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069,067
  • Today | 2,713
  • Yesterday | 5,185


오는 6월 10일은 6.10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91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오늘 오전 10시 6.10독립만세운동의 주축이 된 서울 종로구의 중앙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제91주년 6.10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이 열렸는데요. 


침체된 민족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3.1운동과 함께 민족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6.10독립만세운동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해요!


# 6.10독립만세 운동 발발 배경


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3.1운동을 계기로 해외까지로 확산되었던 민족 독립운동은 미국이나 서구열강의 소극적 지원에 의해 점차 잠잠해져 가는 추세였습니다. 또한 일본의 교묘한 술책과 탄압으로 민족운동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주에서의 무장독립투쟁도 1920년 청산리전투로 대승을 거둔 뒤, 일제의 대토벌로 인해 러시아방면으로 후퇴하게 되었는데요. 1921년 자유시참변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국내 독립운동의 침체에 이어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역시 부진한 상태였죠.


# 6.10독립만세 운동의 발발


이런 상황 속에 1920년대 민족운동은 학생운동에 의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이전의 산발적이고 비조직적인 만세운동과는 달리 학생운동은 학생층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항일운동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이 학생운동이 가시적인 집단행동으로 표출된 결과가 바로 6.10만세 운동입니다.


6.10만세 운동은 순종 황제의 인산일이 큰 계기로 작용했는데요. 사회주의 계열의 단체들과 민족주의 계열 등 세 개 단체들이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대규모 독립운동을 펼치기로 계획했습니다.


▲ 권오설 생가 터


먼저, 사회주의자 권오설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독립운동은 중국지폐위조사건과 개벽지압수사건 등으로 사전에 발각되어 연루자가 붙잡히는 바람에 아쉽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무렵,  전문학생들이 중심이 된 사직동계 역시 독립운동을 준비하는데요. 5월 20일 40여명의 청년들이 순종인산일인 6월 10일 독립만세와 가두시위를 일으켜 민족독립을 성취하자는 결의를 맺고 태극기와 조선독립만세 격문을 준비했습니다. 이들의 거사 계획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일제의 감시가 기성 독립운동가들에게 쏠리는 틈에 진행된 까닭이죠.



▲ 6.10만세운동 사직동계 거점(박하균 하숙 터)


또 중등학교 학생 중심의 통동계 역시 시내 사립고보생 중심의 시위운동을 준비합니다. 격문 5,000매를 등사하여 이를 각 학생들에게 분배했습니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에 참가한 2만4천여 명의 학생들은 돈화문에서 홍릉까지 도열했고 오전 8시 30분경 순종의 상여가 종로 3가 단성사 앞을 지날 때, 중앙고보생 300여 명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고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감행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종로 일대에 대기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독립 만세운동이 발발하게 됩니다.


▲ 6.10만세운동 통동계 거점(김재문 하숙 터)


# 6.10독립만세 운동의 결과


학생들의 조직적인 만세 운동에 지켜보던 군중들도 합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는 군대까지 동원하며 이들을 막았지만, 이 소식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각 지역의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통해 일제에 항거하였습니다. 6.10만세 운동으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힌 학생들 수는 무려 210여명, 전국적으로는 1,000여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6.10만세 운동은 학생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계획, 추진된 운동으로 학생들의 애국정신이 집단으로 표출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6.10만세운동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을 향한 염원을 보여주었던 6.10만세운동.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소중한 역사입니다. 6월 호국보훈의 달, 우리나라를 위해 일제에 항거하고 탄압받았던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보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6.10만세 기념비


* 참고 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대전시 동구는 지난 3월 16일, 제17회 3·16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재연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날 행사는 광복단체, 주민, 학생 등 1,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작되었는데요. 1919년 3월 16일에 일어났던 인동장터 만세운동은 당시 대전 지역 만세운동의 효시이자 도화선 역할을 하였습니다. 1919년 3월 16일 정오에 청년들이 인동 가마니 시장에서 쌓아놓은 가마니 더미 위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재연행사는 인창교에서 출발하여 인동쌀시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구성되었습니다. 대전시 동구의 만세로 광장은 인동 한국전기안전공사 앞이었는데요. 태극기의 물결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세로 광장에서는 식전공연으로 태권무 공연이 선보여졌는데요. 공연을 하는 학생들의 멋진 모습에 용맹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념행사로 국민의례, 3·1절 노래 합창, 기미독립선언문 낭독, 만세삼창, 소원 종이비행기 날리기, 고운매합창단의 합창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3·16 잊히지 않는 인동의 메아리’라는 주제로 공연이 펼쳐졌는데요. 만세운동 당시의 아픔과 절규를 사실과 픽션이 가미된 연기, 무용으로 실감나게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동구문화원 대청풍물단 공연을 보면서, 신명 나는 풍물공연을 볼 수 있어 어깨가 들썩이며 흐뭇하였답니다.



태극기 꽃나무가 설치되어 눈길을 끌었으며 독립운동 사진 전시, 서예체험, 페이스 페인팅, 고문체험, 먹거리 장터 등의 체험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습니다.


한현택 동구청장님은 “쌀바구니 위에서 펼쳐진 인동 장터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서 이 재연행사를 2000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해 오고 있다”고 말하며, “스스로 역사를 제대로 알고 찾아내는 노력을 꾸준히 펼쳐야 후손들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역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올바른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게 될 3·16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재연행사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인동장터는 대전 지역 만세운동의 효시를 이뤘던 대전의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입니다. 이는 이후 만세운동이 유성, 유천, 가수원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재연행사를 통해, 과거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잊혀지지 않을 인동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만세를 외쳤던 우리 조상들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을 생각하며,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주고 지금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지키고 가꾸어나가야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3•1만세운동을 이끌었고, 18살의 꽃다운 나이에 옥중 순국한 유관순 열사. 그녀를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특히 어린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와 의연한 태도는 지금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을 향한 의지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요.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 올케까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는 점을 보면, 그녀의 집안이 얼마나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9월 28일 유관순 열사 순국 96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 가족 관계도를 통해서 유관순 家의 독립운동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3•1만세운동의 상징, 유관순 열사 




1902년 12월 16일, 현재 충청남도 천안군 병천면 용두리에서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유관순 열사. 열사는 1918년 봄,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입학해 선진학문을 배워나갔습니다.


평범한 여학생이었던 그녀는 1919년 1월 22일, 고종의 서거 이후로 한 명의 학생에서 독립운동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 벌어진 3•1만세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죠. 당시 시위행렬은 이화학당 교문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촉구했고, 열사는 서명학, 김복순, 김희자, 국현숙 등의 친구들과 함께 시위 행렬에 합류해 대한민국 만세를 함께 외쳤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인 3월 5일, 학생단 주도 아래 진행된 제2차 대규모 만세 운동에도 참여했다 구금되었지만 이화학당 당국의 교섭으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학교 휴교령이 내려진 뒤 고향에 내려간 뒤,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이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선생은 아침 저녁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수감자들의 항일 독립의지를 고취시켰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으로 인해 1920년 9월 28일 옥중 순국하였고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천안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집안, 유관순 家

유관순 열사의 집안은 천안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집안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유관순 열사의 가족 및 집안사람들 가운데 독립운동가로 훈•포상을 받은 사람은 유관순 본인과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오빠 유우석(柳愚錫), 작은아버지 유중무, 사촌 언니 유예도, 오촌 조카 유제경(柳濟敬), 종조할아버지 유도기(柳道基)로 총 8명이죠. 



당시 신식문물을 받아들인 개화인사였던 아버지 유중권은 향리에 흥호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유종권은 유관순 열사에게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동생 유중무•조인원 등과 4월 1일 아우내 장날을 기해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거사를 계획했고, 만세운동 도중 일본 헌병이 휘두른 총검에 찔려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제도 아우내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녀는 헌병의 총검에 찔려 남편이 죽자 더욱 열렬히 독립 만세를 부르며 항거했고,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와 아버지, 어머니가 아우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면,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은 1919년 4월 1일 공주 만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유우석은 공주 장명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공주 만세운동에서 학생 대표들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고 선두에 서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유우석은 주동자로 체포되어 징역 6월 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때, 유우석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면서 유관순 열사와 가슴 아픈 상봉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우석은 출옥 후 강원도 양양군(襄陽郡)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던 조화벽(趙和璧)과 결혼하였으며, 유준석(柳俊錫), 유관옥(柳寬玉)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꾸준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올케까지 모두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유관순 家, 올해 9월 28일은 유관순 열사의 순국 96주기로,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열사추모각에서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추모제가 오전 11시에 진행됩니다. 이 날을 맞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천안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와 그녀와 같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유관순 家 사람들을 꼭 기억해주세요!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유관순 열사와 그의 가족 이야기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정찬희 기자

    2017.06.29 15: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관순 수형자 카드에는 정동여고 던데 어떻게 이화학당이 되죠? 국가에서 발행한 기록에 오류가 있어서야.. 그러니 유관순 조작설 주장하는 이가 나오잖습니까.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제72주년 광복절 기념 '태극기 완성하기' 이벤트
제73회 보훈퀴즈의신
아직 전하지 못한 5,469개의 훈장,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습니다!
[보비스 10주년] 재가복지서비스와의 만남, 내 인생 가장 행복한 해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