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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홍구공원에서 수통 폭탄으로 일본 주요 인사들을 처단하고 체포돼 십자가 형틀에 매여 2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할 때까지 오직 조국의 독립 만을 염원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진정한 나라 사랑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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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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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락과 물통은 무엇일까요?



<출처-임시정부 자료집 >


바로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 공원에서 독립 투쟁을 벌였던 도시락과 물통 폭탄입니다.

평범한 도시락과 물통처럼 생겼지만 이 폭탄으로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도시락 폭탄이냐, 아니다 물통을 던졌다,”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세계의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 때문에, 그 당시 보도된 신문들은 어떻게 보도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세계에 충격 준 홍커우 공원의 거사


국제적 상황 ? 일본, 영국 양국의 정전협정 체결을 위해 제네바에서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대표가 회동하고 있던 때였으므로 이 사건이 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제적인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 ?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30분

어디서 ? 상하이 홍커우 공원

무슨행사 ? 일본 천황의 생일 천장절에 중국군과의 전쟁승리를 축하하는 기념식 행사

누가 ? 25세 청년 윤봉길 의사

피해상황 ?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는 즉사,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는 이 후에 사망,

              해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공사 시케미쓰, 총영사무라이 중상

결과 ?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지휘자들에게

         폭탄을 던져 치명상을 입힌 후 연행되었으며 1932년 12월 19일 25세의 나이로 순국 



세계의 큰 충격을 준 사건, 

그 당시 보도된 신문들은 어떻게 보도되었을까요?



1)미국,영국중심


<미국 ‘뉴욕타임스’  4월 29일자 1면>

기사내용

“After the blast the huge crowd closed in on the man accused of hurling the bomb. Japanese military officers attending the review sought to establish order. They rescued the man accused but it was not known immediately whether he was dead or alive.”

기사내용해석

윤봉길의사가 폭탄을 던진 후에 달아나려는 순간 잡아서 내동댕이치고 팔을 비틀어 엎어눌러서 제압한 다음에 헌병대에 인도했다. 일본군 장교들이 질서를 잡으면서 조사를 벌이기 위해 범인을 구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범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스’ 홍커우 공원사건 후속기사>

기사내용

“The crowd mobbed and attempted to lynch the Korean, who was rescued by military police. He was bruised and bleeding, but grinning defiantly while the wounded officials received first-aid before being taken to a hospital”


 <영국 데일리미러 1932년 4월 30일자 1면 기사>

 

폭탄 투척 후에 가해자(윤봉길)는 즉시 군중에게 붙잡혀서, 연행되는 장면과 부상당한 총영사 무라이가 병원으로 가기 위해 업혀있는 장면을 1면에 크게 실었습니다.

한국은 일본에 여러 세기 동안 반일감정이 있었고, 일본이 경제적 행정적으로 한국을 개선했다지만 한국인들은 일본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등으로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짚어보는 기사였습니다.


<영국 더 타임스 4월 30일자 12면 기사 >

기사내용

폭탄 투척으로 천장절을 망쳤다는 리드로 시작했다. 주중공사 시게미쓰,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중장),제9사단장우에다(중장)등이 연설하기 위해 단상에 도열한 가운데 일본 국가가 연주되는 도중이었다. 외국인들 옆에 있던 젊은 청년이 갑자기 연단에 원통형 폭탄을 휙 던졌다. 곧 둔탁한 소리가 들렸지만 별로 주의를 끌 정도가 아니었기에 악대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연단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도열했던 일본의 육해군 고위 장성이 피를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 군인들은 한 젊은 청년을 붙잡아 무자비하게 두드려 팼다. 그 후에 같은 모양의 또 다른 폭탄이 연단 근처에서 폭발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1만 명의 군대가 식이 시작되기 전에 행진을 마친 후 절반 가까이 인근에 주둔 중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즉각적으로 공원을 포위했고, 중국인 노동자들과 한국인, 러시아인과 미국인 각 1명식을 체포했다가 미국인을 비롯한 몇 명은 곧 풀어 주었다.

당시 영국은 중, 일 두 나라의 정전을 중재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하이 주재 특파원이 보낸 기사를 이튿날 신문(상하이와 영국은 8시간의 시차)에 보도한 것입니다, 일본측이 입은 인명 피해보다는 정전협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영국의 주요 신문이 한국인들의 반일 저항운동의 실상을 알린 효과가 있었습니다.


<출처- 외국 신문의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보도/ 한국언론진흥재단/정진석>



2)중국중심


윤봉길의사의 의거는 중국신문에 대대적으로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중국신문

상해에서 발행된 ,‘時報,’ 1932년 4월 30일

<윤봉길의사가 던진 폭탄의 종류와 위력보도>

기사내용

폭발물은 보통의 수류탄이 아니고 알루미늄제 군용보온병으로 위장한 특수폭탄인 것으로 밝혀졌다. 보온병 안에는 물대신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화약이 채워져 엄청난 위력을 보였다.……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특수폭탄이 폭발한 관계로 나무로 만든 사령대는 크게 파손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한 모습이었다. 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컸던지 사령대 왼쪽 앞에는 직경이 1미터 가까운 구덩이가 패였다. 화약을 담은 알루미늄 통은 폭발과 함께 수없이 많은  파편이 되어 엄청난 살상력을 보였다. 두께 2촌, 넓이 9촌 정도인 사령대의 바닥판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중국신문

申報 1932년 4월 30일

기사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폭행의 정도와 상태였다.

<윤봉길의사가 체포되는 과정에 대한 보도>

당시 사령대 아래에는 일본헌병들이 경계를 하고 있었다. 사령대 뒤에서 한 소년이 성냥을 그어 불빛이 번쩍이더니 한 가닥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곧장 사령대를 향해 날아갔다. 곧이어 폭발소리가 나고서야 그것이  폭탄임을 알았다. 일본헌병은 그 즉시 등 뒤에서 그 소년의 두 팔과 허리를 끌어안았다. 주변의 일본인들이 함께 협조하여 그를 붙잡았다. 일본인들은 그를 마구 구타했다. 그의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온통 피투성이 범벅이 되었다. 헌병대에서 그를 헌병사령부로 압송하여 심문했다. 


중국신문

大晩報 1932년 4월 30일

大晩報의 기자가 현장에 있던 서양인을 취재하여 보도

윤봉길의사가 체포되는 과정에 대한 보도

폭발사건이 발생하자 우리는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져 들었다. 처음에는 강력한 폭발음이 들리더니 잠깐 동안 온 세상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뒤이어 폭발로 인한 화염이 마치 번갯처럼 번쩍이고 귓속에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천 명이 일시에 모두 정신이 나간 듯 보였다. 장내는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었다. 사령대 부근에 있던 관중들이 난폭하게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제압하여 땅바닥에 내동이치는 모습이 보였다. 군중들은 그 사람의 옷을 찢고 발로 차며 마침내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렸다. 일본헌병대가 군중들 사이에서 그를 끌어냈을 때는 얼굴부터 허리까지 선혈이 낭자한 모습이었다. 옷소매 사이로도 연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록 중상을 입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때때로 냉소가 흘러나왔다.


중국신문

‘時事新報,’1932년 5월 3일

기사내용

홍구공원 폭탄투척사건의 범인 윤봉길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헌병대사령부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았다. 심문에 태연하게 응한 윤봉길은 자신의 범행임을 시인한 외에는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일본헌병은 윤봉길의 입을 열게 하려고 온갖 가혹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윤봉길은 만신창의가 되었다. 윤봉깅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밤낮으로 이어지는 고문에 윤봉길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믿고 있다.


중국신문

大阪朝日新聞 1932년 4월 30일

수통과 도시락 통에 폭탄을 장치

폭탄의 하나는 수통으로 장치했고, 다른 것은 알루미늄의 도시락 통에 설치한 교묘한 것이어서 축하의 여행객의 휴대물로서 신체검사의 눈을 피한 것으로 전문가가의 조사에 아마추어가 만든 것이 아니고 상당한 전문가가 만든 것으로 감정하였다. 성질은 그 다시 강렬하지는 않으나 교묘한 장치로 전무가도 혀를 내두른다.


일제당국이 보도 통제를 해제한 것은 일주일이 지난 후인 5월 6일이었습니다. 이날 일본 영사관이 윤봉길의사의 의거에 대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 5가지 사실입니다.


일본영사관의 공식적 발표

1932년 5월 6일

1) 폭탄투척의 사건의 범인은 금년 26세의 윤봉길이다. 윤의 원적지는 조선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139번지로 현재 주소지는 상해 프랑스조계30호이다.

2) 범인은 4월 29일 다수의 인본 관민이 모인 가운데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경축 행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인 당일 오전 11시 45분경 돌연 사령대 뒤편에서 뛰어나와 사령대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령대 위에 있던 군정요인들이 중경상을 입었고, 거류민당장은 사망하였다.

3) 범인 윤봉길은 경비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군경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어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현재 여전히 심문을 받고 있는 윤봉길은 조마간 군법회의에 회부될 것이다.

4) 범행에 사용된 폭탄은 두 개다. 범인은 보온병 폭탄 1개, 도시락 모양의 폭탄 1개를 휴대하고 공원에서 입장하였다. 이 가운데 보온병 모양의 폭탄 1개만 투척되었다. 도시락 모양의 폭탄은 미처 사용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체포되었다.

5) 범인의 자백에 근거하여 프랑스조계에 거주하는 다수의 한인들이 이번 사건에 조직적으로 연루된 혐의를 포착하였다. 이에 프랑스조계의 경찰 당국에 요청하여 29일 30일 이틀에 걸쳐 대대적인 검거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안창호를 비롯한 12명의 한인이 체포되어 우리에게 인도되었다.


일본 당국이 철저하게 보도를 통제하고 있었던 관계로 윤봉길의사가 어떠한 심문을 받았는지에 대한 보도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각 신문들이 보도한 내용은 대체로 체포 당시 윤봉길의 태도가 ‘너무나도 태연’, ‘태연자약’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범인임을 숨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국내신문


<동아일보 5월 4일자 2면 >

'폭탄범 윤봉길 체포 당시 광경‘

도쿄 아사히신문 특파원 사토우가 촬영한 윤봉길 의사 

윤봉길의사 의거 후 연행되는 장면


매일신보, 경성일보

도쿄니치니치 신문 특파원이 촬영한 연행 장면

윤봉길의사 의거 후 연행되는 장면, 윤봉길 의사 오른쪽 얼굴이 보이는 장면과 부상당한 총영사 무라이가 병원으로 가기 위해 업혀있는 장면을 실었습니다.


 조선일보 1932년 5월 27일 

기사내용

 


<출처-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의거에 대한 중국신문의 보도/한국독립운동사연구/한시준>


일제는 일제강점기 동안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탄압하였습니다. 당시 윤봉길 의거는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신문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윤봉길 의사의 홍구 공원 의거는 전 세계에 보도되었죠.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일제 침략의 원흉들을 처단하기 위해 그가 던진 것은 폭탄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독립을 향한 열망이었습니다. 12월 19일은 윤봉길 의사가 순국일, 그 열망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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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li

    2016.08.31 09: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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