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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었던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의 가슴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국군과 유엔군이 숨져갔고, 죄 없는 민간인들도 전란 속에서 고통 받아야 했죠. 전쟁고아 양산, 산업 시설 파괴 등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비극적인 6.25전쟁은 왜 일어나게 된 걸까요? 지금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과 그 전개과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남북 분단의 배경과 북한의 남침 준비


▲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폭발 장면


때는 1945년 8월 10일, 일본이 갑작스럽게 연합국 측의 무조건 항복 권유를 받아들이면서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미국의 군사 점령이라는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할 주체와 극동 지역 군사 작전의 한계선을 신속히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본군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항복할 것인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일반명령 제1호’가 작성되었는데요. 이 문서에 언급된 38도선은 9월 초 일본의 항복을 접수하여 무장을 해제하고 책임 구역을 할당하기 위한 편의적인 조치였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38도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1. 만주,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반도 지역, 사할린 및 쿠릴 열도에 있는 일본국의 선임 지휘관과 모든 육, 해, 공군과 보조 부대는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에 항복하라

2. 일본국과 일본국 본토에 인접한 모든 작은 섬,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국, 류큐 열도와 필리핀 제도에 있는 일본국의 선임 지휘관과 육, 해, 공군 및 보조 부대는 미국 태평양 육군 총사령관에게 항복하라.


당시 이러한 조치는 전후처리를 위한 순수한 군사적 조치였으며, 한반도를 정치적으로 분단하기 위한 의도는 내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의도는 달랐습니다. 8월 말에 북한 전역을 장악한 소련은 이미 38도선을 정치적인 구획선으로 인식하고 정치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한 것이죠.


우리 민족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이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분할 점령한 이상, 통일의 꿈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에서만 선거를 치르자는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아래,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내각 구성에 이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수립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소련 군정당국은 북한에 김일성을 내세운 불법적인 공산정권을 수립하였습니다.


▲ 남북 통일 정부를 이룩하기 위해 방북한 김구 선생


북한 지도부는 민중 봉기 등을 통해서는 전 한반도를 사회주의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무력 달성쪽으로 전략을 바꾸어 남침을 계획합니다. 북의 남침 계획은 1개월을 목표로 3단계로 구성되었고, 스탈린의 동의를 받은 후 남침 개시 일자를 1950년 6월 25일로 정하게 됩니다.


▲ 스탈린의 집무 모습


#6.25전쟁의 발발과 전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불법 남침을 감행함에 따라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사전 준비를 마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동안, 갑작스러운 전쟁을 예상하지 못했던 남한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열세였기 때문에 각 지구에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전쟁 발발 3일 만인 6월 28일 적에게 서울을 내어주었고, 한강 남쪽에 방어선을 형성했습니다.



6월 25일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미국이 제출한 ‘북한군의 침략 중지 및 38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이어서 유엔 안보리는 “그들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지원을 제공하자”는 내용의 ‘6.26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요. 이 결의에 따라 미국과 자유진영 32개국이 유엔의 결의를 지지했으며, 7월 중순에는 52개국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그 후 한국을 돕기 위해 16개국이 전투부대의 파병을, 5개국이 의료 또는 시설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습니다.


#유엔군의 참전


▲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사진제공: 유엔군 초전기념관)


1950년 7월 4일, 미군 제24사단 선두 부대인 스미스 특수 임무 부대가 미군 최초로 한반도에 도착하여 평택-제천-울진을 잇는 선에서 철수하고 있던 국군과 함께 북한군을 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군은 북한군의 기습공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엔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8월 1일에는 낙동강선까지 후퇴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의 많은 청년학도들과 재일학도의용군이 참전함으로써 국군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요. 이들 중에는 만 18세가 되지 않은 어린 소년과 소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심으로 참전하여 다양한 형태로 전쟁을 지원했습니다. 


더 이상 밀릴 수 없다고 판단한 국군과 유엔군은 끝까지 낙동강을 지키기로 결심했고, 낙동강을 사이에 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선 방어에 성공하여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반격 작전으로 전환하여 9월 28일, 잃어버린 수도 서울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10월 1일 국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였는데, 이날을 기념하여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0일 평양을 점령하고 11월에는 압록강까지, 또 중공과 러시아가 있는 두만강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중공군의 개입과 정전 협정



유엔군 사령군 맥아더 장군은 국경선 부근의 모든 부대에 압록강, 두만강으로 진군하도록 독려했는데요. 그러나 중공군이 북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참전을 결정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다시 한 번 크게 바뀌게 됩니다. 이제 전쟁은 중공군과 북한군, 그리고 국군과 유엔군의 대결이 되었는데요. 다시 북한군과 중공군에 의해 밀려 내려가게 된 국군과 유엔군은 다음 해인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내주고 후퇴합니다. 



유엔군과 북·중 연합군은 1951년 7월 10일부터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에 들어갔습니다. 한반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는데요. 그러나 회담은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했고 38도선 부근에서는 계속해서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펼쳐졌습니다. 이전에 포스팅했던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와 저격 능선 전투 등이 이 당시 일어났던 고지 쟁탈전에 속합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중공군, 그리고 북한군 대표가 정전 협정에 서명하여 3년 이상 계속되던 전쟁이 멈추게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 6.25전쟁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는 1,129일이나 계속된 전쟁이 멈춘 휴전 상태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올해, 6.25전쟁이 발발한 지 67주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얻은 결과입니다. 전쟁이라면 먼 얘기 같지만, 그 당시를 겪었던 많은 분들의 아픈 시간은 여전히 67년 전에 멈춰 있습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이 10여일 남은 지금, 전장에서 용감히 싸운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 분들에게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오는 6월 25일 일요일 오전 10시 서울의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6.25전쟁 67주년 행사'강한 안보로 평화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거행됩니다. 


또한 6월 22일(목)부터 27일(화)까지 5박 6일동안, 미국 참전용사 및 교포 참전용사 등 83명이 재방한하여 여러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6.25전쟁이 일어났던 6월, 아픈 기억을 지니고 살아가는 분들을 잊지 않고, 그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이 후손인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참고 문헌

국가보훈처 6.25전쟁 60년 계기 교육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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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것 다들 아시죠?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국민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애국정신 함양을 위해서 6월 한 달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월 한 달은 '추모의 기간(6월 1일~10일)', '감사의 기간(6월 11일~20일)', '화합과 단결의 기간(6월 21일~30일)'으로 나뉘어 기간별 특성에 맞는 호국ㆍ보훈행사가 열린답니다.


저는 6월의 호국ㆍ보훈행사 중에서도 특히 6·25전쟁과 정전협정에 대한 행사에 대해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올해가 6·25전쟁 정전·유엔군 참전 6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6·25전쟁과 정전협정에 대해 저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광복 직전의 상황>


6·25전쟁의 배경에 대해 이해하려면 광복 직전의 상황부터 알아야 하는데요, 

 

우리 한반도는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주변국들에게 침략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북쪽으로는 중국의 만주와 소련의 연해주, 동쪽으로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서쪽으로는 서해를 건너 중국대륙과 인접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광복을 앞두고 한반도의 주도권 쟁탈을 위해 열강들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광복 직전 시기의 국제회의에 대해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1. 카이로 선언(1943)

  카이로 선언은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가 카이로 회담의 결과로 대일전의 기본 목적에 대해 발표한 선언입니다. 카이로 선언에는 ‘한국민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 독립 국가로 할 것을 결의한다.’고 명시하여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얄타 회담(1945.2)

 얄타 회담은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얄타에서 가진 회담입니다. 특히나 소련은 대일전에 참전을 하는 대신 한반도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영향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개입권을 약속받게 되어 훗날 한국광복 후 분할통치에 관여하게 됩니다.


3. 포츠담 선언(1945.7)

 포츠담 선언은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즉 연합군 수뇌부가 일본에 대해서 항복을 권고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일처리방침을 표명한 선언입니다. 우리나라는 카이로 선언에서 명시한 한국 독립을 포츠담 선언에서 재확인 하게 됩니다.


4. 히로시마 원폭 및 일본 무조건 항복(1945.8)




<광복 후 남북 분단의 과정>




5. 모스크바 3상 회의(1945.12)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국·영국·소련 3국의 외무 장관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 리에 관한 주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특히 한국 문제에 관한 결정 사항 중 미국과 소련간의 한국 신탁통치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있었고, 이는 결국 이념 계열에 따라 반탁운동과 찬탁운동이 동시에 전개되어 내부 혼란을 야기시키는 하나의 역사적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한반도에 대한 미···4개국에 의한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의 실시와 더불어 한국의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하여 장차의 독립에 대비하게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6. 1차 미·소 공동위원회(1946.3)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결정된 5년간의 신탁통치 실시에 따라 설치된 미·소 공동위원회는 1·2차 모두 협의 대상 선정 문제로 결렬되었습니다.


7. 좌우 합작 운동(1946.7~1947.12)

 좌우 합작 운동은 임시정부 수립, ·소 공동위 속개, 토지 개혁, 친일파 처리 등 좌우 합작 원칙을 제정 하였으나 좌우 양측이 합의를 보지 못해 운동은 정체 상태에 빠지고 냉전의 시작으로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8. 2차 미·소 공동위원회(1947.5)

 1차와 마찬가지로 결렬되었습니다.

9. UN 총회 결의(1947.11)

미국은 모스크바협정 노선을 포기하고 한국문제를 유엔으로 상정하였습니다. 유엔은 총회의 결의에 따라 유엔의 감시 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결정하였으나 소련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이 입북을 거부당하자 유엔 소총회 결의를 통해 가능한 지역만의 총선거(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진행하게 됩니다.


10. 남북 협정(1948.4)


11. 5·10 총선거(1948.5.10)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유엔 총회에서는 남한 정부만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게 됩니다.




<6·25 전쟁>


  광복 직전의 상황부터 광복 후 남북 분단까지의 배경이 이해가 되셨나요? 대일항쟁기를 거쳐 광복 후에도 한반도에는 이처럼 여러 사건과 시련이 많았답니다.


  해방 후 한동안은 남북의 주민들은 38도선을 넘기도 하고 남북을 왕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수립을 전후로 하여 38도선의 접경지에서는 남북의 이질적 체제에서 오는 대항의식과 경쟁심, 적개심이 가열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개성, 옹진, 춘천을 비롯한 지역에서 도발을 하였고 이는 소규모전투와 포격전을 반복하면서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또한 북한은 소련·중국과 군사 비밀 협정을 맺으며 남침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마침내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도 군사경계선을 넘어 남침하게 됩니다.



12. 북한군 남침(1950.6.25)


13. 유엔군 참전(7月)과 낙동강 전선 교착

  북한군이 기습 남침하고 의정부가 남침 하루 만에 점령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침 3일 후인 28일에는 서울이 점령당하고 북한군은 7월까지 거침없는 공세를 퍼붓게 됩니다. 이에 유엔의 6·26결의에 따라 미국의 육·해·공군이 본격적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14. 인천 상륙 작전(1950.9.15)

  낙동강 전선에서 위기를 넘긴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하여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15. 국군의 압록강 진격(1950.10.26)


16. 중국군의 개입(1950. 11)

 


17. 유엔군·국군의 반격과 38도선에서의 전투 교착

18. 정전 협정(1953.7.27)

  1951년 6월 소련은 유엔에 휴전을 제의하고 그에 따라 유엔군은 휴전회담 개최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군사 분계선 문제와 포로 송환 문제로 난항을 겪다 북한이 제시한 현 전선(38도선)을 채택하고 미국이 제시한 포로의 자유 송환을 채택하여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은 정전이 되고 국토는 휴전선으로 분단되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에 정전 협정을 맺고 우리는 지금까지 ‘종전’이 아닌 ‘정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이 올해는 6·25전쟁 정전협정과 유엔군 참전 60주년이 되는 해인만큼 참전용사와 UN참전국에 대한 감사 행사가 많이 개최 될 예정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감사한 분들인 만큼 다양한 행사에 참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6·25전쟁 53주년, 정전·유엔군참전 60주년 행사>



[6·25전쟁 63주년 행사]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오전 10시에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국내 및 유엔참전용사, 일반시민, 학생 등이 참여하는 6·25전쟁 63주년 행사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6·25 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담은 뮤지컬 형식의 공연도 진행된다고 하니 가족, 친구들과 참석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6·25상기 국민대통합 마라톤 대회]

  특전사전우회에서 정전 60주년 기념하고 전쟁 전/후세대 및 각 사회계층간 국민 대통합 도모를 위한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2013년 6월 22일 토요일에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서 열리고 미리 참가신청과 접수비를 받는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미리미리 신청하세요.^^ 특공무술시범, 안보전시회, 주먹밥 먹기 등 부대행사도 병행한다고 하니 재미있고 뜻 깊은 행사가 될 것 같네요.


[시민과 함께하는 호국 퍼레이드]

  2013년 6월 29일 토요일에는 전쟁기념관~서울광장까지 시민과 함께하는 호국 퍼레이드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호국·보훈·감사의 주제로 퍼레이드 및 체험행사가 진행되니 가족과 친구들의 손을 잡고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 보고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IIFF 2013 국제 온라인 영화제]

  '6·25전쟁 참전용사와 하나되는 글로벌 아리랑'을 주제로 IIFF에서 영화를 접수받고 있습니다. IIFF는 참전용사가 직접 겪은 6·25전쟁 경험담을 후손과 전후세대가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영상을 공모하는 국제 온라인 영화제에요. 관심있는 분들은 링크를 클릭하세요. ☞ http://iiff.kr/

 

 

 



  제가 소개해드린 행사 이 외에 사진전시회, 호국보훈세미나 등 정말 많은 행사들이 개최 될 예정인데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고 공헌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 행사해 참가해 보시면 어떨까요? ^^ 나라사랑큰나무 배지 달기도 잊지 마시구요!



<출저 및 참고>

1.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회

2. 네이버 백과사전

3. 국가보훈처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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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3.07.03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6•25 전쟁으로 우리는 분단이라는 슬프고 비극적인 현실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6•25 전쟁 61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를 살펴보며 분단의 비극과 아픔을 다시금 상기하고 기억해봐야 하겠습니다.



쉬리


남북 분단현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당시 타이타닉을 침몰시키며 한국 영화사상 최다 관객동원 기록을 세운 작품입니다. ‘쉬리’는 한반도의 맑은 물에만 사는 토종 담수어로, 극중에서는 한국에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의 작전명이다. 이들과 맞서 싸우는 한국 정보기관 요원인 유중원(한석규 분)과 이장길(송강호 분)의 활약을 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밖에 없는 마지막 장면은 남북 분단의 현실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느낄 수 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 영화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남북 병사의 총격사건의 진실을 추리극 형식으로 그린 영화로,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과 분단의 아픈 현실을 그렸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2004년 개봉했던 이 영화는, 피난도중 학도병에 징집된 동생을 구하기 위해 함께 입대한 형, 그리고 어떻게든 동생을 전역시키기 위해 온갖 전투에 참여하는 형의 모습에서 형제의 우애와 그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었던 영화 입니다. 평범한 한 나라의 구성원이자 가족이었던 형제, 전쟁 기간 동안에 벌어졌던 비극적인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전쟁 속에서 희생된 수많은 민중과 가족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포화속으로


이 영화는 71명 학도병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71명의 어린소년들이 모두가 떠난 포항을 지키게 되지만 인민군 766 유격대의 예기치 못한 포항 침공으로 인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게 되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재한감독은 “6․25 전쟁을 지금의 우리가 임진왜란처럼 그냥 역사의 한 자락으로 기억해서는 안된다”며 “우리는 현재 휴전국이다. 그 분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것이고, 그 일은 불과 60년 전에 일어난 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6.25전쟁 61주년을 맞아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를 비롯한 각종 매체들을 통해 가슴 아픈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상황들, 희생한 모든 이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를 다시 한번 보며 국가보훈과 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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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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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새벽

    2011.06.17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화속으로>는 못 봤는데 위에 세 개 영화는 모두 봤어요. 정말 펑펑 울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ㅠㅠ
    당시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분단의 아픔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습니다..ㅠ.ㅠ

  2. jay

    2011.06.17 16: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의 내용이 머릿속에 다시 그려지네요. 이렇게 다 드러난 아픔을 지니고 살았는데도, 그게 아프다고 생각 못하는 현실이 가끔 무섭기까지 합니다.

    • 대한민국 훈남훈녀 2011.06.20 14: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서 가끔씩 잊고 지냈던 우리의 분단 상황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이런 영화들을 다시 찾아 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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