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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탑골공원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울려 퍼진 독립을 향한 시민들의 외침. 독립을 향한 열망은 전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했던 인종익 선생이 전주 천도교 구실에 독립선언서와 독립운동 방법을 전달하였고 김진옥, 배상근 선생은 이를 복사하여 전주지역 만세시위를 준비했습니다. 천도교 신자들은 이것을 전주 곳곳에 배포하며 본격적인 만세운동을 계획했습니다.

개신교계에서도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가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계획하였습니다. 학생들은 뜻을 함께하는 학우들을 모아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였습니다.

 

전주에 울려 펴진 대한 독립만세!’



1919313일 전주의 장날, 종교계 인사,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의 학생들이 장꾼들과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전주의 3.1운동은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늘어났고, 43일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쳤던 독립에 대한 염원은 이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김제, 부안, 옥구, 익산 등 전북지역 만세운동 확산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전주 만세운동을 위해 신흥고등학교에 다시 모인 1천명의 사람들



그리고 지난 310, 올해로 99년째가 되는 전주 3.13만세운동을 기념하고, 그날의 함성을 재현하기 위해 전주 시민들이 신흥고등학교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부터, 앳된 얼굴의 학생들까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고, 저마다 태극기를 든 시민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신흥고와 기전여고 학생, 광복회원과 기관단체장, 전북 인권선교협의회 등 약 1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운동장 한편을 가득 채웠습니다.

 

기념사를 하는 이강안 광복회 전라북도 지부장


행사는 오인탁 광복회 전주시 지회장의 선포로 시작됐습니다. 조재승 신흥고등학교 교장은 전주 3.13만세운동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과 진정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김현서 학생(오른쪽)과 이영은 학생(왼쪽)


다음으로 신흥고등학교 김현서 학생과 기전여자고등학교의 이영은 학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선배들이 일제에 항거해 읊조렸던 독립선언서를 99년이 지나, 그 유지가 담긴 학교에서 후배들이 다시금 읽어나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시가행진을 재현하는 학생들과 시민들


만세 삼창과 함께 시작된 시가행진은 신흥 고등학교에서 전주 한옥마을까지 이어졌습니다. 모두가 태극기, 혹은 각자가 준비한 팻말을 들고 그날의 모습을 재현했는데요. 행진 도중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어떤 행진인지 궁금해 하는 아이들에게 3.13만세운동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신흥고, 기전여고 학생들의 플래시몹


행진의 최종 목적지인 경기전 앞 광장에서는 신흥고와 기전여고 학생들이 준비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주제의 플래시몹으로 2부의 막이 열렸습니다.

2부는 학생들이 준비한 힙합댄스, 검무극 등의 문화행사로 구성됐는데요. 다채로운 무대에 지나가던 관광객도 함께 어우러져 광장엔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연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창작극회 단원들과 신흥고, 기전여고 학생들의 열연이 돋보였습니다.


이어서 이번 행사의 꽃인 3.13만세운동 재현극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다소 딱딱하게 다가올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연극을 통해 전달하니 쉽고 재미있게 우리 지역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와 함께 지켜보는 부모님도 있었고 한옥마을을 구경하던 많은 관광객들도 멈춰 서서 연극에 빠졌습니다. 중간중간, 만세운동을 재현한 부분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태극기를 휘두르며 함께 만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무대가 끝나고 저는 이번 연극에 참여한 신흥고등학교 김건 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김건 학생


Q. 멋진 공연 잘 봤습니다. 이번 연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안녕하세요 신흥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건입니다. 이번 재현극에서 사람들을 도와 3.13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학생 역할을 맡았습니다.

 

Q. 이렇게 연극에 참여하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연극을 준비하면서 3.13만세운동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선열들을 기리는 재현극에 참여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Q. 과거에 독립운동을 했던 신흥고등학교의 선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배님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어 지금의 삶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그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고 항상 기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에 참여해준 김건 학생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만세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


나라를 잃은 슬픔과 다시 되찾으려는 열망, 그 헌신을 재현한 행사에 모두가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지막 만세 삼창, 한옥마을에 놀러 온 관광객들도,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도 그날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목놓아 외쳤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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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임명애, 김향화, 이효정, 박진홍…


이분들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마 유관순 열사를 제외하고는 낯선 이름들일 텐데요, 이분들은 바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입니다.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한 이후 여성들은 무력투쟁을 비롯한 사회·문화·노동·농민·학생운동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중 일경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분들도 많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 현실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 이야기! 저와 함께 알아볼까요? 


▲ 여성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던 서대문 형무소의 여옥사 전경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게 되면, 입구 바로 왼편에 있는 작은 규모의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건물이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여옥사’입니다.

이 건물은 형량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 사형수를 수감하는 여구치감으로 1918년 전후에 건립되었습니다. 전구 각지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많은 여성들이 이곳에 수감되었고, 광복 이후 1979년에 철거되었습니다.

1990년 여옥사 지하 공간이 발굴된 이후 2011년부터 원형 복원을 진행하여 2013년에 대중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여옥사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여옥사는 총 8개의 감방과 건물 밑 지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유관순 열사의 조각 모형부터 고문 도구, 그리고 수감자들이 신었던 신발 등의 옷가지들이 전시되어 그 안에서 생활했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8개의 감방 중 5호, 7호, 8호방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거울의 방


▲ 여성독립가의 사진들로 이뤄진 5호방


5호방은 벽과 천장이 모두 거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울 중간 중간에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수형기록표가 걸려 있습니다. 방안 속의 여성독립운동가의 표정에서 독립에 대한 그들의 결연한 의지와 숭고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자비한 고문에도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는 그들의 희생정신에 마음이 아려왔고, 그들을 이제야 알게 됐다는 것에 죄송한 마음이 이렀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재회한 단짝과

다시 독립운동의 뜻을 다잡다


▲ 독립운동가 이효정, 박진홍 선생이 두 손을 맞잡고 있는 7호방


다음, 7호방으로 가 볼까요? 이곳에는 두 독립운동가의 동상이 있습니다.

손을 맞잡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이 분들은 이효정, 박진홍 선생입니다. 두 분은 동덕여고 출신의 단짝으로 1930년대 이재유 선생의 지도하에 이병희, 이순금 선생 등과 함께 일선 공장의 노동운동을 주도하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그 후 소식이 끊겼던 두 사람은 1935년 4월경, 이곳 여옥사에서 눈물의 재회를 하게 됩니다. 당시 두 분은 동료를 만난 기쁨을 나누며 독립운동의 뜻을 굽히지 말 것을 서로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두 분의 모습을 7호방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3.1운동 1주년,

서대문형무소 안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 유관순 열사의 독립에 대한 결연한 표정을 볼 수 있는 8번방


마지막으로 8호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8호방은 유관순 열사와 관련된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유관순 열사는 3.1독립만세운동 1주년이 다가오자, 어윤희 선생 등과 옥중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통방’이라는 감방 안 비밀통신방법으로 옆방에 있던 이신애 선생을 비롯하여 스승이었던 박인덕 선생 등 여감방 전체에 연락하였습니다. 1920년 3월 1일이 되자, 먼저 8호방에서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유관순 열사께서 주도한 이 옥중 독립만세운동은 서대문 형무소 옥사 전체로 퍼졌고 수감자들이 모두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자주 독립 의지를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유관순 열사는 모진 고문을 당했고, 고문에 대한 후유증으로 옥중 순국하게 됩니다.  


“나라를 구하는 데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 지도자, 윤희순 선생이 한 말입니다.

이번에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를 방문하고 가장 많이 떠올랐던 말입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우리들 마음속에 기억되길 바랍니다. 이 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잊혀지지 않기를 염원합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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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1()은 제99주년 3.1절이었습니다. 다들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3.1운동하면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는 분들 많으시겠지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던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지난 제99주년 3.1, 저는 독립을 염원하며 3.1운동에 참여했고, ‘참된 교육만이 살 길이라는 좌우명 아래 교육자의 길을 걸었던 춘고 이인식 선생 순국 55주기 추모식에 다녀왔습니다.


춘고 이인식 선생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인식 선생은 보성중학교(당시 보성고보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보성중학교의 대표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35일 진행된 남대문 시위에도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이인식 선생은 미국 영사관과의 연락 책임을 맡아 전북 학생 대표로 활약하던 중 일경에 피체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옥 후 선생은 참된 교육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고향의 전답과 가옥 등 전 재산을 처분하여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이인식 선생은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8천원을 독립자금으로 헌납하였고, 이후에도 군자금 모집을 위해 힘썼습니다.

 정부는 춘고 이인식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31일 오전 11,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춘고 이인식 선생 순국 55주기 추모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각계 인사, 유족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인식 선생의 독립정신을 추모하였습니다.

 춘고 이인식 선생 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열린 이번 추모식은 개회-국민의례-인사말씀-약력보고-추모사-분향-만세 삼창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분향하는 고평자 기념사업회장


고평자 기념사업회장은 인사말씀에서 춘고 이인식 선생은 당시 열악한 교육 환경을 개선해 가면서 청소년 교육에 정열을 바친 교육자라고 회고하며, “선생의 가르침을 계승 및 발전시켜 행동으로 옮겨 우리의 삶이 변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분향하는 강만희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이후 강만희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한 추모객들의 분향이 이어졌습니다.



분향하는 추모객들


마지막으로 선생이 앞장섰던 보성중학교의 3.1운동 참가 정신을 기리어 모두 만세 삼창을 외치며 추모식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작년 12, 군산 문화원의 주관으로 이인식 선생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역사 심포지엄이 개최되었습니다. 또한, 춘고 이인식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군산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19193, 우리 민족은 신분, 계급, 남녀노소 등의 구분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보성중학교 학생들의 선봉에는 이인식 선생이 있었습니다. 이번 춘고 이인식 선생 순국 55주기 추모식을 다녀와서, 잘 알지 못하지만 3.1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분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독립된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과거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대한독립만세!” 독립을 염원하는 함성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99년 전 3, 그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후손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인 것 같습니다.


추모객들의 단체사진


참고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5681&cid=46623&categoryId=46623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6039&ipp=10000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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