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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올해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이라는 것, 잘 알고 계시지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일 년 앞둔 해인 올해, 우리의 뿌리를 찾고 알아본다면 100주년을 더 뜻깊게 맞이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무장투쟁에서의 우리의 뿌리를 찾아보고자 육군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맞아 <독립군·광복군에서 대한민국 육군으로!>라는 주제의 특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 특별전에서는 독립군과 광복군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 독립운동가의 흉상들


육군박물관의 정문에는 광복을 이끈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이 있습니다.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인데요, 무장독립운동사에 방점을 찍은 분들을 한 번에 마주할 수 있는 육군박물관의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전시회를 관람하기 전부터 이렇게 선열들을 마주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특별 전시회를 살펴볼까요? 특별 전시회는 의병·독립군실, 광복군실, 안중근 장군실의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시 유물은 모두 70여 점으로 국내 1점밖에 없는 한국광복군의 군복과 지청천 장군의 친필 일기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병, 망국의 밤을 깨치고 일어나다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의미의 불원복 태극기


19세기 말, 날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던 일본의 침략 야욕에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들이 무장하고 일어나 싸웠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항일의병 활동은 고조되었습니다.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된 뒤에는 반발한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고, 이로 인해 의병 조직은 더욱 체계화되었습니다.


의병사에 길이 남을 전투로는 서울 진공 작전이 있습니다. 비록 신식 무기를 가진 일본군 앞에서 스러져 갔지만 의병들의 투신은 당대 많은 사람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이후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수많은 의병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의병들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계속해서 싸우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또 의병들은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으로 변모하기도 했습니다. 


독립군, 광복의 새벽을 열다

   

▲ 사열중인 독립군의 모습 (출처: 독립기념관)


▲ 독립군의 기념사진 (출처: 독립기념관)


사열 중인 독립군의 보무가 참으로 당당해 보이지 않으시나요? 의병에 이어서는 독립군이 일제의 통치라는 짙은 안개를 뚫고 일어났습니다.

독립군은 일제에 항거하여 결집한 여러 무장단체, 군정부 조직을 통틀어 부르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독립군 부대로는 대한 독립단, 대한 독립군, 서로 군정서, 북로 군정서 등이 있습니다.

                         

▲ 독립군이 사용했던 소총과 권총


독립군이 사용했던 소총과 권총을 직접 사진을 통해 살펴보면서, 저는 이 독립군이 활약한 여러 전투들을 떠올렸습니다. 대표적인 전투로는 여러분도 익히 들어보셨을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이 있습니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노래 한 곡조로 독립군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싶습니다. 훈터 독자 여러분. 노래 한 구절, 한 구절에서 망국의 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굳게 다잡았던 독립군의 강건함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조국의 부르심에 삼천리 이천만의 동포를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독립군들을 기억해주세요.


광복군이 밝힌 광복의 아침


▲ 광복군 군복과 광복군 직책 임명장


이 옷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보기만 해도 선열의 얼이 느껴지는 이 옷은 국내에 1벌 남은 광복군 군복 진품입니다. 이 광복군 군복은 저에게 시대를 뛰어넘어 나라사랑의 정신을 알려주었습니다.


▲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할 군대로, 1940년 창설된 정식 국군입니다. 대한제국의 국군과 독립군을 계승해 창설된 것에서 역시 우리의 뿌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광복군은 본래 중국의 지원을 받고자 했지만, 중국정부가 예속의 손길을 뻗치자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창설되었습니다.


▲ 광복군이 사용했던 개런드소총, 아리사카99소총, M3기관단총


광복군이 적극적으로 모색했던 작전 중에서 저는 국내진입작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국내로 진공하고자 하는 국내진입작전은 미국과의 연합관계 속에서 준비되었습니다. 비록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실제로 우리 민족의 땅에 발을 디뎠다는 점에서 저는 국내 정진대의 그 시도가 참 가슴에 남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지청천 장군의 투신


▲ 안중근 의사에 대한 설명


▲ 하얼빈 의거


다음으로는 제가 육군박물관을 관람하며 특히 인상 깊었던 인물인 안중근 의사, 지청천 장군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안중근 장군실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전시물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 전시물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며 안중근 의사의 투신에 대해 알아보고 그의 의거의 의미를 생각해보았습니다.


▲ 안중근 의사 의거 당일의 하얼빈 역 (출처: 독립기념관)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는 동양 침략에 관한 정책을 협상하기 위해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를 만나고자 길을 떠납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에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계획하고 10월 22일 하얼빈의 땅을 밟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26일. 역사적인 의거의 날이 밝았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계획대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발사했습니다. 즉시 호위병들에게 체포된 그는 "코레아 우라! (대한 만세)"라 외쳤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총탄에 맞아 숨졌고 안중근 의사는 여순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10년 3월 26일에 순국하셨습니다.


▲ 안중근 의사의 것과 동종의 권총들


왼쪽의 권총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 당시 사용한 것과 동종인 브라우닝 M1900 권총이고, 오른쪽은 의거 당시 예비로 준비한 것과 동종의 권총입니다.


▲ 안중근 의사 소지 권총 (출처:독립기념관)


비록 안중근 의사의 의거 당시 사용한 권총은 전하지 않으나, 동종의 권총을 보시니 하얼빈 의거가 한층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으시나요? 독립을 향한 민족의 염원을 담아 이것과 같은 권총을 꽉 쥐고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렸을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 지청천 장군 (출처: 독립기념관)


지청천 장군은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으로서 독립군을 양성하는데 온 힘을 다하신 분입니다. 또한 지청천 장군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으로서 눈부신 활약을 이어나갔습니다. 광복 후에는 청년단체의 연합체인 대동청년당을 결성하여 활동하셨습니다.


▲ 지청천 장군 일기


이 유물은 지청천 장군의 일기입니다. 독립운동의 기억이 고스란히 적혀있을 이 일기를 바라보면서, 저는 이 특별전 자체가 우리나라 무장투쟁기를 적어낸 한편의 일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장투쟁의 일기는 고난의 연속이었고, 피와 땀으로 얼룩져있었습니다. 저는 관람을 마치고 육군박물관에서 걸어 나오면서 앞으로도 피와 땀에 젖은 그 일기를 꼼꼼히 읽어나가야겠다고, 다시 말해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기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육군의 뿌리이며 광복의 아침을 연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약상과 그들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 특별전시회는 12월 30일(일)까지 이어집니다. 전시를 관람하여 더욱 많은 국민들이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독립군과 광복군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참고자료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육군박물관 전시자료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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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던 한국독립군. 독립군의 전투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전투가 바로 ‘청산리 대첩’(1920년)이 아닐까 하는데요. 오늘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범석 장군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 이범석 장군 (출처: 독립기념관)

 

1900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범석 열다섯 살의 나이에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장군은 중국의 운남강무당*에 입학하여 기병과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3.1운동 소식이 중국에 전해지자 장교직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 운남강무당(雲南講武堂) : 1916년부터 한인 청년들이 입학하여 군사간부로 양성되었던 중국의 군사학교


이범석 장군은 신흥무관학교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독립군 장교를 양성하였고, 1920년에는 북로군정서에서 사관연성소를 열어 600여명의 생도들을 독립군으로 키워냈습니다. 이렇게 양성된 우수한 역량의 한국독립군들이 바로 청산리 대첩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1920년 10월 21일 청산리.
보병 1개 대대를 인솔하여 일본 토벌군 주력 부대를 공격한 이범석 장군은 청산리 백운평의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뛰어난 전략을 구사하였습니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게 한 대전과를 올린 이범석 장군은 이후, 김좌진 장군과 함께 북로군정서군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치른 10여 차례의 격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 청산리 대첩 기록화 (출처: 독립기념관)

 

1940년에는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창설에 힘을 보탰고, 초대 참모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광복군의 핵심 부대라 할 수 있는 제2지대장을 맡아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하여 일명 ‘독수리 작전’이라 불리는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이어갔습니다.

 

▲ 한국광복군 제2지대 대원들 (출처: 독립기념관)

 


▲ 이범석 장군과 제2지대 대원 및 OSS교관 (출처: 독립기념관)

 

광복 이후 1946년 6월 3일, 이범석 장군은 500여명의 광복군 동지들과 함께 꿈에 그리던,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에는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으로서 국군 창설과 육성에 크게 공헌하는 등 국가의 기틀 마련에 앞장섰습니다.

 

▲ 이범석 장군 (출처: 독립기념관)

 

5월 11일,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철기 이범석 장군의 제46주기 추모제가 열립니다.
11일(금)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리는 추모제에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처장 및 송영무 국방부 장관, 박유철 광복회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와 유족, 시민 등 200여명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투철한 군인 정신과 변치 않는 나라 사랑 마음으로 한국 독립군의 전설이 된 철기 이범석 장군을 함께 기억해 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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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여!

 

우리나라가 온전한 자유를 누리며

굳건한 독립을 되찾는 데는

하나는 내 동지의 단결이요

둘은 우리 동포들의 단결이며

셋은 모든 대한민족이 대동단결함에 있으니

오로지 뭉치면 살고 길이 열릴 것이요,

흩어지면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석오 이동녕

 

대한 독립 만세!로 한반도를 가득 메웠던 3.1운동 이후 국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29인의 독립운동가는 중국 상해에서 19194,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

 

2020, 내년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어느덧 100주년이 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시초에는, 바로 석오 이동녕 선생이 계셨습니다. 저는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3차례, 임시정부의 주석을 4차례 역임하신 이동녕 선생의 추모식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 서거 78주기 추모식


지난 312() 오전 11,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효창공원에서 <석오 이동녕 선생 서거 78주기 추모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에 대한 묵념, 그리고 이동녕 선생에 대한 약사보고가 차례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는 내빈들


이동녕 선생의 업적을 설명하는 이종래 회장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종래 회장은 기념사에서 오늘은 일제강점기 당시 어려운 시기에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의 서거를 추모하는 날이다라고 하며, “자신의 일평생을 자주 독립을 위해 헌신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동녕 선생의 희생을 기억하고 또한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말씀대로 이동녕 선생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행적을 우리 앞에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이동녕 선생의 삶과 업적은 늘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현재진행의 시대성을 가지고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동녕 선생 유족대표 이석희 회장


이동녕 선생 유족대표 이석희 회장은 이동녕 선생은 여러 구국운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수차례나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위치에 계신 분이셨다.”며 선생의 애국에 대한 행적과 그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이동녕 선생은 특히 임시정부의 대표자로 활동하시며 독립을 위해 힘쓰셨습니다.

훈터 독자 여러분은 우리나라의 임시정부가 얼마나 큰 고난을 겪어왔는지 익히 아실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굳은 다짐으로 민족을 이끌어나가신 이동녕 선생의 삶은 늘 거친 파도를 헤쳐 가는 항해와 같았을 것입니다.


이동녕 선생의 증손자 이용석님의 모습


그리고 추모식 순서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내빈들의 호응에 힘입어 이동녕 선생의 증손자이신 이용석 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용석님은 뜻 깊은 자리임에도 후손들이 꾸준하게 참석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이어 돌아오는 80주기에는 기념행사를 크게 열어 이동녕 선생의 뜻을 기리는데 보탬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분향을 하고 있는 내빈들


다음 순서로 분향이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내빈들은 오찬을 위해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추모식이 마무리된 이후, 저는 이동녕 선생의 증손자 이용석님께 간략한 소감을 여쭤봤습니다. 이용석님은 매년 이렇게 이동녕 독립 운동가를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국가보훈처에게 감사하다. 현재 추진 중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성공적으로 건립되어 그곳에서 이동녕 선생을 추모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동녕 선생은 1869년 충남 천안에서 출생하여 1896, 독립협회에 가담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구국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서전서숙을 설립하여 민족 교육에 헌신하고, 신흥강습소에서는 독립군 양성에 힘썼습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고,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됩니다.

1930년 김구 선생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기도 했고,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광복진선을 결집하는 등 임시 정부 수립 이후에도 조국광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이동녕 선생은 1940년 중국의 쓰촨성에서 별세하셨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천안에 위치한 이동녕 선생 기념관 앞에는 이동녕 선생이 자주 인용하시던 산류천석(山溜穿石)’이 적힌 휘호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산류천석은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하면 큰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동녕 선생의 숭고한 정신이 널리 알려져야 할 것입니다.

 


* 참고사이트

독립기념관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http://sajeok.i815.or.kr/i815/view_edu?idx=101&qs1=&qs2=&qs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이동녕&ridx=0&tot=13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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