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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8, 저는 서울 능동에 위치한 어린이 대공원에 방문하였습니다.

흐린 날씨였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3월 말을 기점으로 하여 따뜻한 봄 날씨가 찾아오고 동시에 전국적으로 진달래와 개나리 같은 봄꽃이 개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 어린이 대공원에 방문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독립운동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주말을 맞아 어린이 대공원을 방문한 시민들


혹시 여러분께서는 어린이 대공원에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의 동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바로 고하 송진우 선생입니다.

 

대공원 정문 방향으로 쭉 직진하면 보이는 음악 분수를 지나 왼쪽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습니다. 그곳을 둘러보시면 고하 송진우 선생의 동상이 우뚝 서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하 송진우 선생 동상


고하 송진우 선생

 

선생은 전라남도 담양 출신으로, 어려서 의병장이었던 기삼연 선생 등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후 새로운 학문의 필요성을 느끼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학 이후 중앙학교를 인수하여 교감에 취임했다가 교장이 되었습니다.

19193.1운동 당시 송진우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가 옥고를 치렀습니다. 1921년에는 동아일보의 제3대 사장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송진우 선생은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등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1931년부터 약 4년간 문맹퇴치를 위해 브나로드 운동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192710, 6대 동아일보사장으로 취임한 송진우 선생은 신문에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 유니폼의 일장기를 지우고 싣게 됩니다.

동아일보의 총책임자로서 일장기를 지우기까지 송진우 선생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행동하는 애국심을 보여주신 선생의 행적에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일장기가 말소된 손기정 선수의 상의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오른쪽이 사진의 원본이고 왼쪽이 유니폼의 일장기가 말소된 사진이다.


일장기 말소 사건

 

19368월 베를린 올림픽 당시 우리나라 선수들은 유니폼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단 채 출전해야 했습니다.

올림픽 이전부터 훌륭한 성적을 거두던 손기정 선수는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당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신문에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에 있는 일장기를 지우고 우승 소식을 게재하였습니다.

일장기 말소사건이 문제가 되자 동아일보는 제4차 무기정간을 당하고 사장이었던 송진우 선생 또한 사임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던 당시 언론인들의 강한 의지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동상 옆에 설치되어 있는 송진우 선생 소개 글


광복 이후 송진우 선생은 한국민주당을 조직하여 수석총무로서 활동하다가 한현우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동상 뒤편에 전시되어 있는 선생의 일대기(一代記).

선생의 어린 시절, 독립을 위한 항쟁, 교육을 향한 열정, 정치활동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저는 나들이 나온 시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박소영(25,서울 강남)씨는 송진우 선생이 일장기를 말소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묻는 저의 질문에, “일장기 말소사건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통해 자주 들어왔었지만 어떤 분께서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고 답했고, 이어 선생과 같은 독립운동가를 알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일장기 말소 사건은 훈터 독자 여러분들도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누가 이를 목숨을 담보로 행했는지 취재 전까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앞으로 국가보훈처의 온라인 기자단으로서 우리가 독립된 나라에 살아갈 수 있도록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열심히 취재하여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송진우 선생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저에게 많은 감상을 남겨주신 송진우 선생은 언론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립을 위해 힘쓰셨습니다.

 

송진우 선생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면서 이번 기사를 마칩니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백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86%A1%EC%A7%84%EC%9A%B0&ridx=0&tot=5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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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송 장덕준 선생


추송 장덕준 선생은 1892년 황해도 재령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명신중학교에 진학, 1911년에 졸업하고 모교 교사로 2년간 일했습니다. 1914년 평양일일신문사에 입사해 조선문 신문부 주간으로 근무하며 조만식, 김동원, 이덕환 등 평양의 주요 지식인들과 교류하였는데요. 그러던 중 이듬해 일본 유학길에 올라 세이소쿠(正則) 예비학교에 다니면서 재동경조선인유학생 학우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장덕준 선생은 1920년 민간신문인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여 논설반원과 통신부장, 조사부장을 겸했습니다. 선생은 창간 다음날인 4월 2일자부터 4월 13일자까지「조선소요에 대한 일본여론을 비평함」(필명 ‘추송’)이라는 논설을 통해 ‘조선자치론’과 ‘일시동인론’으로 3.1운동을 왜곡 보도한 일본의 여론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또한 장덕준 선생은 동아시아를 방문하는 미국의원단 취재를 위해 1920년 7월말, 특파원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그들에게 조선의 독립요구를 알리는데 힘썼습니다.


▲1920년 4월 1일 창간된 동아일보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러던 중 1920년 10월 일본군이 청산리에서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한 ‘경신참변’이 일어나게 됩니다. 일본군이 청산리에서 독립군에 패한 보복으로, 주민 5천여 명을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학살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일제에 의해 정간처분(발행정지)을 받아 신문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장덕준 선생은 ‘신문은 정간 중에 있지만 기자의 활동은 중지할 수 없다’며, 보도할 지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학살의 진상을 취재하기 위해 10월 중순, 간도 현장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11월 6일 간도에 도착한 장덕준 선생은 간도 용정에 이르러 여관에 여장을 풀고, 일본군 헌병대장을 찾아가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추궁하고 힐책합니다. 일본군측은 당연히 그러한 일이 없다고 부정하면서 후일에 함께 가보자고 약속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을 듣지 못한 채 여관으로 돌아와 취재 중이던 어느 날 이른 아침, 선생은 일본인 두세 명에 불려 나가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선생은 이날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간한 독립신문(1921년 10월 28일자)은 「장덕준씨 조난논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선생이 일본군에게 암살당했다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였습니다.


▲ 장덕준 선생 (출처: 정진석 제공)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또한 한국기자협회는 1971년, ‘기자협회 기장(記章)’을 제정하면서 장덕준선생의 투철한 기자정신을 기리고 본받자는 취지로 기념 메달의 뒷면에 선생의 얼굴을 새겨 넣었습니다.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파 청년지사로서 일본식민통치 아래 최초로 순직한 대한민국 언론인 추송 장덕준 선생. 평생 언론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외쳤고 일본에 의한 동포 학살의 참극을 세상에 알리고자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했던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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