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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12월도 중순에 이르렀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 잘 하고 계신가요? 

지난 12월 6일, 2018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정부 부처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가보훈처의 2018년 예산은 올해보다 5,530억원이 증가한 5조 4,863억원으로, 금년 대비 11.2%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정부 전체 예산의 증가율(7.1%)보다 높아,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지요. 



2018년 국가보훈처의 예산은 3가지 부분에 집중적으로 반영할 계획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내년도 예산이 어떤 부분에 중점적으로 사용될지 알려드릴게요!  


#1. 보상금 및 수당 대폭 인상을 통한 국가유공자 예우 강화


먼저,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 예우를 강화하고자 보상금 및 수당을 대폭 인상할 예정입니다.

생존 애국지사 특별예우금을 대폭 인상하고,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손)자녀들에게 생활지원금을 지급합니다. 지원 대상은 기준 중위소득 70%이하의, 보상금을 받지 않는 (손)자녀입니다.


이와 더불어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보상금은 5.0% 인상하고, 이와 연계한 6.25자녀수당, 고엽제 수당의 단가도 각각 5.0% 인상합니다. 5% 인상률은 최근 8년 기간 중 최고 인상률입니다.


또한, 참전유공자에 대해서도 현재 22만원인 참전명예수당을 내년부터 30만원으로 인상합니다. 또한, 국가가 60%를 지원하는 병원 진료비도 내년부터는 90%를 감면합니다.



▲ 지난 8월 독립유공자 윤경빈 씨의 가정을 위문 방문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 최근 10년간 참전명예수당 인상 내역


4.19혁명 공로자에 대한 보상금도 현재 17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됩니다.


#2.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미래지향적 보훈 선양사업 추진


두 번째로, 국가보훈처는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미래지향적 보훈 선양사업을 추진합니다.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사전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내년부터 국민이 참여하는 3.1만세운동 재연행사 등 7개 신규 사업을 추진합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은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하여, 총 사업비 364억원으로 건립할 계획입니다. 


또한,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유업을 계승·발전시키고, 독립운동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인식하기 위한 선양사업도 처음으로 추진합니다.



▲ 지난 8월에 진행되었던 항일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 제막식


현재 독립유공자 52분이 잠들어 있는 대구신암선열공원(대구 동구 신암동 소재)은 2018년 5월부터 국립묘지로 승격됩니다. 이로서 국가에서는 10곳의 국립묘지를 관리․운영하게 됩니다.


▲ 지난 11월 15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거행된 독립유공자 이여송·임성실 지사 유해봉환식


또한, 독립기념관내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를 독립운동사 연구의 중심 센터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국내외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독립운동가 한분이라도 더 찾아내 독립유공자 서훈을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또한, 독립기념관만의 자연 인프라를 활용하여 ‘독립운동 테마캠핑장’을 조성해 전시 및 교육  사업을 연계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독립운동 테마공간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 독립기념관


#3. 현장과 사람 중심의 ‘따뜻한 보훈’정책 추진


마지막으로, 생활에 불편함을 겪거나 소외되는 분이 없도록 현장과 사람 중심의 ‘따뜻한 보훈’정책을 추진합니다.

국가보훈처는 그동안 기초수급자로서 생활조정수당을 지급 받지 못하고 있는 보훈가족 2,924명을 찾아 생활조정수당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또한, 상이 국가유공자 등을 위한 맞춤형 재활서비스를 위해 광주와 부산 보훈병원에 전문재활센터를 건립하여, 현재 서울병원에서만 지원하고 있는 수치료ㆍ로봇재활ㆍ심리재활 등 첨단화된 재활치료를 제공합니다. 또한, 인천보훈병원은 2018년 개원을 목표로 건립할 예정입니다. 



▲ 지난 9월, 추석 명절 계기 수원 보훈요양원에 위문 방문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이와 더불어 보훈관서사회심리재활상담사를 신규로 배치하여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보훈대상자를 지원합니다. 또한, 심리재활집중센터를 통해 심리전문가를 활용한 집중상담, 사례공유 등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또한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대상을 독립유공자 (손)자녀까지 확대하고, 보훈요양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총 사업비 722억원을 들여 강원권과 전북권에 보훈요양원을 신규 건립하여 양질의 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국가유공자 장례지원도 강화됩니다. 영구용 태극기를 유족에게 직접 전달해 드리고, 국가유공자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 영예로울 수 있도록 2백만 원 상당의 장례지원서비스를 지원합니다.



이와 더불어, 봉송부터 안장까지 의전서비스를 담당하는 의전단이 국립호국원 3개소(영천·임실·산청)에 신설·운영됩니다. 의전단은 장례 뿐만 아니라, 국립묘지 참배행사 시 의전 도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2018년 첫 5조원 시대를 연 만큼, 국가보훈처는 내년에도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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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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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2017년, 광복 72주년의 해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가서 ‘대한민국의 태동’이라는 주제의 제1전시실을 관람하였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역사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근대 태극기


▲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동 도표


입구에 들어서자, 다양한 시각자료들이 있어서 쉽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를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3.1운동을 빼놓을 수 없지요.


▲ 국내 독립운동


#3.1운동과 독립의 열망


3.1운동은 한민족 각계각층이 참여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 독립운동입니다.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일제는 군대를 동원하여 평화적으로 진행된 만세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습니다.


3.1운동 이후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이 세운 여러 임시정부가 통합하여 1919년 9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 3.1운동 당시 군대를 동원했던 일본


#대한민국 임시정부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 조직과의 연계 활동과 외교 활동에 주력하였지만, 일제의 탄압과 열강의 외면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1931년 백범 김구 선생은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이후 이봉창 의사의 일왕 폭살 의거,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 공원 의거로 침체되어 있던 국내외 독립운동에 활기를 띄게 되었지요.

그러나 일본의 탄압 또한 심해졌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 난징, 창사를 거쳐 충칭으로 옮겨가는 힘겨운 시기를 겪게 됩니다.


3.1운동 이후 국내 각 분야에서 한국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민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 국내 독립운동 자료와 민족운동 자료


#국내의 민족운동


교육을 확충하기 위한 학교 설립 운동, 문명 퇴치를 위한 문자 보급 운동, 한글 운동, 언론 운동, 일제의 민족 차별을 거부한 청년-학생운동, 어린이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소년 운동, 농민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농민운동, 인력 수탈에 항거한 노동운동, 경제 자립을 추구한 물산장려운동 등이 일어났는데, 이 모든 운동은 자주독립을 위한 목소리였습니다.


▲ 독립신문 자료


#국외 독립운동


독립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중국에서는 이상설 선생을 중심으로 설립된 서전서숙에 이어 명동학교가 민족 교육에 힘썼고,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이 양성되었습니다. 홍범도, 김좌진 장군의 부대는 봉오동과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 부대를 격파하였고, 1940년 임시정부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여 국내 진공을 준비하였습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미외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의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하였고, 김규식 선생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파견되어 일제 식민지 통치의 실상을 폭로하고 독립을 호소하였습니다.


독립에 관한 VCR


▲ 8.15광복


전시실 마지막 부분에서 ‘8.15광복’을 보자, 가슴이 뭉클해져 왔습니다. 특히, ‘일장기를 내리는 장면’ 사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독립을 위해 희생,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일장기를 내리는 장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전시를 관람하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고 의미를 얻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꼭 가보시는 걸 추천 드릴게요.

이상 김태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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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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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흥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 우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 데 있으며
국권 없이는 모든 것을 잃는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구한말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외치며 일제에 맞서 고령의 나이에 의병을 일으켰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최익현 선생의 초상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면암 최익현 선생

 

면암 최익현 선생은 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선생은 14세 때 성리학의 대가인 이항로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우국애민(憂國愛民) 정신을 배웠고, ‘나라를 항상 걱정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라’는 이 정신은 최익현 선생에게 평생의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3세 때에 관직생활을 시작한 면암 선생은 재임 내내 부정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하고,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선생의 강직한 성품은 상대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한결같았습니다. 조선 후기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정치를 비판하는가 하면, 1868년 무리하게 경복궁을 재건한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지요.

 

 

▲ 최익현 선생의 면암집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을사늑약 체결을 반대하며 전개한 항일운동

 

1905년 11월 17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최익현 선생은 조약이 체결되는 데에 일조한 을사오적(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의 처단을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을사늑약에 대해서는 임금이 직접 조약이 무효라는 것을 선언하고, 각국의 공관들이 철수하기 전에 무효 성명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음은 면암 선생이 당시 올린 상소문, ‘청토오적소’의 내용입니다.

 

 "······을미 사변 때의 역적이 실로 만고의 대역적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이 을사 5적들은 죄가 오히려 아비나 임금을 죽인 것보다도 더 심한 것입니다. 지금 이런 대역적들을 오히려 용납하여 일시라도 천지 사이에 그대로 살아 있게 할 것이겠습니까. 저 5적들이 비록 외세에 의지하여 군부(君父)를 협박하는 것이나 역시 폐하의 신하인데, 어찌 차마 이 역적들과 더불어 같은 하늘을 이고 아직도 처벌을 내리지 않나이까···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신의 죽어 가는 말이라고 하여 귀에 흘려 버리지 마시고, 속히 국적을 토멸하는 동시에 허위 조약을 거부하라는 신의 요청을 단행하여 국가의 멸망을 돌이켜 다시 보전할 수 있게 하소서. 신은 통곡하여 숨이 끊길 듯함을 어쩔 수 없어 죽음을 무릅쓰고 삼가 이만 아룁니다."

 

▲ 무장한 의병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러나 상소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항일투쟁의 성과를 올리기가 어려웠지요. 이후 면암 선생은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였습니다. 당시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였지만, 선생의 국권 회복을 향한 의지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기개였습니다.1906년 3월 24일, 최익현 선생의 의진은 포천을 벗어나 태인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4월 13일, 선생은 무성서원에서 의병 궐기를 위한 강회를 열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지금 왜적들이 국권을 농락하고 역신들은 죄악을 빚어내 오백 년 종묘사직과 삼천리 강토가 이미 멸망지경에 이르렀다. 나라를 위해 사생(死生)을 초월하면 성공 못할 염려는 없다. 나와 함께 사생을 같이 하겠는가!”

 

선생은 일본영사관에 16개항의 죄목을 들어 규탄하는 글을 보냈습니다. 선생이 거느린 의병의 수는 점점 늘어나 5백여 명을 넘게 되었고, 정읍에 무혈입성하게 된 의병들은 거침없는 기세로 남원으로 밀고 들어가려 했습니다.

 

4월 20일, 관찰사 이도재가 의병을 해산하라는 황제의 칙지와 고시문을 보내왔습니다. 면암 선생은 실망감을 숨기고 이미 기병소를 올렸으니 관찰사가 간여할 바가 아니라는 답을 보냈습니다.


이후 남원 진입을 꾀하던 최익현 선생은 남원을 지키는 부대가 일본군이 아닌 우리측 진위대라는 것을 알게 되어 괴로워했습니다. 결국 같은 민족끼리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한 선생은 의병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리게 되었지요. 선생과 의병 일행은 우리 사법부가 아닌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았고, 이후 대마도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 대마도 유배와 선생의 올곧은 신념

 

▲ 태인의병 후 대마도로 압송되는 최익현 선생 (출처: 독립기념관)

 

최익현 선생은 대마도에서의 유배 생활 중 ‘굶어 죽을지언정, 왜놈의 밥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유배된 의사들이 울면서 식사를 권하여 단식은 중단되었으나, 고령의 나이에 의병 생활과 유배, 단식 등으로 받은 정신적·육체적 고통과 충격으로 1906년 11월 17일, 면암 최익현 선생은 유배지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경기 포천시에 위치한 최익현 선생의 동상
(출처: 포천 홈페이지)

 

1939년 11월 2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제31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11월 17일을 전후로 많은 분들이 일제에 항거하여 순국하였으므로, 11월 17일을 ‘순국선열 공동기념일’로 제정하였습니다. 이는 현재 ‘순국선열의 날’의 효시죠.
 
최익현 선생이 순국하신 날짜와 을사늑약일, ‘순국선열의 날’이 모두 11월 17일인 것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켰던 최익현 선생.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우국애민의 정신으로 구국운동을 전개했던 면암 선생의 애국심을 기리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 참고사이트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0565&cid=59011&categoryId=590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9328&cid=46623&categoryId=46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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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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