베델 선생을 추방하기 위해 여러 공작을 벌였고, 대한매일신보의 총무를 맡고 있던 양기탁 선생을 국채 보상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구금시키기까지 했습니다.


▲ 양기탁 선생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러한 과정에서 베델 선생이 물러났고 그의 비서였던 영국인 만함이 대한매일신보의 사장이 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매일신보의 판권 일체를 금 4만 원에 팔아넘긴 후 우리나라를 떠났습니다. 결국 대한매일신보의 소유권은 통감부에 넘어갔고 몇 개월 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병합되자 대한매일신보는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가 되고 맙니다.


▲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이토 히로부미는 한 연설장에서 “한국에서 신문이 가진 권력은 비상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의 제반 악정을 반대하여 한인을 선동함이 끊이질 않으니 이에 관하여는 통감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대한매일신보의 집요한 사실 보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죠?


펜이 칼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한매일신보. 민족의 자립정신을 강조한 논설과 사실에 입각한 항일 기사를 통해 국민들의 가슴속에 독립 의지를 고취시켰습니다. 

7월 18일은 대한매일신보 창간일입니다. 일제의 언론탄압에 굴하지 않고 독립정신과 언론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대한매일신보의 의미를 되새겨봅시다.


*참고 사이트:

국립중앙도서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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