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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봄 날씨를 즐기고 계시나요?

전국에 아름다운 벚꽃이 만개하여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듯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아름다운 벚꽃으로도 유명한 국채보상운동기념관과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소개하려 합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과 기념공원은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 242)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기념관과 공원이 대구 시내와 멀지 않으니, 대구에 거주하시거나, 대구에 방문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방문하여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알아보고, 아름다운 벚꽃도 구경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의 전경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때부터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차관공여를 제기했습니다. 1904년 제1차 한일협약 이후 이러한 행위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1907년에 이르러서는 이 금액이 1,300만원이나 되었습니다. 경제 주권이 없어진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다음과 같은 투고가 실립니다.

 

지금 우리들은 정신을 새로이 하고 충의를 떨칠 때이니, 국채 1300은 우리나라의 존망에 직결된 것입니다. 이것을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함은 필연적인 사실이나, 지금 국고에서는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으며 만일 나라가 못 갚는다면 그때는 이미 3천리 강토는 내 나라 내 민족의 소유가 못 될 것입니다. (중략) 2000만 명의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금지하고, 그 대금으로 한 사람에게 매달 0.2만큼 거둔다면 1300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 액수가 다 차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응당 자원해서 1, 10, 100, 1000을 특별 출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대한매일신보 1907.2.21. ‘국채 1300만원 보상 취지

 

서상돈, 김광제, 윤필오 선생 등에 의해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게 됩니다. “남자는 담배를 끊고, 여자는 비녀와 가락지를 내어 국채를 갚자!”라는 목소리가 전국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담배를 끊어 국채보상운동을 하자는 내용의 횡성신문 논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천, 부산, 원산, 평양의 상업회의소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활동이 퍼져나갔으며, 대구 남일동 7부인회를 비롯해 전국에 많은 모임이 창립되어 수많은 폐물 모으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국가의 존망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모두 힘을 합쳐 한 마음으로 위기를 타파하고자 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가르쳐주는 바가 많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모금하던 모습

 

하지만 일본은 갖은 방법을 다하여 방해, 탄압하려 들었습니다. 일제는 운동을 처음부터 추진해 갔던 중심 중요인물이었던 양기탁 선생을 횡령 혐의로 구속하였습니다. 무죄 판결로 끝나기는 하였지만 이런 논란은 국채보상운동의 움직임을 방해했습니다. 결국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하지만 국채보상운동은 국민의 힘으로 국채를 갚으려 했던 경제적 구국 운동이었으며, 우리가 IMF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금 모으기 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전시물

 

대구에서 비롯된 국채보상운동의 시민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건립되었습니다.

또한, 봄이면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에 봄꽃이 예쁘게 피어 오가는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한편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2017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정식 등재되었습니다. 13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국채보상운동이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주권을 회복하고자 가장 앞선 시기에 일어났던 운동이라는 점을 들어 등재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따스한 봄, 봄꽃이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국채보상운동 기념관에 방문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국채보상운동&ridx=0&tot=1303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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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국가보훈처 훈남훈녀 기자단 10기 김도헌입니다.  

제가 이번에 다녀온 곳은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574-116’에 위치한 ‘낙동강승전기념관’입니다. 낙동강승전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조국수호의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승전을 기념하고 당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참전용사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되살림과 동시에,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의 장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하나씩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낙동강승전기념관 전경


위 사진은 낙동강승전기념관의 전경입니다. 앞산공원 내부에 위치하여 맑은 공기와 함께 기념관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기념관은 오전10시부터 오후5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하며,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1층과 2층에 위치한 전시실에서 6.25전쟁의 발발 배경에서부터 개전 초기의 상황을 볼 수 있었는데요.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구축하고 치열한 혈투를 벌여 승리한 후 유엔군과 함께 반격의 발판으로 삼았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당시의 사진과 무기류, 설명 패널, 조형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전시실 입구 모습


1층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입니다. 이곳 입구를 통해 2층 전시실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 1층 전시실 내부


첫 번째로 관람한 내용은 ‘6.25전쟁 배경과 발발’에 관한 내용입니다.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 발발까지 한반도의 정세와 북한군의 남침 배경을 다양한 자료와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1층 전시실 내부


다음으로는 모형도를 통해 낙동강 방어선과 주요 격전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 전투 역사를 볼 수 있는 전투지관


이곳에서는 낙동강의 전투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낙동강 격전지 10곳의 전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8월, 9월 두 차례에 걸쳐 펼쳐졌던 화령장전투/ 안동전투/ 다부동전투/ 창녕·영산전투/ 마산서부반격전/ 기계·포항 쟁탈전/ 함안·마산 9월 공방전/ 영천전투/ 안강·포항전투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낙동강 격전지 재연물을 관람하였습니다. 풍전등화 같았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다부동, 포항 등지에서 혈투를 벌였던 격전지를 디오라마를 통해 재연하고 있습니다. 당시 포항 전투에 참가한 학도병의 편지를 보고 마음이 숙연해졌는데요. 1층 관람을 모두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보았습니다. 


▲ 2층 내부 전시실


2층 전시실에서는 유물을 관람하였습니다. 6.25전쟁당시 국군과 유엔군 및 북한군, 중공군이 사용하던 각종 총기류와 전투장비들이 실물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 기록들과 훈장 수여증서 같은 소중한 자료 외에 국군이 입었던 전투복과 군예복 등도 볼 수 있었습니다. 


▲ 2층 추모실


이후 저는 추모실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곳은 6.25전쟁에서 조국수호를 위해 산화한 호국전사자들의 넋을 기리는 곳입니다. 땅과 하늘, 그리고 바다에서 조국을 지켰던 영웅들을 사진으로 만나 볼 수 있으며, 수백 개의 군번줄로 표현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추모실에서 경건하고 바른 자세로 조국수호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이분들의 조국수호 정신을 잊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기리며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전관 내부


마지막으로 ‘비전관’으로 가 보았습니다. 6.25전쟁 이후 분단된 폐허의 땅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1953년 7월에 체결된 정전협정 이후 대한민국은 지금도 달리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켰던 모든 분들 덕분에 지금 대한민국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의 관람을 마치고 계단을 타고 내려오던 중 ‘좋은 전쟁이란 없고 나쁜 평화 또한 없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 하나로 6.25전쟁에서 용감히 싸워주셨던 분들 덕분에 지금의 평화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지만, 이 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이번 기사를 마치겠습니다.


* 참고자료

낙동강승전기념관 홈페이지 http://www.nakdongwar.or.kr/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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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당시,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일대 지역을 사수했던 전투가 있습니다. 바로 영천지구전투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낙동강 방어선의 붕괴를 막아낸, 9월 5일부터 13일까지 벌어진 9일 간의 치열했던 영천지구 전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열차를 타고 낙동강 전선으로 향하는 신병들 (출처: 국방일보)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은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북한군에 밀려 낙동강선까지 후퇴하였습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8월 초부터 마산-왜관-영덕에 이르는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여 방어태세에 임했는데요.

 

▲ 전선에서 전투 중인 국군의 모습 (출처: 군포시민신문)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약 한 달여간 영천지역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는 보현산지구 전투, 신녕 조림산지구 전투, 신녕 화산지구 전투 그리고 영천지구 전투가 있습니다. 영천 일대에서 일어난 전투들은 국군의 대승을 이뤄냈고, 낙동강 방어선의 붕괴를 막아 국군이 반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보현산지구 전투에서 국군은 무려 22일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견제했는데요. 이 전투는 영천지구 전투의 전초전으로 북한군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보다 국군의 공격 전환을 위한 준비단계였습니다.

 

▲ 영천전투 승리 직후 8사단 21연대 장교들의 모습 (출처: 국방일보)

 

신녕 조림산지구 전투, 신녕 화산지구 전투는 북한군의 공격 준비단계를 수포화시켰고, 국군의 사기를 충전하는데 일조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투들로 인해 사기가 충전된 국군은 그 힘을 영천지구 전투에서 발휘하여 영천 일대를 사수하고, 낙동강 전선을 지켜냄과 동시에 낙동강 일대까지 내려온 북한군으로부터 국군이 반격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 9일 간의 공방전, 영천지구 전투

 

▲ 제2군단장 유재흥 준장(왼쪽) (출처: august 의 軍史世界 블로그)

 

1950년 9월 5일 벌어진 영천지구 전투는 북한군 제15사단이 5개 연대와 전차를 앞세워 국군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천을 점령한 후 대구 또는 경주로 진격하겠다는 의도였는데요. 당시 제2군단장 유재흥 준장을 필두로 제8사단의 증원 부대들이 사수하고 있었던 영천 지역은 북한군의 기습 공격에 점령당하고 맙니다.

 

영천은 대구와 포항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였는데요. 영천 지역을 통해 북한군이 대구로 진출하게 된다면 다부동 일대의 국군과 미군이 위험에 처해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붕괴될 수 있고, 경주로 진출할 경우에는 부산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 영천지구 전투 모습 (출처: 비겐의 무기사진 전문 이글루입니다 블로그)


이에 국군은 7개 연대 병력과 곡사포, 대전차포 등의 중화기로 맞섰습니다. 포항 전선에 참여했던 10연대도 긴급히 원대에 복귀하여 작전에 참여했는데요. 제8사단장의 이성규 준장은 영천 북쪽에 21연대와 6사단의 16연대를 배치해 적의 보급로 및 퇴로를 차단시켰습니다. 또한 영천의 아화리와 유상리 일대를 방어하고 있던 북한군 1사단 16연대와 11연대를 공격했습니다. 2차례에 걸친 공방전 끝에 국군은 북한군 제15사단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 영천지구 전투의 의의

 

국군은 9일간의 공방전 끝에 영천을 탈환하는 동시에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습니다. 또한, 북한군 제15사단의 전차 및 화포 대부분을 파괴하고 노획하는 전과도 거두었는데요.

 

▲ 영천지구 전투 중 국군의 모습 (출처: 비겐의 무기사진 전문 이글루입니다 블로그)

 

이로 인해 북한군은 영천을 탈환하여 낙동강 전선을 무너뜨리고 부산까지 진격하기로 한 애초의 계획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9월 공세에 실패하게 됩니다. 국군은 낙동강 전선에서의 마지막 대전투였던  영천지구전투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 영천지구전투를 기억하며

 

▲ 영천지구 전적비 (출처 : 국가보훈처 온라인 기자단)

 

1980년 10월 7일, 영천지구전투에서의 전몰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영천지구 전적비가 건립되었습니다. 비문에 적혀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국의 운명을 건 갈림길에 적구의 무리들이 영천벌을 넘나드니 인과 철이 용용하는 전쟁터로 너, 나 뛰쳐나가 둑을 막아 내 고장을 지켰다. 저~ 기룡산은 이~ 금호강은 너의 용자를 길이 간직하리.”

 

9월, 치열했던 영천지구 전투와 전장에서 북한군과 맞서 싸운 호국영령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향토문화전자대전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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