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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전쟁 개시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내주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한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국토는 북한군에게 무참히 짓밟혔고 대한민국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같았습니다.


그러자 우리 국민들은 하나 둘씩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6.25전쟁 당시 모든 국민들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전쟁의 최일선에서 싸운 군인과 경찰뿐만 아니라 철도인, 노무부대, 학도병, 유격대 등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이러한 숨은 영웅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국난을 극복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했던 철도인들의 활약을 다루고자 합니다. 철도인들은 6·25전쟁 당시 철도직원의 2/3인 약 1만 9,300명이 개전과 함께 참전해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철도인들의 숭고한 희생과 활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보급입니다. 철도는 6·25전쟁 당시 보급 임무를 수행 할 수 있었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때문에 철도와 관련된 전문적인 일을 하던 철도원들은 개전과 동시에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철도원 1만 9천여 명은 교통부 산하 전시군사수송본부에 배속되어 참전하게 됩니다. 철도원들은 군무원 신분으로 군 병력과 군수물자 그리고 피난민들을 수송하는 중요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철도원들이 맡은 임무는 매우 위험한 임무였습니다. 북한군이 우리의 보급과 수송을 차단하기 위해 철도를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철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철도인들이 전쟁 중 목숨을 잃었습니다. 6·25전쟁 철도원 287명이 수송임무수행 중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 딘 소장 구출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한 김재현 기관사


많은 철도인들이 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쓰러져갔습니다. 많은 철도인들 중 김재현 기관사는 대표적인 호국영웅입니다. 김재현 기관사는 6.25전쟁 발발 이전인 1944년부터 대전철도국 소속 기관사로 재직합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김재현 기관사는 군무원 신분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1950년 7월 김재현 기관사는 자원해서 일명 ‘딘 소장 구출 작전’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 딘 소장 구출작전 당시 김재현 기관사가 운행했던 미카 3-129 기관차

(사진출처: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http://reporter.korea.kr/newsView.do?nid=148761551 )


1950년 7월 20일, 김재현 기관사는 황남호, 현재영 두 기관조사와 함께 기관차와 화차 1량을 연결한 열차에 미군 결사대원 30명을 태우고 미제24사단장 딘 소장 구출을 위해 대전으로 출발 합니다. 하지만 대전은 이미 북한군 수중에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결국 구출작전에 실패하고 철수하던 길에 지금의 대전 판암동 부근에 매복해있던 북한군의 기습을 받습니다. 결사대원 27명이 전사했고 김재현 기관사도 전신에 8발의 총상을 입고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던 김재현 기관사. 김재현 기관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83년 철도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지난 2012년 6월 26일, 미 국방부는 김재현 기관사에게 특별민간공로훈장을 추서했습니다.


▲ 호국철도인 김재현 기관사의 묘역.

김재현 기관사는 1983년 철도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사진출처=국가보훈처 블로그) 


김재현 기관사 외에도 적의 맹공격 속에서 중앙선 철도를 지켜낸 김노한 기관사 등 많은 철도 영웅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 조국을 위한 그들의 숭고한 희생, 이제는 호국철도영웅들을 기억해야 할 때



▲ 대전역 코레일 본사 앞에 위치한 호국철도공원과

김재현 기관사, 황남호 부기관사, 현재형 부기관사 동상.

(사진출처 : 대전시 블로그, http://daejeonstory.com/6961 )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 수송 작전을 수행했던 철도인들. 많은 철도인 들이 목숨을 바쳐 병력, 군수물자 그리고 수백만명의 피난민들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전쟁 중 장렬히 순국하신 철도인들은 지금 국립묘역에 잠들어 있으십니다. 김재현 기관사 철도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에, 현재영·장시경 철도원은 국립대전현충원, 황남호 철도원은 임실호국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코레일은 지난 2011년 6.25전쟁에 참전, 전사한 철도인 287명을 기리는 추모제를 거행했습니다. 또 철도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대전역 코레일 본사 앞에 호국철도공원을 건립했고 김재현 기관사, 황남호 부기관사, 현재형 부기관사 동상을 세웠습니다. 지난 2013년 5월 30일, 대전국립현충원내에 ‘호국철도기념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호국철도기념관에는 ‘딘 소장 구출작전’ 당시 김재현 기관사가 운전했던 참전 증기기관차 미카3형 129호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철도인들의 6.25전쟁 당시 활약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있습니다.


지금까지 철도인들의 활약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고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철도인들의 국가를 위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 할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의 숨은 영웅인 철도인들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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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햇살가득

    2017.02.25 1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국영웅이라면 군인만 있는 줄 알았는데. . . 기관사분도 계셨군요~ 많은 이에게 널리 알려졌음 좋겠어요~

 

 

 

 

전쟁이라는 터널을 향해 기적을 울린 사람들

7월의 호국인물 김재현 기관사와 6․25전쟁 당시의 호국철도인들을 찾아 떠난 여행

 

 

 


7월의 호국인물 김재현 기관사 현양식(전쟁기념관)

 

 


 지난 7월 3일, 전쟁기념관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7월의 호국인물 현양식’이 그것이었는데요. 이날 주인공의 직업이 유독 눈길을 끌었습니다. 2014년 7월의 호국인물인 김재현 기관사인데요. 일반적으로 철도인들의 본래 임무는 승객들과 화물을 목적지까지 수송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재현 기관사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이달의 호국인물에 선정된 것일까요? 저는 이를 알아보고자 한국철도공사 본부가 있는 ‘철도의 고장’ 대전광역시로 훌쩍 떠났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김재현 기관사의 모습(호국철도기념관)

 

 

 

김재현 기관사의 유품
 (좌) 기관사복(호국철도기념관), (우)초등학교 교과서와 회중시계(전쟁기념관)

 

 

새벽녘에 집을 나와 대전으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저는 미리 조사한 김재현 기관사의 정보를 바탕으로 취재 여정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1950년 7월 19일, 충청북도 영동역에서 ‘군수품 수송작전’을 수행 중이던 대전운전사무소 소속 김재현 기관사에게 다음과 같은 소식이 들립니다. 미군 특공대 30명을 태우고 대전에 고립되어 있는 미군 제24단장인 윌리엄 딘 소장을 구출하는 것과 동시에 대전역에서 대기 중인 화물차를 영동역으로 이송하는 임무를 수행할 기관사를 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28세의 가장이었던 그는 이 작전에 자원하였고, 충북 옥천의 이원역에서 생애 마지막 운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당시 대전 일대는 북한군의 수중에 함락된 상태여서 김재현 기관사와 30명의 결사대가 몸을 실은 증기기관차 ‘미카 3-129호’는 여정 곳곳에서 무수한 총격을 받는데요. 이 때문에 목적지인 대전역에 이르렀을 때는 미군 병사들 중 단 세 명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딘 소장의 행방과 화물차를 찾았으나 안타깝게도 끝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다시 본대로 귀환을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군은 이미 특공대의 경로를 파악하여 철로 주변에 매복하고 있었죠. 무수히 쏟아지는 총알을 뚫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김재현 기관사는 여덟 방의 총격을 받고도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고 결국 운전대를 잡은 채로 순직하였습니다.
동승하고 있던 현재영, 황남호 기관조사(현재의 부기관사)가 열차의 운전대를 넘겨받아 끝내 영동역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

 

 국립대전현충원에 전시된 미카 3-129호의 실물을 볼지 아니면 김재현 기관사가 전사했던 사적지를 탐방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역사의 현장을 먼저 체험하기로 하고 터미널에서 내려 대전의 동쪽 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40분 남짓 차를 타고 어느 정류장에서 하차하자마자 ‘대전도시철도공사 판암차량기지’라고 표시된 거대한 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전 지하철 1호선에 운용되는 전동차들을 관리하는 곳이었는데요. 제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이곳에 김재현 기관사의 순직비로 향하는 쪽문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비실을 찾아가 근무 중이던 공익근무요원과 직원 분에게 서울에서 이곳까지 내려온 연유를 말씀드리고 순직비를 취재하고 싶다고 부탁드렸으나, 상황은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순직비가 경부선 철도 상, 하행선 중간에 위치해 있어 안전상 사전에 공문을 보내 안전관리책임자가 함께 해야 된다는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두 가지 선택의 길에 놓였습니다. 첫 번째는 차량기지에서 조금 떨어진 육교 위에 올라가 멀리서나마 순직비 사진을 찍어가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위험하지만 철길을 걸어가 순직비를 취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눈앞의 ‘편한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가야 된다는 사실에 잠깐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내려온 이상 김재현 기관사가 순직한 자리에 세워진 순직비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결국 어렵고 위험한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를 취재하기 위해 걸었던 길

 


 직원 분이 일러주신 대로 차량기지를 벗어나 한참 동안 걷자 철로 양 옆을 연결한 육교가 나왔습니다. 육교 위에서 차량기지 방향을 주시하니, 저 멀리 그토록 보고 싶었던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의 실루엣이 나타났습니다. 육교에서 내려와 김재현 기관사의 순직비로 가는 길은 무척 험난했습니다. 제대로 된 길이 없어서 처음엔 열차가 오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찻길을 걷다가, 위협적인 경적을 울리며 빠르게 다가오는 기차를 피하기 위해 상, 하행선 사이의 협소한 공간에 몸을 잔뜩 웅크린 적도 있었는데요.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채마밭과 연결된 철길 옆 흙길로 경로를 변경하며 고속열차들을 보내고 나서야 마침내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경부선 철도 상, 하행선 사이의 자그마한 평지에 세워진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의 모양은 마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탑을 연상시켰습니다. 몸통 구석구석에 세월의 흔적이 붉게 물든 비석은, 기차를 탄 채 이곳을 지나는 승객들에게 어쩌면 그저 철길 사이의 희한한 조형물로만 비쳐질 지도 모르지만, 이 비석이 하필 이 자리에 놓인 이유를 아는 이상 보면 볼수록 깊은 감동이 일었습니다. 김재현 기관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철도청에서 1962년에 만들었다는 이 비의 하단부에는 헌사가 새겨져 있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여기 위대한 죽엄이 있다

6․25 거치른 날 우군의 띤 장군을 구출하기 위하여 최후 일순까지 철마를 달려도 
보람을 걷우지 못하고 순사하고 말았다 
비단 아름다운 우정에서랴
민족의 생존과 인류의 자유와 평화로하여 하늘 같이 숭고한 죽엄이어라
조국과 더부러 영원할 영혼을 위하여 여기 돌을 하나 놓는다

 

 

 50년 전 지은 글이라 맞춤법 등에서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졌으나, 김재현 기관사의 숭고한 희생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분께 묵념을 드리고 다시 또 다른 목적지를 찾아 돌아가는 길, 마침 차량기지를 바라보니 순직비로 통하는 철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무려 여덟 차례의 총상을 입고도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는 김재현 기관사에 비하면 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여 조용히 철길을 걸었습니다.

 


김재현 기관사의 증기기관차가 매복한 북한군의 집중공격을 받았던 세천터널

 

 다음으로 향한 곳은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세천터널’로, 미군 특공대를 싣고 대전역으로 향하던 김재현 기관사의 증기기관차가 매복한 북한군의 집중공격을 받았던 장소입니다. 정류장을 잘못 내려 한참 걷다가, 마을 주민들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기차가 내는 굉음을 따라 올라가니 터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에서 펴낸 ‘국가수호사적지 조사보고서’에서 그 당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세천터널과 양 옆의 풀숲을 보니, 머릿속에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였을 1950년 7월 19일의 상황이 저절로 그려졌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뚫자마자 맞닥뜨린 기습공격이 얼마나 두렵고 당혹스러웠을까요? 그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전역으로 향한 김재현 기관사와 병사들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미카 3-129호가 있는 국립대전현충원

 

  세천터널과 그 주변을 취재한 후, 또다시 몇 십 분을 걸어가 점심을 해결하고 나서 최종 목적지인 미카 3-129호가 전시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경유하기 위해 대전역 정류장에 내려야 했는데요. 이때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되어 그대로 대전역 경내에 들어갔습니다. 혹시나 이곳이 김재현 기관사와 미군 특공대가 생사의 고비를 넘겨가며 도착한 그 대전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역내 여행자 안내센터 직원 분이 건물만 증축되었을 뿐 자리는 그대로라고 하시며 제 의문점을 해결해주셨습니다.

 

 

 

 김재현 기관사와 미군 특공대가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던 세천터널

 

불과 64년 전만 해도 아수라장이었을 대전역 광장에서는 전쟁의 흔적 대신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2014년 현재 대전역의 전경, 측면에 한국철도공사 본사 건물이 보인다.

 

 

 이동수단을 바꾸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끝에, 국립대전현충원에 다다랐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수차례 방문하여 익숙했지만 이곳은 초행이었기에 지쳐있던 와중에 ‘처음’을 경험하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는데요. 두 발은 앞으로 두되 두 눈을 끊임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 속 목적지’인 ‘호국철도기념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호국철도기념관의 외부 모습
(위) 호국철도기념관의 모체이자 ‘딘 소장 구출작전’에 투입된 ‘미카 3-129호’
(아래) 미카 3-129호 차체에 무수히 박힌 총탄자국

 

 

 호국철도기념관은 ‘딘 소장 구출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최종적으로 동해 남부선의 관광열차 역할을 하며 1983년까지 제 역할을 수행하였던 ‘미카 3-129호’ 증기기관차를 건물로 삼아 만들어졌습니다. 6․25전쟁 당시 호국 철도인들의 숭고한 넋을 추모하는 본래 목적과 더불어서 한국 철도의 발전상을 알리기 위해 작년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저와 함께 하였던 김재현 기관사, 그리고 특공대가 최후의 순간을 맞았던 그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여러 가지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차체 표면에 군데군데 뚫린 총탄자국을 통해 말 할 수 없는 열차로부터 1950년 7월 19일의 상황에 대한 깊은 울림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 내부는 총 두 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기차 특성상 처음 나오는 호국관을 통해야 그 다음의 역사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늦은 오후여서 그런지 기념관 내 관람객은 저 혼자뿐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들리는 전시관 벽면 영상전시물의 음성 덕분에 적막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전시물을 꼼꼼히 보며 김재현 기관사의 업적 외에도 호국 철도인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요. 6․25전쟁 당시 2만여 명이나 되는 철도인들이 전시체제로 전환된 상태에서 군수품, 피난민 수송업무 뿐만 아니라 철길 복구까지 다방면의 군무(軍務)를 수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1950년만 하더라도 철도는 유일한 육상 교통수단이었다고 하니, 그 중요성이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호국 철도인들의 활약상을 체험한 이후, 앞으로 조금 이동하니 운명의 1950년 7월 19일을 재현한 실물 크기의 모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가슴을 부여잡은 채 쓰러지는 김재현 기관사의 모습은 마치 실제 상황처럼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다음 전시테마는 바로 ‘추모’였는데요. 벽면을 가득 메운  6․25전쟁 참전 철도전사자 287인의 이름과 전사장소, 그리고 가운데 위치한 추모의 공간을 보니 묵념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타니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온종일 이어진 강행군에 몸도 마음도 모두 녹초가 된 상태이긴 했지만, 제가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간다는 성취감에 기분 좋은 잠기운이 쏟아졌습니다. 잠이 들기 전, 전날에 있었던 현양식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는데요, 바로 김재현 기관사의 외손자 분인 홍성표 씨(한국철도공사 대전충남본부 대전기관차 승무사업소 부기관사)를 인터뷰한 것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인 김재현 기관사, 그리고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신 친아버지에 이어 본인까지 3대 째 철도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홍성표 부기관사는 어렸을 때부터 김재현 기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철길 옆에서 놀며 자연스럽게 철도인의 꿈을 키웠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제는 아홉 살 아들에게 김재현 기관사와 관련된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외증조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들려준다고 하였습니다. 홍 부기관사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자원하여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김재현 기관사의 행동이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철도인들의 마음가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7월의 호국인물 현양식에서 외할아버지인 김재현 기관사의 제단에 묵념을 드리고 있는 홍성표 부기관사와 그 가족

 

 

드라마를 찍을 때 모두가 고생하지만 연예인들은 오래 오래 기억되는 반면 스텝들은 잊히기 쉽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6․25전쟁에 참전한 장군, 사병, 경찰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 뒤에서 묵묵히 물자와 병력을 수송했으며, 그 중에 287 분의 희생을 낳았던 19000 철도인들의 이야기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이러한 기회를 계기로 호국 철도인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작업환경이 어렵지만 꿋꿋하게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철도인들의 존재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6.25전쟁 당시 철도인들은 군인, 경찰 다음으로 많은 인원이 참전, 순직하였다.
(19300여명 참전, 287명 전사)
*김재현 기관사는 1983년 철도인들 중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12년 그의 공로를 인정한 미국 국방부에서는 민간인이나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격인 ‘특별민간공로훈장(Secretary of Defense exceptional civilian service award)'를 추서하였는데, 국내 수상자는 김재현 기관사가 처음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제7묘역에 위치한 김재현 기관사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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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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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크하우스

    2014.07.18 1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2. ㅈㄷㅎㅉ

    2014.07.19 15: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기사 잘읽었습니다! 껄껄껄껄

  3. 김준식

    2014.07.21 1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 잘 읽었습니다. 그저께가 7월 19일이었는데, 그 날은 김재현 기관사가 처음으로 떠오르더라고요. 또 전날에 기차를 타고 대전역과 조치원역을 다녀가서 그랬는지 몰라도 더 그랬습니다. 6·25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 다음으로 가장 많이 희생된 직업군이 철도원이라는 내용의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대표주자가 김재현 기관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재현 기관사를 시작으로 더 많은 철도원들이 국민들에게 업적이 알려져서 6·25전쟁에 대해 더 많은 사실들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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