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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김신 공군 중장은 6.25전쟁 당시 공군의 최초 전투기였던 F-51을 인수하는 데 기여하고, 북한군 후방보급로의 요충지였던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던 분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김신 공군 중장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 김신 공군 중장


김신 중령(당시 계급)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그 다음날인 6월 26일에 이근석 대령 등 10명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군으로부터 F-51 무스탕(Mustang) 전투기를 인수하기 위해서였죠.


김신 중령은 인수에 참여한 10명 중 유일하게 미 공군에서 F-51로 훈련받은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비행훈련 진행과 전투기 인수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F-51 인수는 대한민국 공군의 본격적인 전투 임무 수행의 결정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한강에서 열린 대한민국 공군 에어쇼에서의 F-51 전투기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단 한 번의 비행훈련 끝에 F-51 전투기를 인수해 7월 2일 귀국한 김신 중령 등은 다음날인 7월 3일부터 바로 출격하여 묵호, 삼척 지구와 영등포, 노량진 지구 등에서 적 부대와 탄약저장소를 공격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대한민국 공군 단독출격작전 등 전쟁기간 중 총 19회 출격하여 조국의 하늘을 사수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 전쟁 중 피난민 (출처 : 국가기록원)


김신 공군 중장이 제10전투비행 전대장으로 재임할 당시,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맡게 됩니다.


승호리 철교는 평남 중앙선이 지나는 대동강 지류인 남강에 설치된 철교로, 군수물자를 중·동부 전선으로 수송하는 적 후방보급로의 요충지였습니다. 이 철교의 폭파를 위해 이전에 미 공군이 수차례 출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전적이 있었죠.


▲ 근접항공작전지원을 펼치는 우리 공군의 모습을 재현한 사진

(출처 : 대한민국 공군 블로그 '공감')


1, 2차 출격에도 임무에 실패하자, 김신 대령(당시 계급)은 휘하 지휘관 참모와 전술적 문제를 논의하여 북한군의 극심한 대공포화의 위협을 무릅쓰고 고도를 강하하여 폭탄을 투하하는 새로운 공격전술을 창안했습니다.

그리고 1952년 1월 15일, 마침내 김신 대령은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정부는 김신 공군 중장의 전공을 기려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 폭격을 맞아 불타는 교각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포화 속에서 평화를 향해 날아올랐던 김신 공군 중장. 2018년 1월의 전쟁영웅인 그의 이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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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준식

    2018.01.03 1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으로, (해방 이전에는) 역시 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들었고, (6·25전쟁 때는) 직접 공군 군인의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하신 진정한 나라사랑의 정신을 실천하신 김신 공군 중장의 업적을 배우는 1월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군인으로서의 김신 중장의 이야기를 다뤄야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이나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이라는 기록도 조금은 포함시켜 주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됩니다.

    동시에, 공군 역사에서는 승호리 철교 폭파가 6·25전쟁 당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 듯, 이 사건과 관련하여 선정자 분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요.('14 유치곤 준장, '17 이기협 대령 등 모두 1월에 선정이 되셨네요.) 한편으로는 6·25전쟁영웅 선정자 중 해마다 공군은 1명, 많아도 2명 정도인데, 올해도 공군 인물을 너무 일찍 만나지는 않았나 하고 그냥 푸념 삼아 말씀을 드려 봅니다.

 

 

 

 

 

 

 

 

오랜 시간을 건너 돌아온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

-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이여송, 임성실 지사 유해봉환 및 안장식 -

 

지난 11월 15일,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돌아가신 이여송, 임성실 지사의 유해가 광복 이후 72년 만에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여송 순국선열은 1930년대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조선혁명군 제1사 부관이었습니다. 선열께서는 무기 구입 책임을 맡아 독립투쟁을 펼쳤고, 1936년 중국 집안현에서 항일전투 도중 전사하였습니다.

 

임성실 애국지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뉴바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하고, 그 단체의 다뉴바 지부 단장으로 활약하였습니다. 또한, 지사께서는 1919년부터 1944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임성실 지사는 조국 광복의 소식을 들었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1947년 65세를 일기로 미국에서 타계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선열들이 간절히 염원했던 독립된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국과 미국에 안장되어 있던 이여송 순국선열과 임성실 애국지사의 유해는 11월 15일(수) 인천국제공항에서 봉영되어 16일(목),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늦었지만, 두 분을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이 정성으로 모시겠습니다.

부디 고국의 품에서 편안히 쉬시길 기원합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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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유진

    2017.11.26 14: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숭고한 희생 늘 기억하겠습니당!!!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6·25전쟁에서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프랑스 참전용사 고(故) 쟝 르우(Jean Le Houx)씨의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을 오는 11월 1일(수)과 2일(목)에 거행합니다.


참전용사 고(故) 쟝 르우(Jean Le Houx)씨는 19살이던 1951년 12월, 프랑스 참전대대 병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1952년 T-Bone 전투에서 2차례 부상을 입었으나 같은 해 10월 화살머리 전투에도 참전하였습니다. 고인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7월 31일에 전역하였습니다.


▲ 고(故) 쟝 르우 씨의 6.25전쟁 당시(좌)와 최근 모습(우)


이 분과 우리나라의 인연은 전쟁 이후에도 이어졌는데요. 고인은 2007년 국가보훈처 재방한 초청사업으로 방한하였습니다. 54년여 만에 한국에 방문한 고(故) 쟝 르우 씨는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처럼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스무 살의 나와 전우들이 피 흘리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전적지에

나의 유해를 뿌려주시오.”


이후 고인은 “스무 살의 자신과 동료 전우들이 피 흘리며 치열하게 전투했던 전적지에 유해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2016년 12월 30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프랑스참전협회 총무가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으로 유해 안장 요청을 하였고, 한국대사관에서 국가보훈처로 연락하여 국가보훈처와 주한프랑스대사관은 유해봉환의 전반을 논의하였습니다. 안장 장소는 주한프랑스대사관과 국방부가 합의하여 최종적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고(故) 쟝 르우 씨의 유해는 오는 11월 1일(수) 오전 8시경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국립서울현충원 봉안당에 임시 안치된 후, 2일(목) 오전 11시 30분에는 전우들과 치열하게 전투했던 화살머리 전투지역 인근에 있는 5사단 내 프랑스 참전비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 지난 9월 25일(월) 거행되었던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의 유해봉환식


1일(수) 유해 봉환식은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국가보훈처장 주관으로 거행될 예정인데요. 봉환식에는 주한 프랑스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관계자와, 고인의 유족을 대표하여 프랑스 참전협회장이면서 현 생 망데시장으로 있는 패트릭 보두앵씨를 비롯한 동료 참전용사(가족) 등 11명의 프랑스 방한단 등이 참석하며, 국방부 의장대가 함께하여 품격있는 의식으로 진행됩니다.


11월 1일(수) 입국하여 5일(일)에 출국하는 프랑스 참전용사 등 방한단의 4박 5일 간의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2일(목) 5사단내 프랑스 참전비에서 거행되는 안장식에는 주한 프랑스대사, 프랑스 방한단, 국가보훈처와 5사단관계자를 비롯한 대사관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날 안장식에서는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결코 잊지 않고 예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여 대통령 명의의 근조화환도 헌화될 계획입니다.


▲ 지난 9월 27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거행되었던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의 안장식


6.25전쟁 발발 당시 프랑스군의 참전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외인부대 장군이었고 중장으로 예편했던 몽끌라르 장군은 프랑스 정부에서 대대급 규모의 6.25전쟁 파병을 결정하자, 중령으로 계급을 낮춰 현역에 복귀하여 참전하였고 대대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1950년 11월, 순수 지원병으로 구성된 프랑스 군대가 부산항에 도착한 이후로 그들은 수원에 주둔하는 미국 제2사단에 배속되어 작전을 수행하였는데요. 이들은 쌍터널 전투, 지평리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등에 참전하여 국군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6.25전쟁 정전협정 이후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유엔참전용사들은 전쟁 당시 폐허에서 경이롭게 발전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 6.25전쟁 참전에 대한 자긍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인들이 참전했던 어느 국가에서도 대한민국처럼 유엔참전용사를 초청해 주는 나라는 없다며 오히려 우리 정부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십니다.


앞으로도 국가보훈처는 유엔 참전용사가 한국으로의 사후 안장을 희망할 경우, 정부 차원의 의전과 예우를 지원할 것이며 참전국과의 혈맹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고 세대를 이어 참전용사 후손들과의 유대관계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유엔 참전용사 초청사업, 참전용사 유해 봉환식 등 유엔 21개 참전국과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보훈사업을 더욱 발전시켜 60여 년 전,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유엔군의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대한민국 이미지와 품격 제고에 지속적으로 기여해 나갈 예정입니다.


▲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


이번에 우리나라에 안장되는 고(故) 쟝 르우 씨가 6.25전쟁에 참전했던 나이는 불과 19세였습니다. 전쟁 당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동료 전우들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우리는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고인께서 목숨 걸고 지켜냈던 바로 이 대한민국에서, 편안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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