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947,726
  • Today | 1,592
  • Yesterday | 2,998

 

저는 얼마 전 인천 지역의 현충시설 중 하나인 부평전투 승전 기념비를 방문하였습니다. 부평 전투 자체를 낯설어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서울 수복을 위해 진격하던 연합군과 그것을 막으려는 북한군 간의 치열한 거점 쟁탈전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인천의 부평구였다고 합니다.

 

서울 수복을 위해서는 전투에 필요한 물품을 보급하기 위해 김포비행장의 탈환이 필요했습니다. 연합군은 미 제1해병연대와 제5해병연대를 앞세워 서울을 향해 진격했고, 미 제5해병연대에 배속된 한국해병 제3대대 9, 10, 11중대가 공격대열의 선봉에 섰습니다.

경인국도를 따라 서울로 진격하던 연합군은 부평지역에서 진을 치고 있던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부평전투 승전기념비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기념비는 부평 아트센터 근처에 있어 찾아가기 편했습니다.

 

▲ 부평 아트센터

 

기념비는 ‘인천시 부평구 아트센터로 168’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트센터에 도착 후, 5분 남짓 걸어가자 멀리서 기념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 부평전투 승전기념비

 

‘이 비는 당시 부평 지역에서 있었던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 뿐만 아니라 UN의 깃발 아래 조국의 수호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친 한국과 미국의 젊은 용사들의 넋을 기리고자 격전지였던 이 자리에 건립하여 2008년 6월 13일 준공식을 가졌다’ 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은 한적한 곳에 있지만, 6.25전쟁 당시 치열했던 격전지였다는 생각을 하니 한미 연합군의 희생에 대해 감사와 애도의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부평전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새겨진 구조물이 있었습니다. 부평전투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옆에는 추진위원회 분들의 성함이 기록된 구조물도 있었는데요, 사실 여기에는 어떠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2008년 부평전투기념승전비가 준공되기까지는, 부평전투의 참가자였던 김종구 어르신의 큰 공헌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종구 어르신은 부평전투를 잊지 않기 위해 승전기념비 건립을 추진하셨는데요, 이를 위한 자료수집과 견학을 위해 자비로 6.25참전 16개국을 직접 방문하여 참전탑을 견학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기념비를 세우는 데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고, 김종구 어르신은 부평전투승전기념식에서 부평전투를 발굴해 승전기념비 건립을 추진한 공적으로 명예 해병이 되셨다고 합니다. 김종구 어르신의 성함도 역시 이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가까이서 본 기념비의 모습입니다.

 

 

 

날개 모양의 조각상은 자유 수호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상징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감사하는 마음을 까맣게 잊은 채, 하루하루 급급하게만 살아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나와는 상관없는, 이미 지난 일이야’라고 생각하며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부평전투기념비를 방문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1호선 백운역 2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으며,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참고사이트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서비스

http://mfis.mpva.go.kr/hokukModel/readHokukModelView.do?typo=1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 경기도 수원에 위치해 있는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우리는 국민의 하나 된 단결력과 국군과 학도병의 희생정신,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유엔군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오는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인데요.


저는 지난 6월, 국가보훈처에서 주최한 '2017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에 다녀온 바 있습니다. 그때 제 룸메이트는 프랑스 친구였고,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저는 오는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6.25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군을 기억하는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를 찾아갔습니다.


▲ 수원시 파장동과 의왕을 연결하는 도로 가운데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가 있습니다.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를 찾아가기에 앞서, 6.25전쟁 때 참전한 프랑스군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요. 프랑스는 6.25전쟁 발발 이후 1950년 7월 1일, “유엔군사령부의 설치와 유엔 회원국들의 무력 원조를 미국 정부의 단일 지휘 아래 둔다”는 공동결의안을 영국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하는 등 참전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안보리 결의안이 동년 7월 7일, 7대1로 가결되면서 16개국 군대로 유엔군이 편성되었습니다.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프랑스군의 전설로 불리는 명장 몽클라르 장군은 스스로 자신의 계급을 중령으로 낮추며 프랑스군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이후 그는 대대장의 직함으로 프랑스 대대를 이끌고 미군에 예속되어 참전했는데요. 프랑스군은 약 3,400여 명이 참전, 지평리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 등에 참가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프랑스군 참전기념비는 경기도 수원에 위치해 있는데요. 프랑스군이 처음으로 집결한 곳이 수원이기 때문에, 수원과 의왕의 경계에 건립되었습니다.


▲ 프랑스군 참전기념비의 모습


프랑스군 참전기념비 입구에는 추모의 글이 쓰여 있는데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의와 승리를 추구하며 불가능이 없다는 신념을 가진 나폴레옹의 후예들! 세계의 평화와 한국의 자유를 위해 몸 바친 288명의 고귀한 이름 위에 영세 무궁토록 영광 있으라’


이곳에는 프랑스군이 참전했던 전투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동판에 새겨져 있는데요. 프랑스군이 1950년 11월 29일 부산에 상륙했고, 수원에 집결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후 쌍 터널, 지평리, 단장의 능선 전투에 참가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 프랑스군이 참전했던 전투의 설명을 새긴 동판


옆에는 지평리 전투와 단상의 능선 전투,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요. 이 중에서 프랑스군이 맹활약한 지평리 전투는 유엔군이 6.25전쟁 참전 이후 중공군을 상대로 제대로 된 승전을 거둔 전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참전기념비 왼쪽에는 태극기와 유엔기,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이역만리 떨어진 땅인 대한민국과 프랑스. 프랑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도 7-8시간 걸리는 우리나라인데, 67년 전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사실에 절로 숙연해졌습니다.


▲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 유엔기, 프랑스 국기


다가오는 7월 27일.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 속 하루일 수 있습니다. 또는 무더운 여름날, 빨리 지나가고픈 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유엔군이 참전한 것을 기념하고 감사를 표하는 날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7월, 한 번쯤 근처 유엔군 참전비나 기념관을 찾아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천에 100년이 넘는 근대사를 겪어온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천의 창영초등학교는 긴 시간 동안 선배들과 후배들의 강한 정신력으로 3.1독립만세운동을 통하여 애국정신을 온몸으로 나타내주었고, 그들의 귀한 노고를 보존해왔습니다. 그리고 1965년, 위급한 상황에서 희생정신을 발휘한 호국영웅이 흉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故 강재구 육군 소령의 이야기를 훈터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인천 창영초등학교 입구 및 현관 모습


1907년 5월 6일 개교한 창영초등학교는 현관의 모습 또한 한국의 초기의 근대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주고 있었음은 물론, 건물의 보존 상태도 양호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앞에 큰 운동장이 있었고, 왼쪽 언덕을 올라가면 현관과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 기념비가 있었는데요.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으로 시작된 독립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가는 과정에서, 인천에서는 그 당시 유일한 공립보통학교(현 인천 창영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항일 동맹휴학을 일으키고 일부 주동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야간에 교무실과 경찰서 간의 전화선을 절단한 이유로 주동 학생들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광복 후에도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지내게 되는 등 그저 그들의 희생이 잊혀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애국심 발휘의 전통을 살리고자 당시의 고증자료 수집과 재판 기록문을 압수, 그리고 선배님들의 뜻깊은 애국정신을 길이 빛내고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나라를 사랑하자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 1995년 3월 6일 총동창회에서 세운 기념비라고 합니다.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 모습


그리고 기념비의 옆에는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강재구 육군 소령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강재구 육군 소령 흉상 모습 및 비석


故 강재구 육군 소령은 1937년 인천에서 출생하여 인천 창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전 참전을 목전에 둔 1965년 10월 4일 순직하였습니다. 강재구 육군 소령은 1965년, 베트남 전쟁 파병이 결정되자 자원하여 맹호부대 제1연대 제3대대 제10중대장이 되었는데요. 출발 직전, 부하들의 수류탄 투척훈련 중 한 사병이 앞으로 던져야 할 수류탄을 뒤로 추켜들다가 놓침으로써, 그 수류탄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사병들 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강재구 육군 소령은 터지는 수류탄을 온몸으로 끌어안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짧은 순간, 강재구 소령은 수류탄을 끌어안아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고 산화했습니다. 그의 나이 28살에 불과했던 때였습니다. 만약 그 수류탄이 폭발했더라면 수많은 사병들이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서 부하들의 생명을 구해낸 영웅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이 우리가 존경하고 기억해야 할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강재구 육군 소령을 흉상으로 만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알리는 학교의 모습도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기사를 마치며, 우리가 추모하고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기억에서 잊혀지는 일은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나라를 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는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국민과 자라나는 아이들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을 위한 시작은, 과거 3.1운동 당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목놓아 외쳤던 순국선열과, 강재구 소령처럼 남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호국영웅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에서부터일 것입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기사를 마칩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영웅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6월 호국보훈의 달 감사댓글 이벤트, '호국보훈의 달, 한 방에 정리!'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 강화, ‘국가유공자 사망시 대통령 명의의 근조기를 증정합니다’
광복단 결사대 기념탑에서, 한훈 선생과 광복단 결사대의 투신을 알아보다
'호국보훈의 달', 기억하고 감사하고 추모하는 6월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