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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현지시간)에 문재인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취임 후 첫 미국 순방에 나섰는데요. 미국 순방 일정 중 가장 먼저 소화한 일정이 다름 아닌, 미 버지나아주 콴티코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위치한 장진호 전투 기념비(지난 5월 4일 완공)를 찾은 것. 문재인 대통령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 소식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달리며 국민들의 이목을 끌었답니다. 장진호 전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미국 방문 첫 일정으로 이 기념비를 찾은 것일까요?


# 1950년, 유독 추웠던 그 해 겨울


▲ 6.25전쟁 당시의 장진호 모습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세는 국군과 UN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인천~서울 지역을 수복한 연합군은 전쟁 물자의 주요 이동경로를 차단했고, 북한군 병력은 자연스럽게 고립됐죠. 나아가 월등한 전쟁물자와 병력을 바탕으로 적들을 각개 격파하는데 성공한 맥아더 장군은 점진적인 북진을 결정합니다. 11월 1일 미 제10군단장은 국군 제1군단을 우측, 미 제7사단을 중앙, 미 제1해병사단을 좌측으로 하여 국경선으로 진격하라는 공격명령을 하달했습니다.


▲ 한국전선에서 협의하고 있는 팽덕회(좌)와 김일성(우)

(출처: 전쟁기념관)


당시 미 제1해병사단은 동부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제1선 부대였는데요. 북진을 거듭하던 미 제1해병사단은  서부전선 부대와의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북한군의 공격은 없었지만 그 해 겨울엔 유독 추운 한파가 몰아닥쳤습니다. 무려 영하 40도에 이르는 강추위는 차량과 전차의 연료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총조차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 식량 역시 얼어붙었고 동상에 걸린 병사가 속출하여 그야말로 생지옥의 현장이 펼쳐집니다.


▲ 진격하는 인민군

(출처: 전쟁기념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은 북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참전 결정을 내렸고, 무려 12만 명 규모의 제9병단(7개 사단 병력)을 전쟁에 투입하였습니다. 11월 초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공격은 유엔군이 생각한 그 이상의 기세였습니다. 11월 27일, 미 제1해병사단이 주둔하고 있던 유담리 베이스캠프를 공격하기 시작한 중공군은 그 이후로 매일 밤마다 뿔피리를 불어대며 공격을 해왔습니다. 미 제1해병사단은 모든 전투병사와 비전투 병사들을 동원해 진지를 방어했지만, 중공군의 맹렬한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미 제10군단 알몬드(Edward M. Almond) 소장은 11월 30일 장진호 근처 하가우리에서 작전회의를 열고 기존의 북진계획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알몬드 소장은 장진호 부근의 모든 부대를 함흥~흥남의 작전기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하달했고, 이에 미 제1해병사단의 제5연대와 제7연대가 중공군을 격파하고 12월 4일 하가우리에 진입함으로써, 북한의 유담리 포위망 돌파 작전은 일단락되는 듯 했습니다.

 

▲ 중공군의 저지선을 뚫고 이동하는 미 해병대


한편, 장진호 동쪽에 고립된 미 제7사단은 중공군의 공격 및 저항에 발이 묶여있던 상황이었는데요. 이들은 자신들의 구출작전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후방 하가우리 지역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후퇴를 중공군이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중공군 제58사단과 제60사단은 이미 고토리까지 남하하여 하갈우리에 이르는 보급로를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미 제1해병사단은 중공군의 강력한 포위 공격에 많은 손실을 입어가며 가까스로 병력을 후퇴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어 진흥리를 통과한 미 제1해병사단은 12월 11일 함흥지역에 모두 진입함으로써 장진호 전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이어진 이 장진호 전투로 인해 미군은 큰 손실을 입고 말았습니다. 자칫 미제1사단이 전멸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죠. 이 전투에 대해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도 기록한 바 있죠. 또한 미군의 전사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사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만 5천여 명의 미군 대비 10배가 넘는 중공군 병력의 진격을 지연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공군 측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혔습니다. 이 전투 이후 중공군 제9병단 지휘부는 3개월에 걸쳐 부대를 재편성하기 위해 후방으로 철수해야만 했죠. 


▲ 종군기자가 찍은 장진호 전투 실제 사진


미 해병대 3대 전투이자 6.25전쟁 3대 전투로도 기록되어 있는 장진호 전투. 이는 훗날 흥남 부두의 피난민 20만여 명을 남쪽으로 탈출시켰던 ‘크리스마스의 기적’, 흥남철수작전을 가능케 한 시간적 여유를 벌어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6.25전쟁 참전 67주년, 장진호 전투를 기리다.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찾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대해 살펴볼까요? 대한민국과 미국은 지난 5월 4일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 장진호 전투 기념비는 2013년부터 현지 미 해병대 참전용사들이 모금을 시작하여 국가보훈처, 민주평통, 애국단체총연합회 등 한국 국민들의 정성을 모아 완공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기념비는 8각 모양으로 각 면에는 고토리, 하가우리 등 지역별로 이어진 장진호 전투의 기록이 면면에 남아 있습니다. 또 장진호 전투가 벌어졌던 함경남도 장진군 고토리 지역을 기념해 ‘고토리의 별’ 장식을 올렸습니다. 이 ‘고토리의 별’ 장식은 미 해병대가 눈보라가 그친 밤에 밝은 별이 뜬 뒤 포위망을 뚫은 것을 기념해 ‘고토리의 별’ 장식을 배지로 달기 시작한데서 유래했습니다.



▲ 장진호 전투 기념비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은 흥남철수작전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타고 거제도로 피난을 내려오셨고, 그 거제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순방지인 미국에서 첫 공식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참배하며, “엄청난 희생을 치른 장진호 전투의 결과로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있었고 제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장진호 전투가 없었더라면 흥남철수작전도 없었고,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인데요. 


그와 더불어 문 대통령은, 장진호 전투에 이등병으로 참전했고 기념비 설립을 주도한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유엔 참전용사들이 이 땅에서 숨져갔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위해 엄동설한의 추위와 두려움에 맞서 싸웠습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을 계기로, 더욱 많은 이들이 장진호 전투에서 스러져간 영웅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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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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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터 여러분, 안녕하세요! 며칠 전이었던 6월 6일 현충일, 여러분은 무엇을 하셨나요? 조기를 게양하고 지금 우리의 안녕을 위해서 희생하신 순국선열을 떠올리며 그분들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셨나요?



현충일은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1956년에 정해진 기념일인데요. 저는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 정말 뜻 깊게도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 국가보훈처 온라인 기자단 소속 취재기자로 가게 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발신인의 제62회 현충일 추념식 초청장


▲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발신인의 제62회 현충일 추념식 초청장과 PRESS비표

  

이번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은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오전 9시 55분부터 거행되었는데요. 취재 기자로 간 저는 그보다 한 시간 전인 9시까지 도착하여 대통령까지 참석하시는 중요한 행사인 만큼 검색대를 거쳐 ‘PRESS’비표를 받고서야 추념식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정문에서 추념식이 열리는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기까지는 길목마다 헌병 분들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추념식에 걸맞게 조금 무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오전 10시 사이렌이 울리자 모두 묵념하며 추모하는 모습

  

식전행사가 끝나고, 대통령 내외가 입장한 후인 오전 10시에는 사이렌소리와 함께 모두 일어나 1분간 묵념하며 고인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때 울린 사이렌 소리는 비단 우리가 위치했던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서울 18곳을 비롯하여 부산, 대전, 광주 등 전국 225곳의 주요 도로에서도 차량들이 일시정차하여 묵념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전국에서 울렸습니다. 


 이후 대통령내외를 포함하여, 해양특공대 경찰공무원으로 인명구조 중 순직하신 故박권병씨의 배우자 심지희 씨와 소방공무원으로 인명구조 중 순직하신 故강기봉 씨의 부친 강상주 씨,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의 모친 등의 헌화분향이 진행되었고, 추념영상이 상영된 후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가 진행되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장면

 

이번 추념식의 슬로건인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 강한 안보로 보답하겠습니다.’ 에 걸맞게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는 힘 있는 어조와 강한 의지가 보이는 목소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독립운동가와 그의 후손이 제대로 된 예우를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오죽하면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삼대가 잘 산다는 말이 있을 수 있냐면서 애국의 대가가 말 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추념사를 열었습니다. 또한 독립운동가, 그리고 그 독립운동의 한 장면이라도 더 찾아내어 기억하고 기리겠다며,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지키기 위하여 목숨 걸고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군인들과 주민, 그리고 학생들의 애국에 감사하며 


이제는 국가가 제대로 응답할 차례라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오늘날 조국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전장에서 뿐만이 아니고 당시 독일에서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 되어준 탄부와 간호사 분들이 이뤄낸 한강의 기적에 감사하며, 이제는 노인이 되어 당시 가난했던 조국을 부양하기 위하여 애썼던 그분들께 마음의 훈장을 달아드린다며 그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나아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은 ‘애국’이라고 강조하며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 없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통합에 이념갈등을 끝낼 세대로 지금 우리 세대를 짚으며, 국민통합을 위하여 ‘보훈’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보훈 정책의 꾸준한 발전과 그 영역의 확대를 언급했지만, 아직 애국지사들의 공적에는 많이 미치지 못한다며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보훈처의 위상부터 달라지게 하겠다면서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유공자증 수여 장면

 

이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유공자증을 직접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열일곱의 나이에 소년병으로 참전하였던 6.25참전유공자 육군병장 이태윤씨와 포병으로 참전했던 육군병장 박용규씨, 순직 해양경찰공무원 故박권병씨의 배우자 심지희씨, 그리고 순직 소방공무원 故강기봉씨의 부친 강상주 씨 등 대통령 명의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받았습니다. 


그 이후 6.25참전용사인 박용규 씨의 아들인 박종철 씨가 아버지를 모시고 무대에서 직접 편지 낭독을 하였습니다. 그간 아버지께서는 국가를 지켜냈다는 자부심만으로 살아왔는데 드디어 대통령께서 직접 국가유공자증을 수여하시고 병역명문가로서 선정되며 예우를 받아 전날 밤 잠도 한숨 주무시지 못했던 아버지의 지난 밤을 언급하며 돌아가신 모든 그 분들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영부인은 눈물을 보이고 진행을 하던 아나운서도 목이 메는 등 박종철씨의 편지 낭독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 박종철씨와 함께 박용규씨를 부축하며 내려오는 문재인대통령

 

이후 배우 이보영씨의 추모헌시 “넋은 별이 되고”의 낭송이 있었고, 뮤지컬 배우 카이씨와 정선아씨가 현충의 노래인 “조국을 위하여”를 연합합창단과 함께 합창하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은 그 막을 내렸습니다. 

 

 추모헌시“넋은 별이 되고”를 낭송하는 배우 이보영씨


 뮤지컬 배우 카이씨, 정선아씨와 합창단이 “조국을 위하여”를 부르는 모습

 

개인적으로도 국가보훈처 온라인 기자단이 되고 나서 나간 첫 행사 취재였으며, 그것도 손에 꼽는 아주 큰 행사였던만큼 현장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이었습니다. 과거의 순국선열 분들께만 감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 희생하신 분들도 기릴 수 있었던 굉장히 뜻깊은 추념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대통령의 추념사처럼 애국을 보훈으로, 그리고 애국자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더욱 잘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기사를 마치겠습니다. 

 

▲ 행사를 마치고 헌화하는 김선아기자(본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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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준식

    2017.06.17 2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충남 아산에 거주하는 보훈 분야에 정말 관심이 많은 대학생, 김준식입니다.
    제가 특히 보훈(나라사랑 정신) 선양과 홍보 쪽에 관심이 많아 '이달의 보훈인물' 정책 홍보 카페의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도 훈터 블로그를 자주 방문해서 기자단 분들께서 쓰신 기사 내용과 함께 나라사랑 관련 게시물들을 많이 접하고 있는데요. 특히 이번에 김선아 기자님의 기사가 올라와서 한 마디를 드리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이번 기사와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만, 예전에 윤희순 의병장 등 여성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쓰신 기사의 내용에 대해 잘 봤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기자님의 다른 기사 내용에 덧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라를 지키는 데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제가 잘 아는 한 보훈처 관계자 분의 말씀을 인용하면 나라가 어려울 때 자신의 오빠를, 남동생을, 남편을 전장 등에 보내고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신 이 땅의 여성 분들도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남성이기 때문에 잘 몰랐을 여성 분들의 위대한 업적과 여성의 위상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 자료 등을 통해 학습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이 내용도 그 때(그 기사가 나왔을 때) 바로 남겼어야 했는데, 저도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그 인사를 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김선아 기자님 외 모든 훈터 기자단 분들께서도 나라사랑의 정신이 많은 국민들께 이어질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많이 남겨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모든 훈터 기자단 분들과 보훈처 관계자 분들께서도 항상 하시는 모든 일마다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저의 글을 여기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7. 6. 17. 충남 아산에서 역사와 문화, 나라사랑 분야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김준식 드림.

    • 대한민국 훈남훈녀 2017.06.25 1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심 감사합니다

    • 김준식 2017.06.26 0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계자 분께서 좋은 답변을 달아 주시니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솔직히 이 내용이 김선아 기자님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는데, 혹시 저의 의견을 김선아 기자님께 직접 전달 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2. 김선아

    2017.06.26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준식님 안녕하세요,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0기 김선아입니다!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 기사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더 좋은 기사 쓰도록 하겠습니다. 알차고 즐거운 방학되세요😊


훈터 독자님들! 연일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라있던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대한 소식 접하셨나요? 역대 최고 규모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9년 만에 제창하게 되어 화제가 되었던 이번 기념식의 현장 분위기를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5월 17일 전야제의 모습


5월 17일 밤에는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전야제가 열렸는데요. 저는 전야제에 다소 늦게 참석하게 되어 마무리하는 분위기였지만 함께 풍물놀이에 참여한 시민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념식 당일, 시민 분들이 518 버스를 이용하는 모습


다음 날, 저는 아침 일찍 제37주년 5.18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가기 위해 518번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몇 대를 보낸 후에야 겨우 탈 수 있을 정도로 기념식에 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기념행사 깃발과 기념식장에 들어가는 시민 분들


날씨가 아주 쨍쨍하고 맑았던 지난 5월 18일, 오전 10시부터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시작하는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시민 분들이 자리했습니다. 특히 새로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국가 공식 행사라 이번에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시민 분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후에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의 문을 통해 식장으로 입장하자 시민들이 모여 진심으로 환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입장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경건히 국기에 대한 선서를 한 뒤 애국가 제창이 있었습니다. 목청껏 한 마음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꿈꾸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기념식장을 가득히 퍼져 울려나갔습니다. 곧 이어 헌화 및 경과보고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잇따랐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경위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의에 저항해 총을 들고 항쟁하던 시민군을 형상화한 무장항쟁군상


대통령 기념사와 5.18유가족인 김소형(37)씨의 아버지를 향한 헌시 낭독 도중에는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젊음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계속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헌화 및 분향


- 임을 위한 행진곡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끝이 난 이번 기념식 이후에는 헌화 및 분향 후 묘소 참배가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열사들의 묘소를 둘러보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기념식에 참석한 고등학생 분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강진고등학교 3학년 – 이현경, 이소현, 박성은, 위보배 



1.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교장선생님의 추천으로 오게 됐다. 교장선생님께서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셔서 평소에 저희들에게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러다가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 어떤지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이렇게 교장선생님과 함께 올 수 있었다.

2. 나에게 5.18이란?

잊으면 안 될 것. 기념식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크게 와 닿는 부분이 없었는데 기념식을 통해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를 이뤄낸 것이 매우 큰 업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그 부분에 대한 감사함을 진심으로 가지게 되었다.

3. 평소 학교나 집에서 5.18민주화운동에 어떻게 배웠는지?

전남 지역에 거주하다 보니 선생님이나 주변 이웃 분들 중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으신 분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5월이 다가오면 5.18민주화운동부터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듣는 것과 기념식에 참여하여 듣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4. 기념식에 참석하고 드는 생각은?

당시의 상황을 기념식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안타깝고 슬펐다. 다음 해에는 성인이 되니까 더 많은 친구들과 기념식에 와서 많이 배우고 가고 싶다. 또 이런 국가 행사를 참석하는 것이 나의 가치관을 한층 성장시키는 일 인듯하여 보람 있었다.

오늘 기념식은 자신의 젊음을 희생하고 국가의 미래를 환하게 비춘 5.18민주화운동 희생영령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는 자리였습니다. 현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37년 전 그날, 민주주의를 이뤄낸 그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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