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6,056,620
  • Today | 1,806
  • Yesterday | 2,288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6월이 무슨 달인지 아시나요? 네, 6월은 바로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조국을 지켜주신 영웅들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그 영웅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추모하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현충일인데요, 지난 6월 6일,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현충일 추념식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어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현충일 추념식이 거행된 것은 1999년 이후 19년 만인데요, 국립대전현충원에는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 독도의용수비대, 소방 및 순직 공무원, 그리고 최근 순직하신 분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현충일을 기념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나라를 위해 순직하신 분들을 기리고자 하였습니다.


이번 추념식의 슬로건은 「428030,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였는데요. 여기서 ‘428030’이라는 숫자는 10개 국립묘지에 계신 안장자를 모두 합한 숫자입니다. 즉, 이 슬로건은 국가를 위해 희생, 헌신하신 모든 분들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날인 현충일. 이 날을 맞아 대통령, 정부 요인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 묘역을 참배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출처: KTV)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묘역을 참배하였는데요. 그 첫 순서는 고(故) 김기억 육군 중사의 묘소였습니다.


대한민국은 결코 그 분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기억하고 끝까지 돌볼 것입니다.

모든 무연고 묘소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중-


고(故) 김기억 중사는 크리스마스 고지전 등에 참전했고 24세의 나이로 양구전투에서 전사한 대한민국의 호국영령이며, 무연고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故) 김기억 중사의 무연고 묘소를 참배하며, 유가족이 없는 호국영령일지라도 국가가 끝까지 기억하고 책임지겠다고 말했습니다.


▲ 분향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 분향 후 현충문으로 돌아오는 귀빈들


매년 현충일이면 10시 정각에 사이렌 소리와 함께 1분간 묵념을 하는 것, 알고 계시죠? 10시가 되자 추념식에 참석한 내빈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마음을 모아 묵념하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렸습니다. 이 시간 동안 유족들은 눈물을 훔쳤고, 시민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애도와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묵념 후에는 애국가 제창과 헌화, 분향의 순서가 있었습니다.


▲ 추모헌시를 낭독하는 배우 한지민씨


그 후 이해인 수녀의 추모헌시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를 배우 한지민씨가 낭독했습니다. 한 자 한 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읽는 한지민씨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시민분도 계셨습니다. 


우리가 순하게 태어났고

언젠가는 묻혀야 할 어머니의 땅


작지만 정겹고 아름다운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침묵의 소리로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는 특히 추모헌시의 이 구절에서 마음의 울림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사랑해야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은 제가 지금까지 훈남훈녀 기자단으로서 취재하고 보훈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에게 던졌던 물음인데요. 이해인 수녀가 “침묵의 소리로 말씀하여 주십시오.”라고 썼듯이, 세상을 떠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많은 말 대신 빛나는 행적으로 우리에게 그 답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받는 유가족들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던져 순직하신 분들의 유족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하는 뜻깊은 시간도 마련되었습니다. 국가유공자 증서는 순직 군인이신 고(故) 최필영님과 고(故) 박기훈님, 순직 경찰이신 고(故) 정연호님, 순직 소방공무원이신 고(故) 김신형님께 수여하였습니다. 눈물을 참고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는 유족들의 손을 문재인 대통령은 꼭 붙잡으며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이번 국가유공자 증서 수여 순서에서는 순직 경찰 고 정연호 경위의 어린 아들인 정준용군이 아버지의 증서를 대신 받아,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 추념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국가유공자 증서 전달 이후 이어진 대통령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보훈은 이웃을 위한 희생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게 새기는 일”이라며 우리 주변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보훈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또한, “국가유공자의 진정한 예우는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분들의 삶이 젊은 세대의 마음속에 진심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선대들의 나라를 위한 헌신을 기억하고 애국자와 의인의 삶에 존경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처럼 우리 국민들은 국가유공자들의 헌신을 늘 기억하면서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가수 최백호씨의 추모공연

▲ 현충의 노래를 제창하는 내빈들


현충일 추념식이 끝나고 저는 우리 국민들에게 현충일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대전노은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영석 학생(16)은 “드물게 대전에서 하는 전국적인 행사이며. 의미 있는 행사라 생각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현충일을 “호국영령을 추념하는 날이 적은데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기릴 수 있는 날”이라고 말하며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김택중씨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김택중씨(38)는 자신이 생각하는 현충일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잊혀진다는 게 무서운 것 같아요. 보통 ‘2002년’이라 하면 월드컵을 떠올리는데, 제2연평해전이 잊혀지면 안 되는 거잖아요. 목숨 걸고 국토를 수호해낸 호국영령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날이 바로 현충일인 것 같습니다. 이 때라도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또, “호국영령들께 감사드려요. 그분들이 없었으면 우리도 없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특히나 저를 대신해 제 옆에서 전사한 전우를 봤기 때문에 더욱 감사하고 죄송하게 느껴집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현충일 추념식과 김택중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저는 현충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라는 것을요.


현충일 추념식이 끝나고 국립대전현충원을 가로질러 걸으며, 저는 묘역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읽어보며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훈터 독자 여러분. 여러분도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신 순국선열, 호국영령을 기억해주세요. 호국보훈의 달인 6월, 국가를 위해 희생, 헌신하신 분들을 모두가 기억하고 기리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6월은 의병의 날(6월 1일), 현충일(6월 6일), 6.10민주항쟁 기념일, 6.25전쟁 발발일, 제2연평해전 발발일(6월 29일)과 같은 우리가 기리고 기억해야 할 많은 날들이 있는 달입니다. 이러한 6월을 계기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그 공훈에 보답하기 위해 호국보훈의 달이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습니다.

특히 현충일은 나라를 위하여 숨진 모든 장병들과 애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는 날인데요. 올해로 63회를 맞이하는 현충일 추념식에 훈남훈녀 기자단이 다녀왔습니다.


“19년 만에 대전현충원에서 열리다!”


▲ 대전현충원 입구의 천마웅비상


이번 현충일 추념식은 ‘428030,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표어로 거행되었습니다. ‘428030’은 현충원, 호국원, 민주묘지 등 10개 국립묘지의 안장자를 모두 합한 숫자입니다. 저는 428030이라는 숫자를 앞세운 표어를 통해 안장자 한 분 한 분을 모두 기억하겠다는 대한민국의 굳은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추념식은 지난 1999년 이후 19년 만에 국립서울현충원이 아닌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렸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 독도의용수비대, 소방 및 순직 공무원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최근 순직하신 분들 대다수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된 이번 현충일 추념식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를 기릴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 유해발굴 사진·유품 전시장


행사 시작 전, 저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진·유품 전시장을 둘러봤습니다. 이곳에서는 전쟁 당시 군인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옛 물건이 신기한 듯 바라봤고 몇몇 어르신들은 옛 기억을 회상하며 대화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녹이 슬어버린 우리 호국영령들의 물건들을 저는 마음속에 깊이 담아보았습니다.

 

▲ 6.25 전사자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 천막과 육군 보훈민원 현장 지원센터


육군 보훈민원 현장 지원센터도 마련됐는데요. 이곳에서는 전사자의 군 복무기록과 무공훈장, 비군인 참전기록을 찾아주었습니다. 또한 6.25 전사자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천막도 설치되어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6.25 전사자들이 가족의 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바라며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 이날 행사에는 약 10,000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했습니다.


행사는 현충원 묘역 참배를 시작으로 추념행사,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식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추념행사는 추모묵념과, 국민의례, 추모헌시, 국가유공자 증서 수여, 추념사, 추념공연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 추모묵념하는 시민의 모습


조포 21발과 함께 시작된 묵념. 학생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했고, 유가족은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과 슬픔에 눈물을 훔쳤습니다. 모두 함께 고개 숙여 한때는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이었던 희생자와 선열들을 추모했습니다. 


“보훈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기본입니다 ”


▲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애국영령과 의인, 민주열사의 뜻을 기리고 이어가겠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무연고 묘역의 안장자 역시 기억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슬픔과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도록 국가가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임을 약속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현 보훈정책에 대해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


▲ 배우 한지민 씨의 추모헌시 낭독


▲ 가수 최백호 씨의 공연


이날 행사에서는 다양한 추모공연도 있었습니다. 먼저 이해인 수녀의 시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를 배우 한지민 씨가 낭독했습니다. 추모객들과 눈을 맞추며 시를 읊조리는 한지민 씨의 낭독에 시민들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어서 가수 최백호 씨와 군 복무 중인 연예인들이 함께 부르는 ‘늙은 군인의 노래’도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현충일 행사가 끝나고, 이번 추념식을 찾은 유가족 전수원 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전수원 님


Q. 안녕하세요! 이번 현충일 추념식에 어떻게 참석하게 되셨나요?


2002년에 아들이 야간 훈련 중 사고를 당해 순직을 하게 됐는데, 이번에 처음 추념식에 초대받아 참석하게 됐습니다. 유가족으로서 이렇게 참여하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Q. 그 슬픔과 그리움을 감히 위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조의를 표합니다. 이번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 행사에서 많은 유가족 분들을 뵈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유족들은 슬픔에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심각한 트라우마와 아픔을 짊어지고 가는 유가족들에 대해서 더 큰 관심과 위로가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Q. 유가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도록 해주신 말씀,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떤 사회가 되기를 바라시나요?


영웅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꼭 국가에서 법에 의해 예우를 잘 갖춰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병역의 의무를 다하다 순직한 병사들에게도 합당한 예우가 잘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드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부처나 여야를 넘어서 국가적으로 뜻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훈남훈녀 기자단도 故 전택진 상병님의 숭고한 희생과 그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전수원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 428030,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


6일 아침, 대전현충원은 이른 시간임에도 전국에서 찾아온 추모 물결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현충원 입구부터 행사장까지는 꽤 멀었음에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시민들의 행렬로 가득했습니다. 뜨거운 햇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가는 시민의 눈빛엔 슬픔이 담겨있었고, 말없이 비석을 어루만지는 한 어르신의 손에는 깊은 그리움이 배어 있었습니다.


여러 종교, 봉사단체에서는 추모객들에게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 등을 나눠주며 그 슬픔과 그리움에 함께했습니다. 이러한 풍경들로 가득 찬 대전현충원에서 저는 다시 한 번 이번 현충일 추념식의 슬로건을 떠올렸습니다.


428030, 오늘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신 영웅들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독립신문’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그렇다면 이를 창간하신 분이 누군지 혹시 알고 계시나요? 독립신문을 창간하신 분은 송재 서재필 선생입니다.


▲ 송재 서재필 선생 (출처: 독립기념관)


민족의 계몽과 독립을 위해 힘쓰셨던 분인 만큼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번 기사를 통해 소개할 독립유공자로 선정해보았는데요. 선생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독립신문에 대한 소개까지 함께 다루었으니 기존에 독립신문을 잘 모르셨던 분들도 어렵지 않게 기사를 읽을 수 있으실 겁니다. 


▲ 서재필 선생이 창간한 독립신문의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독립신문


독립신문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독립신문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될 수 있는 오해부터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에 발행한 신문, 그리고 서재필 선생이 창간한 신문 모두 이름이 독립신문입니다. 따라서 독자분들께서는 두 개가 같은 신문인가 오해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두 신문은 이름만 같고 발행처는 다른 별개의 간행물입니다. 이 점 독자분들의 원만한 기사 이해를 위해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임시정부가 창간한 독립신문의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은 서재필 선생에 의해 창간되었습니다. 1896년 4월 7일에 첫 호가 발행되었고 1899년 12월 4일 폐간되었습니다. 독립신문은 국민들의 자주독립 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공헌하였고 민주주의와 근대화 사상을 가지도록 계몽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우리의 고유 문자인 한글을 알리기 위해 순 한글로, 그리고 외국인에게도 한국의 현 상황을 알리기 위해 영어로 발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신문에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내용을 게재했지만, 친러파 관리들이 정권을 잡고 러시아의 간섭이 심해지자 점차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싣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러시아, 일본의 정부 관료들은 서재필 선생을 추방하고자 하여 서재필 선생은 결국 1897년 12월 미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선생이 추방된 이후에도 신문은 윤치호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윤치호는 서재필 선생의 미국행 이후 독립협회 회장직을 지내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한 인물입니다. 이 시기 독립신문은 더욱 강한 비판을 이어감과 동시에 독립협회의 활동을 지원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윤치호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윤치호는 한말 개화파로 독립협회 회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였으나,

1920년 이후에는 친일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1898년 12월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국민 계몽을 추구하던 독립신문 역시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결국 1899년 12월에 발행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서재필 선생의 생애


▲서울 서대문 독립근린공원에 위치한 송재 서재필 선생의 동상


송재 서재필 선생(1864-1951)은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던 그는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양으로 올라가 외삼촌인 김성근으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이후 병과에 합격했습니다. 당시 선생은 김옥균·서광범·홍영식·박영효와 같은 개화파 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연스레 개화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선 말 설치된 신식군대인 별기군의 모습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오군란(1882)은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에 비해 형편없는 대우를 받던

 구식군대 군졸들이 격분하여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리고 김옥균의 권유로 일본 호산육군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현대 군사 훈련 교육을 받고 귀국한 그는 사관학교의 설립을 건의하였고 국왕으로부터의 승낙을 받아 조련국을 만들어 사관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수구정책으로 회귀한 친청 정권의 반대로 사관학교 설립이 지지부진하게 되었습니다.


▲갑신정변에 참여한 인물들 (출처: 국가기록원)

갑신정변(1884)을 주도했던 급진 개화파 인물들.

이들은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의 발전된 문물을 수용하고

평등한 근대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1884년 12월에는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사관생도들을 지휘하며 왕을 호위하고 수구파를 처단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정변의 실패 이후 개화파 인사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외교적 문제를 이유로 내몰리게 되어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이때 그의 가족들은 역적의 가족으로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참형에 처해지는 등 죽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본국에서 역적으로 몰려있는 본인의 처지와 가족들 모두가 희생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귀화를 하게 됩니다. 선생의 귀화명은 필립 제이슨입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여 병리학 강사가 되었지만 인종차별 문제로 인해 병원 사업을 택하게 됩니다.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던 그는 갑오개혁 이후 박영효의 설득에 따라 귀국합니다.


귀국 후 그는 국민의 계몽을 결심하였고 보다 효과적으로 정부의 개화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의 여론을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신문 발간사업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부와 온건개화파의 각종 보호와 지원을 통해 1896년 4월 7일 드디어 ‘독립신문’을 창간하게 됩니다!


▲ 독립협회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손꼽히는 독립문


▲ 독립문 앞에서 찍은 서재필 선생의 사진 (출처: 독립기념관)


창간 이후 그는 개화세력과 연합하여 1896년 7월 2일 독립협회를 창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기존의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건립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청년학생들을 교육·계몽하며 인재들을 양성하고, 신문 논설과 강연을 통해 민족독립 사상을 고취시키고 민주주의 사상을 가르치던 그는 수구파 정부와 열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다시 의료사업에 종사하던 그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자금을 기부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영자 독립신문인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를 간행하며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일본의 만행을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힘썼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정의 요청에 따라 귀국하였다가 군정 종식 후 미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국가에 헌신한 그의 공로는 높이 평가되었고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선생에게 추서하였습니다.


서재필 선생의 꿈을 알아보다


지금까지 서재필 선생이 창간한 독립신문의 역할·의의와 선생의 인생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가족을 모두 잃고 계속 국외로 내몰리는 상황 속에서도 국가를 향한 헌신을 멈추지 않은 선생의 정신은 한 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또한 저는 서재필 선생의 인생을 되짚어보며, 그의 꿈의 일대기를 목격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꿈은 민족의 독립, 민족의 계몽, 민족의 성장이었습니다. 독립하고, 계몽되어야만 여러 열강들의 틈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우리 민족. 우리 민족이 목도한 가장 큰 문제를 서재필 선생은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좌절의 연속에서도 투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는 독립근린공원


현재 독립문과 선생의 동상은 서울 서대문구의 독립근린공원에 위치해있습니다. 공원에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한 다른 시설들이 있으니 독자 여러분들도 선열들의 헌신과 애국심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국가기록원

독립기념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영웅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조마리아 여사 서거 91주기, 안중근 의사를 길러낸 독립운동가들의 든든한 조력자
헤이그에서 일제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린, 이준 열사 순국 111주기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 가다
2018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 ①, 하나의 미래를 향한 하나의 마음!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